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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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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손에게 정말 미안하다

종이 봉지에 담아 팔고 택배로도 배달하게 된 거북손, 그게 나한테서 비롯된 것 같아 진심으로 쓰는 사과문
등록 2015-05-29 07:01 수정 2020-05-02 19:28

거북손이라는 게 있다. 거북손과의 따개비류이다.
손암 정약전의 에는 ‘오봉이 나란히 서 있다. 바깥쪽 두 봉은 낮고 작으나 안쪽 두 봉은 크다. 황록색이다. 뿌리둘레는 껍질이 있다. 유자와 같으며 습하다. 살에도 붉은 뿌리와 검은 수염이 있다. 맛이 달다’고 나와 있다. 우리나라 바닷가 어디를 가나 갯바위 틈에 오밀조밀 붙어 있는, 마치 자그마한 산(山)처럼 생긴 녀석이다. 우리 마을에서는 보찰이라고 한다. 대감 감투라는 별칭도 있다. 감투처럼 생겼기 때문인데 거북손 이름도 거북이 발 모양이라 해서 붙은 것이다.

미안하다, 니 동료들에게도 전해주기 바란다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이렇게 설명하는 동안 웬만한 분들은 ‘아, 그 거북손’ 이러실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잘 알았지만 요즘은 통 모르는 게 제법 많은데 반대로 이렇게 몰랐던 것을 최근에 알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거북손처럼 먹는 거면 특히 그렇다.

나는 요즘 이 친구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진심이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갯바위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대표나 위원장, 하다못해 이장 또는 반장도 안 뽑아놓았다. 그래서 사과하려면 우리나라 바닷가나 섬마을 모든 갯바위를 찾아다니며 해야 할 판이다. 그렇게 한다면 100년쯤 걸리지 않을까 싶다. 비타500이라도 사가야 한다면 그 돈은 또 어디서 댈 것인가.

그래서 어제는 갯것(바닷가에서 이런저런 해초와 패류를 채취하는 행위) 갔다가 바위틈에 있는 애들 중 큰 놈 몇몇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니 동료들에게도 이 말을 전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고둥과 해삼만 몇 개 잡아왔다. 왜 갑자기 패류 따위에게 사과를 하지? 싶으실 것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발에 걸린 돌멩이에게 쌍욕을 하거나 느닷없이 수선화에게 사랑 고백도 하게 되며 재수 없으면 뜨물에 애가 서고 지렁이한테 귀두도 물린다는데 거북손에게 사과 정도 못하겠는가.

사과문을 쓰게 된 당장의 동기는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한 아가씨 때문이다. 일전에 그녀가 거제도 쪽으로 가족 여행을 갔는데 그곳에서 거북손을 먹었다며 문자를 해왔다.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먹었냐고 묻자 종이 봉지에 담아 팔더라는 답이 왔다. 예전 번데기나 다슬기처럼 말이다. 나는 약간 멍해졌다.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걸 이렇게 팔고 사먹고 있는 거지?

이리저리 물어보고 나서야 짐작이 되었다. 최근에 ‘삼식이 새끼’ 비슷한 발음의 프로그램을 보셨을 테다. 졸라 유명했다니까. 거기서 이것 먹는 장면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 덕에 유명세를 탔다는 것. 인터넷에서 보니 냉동 포장해서 택배로 판매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이 호황의 근원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가을에 나는 라는 책을 냈다(그땐 이게 부제였다). 30가지 해산물(하나는 인어라서 해산물로 부르기 어색하지만)에 관련된 사람들 사연과 간단한 채취 방법, 요리법 같은 것을 써놓은 것이다. 설명은 여기서 스톱. 마치 책 팔아먹으려고 하는 짓 같으니까.

암튼 당시 방송에서는 ‘하루 자고 이틀’이란 이름의 코너가 잘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책이 나오고 얼마 있지 않아 그 팀원들이 갑자기 만재도에 찾아간다. 가서 거북손을 삶아 먹는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 담당 에디터가 내 책을 그 방송팀에 보냈다는 것.

우연일 수도 있지만 시기가 딱 맞아떨어진다. 더군다나 그 책에는 자연산 돌김을 말려 팔고 있는 어떤 할머니를 배경으로 만재도가 나온다. 내 책에서 아이템을 얻은 방송작가가 연출을 맡고 있는 나아무개 PD에게 말하고 이거 그림 되겠다, 가보자, 했을 거라는 게 일단의 추측이다.

바닷가에서 노는 방식으로 알려주려 했던

추측이 맞는다면 그때부터 사람들이 거북손에 대해 알기 시작했고 그 나아무개 PD가 방송국 옮긴 다음 다시 연예인들을 만재도로 보내 또 거북손을 등장시킴으로써 본격적으로 죽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유명해지면 죽는다는 명제가 만들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그 단초를 제공했다는 자책 때문에 이렇게 사과문을 쓰고 있다.

물론 나도 채취해서 먹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책을 냈다. 그러니 내가 먼저 잘못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바닷가에 놀러갔을 때 그저 회나 사먹고 어슬렁거리다 돌아가는 모습이 측은해서, 가족끼리 이런 것 발견했을 때 이렇게 하면 먹을 수 있다고 소개한 거였다. 바닷가에서 노는 방식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전국적 열풍이 일어나 택배로 받아먹으라는 게 아니었다.

문제는 거북손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을 보게 될 확률은 -3300%이다. 한 200만 년 지나 거북손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잡지를 읽는 조개류가 된다면 가능하겠지만 말이다(하다보니 참 턱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사실 이런 쏠림 현상은 오래되었다. 일전에 쇠비름의 효능이 방송에 나온 모양이다. 이거 흔한 풀이다. 시골에서는 흔하고 별 소용 없는 풀을 싸잡아 지심이라고 한다. ‘지심매러 간다’ 하면 밭에 풀 뽑으러 간다는 소리다. 쇠비름은 지심이다. 그런데 좋다고 하자 잔뜩 뜯어먹고 응급실에 실려 간 사람도 있었단다. 쪽팔리는 짓도 참 다양하다.

우리 섬도 마찬가지다. 겨우살이가 좋다고 하니 시도 때도 없이 산을 타서 이제 구경조차 어렵다. 만나는 사람마다 주변의 이런 행태를 비난하지만 그 사람 집에 가면 예외 없이 겨우살이 담근 술 몇 병씩 있다. 오래전 어떤 박사가 비타민C를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자 1초라도 늦으면 큰일 날 것처럼 달려들어 약국에서 동이 나게 만든 것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끼리 말하곤 한다. 여름 수온이 올라가면 해파리가 잔뜩 불어난다. 어민들이 이놈들 때문에 죽어난다. 해파리를 없애는 방법은? TV에서 몸에 이롭다고 한 번만 나오면 된다. 적조 현상도 마찬가지다. 적조 바닷물을 조금씩 장복하면 만병이 사라지고 항암 효과까지 있다고 방송 타면 된다. 그러면 바닷물이 아주 맑아질 것이다.

남해 독일인 마을이 소개되자 사람들이 잔뜩 모여들어 그곳 교통이 마비된 적이 있다. 주민들 원성이 자자했단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불안한, 이른바 센터 콤플렉스. 예전에는 이런 거 종교가 했다. 메시아가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들어 말씀을 듣고 전했으며 그의 지시대로 동으로 가고 서로도 갔다. 경전을 얻어와 베끼기도 했다.

태래비전, 새로운 신의 등장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지금은 새로운 신이 등장한 시대다. 이름 하여 怠來卑電(태래비전). 사람들은 그분이 말씀하시는 뉴스를 곧이곧대로 믿고 뭐가 몸에 좋다고 강설하면 우르르 달려가 ‘아작’을 내버린다. 그래서 거실 벽 중앙에 태래비전님을 모셔놓고 제사까지 그분께 지내는 것이다. 심지어 저는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면서 그분을 통해 남들이 노는 것을 구경한다.

신(神)은 터미널 앞 식당 메뉴처럼 많을수록 좋다고 칠조 박상륭 선생께서 말씀하신 바 있다. 인도에서는 신의 수가 자그마치 10억 명이나 된단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의 새로운 신도 갈수록 늘어 버튼만 누르면 새로운 존재들이 나와 가르침을 전한다.

그중 대표적인 게 먹을 것 관련이다. 이 채널에서 성인병 예방을 위해 과식을 금하고 운동하라는 말씀을 전하시는데 그다음 채널에서는 이것 먹어봐라, 저것은 더 맛있다, 설파한다. 이른바 먹방이다. 언젠가 음식 관련 채널이 너무 많은 것을 한탄하자 모 방송국 PD는 이렇게 대답했다. “먹는 거 하면 기본 시청률은 나오거든요.”

이거 좀 심하다. 다큐멘터리 관련 자료를 보면 2010년 3월 셋쨋 주 지상파 TV에 나온 식당이 모두 177곳인데 1년 동안 그 추세가 계속됐다고 보면 1만여 곳이 ‘맛집’으로 전파를 탔다는 계산이다. 대한민국은 맛집 공화국이며, 그 집들은 모두 ‘최고’이고 ‘상상도 못한’ 맛을 끌어내며 ‘무뚝뚝하지만 인심은 좋은’ 사장님들이 운영한단다.

검증되지 않은, 과도한 정보에 의한 쏠림 현상. 이거 어떡할 것인가. 하이데거인지 야스퍼스인지 헷갈리지만 한 실존주의 철학자는 100년 뒤엔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거라고 예측한 바 있다. 실제 누가 말했는지 알 게 뭔가. 그 말이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지금은 몰골이 이 따위로 돼버렸지만 나는 20대 초반 음악감상실 DJ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종종 튼 곡 중 하나가 킹 크림슨의 (Epitaph)인데 그 노래 가사에 대략 이런 게 있다. ‘무언가를 알게 된다는 것은 끔찍한 친구일 뿐이야. 규칙을 정하지 않으면 모든 인간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에 달려 있게 되는 거지.’

많이 샀다니 이유가 있겠지

당시는 막연한 관념적인 표현으로 보였는데 요즘 세태에 맞춰보면 살 떨릴 지경이다. 유명한 음식점에 길게 줄 서 있는 모습, 흥행 1위 영화는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남이 한 것은 뒤늦게라도 해야 안심되는 이들, 남 노는 것 구경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그대로 따라 하는 족속들. 한 가지에서만 정보를 얻는 무지. 이게 바보 아니고 뭔가.

책도 그렇다.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만 찾는 사람들. ‘많은 사람이 샀다니까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럼 나도’ 하지 말고 제발 직접 읽고 판단해주길 바란다 (내 책을 산다면 이 소리만큼은 안 할 텐데). 창의성은 고사하고 스스로 판단도 못한다면 국가와 사회가 통제하기 가장 좋은 대상으로 전락해버린다. 미디어에 의해 사육당하고 조종당하는 무기력한 존재들.

어쨌든 다시 거북손.

물론 나는 어릴 때부터 먹어왔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내가 하는 것은 되고 남이 하는 것은 나쁘다는, 못된 생각의 고백이기도 하다. 단지, 날름 받아만 먹지 말고 바닷가 놀러갔을 때 직접 해보라는 것뿐이다. 추억으로 남을 테니까. 그나저나 이거 읽고 사람들이 더 먹어 조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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