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1990년대 인기가수 공연이 사람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았습니다.” 배우 공형진의 해설이 흐르는 화면 속에서 TV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MBC의 예능 프로그램 편. 서울 구로구의 4인 가족, 경기도 군포의 장모와 사위, 부산 해운대의 세 친구, 경기도 과천의 신혼부부 등 다양한 집단의 시청자들은 제각각 감상을 내놓으며 열심히 TV를 지켜봤다. 누군가는 가수들의 춤과 노래를 따라하고, 또 누군가는 옛 추억을 회상했다. KBS의 새 파일럿 프로그램 는 이처럼 TV를 보는 시청자의 다양한 반응을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이 담아낸 관찰 예능이다.
그런데 방송을 보며 문득 떠오른 풍경이 하나 있다. 1990년대 대중문화 회고 열풍의 주역 중 하나인 tvN 드라마 시리즈의 한 장면이다. 이 드라마 속 인물들 역시 가족 혹은 친구끼리 매회 TV 앞에 모여앉아 드라마, 음악 프로그램, 스포츠 경기 등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정겹게 수다를 떨곤 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가 비추는 풍경이 지금 이 시대가 아니라 1990년대와 같은 옛 시절에 더 가깝다는 얘기다. TV 단체 시청과 본방송 감상이 ‘작정하고 사수’해야 할 행위가 아닌 흔하고 보편적인 모습이었던 시대 말이다.
의 배경이 2010년대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방송 시작 전 저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출연자들의 모습일 것이다. 실제 2000년대 들어 방송통신위원회가 매해 발표하는 ‘방송매체이용행태’에 따르면 스마트폰은 TV를 대체하는 매체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미 10~30대는 절반 이상이 스마트폰을 가장 필수적인 매체로 인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 이 연령대의 TV 시청률은 한 자릿수로 떨어진 지 오래고, 특히 지상파는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에 동시간대 시청률 순위가 밀리는 일이 빈번할 정도로 심각한 침체 상태다.
가 담아내는 TV 시청 풍경이 마치 위기의 지상파가 꿈꾸는 판타지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송 안에서 10대 청소년부터 80대 노부부에 이르는 폭넓은 연령대와 4인 가족에서부터 외국인 유학생 친구들까지 다양한 구성의 출연자들이 본방 시간에 맞춰 나란히 TV 앞에 앉아 프로그램 하나에 울고 웃는 모습이 딱 그렇다. 이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이를테면 에서 온 식구가 모여 드라마 최종회를 지켜보며 열광했던 모습같이 TV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상적 시절에 닿아 있다. 방송 안에 급증하는 1인 가구의 시청 형태나 ‘다시 보기’ 방식 등 변화하는 TV 시청 현실이 전혀 보이지 않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가 그리는 TV의 이상적 풍경이 단순히 욕망의 판타지인 것만은 아니다. 그 풍경을 통해 전달하려는 진짜 이상은 요즘의 TV가 점점 잃어가는 근본적 가치에 있다. 그것은 기획 의도에서 밝혔듯이 ‘TV가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는 매개체’라는 사실이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청 대상 선정에서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재에 공을 들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예컨대 출연자들이 한마음이 되어 어느 시사 프로그램의 세월호 참사 이야기에 눈물 흘리고, 뉴스 속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나 저출산 시대 정부의 무대책에 분노하며, 아시안컵 결승전 손흥민의 골에 열광하는 모습은 공감이자 위로이면서 오락이고 더 나아가 세상과 이어주는 소통의 장으로서 TV의 본질적 기능을 환기하는 대표적 장면들이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TV가 어쩌다 그러한 기능을 상실했는지에 대한 자성의 시선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더 이상 TV 앞에 모이지 않게 된 이유는 단지 다매체·다채널 시대의 도래와 같은 외부 환경에만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함께 소통할 만한 좋은 콘텐츠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다. 아쉽게도 이 프로그램의 성찰은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가령 두 번이나 화제의 방송으로 선택한 MBC의 ‘막장 드라마’ 시청 장면을 떠올려보자. 방송은 드라마를 보며 “막장 중의 막장”이라고 혀를 차거나 박장대소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그저 또 다른 볼거리로 소비한다. 이에 더해 자사 드라마 의 감동적인 장면에 오열하는 출연자들을 비추며 은근히 의 반응과 대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KBS 또한 의 임성한 작가와 함께 ‘막장 드라마의 대모’로 불리는 문영남 작가의 로 지난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적이 있었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소통보다 말초적 자극을 통해 시청률 경쟁에 몰두하는 오늘날 TV의 문제점을 반성하지 못한다면 지상파의 위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다시, 진짜 사수해야 할 것은 본방송이 아니라 TV의 희미해져가는 본질적 가치다.
김선영 TV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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