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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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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현장의 가장 밑바닥에서

불안정한 노동의 최전선에 있는 청소년 노동자의 오늘을 말하는 <십 대 밑바닥 노동>
등록 2015-01-17 06:48 수정 2020-05-02 19:27

배달 대행 일을 하는 16살 경수(가명)는 목숨을 걸고 달린다. 배달 건당 수수료로 보수가 책정되다보니 배달 건수를 늘리려면 과속 운행을 해야 한다. 도로에서 ‘위험한 곡예’를 하고 받은 돈 중에서 배달 수수료, 오토바이 대여료, 주유비 등을 빼면 남는 게 별로 없다. 배달을 하다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과 비용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그가 하는 일은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돼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

책 〈십 대 밑바닥 노동〉은 일하는 청소년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위험하고 고단한 노동의 현실을 말한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책 〈십 대 밑바닥 노동〉은 일하는 청소년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위험하고 고단한 노동의 현실을 말한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부려먹기 쉬운” 존재로 분류된 청소년 노동의 오늘을 말하는 책 (이수정·윤지영·배경내 외 지음, 교육공동체 벗 펴냄) 속 일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하는 경수는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다. 생계급여가 생계를 꾸려가기에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노동을 숨겨야 한다. 노동 소득이 드러나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이 박탈되거나 수급비가 깎이기 때문이다. 근로계약서를 타인의 명의로 쓰거나 행정 통계에 잡히지 않는 열악한 사업장에서만 일하거나 통장이 아닌 현금으로 급여를 받는 등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국 적은 복지 급여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일을 하면 생계급여 외에도 다양한 혜택이 있는 수급권마저 박탈당할 수 있는 모순적 상황이 저소득 청소년들의 노동권과 인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청소년 노동자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삶을 생생한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급격히 외주화되고 불안정해진 청소년 노동의 세계는 암울하다. 법적 책임을 물을 고용주가 누구인지도 알기 힘든 간접고용, 내일 일이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일고용, ‘사업자’가 되었으나 노동법의 적용조차 기대할 수 없는 특수고용 등 불안정한 일자리들로 대체되고 있다. “한마디로 팔려가는 거잖아요. 부려먹기 쉽고 말 잘 들으니까”라는 한 청소년의 말처럼 노동현장에서 그들은 ‘부려먹기 쉬운 존재들의 밑바닥 노동’을 하고 있다.

밑바닥을 맴도는 일하는 청소년들에게 노동은 “지옥의 문을 여는 것”과 같다. 그들에게는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인데다 그 적은 돈마저 벌금이나 위약금 같은 갖은 명목으로 떼인다. 일터에서 “야” “너” 등 반말은 기본이고 막말과 고성을 듣는 일도 잦다. 모욕을 견디는 것도 그들의 노동이다. 주휴 수당도 받지 못하고 일하다 다쳐도 산업재해 보상은 하늘의 별 따기다.

“전체 노동자의 인권을 끌어올리는 일”

책은 “청소년 노동자들이 불안정 노동이 만연화된 노동시장에서 가장 약한 고리”라고 말한다. 이들의 노동 실태를 바로 알고 부당한 노동 현실을 바꾸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청소년 노동은 노동 현장에서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기에 청소년 노동자의 ‘밑바닥 노동’을 끌어올리는 일은 전체 노동자의 인권과 전체 사회의 존엄을 끌어올리는 일이기도 하다. 가장 주변화된,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청소년 노동 문제에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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