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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 청년관을 신설하라

세대교체 이뤄졌지만 그럴듯한 기회와 장소에서 소외돼 있는 청년미술을 위한 제언
등록 2015-01-10 05:51 수정 2020-05-02 19:27

2014년 12월28일 일요일, 현대미술과는 거리가 멀어 뵈는 서울 중랑구 상봉동에 현대예술계의 청년들이 모였다. 장소는 최근 새로 문을 연 미술 공간 ‘교역소’. 말이 미술 공간이지, “상봉동에 위치한 무슨 공간입니다”라는 안내문처럼 정체가 불분명한 곳이다. 난방이 되지 않아 공사장처럼 비닐을 둘러친 장소에 간이 의자 200개를 깔았는데, 결국 자리가 모자라서 비닐 장막을 걷어올리고 다 함께 추위에 떨었다. 이들이 이런 고생을 감수한 것은, 이 자리에서 새로운 청년미술가 세대의 약진을 개괄하는 좌담회 ‘안녕 2014, 2015 안녕?’이 열렸기 때문.

약진을 개괄하는 좌담회 ‘안녕 2014, 2015 안녕?’

이 좌담회는 ‘유능사’의 기획전 ‘청춘과 잉여’- 지난 말일 서울 영등포의 ‘폐허-갤러리 커먼센터’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 의 부대행사로 마련됐지만, 해당 전시만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라, 2014년 12개월 동안 현대미술계에 어떠한 약진이 있었는지 점검하고, 또 아직 덜 알려진 새로운 전시 공간과 프로젝트팀을 운영하는 주인공들의 면면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좌담의 패널로 참석한 이들은 다음과 같았다. 상봉동 ‘교역소’를 운영하는 김영수·정시우·황아람, 역시 상봉동에서 ‘반지하’를 운영하는 돈선필과 박현정, 중구 황학동 ‘케이크갤러리’를 운영하는 윤민화, 영등포구 문래동 ‘커먼센터’를 공동운영하는 함영준, 종로구 통인동 ‘시청각’을 공동운영하는 현시원, 기획·평론 집단 ‘유능사’의 최정윤과 안대웅.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당대 청년미술의 실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이날 사회는 필자, 미술평론가 임근준이 맡았다.

유능사의 기획전 ‘청춘과 잉여’(왼쪽)의 부대행사로 좌담회 ‘안녕 2014, 2015 안녕?’이 열렸다. 좌담회는 2014년을 기점으로 현대미술의 세대교체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유능사 제공

유능사의 기획전 ‘청춘과 잉여’(왼쪽)의 부대행사로 좌담회 ‘안녕 2014, 2015 안녕?’이 열렸다. 좌담회는 2014년을 기점으로 현대미술의 세대교체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유능사 제공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날 좌담의 중요성은 ‘2014년을 기점으로 한국 현대미술계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는 것을 (재)확인했다는 데 있었다. 토론자 여러분은, 세대교체의 특징을 잘 보여준 기획이었던 ‘오늘의 살롱’전(커먼센터)과 ‘청춘과 잉여’전(커먼센터)을 먼저 논했다.

청년화가 69인의 작품 148점을 망라한 ‘오늘의 살롱’전은 상반기 청년세대 최대의 화제였고, 청년세대를 ‘잉여’로 호명해 대표 작가 다섯을 고르고 기성세대를 ‘청춘’으로 호명해 대표 작가 다섯을 골라 세대 간 짝을 맺어 협업을 요구한 ‘청춘과 잉여’전은 하반기 현대미술계 최대의 화제였다. 전자가 당대 청년회화 전반을 가로지르는 공허한 회화적 가상성을 보여줬다면, 후자는 1990년대에 형성된 기존 한국 현대미술과 새로운 세대의 미술을 대차대조함으로써 당대 청년미술이 드러내는 가상적 시점의 퇴행적 면모와 혁신적 면모를 모두 가감 없이 보여줬다.

흥미로운 점은, 이른바 전지적 스마트폰 시점의 시각성이, 새로운 공간들의 운영 방식이나 기획과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 예컨대 교역소는, 첫 기획 ‘상태참조’에서 타임라인을 따라 흐르는 중구난방의 이벤트를 현대미술의 새로운 형태로 구현했는데, 이게 여느 전시나 공연에서 볼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을 연출해냈다. 청년작가들이 주류 미술계에서 작은 기회를 얻기 위해 계속 프레젠테이션을 반복하는 현상에 대한 수동적 공격성의 화답이랄까. 심사위원도 없고, 더 나은 기회의 제공도 없지만, 참여 작가들은 각자의 형식으로 프레젠테이션쇼를 전개했다.

세대교체는 이미 실현됐다. 단지 청년세대의 주역들이 그럴듯한 기회와 장소에서 소외돼 있을 따름. 그 주역은 모두 1970년대 후반생(주로 기획자)과 1980년대생(주로 작가)들이다. 문제는, 이 사실을 기성 미술계가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것.

‘#청년관을위한행동’을 검색해보라

그래서 사회를 맡았던 필자는 좌담 말미에, ‘국립현대미술관 개혁안을 마련하고 공표해 청년미술인들을 위한 변화를 촉구하자’고 제안했다. 첫째, 서울대·홍익대 등 파벌과 인맥을 등에 업은 관장을 선임하게 됐던 과거의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하고 신임 관장 선임 과정을 공개하라고 요구하자. 둘째, 서울관에 청년작가를 위한 (적당한 크기의) 프로젝트 스페이스를 신설하라고 요구하자. 그와 함께 구체적으로 청년작가, 큐레이터, 평론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형식의 유기적 프로그램을 제안해보자.

이에 관객 여러분은 술렁였다. 시청 점거 농성을 벌였던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을 본받아 연대체 형식의 행동 단위를 만들어보자고 이야기하자, 관객으로 참석했던 뮤지션 오도함은 가칭 ‘청년관을 위한 행동’을 제안하며 퍼포먼스 예술가, 음악인 등을 망라한 공연 형식의 개혁 의지 표출을 제안했고, 반지하에서 사랑방 형식의 프로젝트 ‘2014’를 진행했던 예술애호가-미술인 구슬은 확대 논의의 장을 제안했다.

서울관의 개혁·개방을 요구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청년관을 위한 행동’은, 청년세대를 마땅한 기회로부터 소외시키는 부정의 동역학을 타파하고 새로운 미적 성취를 널리 공유하기 위한 실천이다.

트위터에서 해시태그(#청년관을위한행동)로 검색하면, 누구나 논의 사항들을 확인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임범묵 AKA 이정우 AKA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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