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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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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도 아빠는 싸움꾼, 울보

등록 2015-03-20 06:03 수정 2020-05-02 19:27

균도 아빠 이진섭씨는 싸움꾼이다. 균도가 1학년 때다. 균도의 담임선생님이 이진섭씨가 가구상을 한다는 것을 알고는 몇백만원어치 가구를 배달시켰다. 배달하러 갔더니 돈은 안 주고 1년간 균도를 잘 봐주겠다고 한다. 그길로 가구를 싣고 왔다. 균도는 태어날 때부터 발달장애아였다. 지역에서 같이 살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일반학교로 보냈다. 준비가 되지 않은 학교의 담임선생은 감당 못하겠다며 사정을 했다. 그래서 전학 간 학교의 선생님이 그런 일을 벌인 것이다. 균도는 한 학기가 지나지 않아 또 전학을 갔다. 자식 때문에 죄인이 되기 일쑤인 학부모가 이렇게 당당하다. 특히나 발달장애아를 둔 아빠가 이렇게 당당하다.

균도에겐 걸어온 땅이 먹을 것의 지도

균도 아빠는 울보다. 소득 보장이 빠져서 껍데기만 남은 발달장애인법이 19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된 날 삭발을 자청한 균도의 머리를 깎으며 아빠는 운다. 머리를 깎으니 균도의 머리에는 겸자 분만을 한 흉터가 그대로 드러났다. 울보인 것이 균도에게 다행이었다. 균도는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도 아빠의 눈에 차오르는 눈물을 보면 행동을 자제한다.

부산 기장군 바닷가에 선 이진섭씨와 아들 균도. 류우종 기자

부산 기장군 바닷가에 선 이진섭씨와 아들 균도. 류우종 기자

균도가 아버지를 싸움꾼으로 만들었다. 울보로 만들었다. 싸움꾼이자 울보인 아빠는 균도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갈 데가 없자 도보여행을 나섰다. 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 제정을 내건 ‘균도와 함께 세상 걷기’였다. 2011년 3월12일부터 40일간 부산에서 서울까지 600km를 걸었다. 신문과 방송사에서 호응이 이어졌다. 길 걷기는 이후 2년간 네 차례 더 이루어졌다. 같은 해 9~11월 부산에서 광주, 2012년 4~6월 광주~서울, 2012년 10~11월 부산~강원도~서울, 2013년 5~7월 제주도를 걸었다.

균도는 발에 물집이 잡혀도 걷는 것을 좋아했다. 무엇인가 외치며 돌아다니는 바람에 걷는 거리가 아빠의 두 배다. 균도는 아빠와 줄로 잇고 걷는다. 균도 아빠는 말한다. “남들은 내가 위급한 순간에 아이를 구하기 위해 연결해놓은 끈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 균도가 굉음 소리에 흥분해 과잉 행동을 보일 때 나를 구하기 위해 묶어놓은 것이다.” 균도는 위급한 상황에서 남을 미는 행동을 보이는데 끈이 묶여 있으면 자신도 따라 들어갈 것을 알기에 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균도는 먹을 것으로 자신이 걸어온 땅의 지도를 그린다. “광양에선 뭘 했지?” “불고기를 먹었습니다.” “삼호읍에선?” “무화과를 먹었어요!” “무안은?” “낙지볶음밥!”

균도 아빠는 1차 걷기를 시작하기 사흘 전 직장암이 발견됐다. 3차 걷기 이후에는 균도 엄마가 갑상샘암에 걸렸다. 2007년에는 장모가 위암 수술을 받았다. 근처에는 고리 원자력발전소가 있었다. 2012년 7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상대로 건강권 소송을 제기했다.

당당하고 지치지 않아 다행

지난해 10월 재판부는 “법령에서 정한 연간 유효선량은 국민 건강상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으로 절대적으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수치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원전 인근 주민의 갑상샘암 발병에 대한 한수원의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판결은 지난해 ‘올해의 판결’ 최고의 판결에 꼽혔다. 한수원은 항소했다. 역사적 판결은 위태롭다. 그러니 균도 아빠가 당당하고 지치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아버지는 2014년 7월에는 6·4 지방선거에서 부산시 기장군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아버지는 길 위에서 일기를 썼다. 이 일기와 기사, 장애인법 해설, 그리고 같이 걸었던 사람들의 기고를 합쳐 (후마니타스 펴냄) 책이 만들어졌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피터 도베르뉴 외
기업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시민단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환경보호 조직인 시에라클럽의 미국 지부는 2007년과 2010년 사이에 미국 가스산업계에서 2500만달러가 넘는 돈을 받았는데 이는 대부분 세계 최대 가스 시추업체인 체사피크 에너지가 준 돈이었다. 아동 노동을 활용해 축구공과 운동화를 만든 나이키는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청소년들을 돕는 비영리조직의 활동을 지원한다. 국제보전협회는 스타벅스와 함께 원두의 공급자를 찾고 월마트와 함께 보석류의 원산지를 추적하며, 심지어 몬샌토를 기업 파트너로 두고 있다. 세계자연기금은 세계에서 알루미늄과 유리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코카콜라와, 수전 코멘 유방암 재단은 대표적 패스트푸드 판매업체인 KFC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사회정의단체가 환경·사회 문제를 일으킨 기업과 동반자 관계를 맺는 상황은 시민사회운동이 처한 딜레마 중 하나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브랜드 관리에 열중하고, 윤리적 소비나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기업의 언어로 말하고, 사회적 용인을 구하는 기업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시민단체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은 “많은 조직들은 반기업운동을 어렵게 이어가고 있지만 운동의 기업화를 알리는 신호들은 반기업운동의 신호를 훨씬 능가한다”고 진단한다. 심지어 시위 현장에서조차 주류의 신망을 얻고 하찮은 군중이나 폭도로 보이지 않기 위해 예의를 갖추려고 한다. 그사이 정치권력은 운동가들을 예의 바르고 순종적인 집단과 골칫덩이 집단으로 양분해 초법적인 탄압을 자행하거나 운동사회 내에 의심과 불신의 씨앗을 심는 효과적인 통치 방식을 개발해왔다.

운동단체가 소비주의의 교리를 벗어나지 못하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징후만 건드릴 뿐, 결국 콜라를 사면 북극곰을 구할 수 있다는 기업의 마케팅과 환경보호단체의 전략이 차별성을 빚지 못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물론 지난 10년간 급진성은 운동의 주변부에서 끓어올라 중심을 달구어왔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기업화된 운동들은 오히려 급진성에 찬물을 끼얹고 대안을 무색하게 하며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사회운동을 연구해온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의 피터 도베르뉴 교수와 영국 여성주의 정치경제학 연구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제네비브 르바론은 “세계적인 조직이 되면 될수록 급진성을 급격히 잃는 운동단체가 처한 잔인한 역설”을 이야기한다. 모든 진보의 역설이기도 하다.

책 (동녘 펴냄)는 물질적 기반을 늘리는 것을 운동의 성장이라고 여기는 우리의 착각을 아프게 건드린다.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은 책 앞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국가와 기업이 짜놓은 틀 속에선 운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일단 나가자.”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꿈이 있는 공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기획, 김진애·정기원 등 지음, 시사IN북 펴냄, 1만5천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공부에 대한 강연을 열었다. 도시건축가 김진애는 미국 MIT에서 배운 질문을 만들어내는 법을, 밀알두레학교의 정기원 교장은 즐거운 수업을 이야기한다. 중학교 수학교사를 하면서 세 딸을 중등과정부터 홈스쿨링한 강영희, 스웨덴 국립교육청 간부를 지낸 황선준 등이 강사로 나섰다.

메가처치를 넘어서
신광은 지음, 포이에마 펴냄, 1만8천원

기독교 2천 년사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 한국에 나타나고 있다. 일명 ‘메가처치’다. 실제 예배에 참여하는 신자 수가 2천 명을 넘어서는 ‘대형 교회’를 말한다. 목사인 저자는 유독 메가처치가 한국에 나타나는 이유로 ‘교회론적 개인주의’를 든다. 공교회성을 회복하는 대안으로 디트리히 본회퍼의 교회론을 심도 있게 다룬다.

사회적 인간의 몰락
김윤태 지음, 이학사 펴냄, 1만7천원

인간은 오직 공동체 안에서만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당연시됐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인간’은 서서히 몰락하고 있다.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 리처드 세넷의 공적 인간의 몰락,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사회, 울리히 베크의 개인화 개념을 통해 무수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현대사회를 분석한다.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한종해 지음, 생각비행 펴냄, 1만5천원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때 한보, 기아, 쌍방울, 거평 등 25개 기업이 도산했다. 그 과정에서 로비, 청탁, 탈세, 해외자금 은닉 등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 뒤 20년이 흘렀다. 저자가 도산한 기업 총수들의 현재를 추적한 결과는 “아주 잘살고 있다”. 예를 들어 거평의 나승렬 회장은 고액 체납자 명단에 항상 오르는 인물이다. 조사 결과 그의 부동산은 상당하다.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
캐스파 헨더슨 지음, 이한음 옮김, 은행나무 펴냄, 2만5천원

아기의 얼굴을 닮은 동물, ‘비너스의 허리띠’라는 별칭이 붙은 투명한 허리띠 모양의 띠빗해파리 등 신비한 동물들을 모았다. 저자는 상상을 뛰어넘는 실재하는 생물을 들여다보면, 진화생물학을 통해 신화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존재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게 붙은 별명은 ‘동물학계의 보르헤스’다.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
아즈마 히로키 외 지음, 양지연 옮김, 마티 펴냄, 2만원

1986년 사고가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에는 지금도 하루 2800명의 노동자가 출근한다. 발전은 멈췄지만 송전기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책은 체르노빌의 출입금지구역 ‘투어’를 풍부한 사진과 함께 싣고, 인터뷰를 통해 관광지로 바뀐 사고 현장의 현재를 보여준다. 일본인 저자는 관광으로라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
마쓰다 도키코 지음, 김정훈 옮김, 소명출판 펴냄, 1만5천원

일제 말 1945년 하나오카강의 수로공사를 위해 강제 동원된 중국인 포로의 봉기를 잔인한 방법으로 진압한 사건이 있었다(하나오카 사건). 1944년에는 하나오카 광산에 한국인 11명과 일본인 11명이 생매장된 사건도 있었다(나나쓰다테 사건). 책은 양심적 진보학자가 학살 당시의 하나오카 지역 한·중·일 노동자의 연대를 세상에 알린 저작이다.

담배는 숭고하다
리처드 클라인 지음, 허창수 옮김, 페이퍼로드 펴냄, 1만5천원

금연 열풍의 한가운데 위험한 제목이다. 저자는 담배를 끊기 위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경고문이 없어도 담배의 해악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도 여전히 10억 명의 사람이 담배를 피운다. 그래서 가진 의문은, 모두에게 혐오감만을 주는 행위에서 얻게 되는 쾌락이란 무엇인가. 담배의 엄청난 유혹을 설명하는 ‘질적인 면’, 미의 독특한 형태를 찾아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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