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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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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푸른 미나리, 처절한 몸값

[첫 회] 미나리꽝 하자고 철없이 말하니 ‘생각만 혀도 몸이 벌벌 떨린다’던 어머니, 수확해서 잔손질한 돌미나리 한 아름 값이 7천원이라니
등록 2015-05-21 07:04 수정 2020-05-02 19:28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눈서리 견뎌낸 시금치에 봄볕이 내려앉자 단단한 줄기를 밀어올리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우리가 시금치라 부르는 푸른 잎은 시금치의 어린 싹이거나 늙은 모습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져 아이로 죽음을 맞는 벤자민 버튼 같은 존재들이다. 이제 막 싹을 틔운 어린 섬초는 모진 추위를 견뎌내느라 늙은이 같은 주름과 굴곡을 여린 잎에 새긴다. 그 ‘견딤’은 사람의 입에 달다.

쇠었다, 비로소 연해지다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4월 중순 무렵에 채소가게 아저씨가 배달해준 시금치 박스 안에는 줄기에서 뜯어낸 푸른 시금치가 담겨 있었다. 잎은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줄기는 데쳐도 질겼고 사이사이 꽃이 맺혀 있는 것도 있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시금치. 이제 잘생긴 브래드 피트가 될 시간이구나.’

4월이 지나 5월로 접어든 지금. 사람 손을 타지 않을 시금치는 단단한 줄기를 밀어올리고 꽃을 피우고 가시 돋친 건실한 씨앗을 맺을 것이다. 이것이 시금치다. 다 자라 열매를 맺은 시금치는 외줄기 벼보다 아름답다. 노려보는 사자를 그윽한 시선으로 마주 보는 코뿔소만큼이나 당당하다. 씨앗을 맺었다 하여 고개 숙이지 않고 나이 들었다 하여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렇게 뻣뻣해진 나물을 보고 ‘쇠(衰)었다’고 말하며 혀를 차지만 시금치 입장에서 보자면 모진 유년기를 견뎌내고 비로소 연(娟)해진 것이니 혀를 찰 일이 아니라 겨우내 고맙고 미안했다는 인사를 전하고 장성하여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낸 것에 대해 갈채를 보낼 일이다. 모든 식물이 씨앗을 맺는 일은 인간에게 결국 축복이다.

쇠어버린 시금치의 연연풍진.

시금치는 더 이상 도시락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아 채소가게에 들러보았더니 거친 숨을 몰아쉬는 혈기왕성한 불미나리와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배어져나오는 돌미나리가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날것으로 초장을 찍어 먹거나 샐러드·초무침·회무침 같은 음식에 넣기에는 살아서 벌떡거리는 불미나리가 좋고, 데쳐 나물로 무치거나 탕에 넣어 먹기에는 돌미나리가 제격이다. 4월이 되면 겨우내 입맛을 살려주었던 굵고 아삭한 물미나리는 시금치처럼 자라나 사람이 탐낼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나는 나물을 무쳐 도시락에 담아낼 요량이었으므로 돌미나리를 선택했다.

“미나리가 참 좋아요. 성하고 잡티도 없고. 미나리라는 게 잡티가 많아 손이 많이 가는 것인데 이리도 곱게 다듬어놓았을까.”

종이 박스 안에는 참빗으로 빗질한 그녀의 머리카락처럼 곱디고운 미나리 한 아름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요새 미나리가 참 좋아요. 손질할 것도 없이 깨끗하고 가격도 저렴하고.”

“가격은 어떻게 해요?”

“싸요. 박스당 7천원.”

누런 잎 떼어내고 진흙 씻은 미나리가 1천 가닥

‘아….’

그 고운 돌미나리 한 아름 몸값이 7천원.

품이 들지 않는 농산물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느냐만 미나리만큼 잔손질이 많이 가고 복우리는 농산물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가닥가닥 붙어 있는 누런 잎을 떼어내고(물 묻어 찰싹 달라붙은 누런 잎은 더더욱 떼어내기가 지랄이다), 거머리 떼어내고, 잔뿌리 떼어내고, 진흙을 씻어내야 비로소 한 줄기 미나리가 되는 것인데 박스 안에는 1천 가닥 정도의 미나리가 담겨 있었다. 그저 미나리는 저 알아서 난 것이라 쳐서 값은 제한다 하더라도 그 수천 번의 손길 값이 단돈 7천원이라니. 도매상에서 판매하는 값이 7천원이라면 산지 가격은 3천원 미만일 것이 분명했다.

지난해 이 무렵에 나는 섬진강변에서 살았었다. 산에선 이제 막 움을 틔운 고사리·취나물·곰취·두릅 등을 거둬 먹었고, 물가에선 다슬기·재첩·메기·빠가사리·자라 등을 잡아먹고 살았었다. 그 중간, 그러니까 지리산과 섬진강이 닿는 자리, 개울가에서 돌미나리를 뜯어 먹었다. 하늘하늘한 미나리가 빼곡히 고개 든 돌미나리 군락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반가웠던지. 비린 민물고기 먹기가 여간 사나운 것이 아니었는데 향긋한 미나리 한 줌이 있어 그 비린 맛을 견뎌내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채소가게에서 미나리 박스를 여는 순간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눈이 저절로 가늘어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지만 7천원이란 말에 이내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 미나리 한 줌 뜯고 다듬어 솥에 넣어 끓이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던가. 그런데 이 많은 미나리 한 아름이 겨우 7천원이라니.

아비가 죽던 해에 별수 없이 귀향을 해야만 했었다. 그때도 이 무렵이었다. 빗물, 개숫물, 정화조에서 흘러나오는 구린 물이 한데 모여 흘러가는 좁은 도랑에 미나리가 자리를 잡더니 몇 년이 흐르자 그해에는 제법 몸집을 불려 마른땅 위로도 뿌리를 뻗고 있었다. 도랑물에 뿌리와 줄기를 담그고 살아가는 미나리는 겨울에도 줄기를 거둬 먹을 수 있는 물미나리고, 진흙에 뿌리를 내린 미나리는 겨울에는 숨을 죽였다가 봄바람이 살랑 불기만 하면 싹을 틔우는 돌미나리다. 마른 땅에 뿌리를 내린 불미나리는 촉촉이 봄비가 내리고 나서야 뒤늦게 땅을 밀고 올라왔다. 같은 자리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미나리지만 뿌리내린 터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고, 먹을 수 있는 계절이 달라지고, 불리는 이름이 달라진다.

아비는 미나리 냄새를 싫어했었다. 미나리뿐만 아니라 풋내 나는 것들은 대부분 싫어해서 어미는 밥상 위에 풋것을 올리지 않았었다. 지천에 널린 것이 미나리를 비롯한 풋것이었지만 내가 처음 미나리를 밥상 위에서 맞이한 것은 중학생 무렵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비가 기력을 잃어가고 죽음을 맞이할 무렵이 되었을 때 밭고랑에 터를 잡고 성해가는 미나리 군락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었다.

아비 제삿날 생선탕을 끓인 연유
겨울철 가슴장화를 입고 미나리꽝에서 미나리를 수확하는 사람들. 연합뉴스

겨울철 가슴장화를 입고 미나리꽝에서 미나리를 수확하는 사람들. 연합뉴스

아비를 여의고 그해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에 어미는 밭고랑을 바라보며 나에게 말했다.

“저 미나리를 싹 다 파내야 할랑개벼.”

어미의 말뜻이 무엇인지 헤아리기 어려워 타박하듯 되물었다.

“왜, 잘 크는 것들을 매칼없이….”

“자꾸 뻗어나간 게 물길을 막아서 장마 지믄 물이 안 빠져. 파야 깨야 뭐야 물에 잠기고 나믄 시들허니 기운도 없고, 잘 영글도 안 허고….”

“그럼 물길을 돌려주믄 되겄네. 내가 또랑을 한쪽으로 파줄랑게 그대로 키워봅시다. 미나리가 기운도 좋고 성혀서 장에 내다 팔믄 용돈 벌이는 헐 것이네.”

어미는 그것으로 무슨 용돈벌이가 되겠나 싶었는지 피식 웃고는 내가 하는 양을 지켜만 보았다. 그렇게 물길을 돌려 배수로를 정비하고 나자 밭에는 물이 고이지 않았고 미나리는 미나리대로 잘 자라 이듬해 아비 제삿날에는 미나리가 들어간 생선탕을 끓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야박하다면 야박한 짓일 테지만 아비가 죽은 날은 공교롭게도 어미의 생일이었다. 어미는 미나리·풋고추·머위처럼 풋내 나는 푸성귀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새벽 12시에 차리는 제사상에는 푸성귀를 올리지 않을망정 산 사람의 생일상에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미나리나물·풋고추볶음을 올려도 너무 야박하다 여기진 마시라. 망일을 그날로 택한 아비의 심보 또한 퍽 야박한 것이었으므로.

이듬해, 다시 미나리가 새순을 올리는 모습을 지켜보다 어미에게 또 다른 제안을 해보았다. 마을에는 천수답이었던 논을 파내고 만든 저수지가 있었는데 수십 년간 관리를 하지 않아 늪이 된 맹지였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땅이었기에 이장과 상의를 하면 미나리꽝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 끝에 꺼낸 말이었다.

“어매, 나랑 미나리꽝 한번 해볼라요?”

“어디다 미나리꽝을 혀?”

“여그 방죽이다 미나리꽝을 혀도 괜찮겄는디….”

사시사철 물이 흘러 일부러 무논을 잡을 필요도 없고 진흙으로 메워져 미나리가 뿌리내리기에도 안성맞춤일 듯해 꺼낸 말이었지만 어미의 대답을 듣고는 미나리 농사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실감하고 생각을 접기로 했었다.

“너허고 나허고? 아이고야. 미나리 농사는 펄펄헌 젊은이도 허기 힘든 일이여. 춥디추운 날 물속에 들어가서 그것 거둬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겄냐. 그냥 물도 아니고 가슴까지 차오르는 진흙탕 속을 허적거림서 뜯어야 혀. 밭이서 마늘, 무, 배추 같은 것 따복따복 거두는 일허고는 생판 다른 일여. 하이고 그 추위. 생각만 혀도 몸이 벌벌 떨린다. 늙은이가 헐 일은 아녀. 젊다고 헐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홀로 아름답게 꽃 필 여름이 왔으면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전북 전주시를 둘러싼 완주군은 미나리의 주요 산지 중 한 곳이다. 가을에 추수를 마치면 보리를 심는 논 중간중간에 땅을 파내고 무논을 잡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 무논에는 미나리 모가 심어져 있는데 겨울이 시작되고도 한동안 물속에서 미나리는 자라나고 12월 중순부터 수확이 시작된다. 멀리서 보면 서릿발, 눈발에 모두 시든 허튼 것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물 아래를 내려다보면 굵고 아삭한 미나리가 뿌리를 내리고 겨울을 견뎌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무논으로 중늙은이들이 가슴장화를 입고 들어가 미나리를 거둬들인다. 몇 겹의 양말과 몇 겹의 내복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든다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견디고 견뎌 물미나리를 거둬들이고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되었다지만 그 빛나는 푸른 미나리 몸값이, 그 처절한 중늙은이들의 품값이 단돈 7천원.

미나리를 사들고 채소가게에서 나오는 길에 민망해져서 얼굴이 붉어지고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값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이 처절하게 빛나는 새파란 가치를 이리도 무참하게 훼손한단 말인가. 차라리 어서 빨리 꽃을 피워 값어치를 상실하고 홀로 아름답게 꽃을 피울 여름이 와버렸으면 하는 마음마저 든다.

전호용 전호용 식당 주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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