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9일, 24살의 마르잔 사트라피는 테헤란 공항에서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여성에게 억압적인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는 이란 정부와 전통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서구 문화를 좋아하며 반항적인 성격이던 사트라피는 종종 경찰과 마찰이 있었고, 급기야 결혼 3년 만에 파경을 맞은 이혼녀라는 낙인은 그녀를 사회적으로 더욱 옥죌 것이 분명했다. 사트라피는 “아버지는 우셨고, 어머니는 애써 평온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작별은 10년 전 오스트리아로 떠났을 때보다는 덜 괴로웠다”라고 묵묵히 기록한다.
프랑스에서 학업을 마친 사트라피는 파리의 ‘아틀리에 데 보주’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프랑스 만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던 크리스토프 블랭, 다비드 베, 조안 스파르 등의 만화가들과 교류한다. 사트라피는 원래 어린이 책을 준비했으나 작업 진척이 더뎠다. 실의에 빠진 사트라피에게 평소 이란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던 다비드 베는 “네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어!”라고 권한다.
그렇게 그리게 된 사트라피의 이야기 (새만화책 펴냄)는 이란의 현대사를 관통한다. 이란의 근대화를 추진했으나, 나라의 이권을 서구세력에 넘기고 민주주의를 억압한 팔레비 왕조(1925∼79)의 탄생과 몰락, 왕조를 몰아내고 혁명을 이루는 데 성공하지만 사회 전체에 엄격한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요한 이슬람 혁명(1979), 그리고 이란-이라크 전쟁(1980∼88). 수많은 이란 사람들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음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핏값’의 무게가 독자들의 마음을 짓누를 수 있으나, 작가가 썼듯이 참을 수 없는 불행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인 농담과 웃음의 저력 덕분에 작품 분위기가 결코 어둡지 않다.
더욱이 이 작품은 우리에게 중동을 바라보는 값진 시각을 선사해주고 있다. 중동은 지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너무나 멀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이슬람’과 ‘테러리스트’라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왔고, 정세 해석에서도 동네 축구 수준의 근시안적 해석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를 통해 이란인들이 종교와 독재에 세뇌돼 개인의 개성이 말살되지 않았으며, 청년들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사랑에 빠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트라피는 검은 베일보다는 그 뒤에 감춰진 인간의 얼굴을, 모스크에서의 예배보다는 한 가족의 단란한 저녁 식탁을 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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