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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렇게 오래 일해야 하나요?

세계 최장시간 노동 국가군 한국의 시간 자원 문제 고민하는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등록 2015-12-19 09:53 수정 2020-05-02 19:28

직장인 김아무개(37)씨는 아침 6시30분에 일어난다. 7시30분에 집 앞에 도착한 회사 통근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24시간 돌아가는 회사는 이미 낮처럼 환하다. 이제야 지상에 어슴푸레 빛을 비추기 시작한 해가 오히려 게을러 보인다. 버스가 그를 회사 문 앞에 부려놓으면 바로 식당으로 내려간다. 눈곱만 겨우 떼고 온 노동자들에게 회사는 아침을 준다. 점심도, 저녁도 회사에서 먹는다. 커피도 마시고, 화장실도 간다. 아프면 회사 안에 있는 병원에 간다.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회사 울타리를 벗어날 일 없이 하루를 마치면 다시 통근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목에 걸린 사원증을 입구에서 찍고 들어가 다시 찍고 나와야만 끝나는 하루. 회사는 흩어지는 시간까지 긁어모아 일에 쏟아부으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김씨의 시간은 누구 것일까.
한국의 장시간 노동 체제는 ‘하루 12시간만 일하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했던 1976년 해태제과 여공들의 탄원이 면면히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은 고속 성장기가 종료된 이후에도 세계 최장시간 노동 국가군에 속한다. 한국인의 평균 연간 노동시간은 216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길다. OECD 국가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1770시간이다.

(코난북스 펴냄)에 따르면 한국에서 장시간 노동이 이뤄지는 원인은 다양하다. △노동과 자본 투입량 증대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생산 체제 △전일제 고용과 남성 외벌이를 전제로 한 고용 체제 △노동시간에 대한 제도적 규제의 취약성 △기업의 노동유연화 전략과 같은 시스템상의 문제들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저임금과 생계비 부족을 초과근로로 충당하는 노동자들의 선택까지 맞물리면서 장시간 노동 체제는 이 사회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장시간 노동 체제는 개인의 비극과 희생을 확대한다. ‘만날 수 없는 가족’을 재생산하고 가족 내 남성과 여성의 젠더 차별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도 일조한다. 장시간 노동을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에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공고하다. 저자들은 한국이 압축된 산업화를 거치면서 하루 종일 집 밖에서 일하는 남성 ‘가장’과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전담하는 전업주부 집단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형성했다고 지적한다.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높아지는 역전의 사례가 빈번하지만 이 경우에도 가부장적 젠더 이데올로기는 강고하게 작동한다. 책은 이를 ‘젠더 보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여성이 주 생계부양자가 되는 것이 기존 성역할 규범에 어긋나는 현상이라 인식하면서 이를 보상하기 위해 더 열심히 가사에 매진한다는 것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사람들은 비용을 지급하고 육아와 가사를 대신 해결해줄 누군가의 시간을 사지만 이 또한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책은 이것을 ‘시간의 외주화’라고 정의한다. 이 체제 안에서 개인의 시간 자원을 자본화하는 것만 반복하며 잃어버린 가족의 속성을 되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목 그대로,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을까. 저자들은 이윤보다는 노동자의 몸과 삶을, 품질보다는 자기 삶의 질을 우선하는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탈된 시간을 되찾고 별일 없이 어슬렁대는 일상에서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성, 잃어버린 인간성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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