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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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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당한 밥그릇을 내놓으라는 요구다”

바른음원협동조합 꾸리고 기존의 시장 ‘바깥’에서 유통하는 음악 꿈꾸는 신대철
등록 2015-10-15 13:07 수정 2020-05-02 19:28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그가 ‘리얼리스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대철. 한국 록의 고유명사. 그리고 대체할 수 없는 당대의 기타리스트. 그가 음원 앞에 ‘바른’을 붙여 ‘협동조합’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그건 당최 성립되지 않을 ‘합주’처럼 들렸다.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도 황당해했다. 무대 위에서나 바깥에서나 고독자로 표상됐던 그가 마당의 행정가로 나서겠다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는 지금 5대 음원 사이트(멜론, 네이버, 엠넷, 지니, 소리바다) 바깥에서 음악을 유통하는 ‘사고’를 준비 중이다. 작업은 이제 막바지다.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바른음원협동조합’(http://bmcoop.org)은 곧 새로운 음원 유통 플랫폼을 세상에 내놓는다.

싼 가격, 음원사 차트가 문제

스트리밍(streaming). 지금, 음악을 듣는 거의 절대적인 방식이다. 음악은 이제 회전하는 매체의 ‘트랙’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0과 1로 짜인 배열의 ‘데이터’ 값으로 축적된다.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거대한 전환이다. 음악을 듣는 행위는 분명 편리해졌지만, 일회성의 선택이 됐다. 음악을 향한 순정은 많이 희미해졌고, 그 자리에는 경제적 효율성의 논리가 위치했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음원 사재기 논란은 이 전환이 누군가들의 ‘장난’으로 인해 붕괴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문제다. 바른 음원을 고민하는 신대철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악기가 어지럽게 놓여 있고 여전히 흡연이 가능한 작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음원 사재기는 왜 발생하는 것인가.

사재기를 할 만큼 음원 가격이 워낙 싸니까, 사재기를 해 스트리밍 횟수를 올리는 게 너무 쉬운 일이니까. 기본적으론 가격 문제다. 음악이 너무 싸다.

음원 가격을 높이면 사재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분명, 줄일 수는 있을 거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음원사들이 제공하는 차트에 근원적 문제가 있다. 신인급 아이돌들이 방송사 순위 프로그램에 출연하려면 대략 음원 차트 30위 안에는 들어가야 한다. 음원 순위가 방송 출연을 결정짓는 근거가 된다. 그 구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음원 사재기는 계속될 것이다. 아이돌 가수들은 음악이 나왔는데 차트 상위권에 오르지 못하면 바로 난리가 난다. ‘기획사 뭐하냐’는 얘기부터, ‘어뷰징(사재기) 해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기존 가수도 차트에 못 오르면 한물갔다는 얘기가 바로 나온다. 음원 차트만이 절대적 기준인 상황에서 불가피한 문제고, 부적절한 유혹을 떨치기 힘든 이유다.

사재기를 통해 차트를 조작하는 데 금액은 어느 정도 드나.

차이가 있겠지만 싱글일 경우 한두 곡 하는 데는 4천만~5천만원 선이다. 앨범을 통째로 차트에 올리는 조건으로 2억7천만원을 달라는 제안을 받았단 얘기도 들었다. 공공연한 얘기다. 음원 차트를 보면 감이 온다. 얼마 전에 한 가수의 앨범 전체가 차트에 올랐다. 계속 안 내려가더라. 그런 경우 100% 사재기다. 브로커가 개입하고, 기업적으로 돌아간다. 모른다고 하고, 우리는 안 한다고 하지만 음반 제작사들은 대충 다 아는 얘기다.

제작·유통·플랫폼 갖춘 회사만 돈 버는 구조
로엔엔터테인먼트에서 운영하는 멜론, KT가 운영하는 지니, CJ E&M이 운영하는 엠넷이 음원 시장의 85%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은 제작-유통-판매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사실상 음악시장 전체를 지배한다.

로엔엔터테인먼트에서 운영하는 멜론, KT가 운영하는 지니, CJ E&M이 운영하는 엠넷이 음원 시장의 85%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은 제작-유통-판매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사실상 음악시장 전체를 지배한다.

음원이 큰돈이 되지 않는다는 건, 음악계 안팎에서 모두가 아는 얘기다. 그럼에도 음원에 목매는 이유는 무엇인가.

SM, YG, JYP 같은 큰 회사조차 음원 수익으론 유지되지 않는다. 최정상의 아이돌도 음원 수익만으론 음반 제작비도 못 건지는 실정이다. 돈은 행사로 번다. 음원을 사재기하는 이유는 더 큰 수익을 위해 투자하는 개념이다. 아이돌들이 무리하게 이동하다 자동차 전복 사고가 나서 심지어 죽기도 하고, 하루에 서너 건씩 행사 다니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는 시스템은 그들이 잘나가고 너무 바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뛰어야만 단가를 맞출 수 있는 현실에 기인한다. 그렇게 안 하면 가수도 제작사도 정말 먹고살기 힘들다.

음악인들이 음악만으로 먹고살 수 없는 건 반복된 얘기이고, 지난 대선에선 여야 모두 이 문제에 대해 공약도 했었다.

문제는 ‘피지컬’(디지털 음원이 아닌 CD를 비롯한 음반)에서 ‘디지털’로 시장이 바뀌며 음악 가격이 엄청나게 내려갔다는 점이다. 1990년대 중반, 음반 전체의 매출 규모가 4천억원대였다. 지금 음원 시장의 규모는 8500억원 수준이다. 규모가 늘어난 것 같지만, 착시다. 1990년대는 국내총생산(GDP)이 400조원 규모였는데, 지금은 1400조원에 달한다. 음반시장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0년대는 0.1%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0.06% 수준인 셈이다. 사실상 반 토막 난 것이다.

그럼에도 늘어난 4500억원의 돈은 누가 가져갔는가. 그사이 등장한 것은 음원 사이트뿐인데, 결국 이들인가.

음원 사이트라기보단 정확히 음원 제작과 유통 그리고 플랫폼을 같이 하고 있는 회사들이다. 음악계를 장악한 메이저들이다. 멜론·지니·엠넷 3개사는 제작, 유통, 플랫폼을 같이 한다. 로엔엔터테인먼트에서 멜론, KT뮤직에서 지니, CJ E&M에서 엠넷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사가 만든 음원을 추천곡이라며 차트 맨 위에 올려놓는다. 이 수직계열화가 음악시장을 잡아먹었다. 만약 미국에서 애플의 아이튠즈가 음악을 제작하고 유통하고 판매하면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받을 것이다. 노래 한 곡이 팔릴 때, 음원 사이트 40%, 제작사 44%, 저작권자 10%, 실연권자 6%로 분배되는데 이런 배분율은 합리성을 논하기도 뭣한 비도덕적 수치다. 스트리밍의 경우 단품 기준으로 12원인데, 무제한 스트리밍을 하면 50% 할인해 6원이다. 다운로드가 포함된 묶음 상품을 이용하면 할인율은 최대 75%까지 늘어나 음원 가격이 3원이 된다. 결국 작곡자는 0.3원, 가수는 0.06원을 받는다. 음원 가격이 이쑤시개 가격보다 싸고, 한 달 내내 무제한으로 음악을 듣는 게 아메리카노 2잔 가격이다.

양질의 음악 들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
인터뷰 내내 신대철은 음원 가격의 적정성과 할인율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특히 플랫폼이 멋대로 음원을 할인해 팔며 창작자에게는 곡당 0.6원을 배분한단 대목에선 말을 잇지 못했다. 정용일 기자

인터뷰 내내 신대철은 음원 가격의 적정성과 할인율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특히 플랫폼이 멋대로 음원을 할인해 팔며 창작자에게는 곡당 0.6원을 배분한단 대목에선 말을 잇지 못했다. 정용일 기자

소비자 입장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원 가격이 싸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닌가.

가격이 싼 게 아니라 정상적 가격이 아닌 것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그 돈을 받곤 음악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건 가격의 적정성이 아닌 소비의 도덕성 문제다. 음악시장이 디지털화되면서 소비자들이 지나치게 많은 혜택을 받았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싸게 음악을 즐기는 나라다. 음악이 저가 상품이 되다보니, 당연히 질이 떨어진다. 당장엔 싼값에 들으니 이익인 것 같지만, 결국 양질의 음악을 들을 권리를 박탈당할 수밖에 없다. 음악을 한 지 30년이 됐고, 음악을 저장하는 매체가 변화하는 과정을 다 지켜봤지만 지금처럼 힘든 시절이 없었다.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한데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바른음원협동조합은 본격적으로 정정당당하게 밥그릇 싸움에 나선 것이다. 정확히 말하지만, 이건 밥그릇 싸움이다. 밥그릇 싸움이 나쁜가. 내 정당한 밥그릇을 왜 뺏어가냐, 내놔라. 이런 요구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지만  다시  다른  그늘에  나앉은  음악


음원,  ‘요금’ 아닌  ‘임금’으로  봐야


2004년 SK텔레콤은 세상에 없던 제안을 했다. 불법 다운로드의 만연으로 인터넷상에서 사실상 ‘공짜’ 취급을 받던 음악에 ‘값’을 쳐주겠다고 나섰다. 단, 아직은 시장 상황이 무르익지 않았으니 유료화를 하되, 값은 싸게 매기자고 했다. 대부분의 음악인들이 동의해줬다. 음지의 시장을 양지로 끌어내겠단 취지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 제안은 사실상 음악 산업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
음악인들은 음악 산업의 미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선의로 비쳐졌던 SK텔레콤의 제안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SK텔레콤이 만든 ‘멜론’은 한때 음원 시장의 70%를 장악했다. 음악은 고객 확보를 위한 통신사의 미끼 상품이 됐고, 제한 없이 끼워 팔렸다. 멜론 등장 이후, 디지털 음원 시장은 오프라인 음반 시장의 40배 규모로 커졌다. 음반시장이 살아남은 채 디지털이 진화한 게 아니라 디지털이 음반시장을 잡아먹으며 괴물이 됐다.
현재까지도 음악 산업은 멜론과 지니(각각 점유율 49%, 23.5%. 2015년 1분기 기준)에 의해 사실상 장악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동통신업계 1, 2위 업체인 SKT와 KT가 운영하는 음원 사이트가 전체 음원 시장의 75%를 장악하고 있다. 이는 음악이 선택되는 경로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SK텔레콤은 공정거래법 위반 논란이 일자 2013년 멜론을 운영하던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주식 52.56%를 중국계 사모펀드에 매각해 현재는 15%의 지분만 보유하고 있다.)
공고한 빅2 체제에선 점유율 뺏기를 목적으로 한 저가 경쟁만 남았다. 정부의 개입은 힘을 잃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시를 제정하고 한국저작권위원회가 규정을 심사한다지만, 어디까지나 허울뿐이다. 유통을 독점한 이통사가 맘대로 음원 가격을 정하고, 사실상 분배율을 조정한다. 요금제에 음악을 끼워 팔며, 제작-유통-판매를 완벽하게 수직계열화했다. 음원 사재기 발생의 근원적 배경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그 부분이 지적되었다.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은 음원 1위 업체인 멜론이 자사가 제작하거나 투자해 만든 노래를 상위 추천곡으로 올리는 방식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조사 기간 중 추천 음악 7곡 가운데 5곡이 멜론의 운영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음원이었다. 이런 상황을 막을 법·제도적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사재기 방지를 위한 법안도 2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음원 사재기는 두더지 게임처럼 반복될 수밖에 없다. 4대 메이저 기획사(SM, YG, JYP, 스타제국)가 음원 사재기를 규탄하고 나서는 상황은 강자의 카르텔에서 밀려난 중소 기획사들이 음원 사재기를 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음원을 ‘요금’으로 보는 현재의 시스템에선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 음원을 요금이 아닌 음악가와 그 음악가의 생계유지를 위한 ‘임금’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해 보인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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