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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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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품위

병으로 삶과 죽음이 뜻하지 않게 갈리는 인생…의사와 병원이라는 ‘절대 존재’ 앞에서 우리의 선택은
등록 2015-12-19 09:47 수정 2020-05-02 19:28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필차기’라는 게 있다. 마당 같은 곳에 네모 칸을 연달아 그려놓고 깨금발로 돌을 차는 놀이이다. 돌이 금에 걸치거나 바깥으로 나가면 아웃이 된다. 육지에서는 ‘사방치기’라고 불렀다. 거문도의 동도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그 놀이를 같이 하던 친구가 있었다. 학교가 옆 마을에 있어서 하교할 때 바닷물이 밀려나 있으면 바닷가로 다녔다. 일·이학년 때는 모양 좋은 돌 고르는 게 그곳에서 늘 하던 짓이었다.

최고의 약자가 되는 순간

그렇게 어울려 놀다가 어른이 되어 토목 사업가와 소설가, 이렇게 각자의 길을 살았는데 끝내 더 엇갈리고 말았다. 그 친구가 지난겨울 심장 발작으로 앰뷸런스 안에서 운명을 달리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렸을 때의 추억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옛날이야기처럼 아득히 멀어져버린 느낌이다.

비슷한 시기, 거문도에 살고 있는 다른 친구 하나도 같은 증세로 쓰러졌다. 헬기로 급히 후송되어 거의 기적에 가깝게 살아났다. 우리는 이 친구 나이를 두 살로 친다. 새롭게 태어났다고. 그래서 술도 안 따라준다.

낚싯배 하는 선배는 지난해 뇌출혈로 쓰러졌다. 항구의 병원을 거쳐 서울에서 수술을 하고 회복되어서 내려왔다. 얼마 전에는 재발되어 또 실려갔는데 이번에도 무난하게 회복되었다. 같은 증세로 시 쓰는 동료 한 명은 지금 병원에 누워 있다. 애타게 회복을 기원하고 있지만 아직 의식이 깨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질병으로 인해 삶과 죽음이 매번 뜻하지 않게 갈리는 인생을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기에 의사와 병원이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 그들 외에는 기댈 곳이 없기 때문에.

이곳 섬은 보건소만 있다. 공중보건의는 병역 대신 온 이들이라 어리다. 비슷한 연배의 어린 의사들이 계속 교대하고 나는 나이를 먹어가니 그 차이가 해마다 늘어난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늙은 주민들까지 모두 그들에게 경어를 쓴다. 존경해서? 그럴 리가. 잘 모르는 남의 집 아들을 왜 존경하겠는가. 의사라서 존중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존중은 상대의 인품 덕에 생기는 게 아니다. 의사를 왜 만나는데. 우린 병에 걸리는 순간 최고의 약자가 된다. 그런데 병은 수천, 수만 가지이다. 약자가 될 확률 아주 높다.

우리가 병원에 가는 이유는 아프기 때문이고 그리고 안 죽기 때문이다. 평균수명이 엄청나게 높아졌지만 환자 상태로 평균 십 몇 년을 보낸다고 하니 이게 정상적으로 사는 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겠다. 어떻든 간에 병원을 가면 우선 검사에 질린다.

언젠가 서울 어느 약국에 앉아 있을 때였다. 한 중년 남자가 약사에게 불평을 해댔다. 종합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 하느라 150만원이 들었는데 결국 아무 이상 없다고 판명 났다는 것이다. 행색이 가난해 보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줌마가 깔깔 웃었다. 자기도 머리가 아파 병원에 갔으며 이런저런 검사를 받느라 5일 동안 다녔는데 도중에 머리가 싹 나아버렸단다. 남자는 눈만 끔벅였다.

“약 하나 안 먹었어요, 깔깔.”

아줌마는 계속 웃었다. 그때 그녀가 사간 것은 무좀연고였다. 남자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나도 병원에 간혹 간다. 편안치 않은 젊은 시절을 보낸 탓에 이곳저곳이 순서대로 아프니까. 그때마다 ‘젊어 농땡이가 늙어 보약이다’는 말을 절감하곤 한다. 심지어 해경 경비정을 타고 나간 적도 있다. 풍랑이 인 밤이었는데 더 이상 통증을 견딜 수가 없어 타게 됐다. 그들은 민간인 구조 활동에 대한 증거물로 나를 사진 찍었다. 나로도 가까이 가자 관할 구역이 바뀌는 관계로 다른 경비정으로 옮겨 타야 했다. 파도가 높아 간신히 옮겨 탔다. 이렇게 해경 경비정이나 119 헬기가 운영되기 전에는 해군 피케이선 타고 나갔었다. 그 배는 속도는 빠르지만 파도의 충격이 대단해서 환자는 말 그대로 죽을 곤욕을 보곤 했다.

통증 견디다 못해 헬기 탔는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그렇게 병원에 도착하면 약자이자 죄인으로 변해버린다. 섬마을 어린 공중보건의 앞에만 가도 그러니 큰 병원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병에 대해 잘 알고 우리는 모르기 때문만일까?

의사들은 목뼈를 경추라 하고 발등을 족배라 하고 겨드랑이를 액와라고 하며 간지러움을 소양증이라 한다. 더 있다. 물집은 천포창, 두근거림은 심계항진, 물린 상처는 교상, 꽃가루 알레르기는 고초열이라고 한다. 쉬우면 의료용어가 아니다. 이렇게 한문 형태 아니면 죄다 영어이다. 영어로 휘갈겨쓴 자신의 차트를 몇 번씩 본 기억 있으실 것이다.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없어야 위상을 유지하기에 좋을 테니까.

한 환자가 물었다.

“그러니까 제 병명이 무엇이죠?”

“감기몸살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의사들이 쓰는 용어로 알려주세요.”

“왜요?”

“회사와 마누라에게 말하게요.”

의료지식 독점을 조롱하는 일화다. 그런 용어를 우리는 잘 모르니까. 그러니 무지한 존재가 된다. 무지하면 죄인이다. 특히 안 좋은 의사를 만나면 더욱 그렇다. 여기서 안 좋은 의사란 야단치고 협박하는 의사이다. 그들은 모니터만 들여다보며 ‘금지’ ‘절대로’, 이런 단어를 내뱉는다. 완벽하게 건강한 몸을 기준으로 두기 때문에 의사 앞에 앉는 순간 야단맞고 협박받는 건 보장되어 있다.

이를테면 나는 술을 마시는데 그것 때문에 속병을 앓았다. 당연히, 절대 마시지 말라고 한다. 참 쉽다. 나도 아는 것이니까. 그것으로 의사 역할은 끝이다. 몇 개 더 있긴 하다. 첨단 의료기기가 검사한 사진과 수치를 읽어내는 것. 대화는 없다. 얼굴도 보지 않고 간단히 말만 하기에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듣자니 어떤 병원에서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그날 진료한 환자 수를 문자로 보내서 의사를 압박한다고 한다. 이러니 그들도 고달플 것이다.) 나는 그저 네네, 하며 잔뜩 주눅만 들어 나온다. 이런 의사 노릇은 사진 보는 법과 수치 공부 두어 달만 하면 나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맥주 한 병, 소주 반병이라는 처방

이를테면 내가 의사라고 가정하고 나 같은 환자랑 이야기를 나눠본다. 직업이 작가라는 것을 듣는다. 작가란 아무래도 술, 담배와 가까운 직업이다. 그런 직업 아니라도 상관없다. 친구가 찾아왔을 때, 달은 떠 있고 잠은 안 올 때, 가까운 지인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거나 인생이 허전하다고 느낄 때 술 한잔 안 마실 수 없다. 근데 그것도 하지 말란다.

한번은 담당의사에게 몇 번 마셨다고 고백했다. 그의 안색이 굳어졌다. 아니 내 말 안 듣고? 이런 표정이었다. 나는 주저주저하면서 말했다.

“살다보면 예외라는 게 있잖습니까?”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답했다.

“예외란 없습니다.”

어떤 감정 동요 없이 살라는 소리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상대에 의해 내 기준이 흔들린다는 소리인데, 그것이 대상을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한데 그런 것 없이 단지 건강한 몸 상태만 유지하라는 것. 그 몸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해서는 고민도 없이 말이다. 이런 경우, 어느 정도는 결국 마신다고 보고 몸이 덜 상할 방법을 같이 고민해주는 의사, 그게 진짜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 큰 문제도 있다. 푹 쉬란다. 제기랄, 한동안 열심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검사와 진료비로 받으면서 환자에게는 일하지 말고 쉬란다.

좋은 의사가 있기는 했다. 병원 이름을 말하면 광고 같으니까 안 하겠다. 이 병원 원장은 5일 만에 퇴원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잡곡으로만 밥을 해먹는다는 조건으로 하루에 맥주 한 병과 소주 반병.” 그리고 씨익 웃었다. 나는 그의 처방을 조금 다르게 해석해서 하루 안 마셨다면 그 다음날 맥주 두 병과 소주 한 병, 이렇게 적립식으로 계산해서 마시기는 하지만.

동네 다른 선배는 담도종양이 발견되어 수술과 입원을 했다가 얼마 전에 돌아왔다. 운 좋게 1기여서 큰 문제 없었다. 혹시 모르니 항암치료 하자는 말은 거부했다. 병동에서 만난, 거구의 젊은 사내들이 굶으며 계속 검사받느라 비쩍 곯아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항암치료 대신 날마다 아내와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지낸다. 보기에 좋다.

우리 인생의 최악은 돈 벌기 위해 죽도록 고생한 다음 늙어서는 그것으로 인해 병을 얻고 모아둔 재산을 의료비로 다 탕진하고 죽는 것이다. 링거 줄줄이 달고 온갖 계기판에 라인을 연결한 채.

그다음은 별로 아프지 않는데도 전전긍긍하며 병원 순례를 하는 것이다. TV 채널마다 툭하면 질병에 관한 잔소리를 쏟아내니 공연히 겁에 질려서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한다. 요즘 유행하는, 건강 염려증 환자들의 의료 쇼핑이다.

어떤 삶과 죽음의 경계

현생인류는 지구에서 지금까지 990억 명이 살다가 죽었다. 내가 세본 것은 아니다. 책에서 읽었다. 여기서 떠오르는, 뻔하지만 툭하면 잊고 있는 교훈 하나. 누구라도 꼭 죽는다는 것. 의사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러니 마지막 단계는 의사의 결정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소한 죽어가는 과정만큼은 링거 줄줄이 꽂고 병원에 누워 있는 것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으니까. 어차피 가망 없다면 품위를 유지하며 죽는 게 마지막으로 해야 할 노력 아니겠는가.

지인의 장인어른이 의식 없는 상태로 오래도록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아흔 넘은 고령이었다.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의사와 가족들이 서로 동의했다. 생명연장 의료장비를 제거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던 친척 한 명이 나타나서 화를 냈다. 안 된다, 당장 음식부터 먹여라, 개신교 신자인 자신의 신념으로는 용서할 수 없다, 라고. 그 사람이 하도 성화를 부려서 기도 삽관으로 죽을 밀어넣어야 했다. 일단은 그 말이 옳기는 하니까. 이틀 뒤 환자는 배변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가족은 똥까지 닦아내야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손가락 하나 거들지 않았다.

이런 상황 낯설지는 않으실 것이다. 현재 우리의 모습이니까.

한창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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