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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환상도, 그 속을 거닐다

수중촬영 사진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제나 할러웨이의 사진전 ‘더 판타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녀의 용감함과 아름다운 사진들
등록 2015-07-24 08:05 수정 2020-05-02 19:28
제나 할러웨이 사진전 ‘더 판타지’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 이 사진전은 9월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한겨레

제나 할러웨이 사진전 ‘더 판타지’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 이 사진전은 9월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한겨레

2009년 사진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적이 있다. 1회차 요트 웨딩 화보 촬영 미션에서 카메라를 들고 한강에 뛰어들어 찍은 사진으로 우승했다. 2회차는 수중모델 촬영 미션이었다. 수중 스튜디오에 배경 천을 깔고, 외부 조명을 설치한 뒤, 패션모델에게 드레스를 입혀 물속에서 촬영해야 하는 과제였다. 당시 나는 서핑·요트 촬영 경험을 해왔던지라 물에서 촬영하는 것이 자신 있었지만 수중 스튜디오 촬영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물속에서 보통 사람이 숨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은 1분 남짓. 모델들은 ‘1분이면 사진 몇 장을 촬영하기엔 충분한 시간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중모델이 포즈 취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들은 수면 언저리에서 버둥거리기만 했고, 물속에서 잠시도 숨을 참지 못했다. 모델의 드레스는 쉽게 엉켰고,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날렸지만 스스로 정리할 만한 여유가 모델에게는 없었다. 익숙해지기는커녕 표정과 몸짓은 점점 얼어갔다. 당시 상황은 재난영화,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모델과 사진가는 대화가 필요하고, 물속에서 대화를 하려면 수신호·메모판 등 시각을 이용해야 하는데, 모델은 물안경을 끼고 있지 않고 눈을 뜨기조차 힘들어했다.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될 리 없었고 녹화는 중단됐다.

결국 스쿠버다이버가 모델에게 보조 호흡기를 물려 5m 바닥까지 내려가 대기하며 머리·의상 등을 정리했다. 그 뒤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다이버가 모델을 놓고 그들이 떠오르면 촬영하는 쪽으로 방법을 바꿨다. 모델은 원하는 포즈를 취하기보다 떠오르기에 바빴고, 제작진은 시간 관계상 조명 위치나 세기를 조절할 수 없다고 했다. 도전자들 모두가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촬영을 하는 바람에 경쟁은 체험행사처럼 싱거워졌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사진은 잘 나오지 않았다. 초점·노출·구도 모두 엉망이었다. 초점이 맞은 사진은 머리카락이나 드레스의 모양이 제멋대로 날렸고, 모델이 웃고 있는 사진은 얼굴이 잘리거나 다리가 잘렸다. 모델과의 호흡(소통)은커녕 자신의 호흡(기량)도 조절하지 못했다.

제나 할러웨이 사진전 ‘더 판타지’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 한겨레

제나 할러웨이 사진전 ‘더 판타지’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 한겨레

그날은 좌절했지만 덕분에 지금까지 ‘내 것’을 찾기 위해 물속을 헤매고 있다. 그동안 내가 알게 된 것은 수중촬영에는 행운이 없다는 것. 물속 세계는 자신의 실력과 한계가 그대로 드러나고 적당한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물 밖보다 훨씬 밀도가 높고 숨 막히는 환경, 그 속에선 아주 사소한 것조차 힘든 일이 된다.

하지만 제나 할러웨이, 그녀의 사진에는 인류 모두를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제나 할러웨이 사진전 ‘더 판타지’를 보며 든 느낌이다. 사진이기보다는 컴퓨터그래픽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분명히 컴퓨터그래픽이 아닌 의도된 연출 사진이다. 나는 마법처럼 우아한 그림 같은 사진 속에서 수중 사진 기법의 묘한 힌트들을 찾을 수 있었다.

플래시를 터트리는 스트로브를 사용하고 느린 셔터 스피드를 사용해 경계를 뚜렷하고도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 원하는 곳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모델 몸의 일부를 움직이게 하여 깊으면서도 얕은 심도를 표현해내는 것, 물의 관성을 이용해 드레스의 우아한 형태를 만드는 것, 수면의 반사성을 이용해 데칼코마니처럼 표현하는 것, 수중촬영의 골칫거리인 공기방울과 렌즈의 플레어를 후보정으로 지워내지 않고 오히려 잘 활용해서 밤하늘의 별처럼 표현하는 것, 수면의 물결과 빛의 굴절을 활용해 빛을 특별한 무늬처럼 만드는 것, 랜턴을 이용해 빛의 궤적을 그리고 전원을 끈 뒤 바닥으로 떨어트려 사진 위에 빛으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지속광과 순간광을 함께 활용하는 것, 인화된 사진 위에 잉크로 그림을 그려 번지는 순간을 담아 새로운 사진으로 만들어내는 것. 이 모든 것을 제나 할러웨이가 한순간 우연히 건진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동안 그녀가 꿋꿋하고 용감하게 걸어온 세월과 실천의 결과일 것이다. 그 아름다운 결과물이 그녀의 몇 장의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개인의 호기심과 신념으로부터 시작된 행동에서 일궈낸 어떤 성취가 결국에는 인류 모두에게 놀랄 만한 어떤 것이 되었다.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져왔고 그녀의 사진은 수중 사진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고 있다. 나는 언제쯤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을 수 있을까? 갈 길이 까마득하다.

KIMWOLF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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