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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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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간부터 꺼내라

옹달샘 토끼 세 마리의 진심
등록 2015-04-23 12:22 수정 2020-05-02 19:28

깊은 산골 옹달샘에 코미디언 수컷 토끼 세 마리가 모였다. “여기는 조용하네. 그동안 못했던 말이나 시원하게 털어보자.” 세 마리는 샘물에 고린내 나는 발을 담그고 낄낄댔다. 샘물은 팟캐스트라는 계곡으로 흘러갔고, 냄새를 맡은 동물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토끼들이 쏟아내는 말이 심상찮았다. 처녀가 아닌 여자는 못 참겠다는 둥, 군대에서 자해한 후임병을 묻어버렸다는 둥… 놀란 동물들이 따지고 들었다. 토끼들은 고개를 조아리고 팟캐스트를 끊었다.

MBC 화면 갈무리

MBC 화면 갈무리

한참 지난 뒤에 토끼 중의 하나가 장안에서도 유명한 무도 잔치판에 들어설 후보가 되었다. 그러자 그때의 말이 다시 화제가 되었다. 요즘 그 토끼가 떠들고 다니는 소리들의 저의도 의심받게 되었다. ‘나대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자’가 싫다고 하는데, 그때 ‘여자들은 멍청해서 남자한테 머리가 안 돼’라고 한 거랑 달라진 게 없지 않나? 도대체 이런 파렴치한 자를 무도 잔치판에 넣는 게 말이 돼? 아니,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켜야 한다.

토끼를 옹호하는 이들은 말한다. “왜 코미디를 코미디로 안 봐. 나 스탠드업 코미디언 루이스 CK를 봐. 미국 코미디의 패륜 드립에 비하면 이건 약과야.” 물론 유머는 금기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데서 태어난다. 광대와 만화가와 코미디언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특권이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적지 않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코미디언에게 기성의 윤리와 가치관을 부정할 권리를 주는 것은 무대 위에서, 캐릭터를 만들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가정을 전제한다. 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저지르는 여성 비하, 인종 차별 언행을 두고 제작진의 가치관과 직접 연결시키지는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을 일삼는 자들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발가벗기고 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섹스 경험을 까발리는 루이스 CK도 분명히 자기 위치를 안다. 백인 중년 남자로서 자기가 얼마나 바보인지, 그렇지만 자기랑 만난 여자들도 얼마나 위선적인지. “이러니 난들 어쩌라고!” 인생은 노답. 유머만이 그걸 겨우 이겨낼 수 있게 해준다.

토끼들이 건드린 소재들 중에는 분명 이런 재미를 만들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남자친구와의 잠자리에서 처녀인 척하는 여자를 까는 역할극은 가능하다. 그런데 그러려면 처녀지상주의라는 남자들의 껍데기 욕망도 폭로해야지. ‘멍청한 여자들에게 내가 가르쳐주겠어’라는 자세 때문에 이것은 그냥 여성 비하의 자위극이 된다. 수컷 토끼가 ‘나대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자’를 싫어한다는 디테일은 얼마나 적확한가? 하지만 토끼가 확신범으로 그런 말을 뱉었다면 그걸 용서해 주기는 어렵다.

코미디는 금기를 건드려야 한다. 다만 아슬아슬하게. 그래야 욕을 안 먹어서가 아니다. 웃음 자체를 위해서다. 우리의 유머 세포는 토끼가 경계선을 깡충깡충 들락거리며 약을 올릴 때 반응한다. 토끼들이 팟캐스트에서는 구역질 나는데 TV에서는 웃긴다면, 강제로 주어진 한계가 웃음의 적정선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언행이 만들어낸 상처, 그들 인성에 대한 의구심을 덮어주자는 말은 아니다. 일단 시커먼 간부터 꺼내서 치료가 가능한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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