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암은 정말로 좋은 병이야”

동화작가 사노 요코의 노년 에세이 <사는 게 뭐라고>
등록 2015-07-30 11:58 수정 2020-05-02 19:28

(마음산책 펴냄)의 사노 요코는 리버 페이스트(리버는 간이고 리버 페이스트는 빵이나 크래커에 발라먹는 건데, 여기서 그건 중요하지 않다)를 잘 만든다고 한다. 그녀는 그것을 남자친구(요즘 말로는 ‘남자사람친구’)의 애인에게서 배웠다. 셋은 잘 어울려 다녔는데 남자친구가 자신의 애인과 헤어진다는 말을 듣고는 그 애인에게 전화를 건다. “저기, 리버 페이스트 만드는 법 좀 알려줘.” 둘이 헤어지면 남자친구의 애인이 그렇게 잘 만들던 리버 페이스트를 먹을 ‘미래’가 없다는 것에 생각이 이른 것이다. 그 애인은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랑 헤어져서 딱 하나 좋은 점이 있어. 이제 사노씨랑 안 만나도 된다는 점이야.”

이런 파렴치한 경험을 고백한 뒤 그녀는 솔직하게 자신을 인정한다.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까지 리버 페이스트를 만들고 있다.” 그런 사람 사노 요코는 100만 권은 팔렸다는 동화책 의 작가이자 에세이스트다. 일본에서는 국민 시인 다니카와 타로를 남편으로 두‘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단다. 맞다. 이혼했다. 다른 한 명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가보다. 두 번 이혼했다고 에세이에는 나온다.

는 사노 요코의 일기 같은, 그래서 아침에 언제 일어났고 자기 전에 무엇을 읽었다 등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나오는 글을 모았다. 첫 글은 2003년이고 마지막 글은 2008년이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갱년기 히스테리 할망구!’라며 내 험담을 늘어놓겠지. 미안하지만 갱년기는 끝난 지 오래다.” 공공기관이면 무엇이든 걸리는 대로 악담을 해대는 그녀가 수도국 직원을 몰아붙이는 전화를 끊고는 하는 말이다. 갱년기가 오래전에 지난 그녀는 1938년생이다. 카페에서 아주 천천히 식사를 하는 할머니를 보며 감상에 젖었다가 나오는데 생각해보니 자기가 무슨 샌드위치를 먹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늙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이 나이가 되니 마음이 화사해지지 않아서 오히려 편하다. 아, 이제 남자 따윈 딱 질색이다.”

사노 요코는 2007년 암 선고를 받는다. 누군가 1년 정도면 죽으니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안 무섭다니까. 오히려 기뻐. 생각해봐. 죽으면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고. 돈을 안 벌어도 되는 거야. 돈 걱정이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행운인걸. (…) 게다가 암은 정말로 좋은 병이야. 때가 되면 죽으니까. (…) 류머티즘 같은 건 점점 나빠지기만 할 뿐이고 계속 아픈데도 낫질 않잖아.” 정말 암에 걸려 죽게 되는 사노 요코가 부럽게 생겼다. 거기다 암이 전이되어 뼈로 옮아갔는데 정말 사노 요코는 행운아다. 담당의사가 근사한 남자다.

암 선고를 받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국수주의자라 외제차는 절대로 타지 않았다는 요코는 재규어를 산다. 프리랜서라 연금이 없어서 저금을 악착같이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타는 차가 재규어라니 나는 운이 좋다.” 누군가 안 어울린다며 시기하자 그런다. “억울하면 너도 사면 되잖아. 빨리 죽으면 살 수 있다고.” 사노 요코는 선고보다 훨씬 오래 살아 2010년 11월5일 영면했다. “나와 가장 절교하고 싶은 것이 나”라고, 사실 암보다 우울증이 더 힘들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내면이 그렇게 웃을 만한 건 아니지만, 그녀가 지나가듯 하는 말대로, “아, 재밌다”. 그녀의 글도 인생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