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양떼자리

<한겨레21> 설 기획 단편소설
등록 2015-02-17 05:04 수정 2020-05-02 19:27
배명훈 소설가

가끔 길 옆을 지나다 커다란 사진기를 든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저 양들을 다 알아보세요? 이름도 있나요? 어떻게 알아보세요? 다르게 생겼나요?” 이제는 귀찮아서 이름 같은 건 잘 안 붙이지만 그래도 당연히 양들은 다 알아본다. 어미가 누구인지도 알고 그 어미의 어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한다. 비결은 따로 없고, 그냥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느 날 한꺼번에 육십 마리를 보게 된 게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천천히 한 마리가 무리에 들고 한 마리가 무리에서 나가는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나 역시 도시에 가면 비슷한 걸 묻는다. 저 많은 건물들을 다 알아보냐고. 이름이 다 따로 있는 거냐고. 어떻게 알아보고 길을 찾아다니는 거냐고. 쭉 거기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알고 보면 하나하나가 다 다르게 생겼다고 하겠지.
양들도 그렇다. 당연히 다르게 생겼고 성질머리도 다르다. 대부분 멍청하지만 어떤 놈들은 영악하고 사악하다. 도시로 나갔으면 성공했을 놈들. 하지만 학교에 보낸 건 조카놈들뿐이다. 그놈들은 이제 돌아오지도 않는다. 지들 부모 죽고 나서는 발을 뚝 끊었다. 똑똑한 줄 아는 멍청한 놈들. 둘째 조카놈이 가끔 전화를 해서 양이나 염소가 몇 마리나 있는지 물어올 뿐이다. “나 죽으면 팔아먹으려고 그러냐!” 하고 소리치고 말지만 그 녀석이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팔아봐야 얼마나 된다고.
그래도 그 귀찮음을 마다하지 않고 전화를 걸어오는 건 그놈뿐이다. 그 넓은 초원에서 전화 연결 한번 하려고 접시 달린 이웃 게르들에 얼마나 많은 전화를 걸어댔을까. 그러고도 이틀은 기다려야 연결되는 게 전화다. 나는 그냥 전화가 싫다. 요즘 젊은 것들은 “얼씨구, 이게 무슨 현대문명이라고 거부하세요?” 하고 놀려대지만, 초원에서 젊은 것들이라 해봐야 쉰 줄은 넘은 애들이고, 놀린다고 약이 오를 만큼 기가 산 인간들이 아니다. 나보다야 튼튼하겠지만.

몇 해 전에는 희한한 양놈 하나가 태어났다. 하도 희한해서 하마터면 이름을 지을 뻔도 했다. 풀을 이상하게 뜯어먹는 놈이었다. 이상해봤자 뭐가 그렇게 이상할까 싶겠지만, 이놈이 뜯어먹고 간 자리에는 풀 빠진 데가 이 빠진 데처럼 듬성듬성 남았다. 눈앞에 있는 걸 안 뜯어먹고 멀리 있는 걸 뜯어먹은 셈이다. 그렇게 혼자 저만치 가 있는 통에 성질 더러운 개놈한테 혼나기가 일쑤였다. 그러고도 또 어느 날 개놈이 하도 요란하게 짖어대서 그쪽으로 말을 몰아보면 또 이 양놈이 줄레줄레 달음질을 쳐오고 있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꽃구경을 하느라 끼니를 거르던 놈이 딱 나온다. 학교에 보내놓으면 외국 가서 이상한 종교나 믿을 놈들. 그래도 그게 다였으면 이름을 붙이고 싶을 만큼 희한하지는 않았을 것을, 어느 날 보니 개놈이 덩달아 이상해져 있었다. 그 양놈의 꽁무니를 졸졸졸 따라다니더니 어느덧 둘이서만 저만치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모자라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냉큼 달려와 다른 양떼를 전부 그쪽으로 몰아가기까지 한다. 그러다 갑자기 양떼 사이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무안한 듯이 짖기를 멈춘다.
“너는 똑똑하던 놈이 또 왜 그러냐. 네놈들이 멀쩡하고 우리가 다 이상하다는 게냐.”
다른 양들도 염소놈들도, 꼭 한 번씩은 그놈을 따라갔다가 엉뚱한 데로 사라진다. 나는 내가 직접 그 양놈을 따라가보고서야 깨달았다. 이놈 따라가면 다 이렇게 되는구나.

죽을 때가 돼서 그런가 싶다. 할아버지도 돌아가실 무렵에는 신기한 일을 많이 겪어서 재밌다고 하셨으니까. 둘째 조카놈이 자기 따라 도시에서 살자는 것도 결국은 초원에서 혼자 죽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초원에서 죽으면 혼자 죽나. 평생 같이 산 몸뚱이들이 수십 마리나 버글버글 따라다니는데.
“나 죽으면 버리고 갈 거냐, 이놈들아?” 하고 소리를 쳤더니 몇 놈이 고개를 들고 무슨 일인가 쳐다보다가 다시 코를 박고 풀을 뜯는다. 나도 살면서 내 손으로 몇 사람이나 장례를 치렀지만, 나는 누구 손에 가게 될까 가끔은 걱정도 해본다. 그런데 그놈의 걱정은 오래 머무르지를 않는다. 초원은 그냥 멍하게 있기에나 좋지 걱정 같은 걸 잡아 매놓을 말뚝이 없다. “멍은 소고 걱정은 말이어서 늙은 놈은 멍에 앉고 젊은 놈은 걱정에 앉는다.” 우리 할아버지가 먼 초원에 나갔다가 본 어느 옛날 칸의 비석에서 본 글이라는데, 보나 마나 거짓말이다.
할아버지는 글을 못 읽었는데, 그게 흉은 아니었다. 온 길바닥 다 뒤져봐야 몇 개 있지도 않은 글자를 읽어서 뭐하나. 그래도 할아버지는 별 하나는 진짜 기가 막히게 읽었다. 그래서 그걸로 뭘 했냐 하면, 아무것도 안 했다. 그냥 이야기나 줄기차게 읊어댔을 뿐이다. 밤하늘에 쓰인 대로 읽은 게 아니라 자기 읽고 싶은 대로 읽은 건데, 아마 그 비석에 적힌 글도 그렇게 읽었을 것이다.
별 읽기가 비석 읽기보다 좋은 건 비석은 아무리 오래 읽어도 다른 돌에 그 이야기가 새겨지지 않지만, 어느 노인네가 몇 년을 쉬지 않고 별을 읽어대면 그 옆을 졸졸 따라다니던 꼬맹이놈은 머리가 아무리 돌이라도 자기 머리에 그 이야기를 새기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도 나중에는 별을 잘 읽게 됐다. 줄줄줄 막힘없이 몇 날 며칠을 읊어댈 수 있었다. 그 눈 나쁜 여자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스물넷인가밖에 안 된 젊은 시절이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늘 다니던 길에 천문대가 세워졌을 때였다. 외국 사람들이 지은 모양인데, 처음에는 자기네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며 나 같은 사람은 그쪽으로 지나가면 안 된다고 말하기에 무슨 공부방이나 책방인 줄 알았던 건물이었다.
사람이야 같은 말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아 그런가보다 하고 알아듣지만, 내 말도 안 듣고 개 말만 겨우 듣는 염소놈들이 그 말을 신경 쓸 리가 없었다. 몇 놈이 먼저 가서 안쪽을 기웃거리자 양놈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덩달아 기웃거리는 통에 나도 하는 수 없이 안쪽을 슬쩍 들여다보게 됐다. 거기에 그 눈 나쁜 여자가 있었다.
나보다 한 열 살쯤 많았으려나. 머리를 뒤로 묶고 커다란 검은 테 안경을 쓴 그 여자를 먼 구름 구경하듯 한참이나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목이 어쩌면 저렇게 생겼을까. 손가락은 어떻게 저럴까. 그 여자 목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공부하는 사람이 그렇게 좋아 보이는 줄은 그 나이를 먹고서야 처음 알았던 기억이 난다. 창밖의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라 다른 사람들을 부르러 뛰쳐나가던 모습도.

천문대 사람들이 나를 쫓아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무서워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것도 다 할아버지 덕분이었다. 초원 사람을 다 모아볼 수는 없겠지만 초원 최고의 멋쟁이였던 할아버지처럼, 나는 일단 한눈에 보기에도 깔끔해 보였다. 그리고 솔직히 내 조카놈들에 비하면 눈에 확 띌 만큼 미남이기도 했다. 울고불고 난리치는 조카놈들을 형님 내외에게서 한 놈씩 떼다가 도시에 있는 학교로 보내놓기라도 하지 않았으면 양인지 사람인지 구별도 안 됐을 놈들이었으니까.
말이 안 통했으니, 그 사람들이 내 얼굴에서 뭘 봤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할아버지를 봤을 것이다. 말 전하는 사람을 두고 그 눈 나쁜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 내가 보여주려 했던 모습 또한 할아버지의 인상이었다.
“말을 타보고 싶다는데. 여기 말들은 작아서 안 무서울 것 같다고.”
통역이 말했다. 원래 그런 일을 했던 건 아니지만 곧장 말 한 마리에 안장을 채우고 고삐를 맨 다음 그 여자를 태웠다. 그리고 내가 앞장서서 말을 끌었다. 물론 나도 말에 올라타 있었다. 다행히 말들은 깨끗했고, 양들은 염소를 따라 별 말썽 없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그렇게 언덕 주위를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한 바퀴를 더 돌았다. 말이 그 여자를 좋아했다. 그 여자도 말을 좋아했다. 개놈은 싫어했다. 그놈은 낯선 사람은 다 싫어해서 도시 사람들이 보면 겁먹을 정도로 심하게 짖는다.
그렇게 두 바퀴를 다 돈 다음에는 어이없게도 돈을 받고 말았다. 말이 안 통해서 생긴 일이었다. 이따금씩 그 주위를 지날 때면 천문대에 들러 그 여자를 볼 수 있을까 주위를 맴돌았지만, 한 번 더 말을 태워준 대가로 돈을 받고 나서는 돈 때문에 기웃거리는 것처럼 보일까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보다 더 할아버지 같지 않은 일이 또 있을까 싶어서였다.

미국 말을 배워볼까 했지만 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미국 사람도 아니었다. 통역 말로는 터키 출신이라고 했다.
“투르크는 우리하고는 형제 아니겠어. 영어보다 그쪽이 빠를 거야.”
정말이었다. 1년이 채 가기 전에 나는 그 여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내가 그쪽 말을 배운 게 아니라 그쪽이 우리 말을 배운 것이었다. 당연히 나 때문에 배운 건 아니고 천문대에서 일하느라 배운 말이겠지만 어쨌거나 나한테는 그보다 다행스러운 일이 없었다.
그 뒤로는 좀더 자주 같이 말을 탔다. 더 이상 돈은 받지 않아도 됐다. 고삐를 끌어주지 않을 만큼 그 여자가 말타기에 능숙해졌을 무렵에는 서로를 대하는 것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존칭 없이 이름으로만 불러도 좋을 만큼이었다. 빌게라는 이름으로.
어느 날에는 빌게가 나를 천문대로 초대했다. 양들을 형님께 맡긴 다음 오랜 시간 말을 몰아 천문대로 갔다.
“밤새도록 붙어 있을 것 같지만 망원경은 사람이 직접 안 봐. 다 기계로 측정하거든.”
망원경 돔이 벌어진 틈으로 밤하늘이 보였다. 그렇게 넓은 우주는 아니었지만 나는 딱 보이는 만큼만 별을 읽어주었다. 진짜 재미있는 부분도 다 못 읽고 간단하게 딱 2시간 정도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양치기의 눈금으로는 눈 깜빡할 사이밖에 안 되는 시간 동안, 안경 너머 그 여자의 눈동자가 크게 열리는 모습이 네 번이나 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결국 천문대를 뛰쳐나가 별들의 평원을 맨눈으로 맞이했다. 그러자 내 안에 새겨진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이 날개를 활짝 펴고 온 우주를 날아다녔다.
“그래서 저기가 양떼자리가 된 거예요. 우주를 반 바퀴나 휘휘 돌아서.”
“그렇구나. 재밌다. 근데 저거 양떼처럼 안 보이는데. 어떻게 봐야 양떼가 되는 거야?”
“어떻게 봐야 되는 게 아니라 양떼가 원래 아무렇게 퍼져 있잖아요. 저렇게 별 생각 없는 게 양떼자리고 저쪽에 살짝 줄지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염소떼 자리.”
“풉, 말도 안 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면, 아무 일도 없었다. 나중에 형님한테는 그렇게밖에 할 말이 없었지만, 그날 밤 그보다 더 크고 푸른 일은 초원 어디에서도 피어나지 않았다. 오랜 시간 말을 몰아 게르로 돌아오는 길에, 나를 둘러싼 초원과 그 위에 펼쳐진 무한한 별의 바다도 그렇게 활짝 열려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은 영원하지 않았다. 반년을 더 머물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 며칠 전에, 그 여자가 차로 나를 찾아와 작별 인사를 건넸다.
“1년쯤 있다가 또 오려고. 나는 어차피 왔다갔다 해야 돼. 여기 말도 배웠고 했으니까 다른 데로 보내지는 않을 거야. 누나 올 때까지 건강하게 잘 있어. 알겠지?”
그리움이 새겨져 있다면 걸어다녀도 비석이다. 나는 그날부터 비석이 되었다. 약속한 1년이 다 되어갈 무렵에는 천문대 주위가 아예 내 목초지로 여겨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빌게는 돌아오지 않았다. 몇 달이 더 가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이 다 지나고 거대한 소나기와 그만큼 큰 무지개가 초원을 쓸고 지나가는 계절이 다가올 무렵에야 겨우 소식 하나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가족과 어딘가로 여행을 가다가 버스가 벼랑을 굴러 일가족이 다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죽었다는 뜻인가요? 언제요?”
“작년에.”
솔직히 뭔 말인지 알아듣기도 힘든 소리였다. 버스가 벼랑을 구른다는 게 뭘까. 하루에도 몇 번씩 양들에게 물었다. 그때마다 양들은 똑같은 대답을 했다. 뭔 일인가 싶어 내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고개를 박고 풀을 뜯는 대답이었다.
슬픔이 폭풍처럼 초원을 배회했다. 양떼들이 풀을 뜯는 속도에 맞추지 못하고 혼자만 저만치 앞서가는 마음이었다. 나는 양들이 하는 대답을 삼백 번쯤 더 들은 다음에야 비로소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지 말고 여기 와서 풀이나 뜯지 그래요?’라는 뜻이었다. 에이 나쁜 놈들. 에이 인정머리 없는 양놈들.

그래도 그보다 나은 답이 없어서 결국은 수긍하고 이렇게 살아왔다. 물론 내가 직접 풀을 뜯어먹었다는 말은 아니다. 풀 뜯는 속도에 맞춰 살았다는 뜻이다. 그렇게 이 지경까지 나이를 먹었다. 그러다보니 저런 이상한 양놈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어쩌라는 걸까. 학교에라도 보내라는 건가. 서커스 같은 데 보내기라도 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해주라는 건가. 하지만 나를 따라다녔다가는 시골 촌구석조차 아닌 곳에서 묻히기 일쑤지. 하늘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닌데 하고많은 사람 중에 나한테 그 일을 맡겼을까. 양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잘 먹고 잘 지내는지 지켜본다. 다행히 건강하고 걱정이 없는 놈이다. 지가 뭐가 특이한지 알지도 못한다. 자세히 보니 이상한 건 그놈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상한 건 풀일지도 모른다.
말에서 내려 풀을 뜯어먹어보았으나 뜯어먹은 자리나 남겨둔 자리나 맛없기는 다 마찬가지였다. 딱히 더 맛있지도 않고 특별한 향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길일지도 모른다. 뭔가 이상하게 놓여 있는 길이 희한하게도 요놈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나나 다른 짐승들 눈에는 그냥 아무것도 없는 풀밭 같은데 이놈한테만 유독 굴곡이 보이는 것이다. 거, 뭐라던가. 시공간이라던가.
몇 달째 뒤꽁무니를 지켜보다가 어느 날 오후 해 질 무렵에 개와 염소들을 불러놓고 쿠릴타이를 열었다. 족장회의였다.
“저놈 따라가보자.”
염소족 족장은 말이 없었고 개족 족장은 꼬리를 흔들었다. 내가 다시, “모두 함께하겠는가! 반대하는 자는 아무도 없는가!” 하고 외치니, 모두가 침묵으로 동참의 뜻을 표하였다.

이상한 양을 따라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개가 그 꼴을 용납 못해서 냉큼 달려가 짖어대기 일쑤였고 염소떼도 전날의 맹약과 달리 새 길잡이에게 무리의 주도권을 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말인즉 개와 염소를 훈련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느라 거의 닷새를 까먹었다. 엿새째에야 비로소 원정이 시작됐다. 아무도 그 양놈을 막지 않는 가운데, 양떼가 생각 없이 그 뒤를 따랐다. 말리지만 않으면 늘 혼자 저 멀리 앞서가 있는 놈이었으므로 그놈이 양 무리를 이끌게 만드는 건 어렵지가 않았다. 짐승들은 알아서 그 뒤를 따랐고 나도 따로 신경 쓸 일은 없었다. 그냥 고삐를 느슨하게 쥐고 말 등에 앉아 있기만 하면 생각 없는 말놈이 덩달아 그 뒤를 따르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느릿느릿 초원의 시간이 갔다. 긴장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추적이었다. 나는 말 등에 붙어 앉아 멀리 있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구름은 늘 그렇듯 대머리 구름이었다. 머리 바로 위에는 하나도 없고 지평선 근처에만 빙 둘러쳐져 있었다. 머리 위를 일부러 비켜가는 게 아니라 단지 아주 먼 데까지 시선을 돌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을 만큼 넓은 하늘 탓이었다. 초원과 하늘은 그렇게나 넓었다. 저 멀리 북쪽 지평선 근처에 양떼구름 한 무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푸른색이 절정에 이른 한여름의 초원 위에는 나와 내 양들이 구름처럼 떠가고 있었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늘 다니던 곳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모르는 데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찾으려 할 때 찾아낼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양이 풀 뜯는 데로 가는 게 삶 아닌가. 그 길을 따라가는 게 뭐가 그렇게 잘못이람.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둘째놈이 전화할 때가 됐는데, 했을까? 내 자식은 아니지만.’

해 지는 쪽으로 한참을 더 갔다. 마침내 해가 지자 별들이 하늘 가득 빽빽하게 들어찼다. 포근한 계절이었다. 작은 울타리에 가벼운 침낭만으로도 모두가 만족스러운 밤이었다. 여름밤은 길지 않았지만 우리는 해가 뜨자마자 다시 원정길에 올랐다. 이상한 양이 이끄는 데로였다.
양떼는 어느덧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초원의 언덕은 계단 같다. 완만하게 생긴 작은 언덕 하나를 오르면 그 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다른 언덕 하나가 나타난다. 그 언덕을 끝까지 오르면 다시 또 하나의 완만한 언덕을 만난다. 그런데도 밑에서 올려다보면 맨 처음에 본 언덕 하나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느릿느릿 가고 있기는 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언덕이 이상하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보다 이상한 일은, 따로 숫자를 세지는 않았어도 어림잡아 스무 언덕은 넘은 것 같은데 아직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초원의 언덕이 아무리 속임수 같아도 그런 언덕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에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게 다시 열 개의 언덕을 올랐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맑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대머리 구름이 멀리 지평선에 걸려 있었다. 북쪽 하늘을 지나던 양떼구름이 한층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아직 머리 위는 아니었지만 조금만 더 가면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흩어져서 풀을 뜯고 있는 게 아니라 길을 건너듯 한 줄로 쭉 늘어선 커다란 양 무리.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며 북쪽으로 쭉 늘어선 양떼구름 아래에 내 양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끝도 없이 이어진 초록색 언덕을 간질간질 쉴 새 없이 뜯어먹어가며.

양들이 풀을 뜯듯 나는 양떼구름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할아버지는 별도 잘 읽었지만 낮에는 구름도 곧잘 읽으셨다. 별이나 글자처럼 어디에 딱 박혀 있는 게 아니어서 기분 따라 다르게 흘러가는 이야기였다.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에, 멀리 멀리 아주 오래 먼 곳에서, 양치기신이 커다란 구름양떼를 이끌고 하늘을 건너셨다. 양들에게 별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늘 깨끗한 옷을 입고 있는 양치기신이었지만 그분의 양떼는 그렇지 않았다. 별을 뜯어먹다가 밤[夜]이 묻는 바람에 입가가 새까매지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구름양들이 어떻게 했는지 아니? 옆에 있는 다른 구름양들한테 닦아버렸단다. 털이 아주 폭신했거든.”
“그러면 다른 애들이 지저분해지잖아요.”
“그래서 양치기신이 화가 나신 거지. 까매진 구름양은 양처럼 보이지도 않거든. 그래서 큰소리를 지르면서 양들을 땅으로 쫓아보내셨대요. 별을 못 뜯어먹게 하시려고. 깜짝 놀란 구름양들이 한데 모여서 파르르 떨면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거란다.”
“에이, 거짓말. 양치기신님은 소리 안 질러요. 조용한 분이셔서.”
“그랬던가? 어쨌거나 이거 하나는 확실해.”
“뭔데요?”
“양치기신님을 만난 양치기는 운이 아주 좋다는 거지.”
“왜요?”
“어디든 가고 싶은 데로 데려가시거든.”
“그게 왜 좋은데요? 가고 싶은 데라는 게 뭔데요?”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가고 싶은 데라는 게 뭘까. 서쪽 초원에서 온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한테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여서 들어가 있는 말일까, 아니면 사막 건너에서 온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몇 번이나 했냐? 아무튼 시간도 건너서 갈 수 있어요.”
“시간은 왜 건너는데요?”

짧은 밤이 다시 한번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에는 양떼구름이 조금 더 가까워져 있었다. 열 개, 스무 개 언덕을 지날수록 양치기신의 무리에 가까워지는 모양이었다. 신의 양떼는 이제 완전히 우리 머리 바로 위를 줄지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젖혀 위를 올려다보면 그 거대한 뱃살을 감싼 하얀 털이 바람에 꿈틀거리는 모양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양치기신은 어디서 만날 수 있는데요?”
“일단 삼백 개의 언덕으로 가야 해. 진짜 딱 삼백 개는 아니고 아무튼 무지하게 많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야. 양치기신님의 목초지가 맨 꼭대기 언덕에 살짝 걸리거든. 거기는 아주아주 높은 언덕이어서 한번 올라가면 내려올 수가 없어요.”
“에이, 그럼 안 가야겠다.”
가고 싶은 곳을 떠올렸다. 건너고 싶은 시간이 생각났다. 양떼구름 아래쪽에 돋아난 네 개의 다리가 보였다. 땅바닥에 닿지 않아서 버둥거리기만 하는 짧은 다리였다. 다행히 그 다리를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바람이 뒤에서부터 불어와 신의 양떼를 어디론가 서서히 몰고 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언덕 스무 개를 더 넘었다. 구름양떼 털 뭉치가 언덕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었다.

그 옛날에 빌게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그렇구나. 그래서 저기가 양떼자리구나. 그것도 모르고 몇 년이나 연구했네. 저기 양떼자리 한쪽에, 저 파란 별 옆에 있는 빨간 별 옆에, 희미하게 생긴 구름이 있어. 보여? 너는 눈이 좋으니까 어쩌면 보일지도 모르는데, 뭐 그 정도로 좋지는 않겠다. 그럼 사람 눈이 아니지. 아무튼 별이 죽으면 구름이 되거든. 별이 되는 데 쓰인 재료가 다시 우주로 뿔뿔이 흩어져서. 그런데 그게 또 어떻게 되냐면 흩어진 재료들이 모여서 또 다른 별이 되는 거야. 아주 천천히. 그런 재료들이 구름처럼 잔뜩 모여든 곳이 성운인데, 거기에 망원경을 맞춰놓고 뭔가를 찾아내는 게 내 일이야.”
“새로 생기는 별을요?”
“음, 그렇겠지? 전공을 좀 바꾸고 싶기는 한데, 아무튼 결국 그거지. 새로 생기는 별에 관련된 뭔가를 찾는 거. 새 별이 생기는 순간을 딱 포착하기는 어렵지만, 거의 그 순간을 보고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천문학에서 순간이라는 게 말이 순간이지 진짜로 순간은 아니고 엄청나게 긴 시간이어서 말이야. 아, 나도 모르겠다, 내가 뭘 보고 있는지.”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던 눈 나쁜 빌게를 다시 한번 꼭 만나보고 싶었다. 시간을 건너,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기 전 그때 그 좋았던 때로 돌아가서. 막상 만나면 진짜 할아버지가 됐다고 싫어할지도 모를 노릇이지만.
어쨌거나 신께서는 일단 내 양떼를 무리에 받아주셨다. 구름양떼의 부드럽고 흰 털이 얼굴에 직접 닿는 거리. 우리는 이제 신의 목초지를 걷게 되었다. 촉촉한 양털이 우리를 감쌌고 마침내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염소도 개도 내가 탄 말도. 양들은 끝까지 풀을 뜯다가 입이 발보다 늦게 땅에서 떨어졌다.

구름양떼에 비하면 내 양들은 크기가 너무 작아서 저 아래 초원에서 올려다보면 작은 점 하나로도 안 보일 지경이었다. 그 작은 점들이 허공에 발을 버둥거렸다. 길을 안내한 이상한 양놈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내가 가고 싶은 데로 데려가주는 건가? 아니면 내가 앞장서야 되나? 그런데 나는 가는 방법을 모르는데.’
우리는 그렇게 함께 길을 갔다. 양도 염소도 개도 말도, 누가 누구를 버리고 갈 필요가 없었다. 적어도 그 수십 마리 중 하나는, 구름양떼까지 쳐서 백여 마리 중 하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알고 있겠지. 안 그러면 이렇게 태평할 리가 없잖아. 그렇게 무리에 적당히 섞여서 남들 가는 데로 가면 되겠지.
내 양들에게 말했다.
“이놈들아, 니들은 어려서 아무도 본 적 없지. 그 안경 쓴 여자? 공부를 많이 해서 그렇다는데 말 탄 사람은 다 난 줄 알 만큼 눈이 나쁜 누나야. 아, 글쎄 초원 저 건너에 남의 게르가 있는데 그 정도로 멀면 아무것도 안 보일 거니까 우산 같은 걸로 안 가리고 볼일을 봐도 괜찮다 그러네. 그쪽에서는 이쪽이 다 보일 게 빤한데. 초원에는 그렇게 눈 나쁜 사람이 없는데 말이지. 1년 뒤에 온대놓고 결국 못 돌아왔는데 그 소식을 나는 반년이나 늦게 알았지 뭐람. 지구 반대편에 산 게야. 다른 별에 산 게지. 도시에서 살았어야 했나 생각한 건 그때 딱 한 번이야. 그랬으면 반년이나 산 비석으로 있지는 않았겠지. 그래서 지금도 그리운가 하면 그건 또 아니야.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 나. 멍하게 지워지기 좋은 데잖아, 이놈의 초원. 그래도 한 군데 가보고 싶은 데를 고르라면 나는 지금 이 길이었으면 좋겠어. 초원을 떠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평생 그때 한 번뿐이거든.”

물론 이건 꿈이 틀림없다. 마지막 순간에 꾸라고 할아버지가 내 이마에 비석처럼 새겨준 아주 오래된 선물. 지금 들이마시는 이 신선한 공기가 내 마지막 호흡인 걸 모르는 게 아니다. 내가 이렇게 영원히 잠들고 나면 염소가 양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도할 것이다. 늑대나 다른 짐승이 공격해온다면 개가 나서서 싸울 것이다. 내가 잠든 곳은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 결말이 좋았다. 양떼에 둘러싸여 호사스럽게 눈을 감는 것. 염소도 말도 개도 할아버지의 별 이야기도, 그리고 누나도. ‘그런데 둘째놈이 전화를 했으려나. 뭐 내 자식도 아니지만.’
바람이 불었다. 우리 모두를 어디론가 실어갈 바람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오전 10시경에, 초원 사람들이 신성한 언덕이라 믿는 작은 언덕 위에서 양떼에 둘러싸인 노인 시신 하나가 발견되었다. 시신이 발견되기 몇 시간 전에는 천문학자 몇몇이 양떼자리라 부르는 별자리에 포함된 발광성운에서 원시별 하나가 새로 관측되었다. 최초의 핵분열이 일으킨 폭풍이 모여들던 가스를 밀어내고 별의 질량이 고정되면서 향후 수십억 년 동안 이어질 별의 생애가 결정되는 단계. 사람들이 말했다. 빛으로 이천오백 년은 걸리는 거리이니 벌써 이천오백 년도 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배명훈 2005년 SF 작가로 데뷔했고 2009년 를 내면서 문단에도 알려졌습니다. 201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받았으며 등의 소설을 출간했습니다. 2009년 이후 소백산천문대에서 개최되는 창작워크숍에 꾸준히 참석하면서 천문학자나 별에 관한 이야깃거리를 얻었다고 합니다. 소설과 함께 작가는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접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해왔습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