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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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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 질 수는 없잖아요

4월16일의 TV
등록 2015-04-16 11:01 수정 2020-05-02 19:27

오늘은 전파사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교복 입은 아이가 찾아왔다. 아이는 가방에 단 노란 리본을 매만지며 물었다. “아저씨. 이제 1년이네요.” 그렇구나,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런데 왜 세상은 벌써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죠? 그때 약속했던 일들은 아직 저 바다 밑에 잠겨 있는데.” 그러게 말이다, 내 목소리는 더욱 작아졌다. “아저씨 그날 TV에는 뭐가 나올까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게 참 어려운 일이란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게 TV의 큰 역할이니. 아픈 기억을 들춰내는 일은 주저하게 되지. “정말로 그런 건가요? 나라면 그러지 않을 거예요. 이런 방송을 만들 거예요.” 아이는 말을 이어갔다.

은 그 녀석을 대신할 사람을 찾는 것도 좋지만, 그 아이들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는 걸 보여주세요. 나라면 기울어가는 선박의 모형 속에 멤버들을 집어넣겠어요. 그리고 물이 차오를 때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미션을 같이 해보는 거예요. 그때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날 수도 있겠죠. 특히나 유가족들에겐. 하지만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왜 ‘가만있으라’고 하면 안 되는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진짜 극한의 일터에서 선장과 승무원들은 어떻게 해야 했는지 알려주면 안 되나요.

은 이날 하루만은 멤버들의 이름표 떼기를 멈춰주세요. 내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의 이름을 지워야 한다는 건 무서운 일이잖아요. 대신 아이들과 희생자들의 이름표를 붙여주세요. 거대한 선박에 들어가 깜깜하게 불 꺼진 선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찾아 이름표를 붙여주세요. 무섭고도 힘들 거예요. 300명이 넘으니까. 하지만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눈물만이 아니라 땀도 함께 흘리는 게 좋대요.

깔깔대고 뜀박질을 해야 하는 예능에선 부담스러운 일인가요? 몸이 어렵다면 말로라도 해주세요. 에서는 당연히 세월호 가족들을 불러줘야죠. 그 아이들이 남긴 일기, 그림, 사진을 보여줘요. 가능한 한 즐거운 모습으로. 그다음에 가족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어떻게 슬픔을 삭여왔는지, 그 목소리 한번 같이 들어주면 안 되나요. 까칠한 이야기 쏟아내는 도 초대할 사람들 많아요. 거짓 인터뷰 논란 홍가혜, 의 안해룡 감독, 이상호 기자… 그리고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이야기도 듣고 싶네요. 정부로선 어떤 게 정말 힘들었는지. 부담스러운가요, 무리인가요? 그럼, 은 어때요? 독한 소리 하는 거 참 좋아하시잖아요. 1년 전에 그렇게 떠들었던 국가 개조 프로젝트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자근자근 썰어주세요.

아마도 그날 손석희 앵커만큼은 팽목항으로 가겠죠. 모두 거기로 가서 함께 눈물바다에 빠지자는 건 아니에요. 세상은 비극에 지면 안 돼요. 우리는 여전히 웃고 떠들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해요. 그래도 제 마음은 그래요. 작은 이야기 하나씩만 덧붙여주세요. 에선 외국 친구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 나라에서는 어떻게 했을 것 같은지 이야기해주세요. 에선 이제 학교에 다녀올 수 없는 친구들에게 그 또래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찾아가보는 것까진 바라지 않아요.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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