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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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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저항의 힘으로

병역거부 등 평화운동가들이 바라본 국가폭력의 민낯을 그린 <저항하는 평화>, 오늘의 중동은 과거의 포로…데이비드 프롬킨의 <현대 중동의 탄생> 등 새책 10권
등록 2015-01-24 09:22 수정 2020-05-02 19:27
병역거부 등 평화운동가들이 바라본 국가폭력의 민낯

엄기호·김종대·강인철 외 지음, 오월의봄 펴냄

“이 나라에서는 군대 아니면 감옥밖에 없다.” 옴니버스 영화 중 병역거부 이야기를 다룬 ‘얼음강’ 속 대사다. 영화 제목처럼 선택권을 박탈당한 청년들에게 사회는 꽁꽁 언 얼음강 같다. 그들이 그런 세상의 폭력에 맞설 수 있는 것은 평화뿐이다.

군대와 군사주의를 거부하는 평화운동가들과 행동하는 각계 지성인들의 대담을 엮은 책 (엄기호·김종대·강인철 외 지음, 오월의봄 펴냄). 청년·징병제·종교·젠더·국민국가·교육·비폭력운동·트라우마라는 8가지 키워드를 놓고 대한민국 곳곳에 뿌리박힌 폭력, 그리고 이에 맞서는 저항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삶을 이 사회의 변방으로 옮겼다”
책 는 병역거부 등 평화운동가들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의 폭력을 담았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병역거부권 인정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는 모습. 정용일 기자

책 는 병역거부 등 평화운동가들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의 폭력을 담았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병역거부권 인정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는 모습. 정용일 기자

‘평화의 눈’으로 바라본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국방평론가 김종대씨는 “군대를 국민 자격증을 부여하는 기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가가 군대를 통해 ‘시민’이 아니라 ‘식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국가적 규율에 복종하는 기제로서 군대가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약육강식 논리가 지배하는 그곳은 ‘평생 몸에 남아 있는 군대라는 상처’를 남긴다. 동성애자인권연대활동가 이덕현씨는 “군대는 끔찍한 공간”으로 기억한다. “낙오되거나 떨어지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같이 갈 것인가에 대해 절대 가르치지 않아요. 계속 낙오되는 사람을 욕하고 때려서 하게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방식이에요.”

재일동포 학자 서경식씨는 국가가 병역을 거부한 이들을 비국민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평화의 싹은 트고 있다. 비국민이 된 그들은 국민국가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에 그 바깥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다. 국민국가의 폭력에 저항하며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길도 찾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용석씨는 “병역거부는 국민으로서 흠잡을 수 없던 조건들에 커다란 균열을 냈다. 하지만 그 균열은 내게 추락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가는 문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병역거부를 하면서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채식을 하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 사회의 변방으로 옮겼다.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자리를 찾은 뒤부터 ‘비국민’은 더 이상 차별받는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열쇳말이 되었다.”

고통을 언어화하고 가시화하기

저자들이 말하는 평화는 평온한 상태가 아니라 끝없는 긴장 상태다. 위에서 내리누르는 힘에 끝없이 쳐드는 힘이며, 부조리한 것을 거부하는 정신이자, 어느 하나의 힘이 지나치게 강성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견제하는 것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마음의 평화가 바로 평화의 적이라고 생각해요. 고통을 다양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폭력으로부터 받은 고통을 언어화하고 가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책에는 치열한 경쟁 시스템에 적응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 폭력의 체제에 어울리지 못하는 약한 자들이 서로 보듬고 어울려 살 수 있는 연대의 방법 등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하승우씨는 삶을 재구성하고 세상을 바꾸는 사회운동으로서 ‘비폭력 직접행동’에서 ‘평화의 길’을 찾는다. 그것이 바로 군사주의의 폭력에 맞서는 가장 적극적인 저항이기에.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오늘의 중동은 과거의 포로

데이비드 프롬킨 지음, 갈라파고스 펴냄

요르단강 동쪽과 서쪽은 앨런비 다리가 잇는다.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이다. 요르단강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오로지 이 다리 끝자락 검문소를 통해서만 들고 날 수 있다. 이스라엘 공항 이용이 금지된 서안지구 주민들은 앨런비 국경검문소를 거쳐 요르단에 입국한 뒤에야 제3국으로 갈 수 있다.

이 다리는 1918년 영국군 장성 에드먼드 앨런비가 주도해 건설했다. 그는 한 해 전 독일과 연합한 오토만제국의 군대를 무찌르고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1919년 7월 영국군 원수에 오른 앨런비는 이집트·수단 총독을 역임하며 1925년까지 중동에 머물렀다. 인류가 첫 번째 세계대전을 치르고, 두 번째 세계대전을 향해 가던 때다. 이 무렵 오늘의 중동 지도가 그려졌다. 앨런비의 부관으로 이른바 ‘팔레스타인 원정’ 길에 따라나섰던 아치볼드 웨이벌은 1차 세계대전을 마감하는 파리평화회의 폐막에 즈음해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 끝나니, 파리평화회의도 ‘평화를 끝내기 위한 평화’를 제법 성공적으로 이뤄낸 것 같군.”

(이순호옮김·갈라파고스 펴냄)은 미국의 대표적 중동 전문 역사가로 꼽히는 데이비드 프롬킨이 1989년 내놓았다. 그해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를 정도로 큰 반향을 부른 이 책이 주목한 것도 1차 세계대전 개전(1914)부터 전후 체제가 완성된 1922년까지다. 지은이가 책의 원제를 ‘평화를 끝내기 위한 평화’로 삼은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 일대를 호령했던 오토만제국을 해체했다. 제국이 사라진 땅에 새로 나라가 세워졌다. 국경도 그어졌다. 서쪽으로는 이집트에서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땅의 지도가 통째로 바뀌었다

“중동의 국가들과 국경선들이 유럽에서 조작되던 시대였다. 이라크와 요르단만 해도, 1차 세계대전 뒤 영국 정치인들이 비어 있는 지도에 선을 그어 만든 영국의 발명품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의 경계도 1922년 영국 관리에 의해 정해졌다. 시리아-레바논의 무슬림과 기독교 지역의 경계는 프랑스에 의해, 아르메니아와 소비에트 아제르바이잔의 경계는 러시아에 의해 수립됐다.”

무너진 제국의 ‘접착제’는 종교였다. 영국은 민족주의나 왕조에 대한 충성을 종교의 대안으로 삼았다. 러시아(옛 소련)는 종교를 이념으로 대체하려 들었다. 프랑스는 종교가 정치의 토대가 되는 것은 허용했지만, 종파 간 권력 배분에 차등을 뒀다. 지은이는 이 무렵 유럽 국가들이 “무슬림 아시아의 정치 구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고 짚었다. 허망한 믿음의 결과는 무엇인가? 오늘의 중동은 과거의 포로다.

정인환 영상센터 기자 inhwan@hani.co.kr



켄트 플래너리·조이스 마커스 지음, 하윤숙 옮김, 미지북스 펴냄, 3만8천원

인간사회는 언제부터 불평등해진 것일까. 미국 미시간대 고고학자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는 가족보다 좀더 큰 집단인 씨족사회가 형성되면서 집단 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불평등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불평등을 야기하는 동력으로 그들이 꼽은 세 가지는 경쟁, 야심, 명망 축적이다.


게리 하우겐·빅터 부트로스 지음, 최요한 옮김, 옐로브릭 펴냄, 1만8천원

저개발국의 빈민을 위협하는 폭력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국제 비정부기구(NGO) IJM의 활동과 경험을 바탕으로, 안전과 인권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조차 작동하지 않는 저개발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이들 나라에서 폭력이라는 역병이 창궐하는 이유는 기본적인 사법제도와 경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가쓰미 요이치 지음, 임정은 옮김, 교양인 펴냄, 1만6천원

프랑스 요리와 더불어 세계 2대 요리로 꼽히는 중국 요리. 여러 민족의 대립과 융합의 역사는 중국의 넓고 깊은 음식문화로 이어졌다. 책은 음식을 통해 중국 근현대사를 들여다본다. 베이징, 상하이, 광둥, 쓰촨 등 중국 4대 요리의 특징과 기원부터 중국식 샤부샤부 훠궈, 양고기 꼬치구이 등의 탄생 과정을 이야기한다.


김현정 지음, 느리게읽기 펴냄, 1만5천원

를 썼던 김현정 서울시립병원 정형외과 전문의가 들려주는 의료계 미래 리포트. 책은 과잉 진료 등을 하는 한국 대학병원들의 돈벌이 행태를 꼬집는다. 그는 “의사가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전문화가 아니라 환자를 위하는 사명감의 재무장뿐”이라고 강조한다. 의사가 의사에게 전하는 ‘절박한 조언’이다.



백욱인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1만5천원

“인터넷은 몸과 기억, 기술과 경제, 자본과 노동, 존재와 시간 등의 관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즐기기만 하는 ‘가축’들로 가득 찬 가축의 왕국으로 세계를 전락시켰다.” 1세대 디지털 사회학자 백욱인씨가 인터넷 세상에 등장한 새로운 주체인 ‘속물’과 ‘잉여’들을 소개하고 가축으로 길들여지는 디지털 원주민들의 세태를 고발한다.


하승수 지음, 한티재 펴냄, 8천원

“이 전등을 밝히는 전기는 과연 어디서 올까.” 10여 년 전 전북 부안의 핵폐기장 문제에 참여하면서 핵발전과 인연을 맺은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이런 의문을 품은 채 ‘대한민국 전력정책’의 현주소를 고발한 내용을 담았다. 이 작은 땅에 송전탑이 많이 필요하게 된 이유, 복잡한 이권으로 얽혀 있는 전력산업계, 그리고 전력난을 둘러싼 진실 등 ‘나쁜 전기’가 만들어지는 현장의 기록를 쉽게 풀어냈다.


제프 스펙 지음, 박혜인 옮김, 마티 펴냄, 1만6천원

인도가 없는 거리가 절반이고 교차로에 대부분 횡단보도가 없고 노면은 울퉁불퉁하고 휠체어 경사로는 없다. 이런 로마는 걷기에 부적합한 도시 같다. 하지만 로마에 가본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조차 걷고 싶은 10대 도시로 로마를 선정했다. 도시계획가인 저자는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으로 보행성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허먼 M. 슈워츠 지음, 장석준 옮김, 책세상 펴냄, 2만9천원

“지구화는 500년 전에 시작되었다.” 저자의 주장이다. 16세기 유럽의 해상무역 당시 출현한 이미 오래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의 패턴들이 재출현하고 있다. 100년 전 신흥농업국의 외채위기는 오늘날 신흥공업국의 외채위기와 비슷하다. 국가와 시장이 공생하고 갈등해온 지구화의 역사를 살피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국가가 별 볼일 없는 자리로 물러났다는 상식을 부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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