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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랑 춤추며 살아왔어, 후회하지 않아”

어쩌면 마지막일 ‘독립영화’ <야간비행> 개봉한 ‘살아남은 자’ 이송희일 감독
등록 2014-10-03 05:12 수정 2020-05-02 19:27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친구가 없으면 이 세상은 끝이잖아.”

의 용주가 말했다. 1994년 전북 익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촌놈인 그는 “(독립영화계에) 또래 동료가 없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후반 함께 독립영화를 시작한 동년배 중 일부는 독립영화를 발판 삼아 상업영화로 떠났다. 나머지 절대다수는 영화계를 떠났다. “독립영화로 극영화를 서너 편 이상 해온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야.” 20년 전부터 알아온 사이인 이송희일 감독은 그렇게 말했다.

“간단하고 멍청해서 좋겠다”

그는 요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을 다시 읽었다.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의 세대가 오래 암송한 시는 이렇게 끝난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영화 부터 까지, 15년을 달려온 그는 언제나 강하지 못한 이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역원조교제’로 단죄당한 어린 남자와 연상 여인의 사랑(), 게이라고 폭로당해 자살 직전에 내몰린 청소년(),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하다 가해자를 쏘아버린 탈영병(), 종로에서 날벼락 같은 혐오범죄에 당하는 게이() 등등등. 그는 당부한다. 강한 자가 아니라도 “살아 있어”달라고.

언젠가 이송희일 감독이 학교에 대한 영화를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이미 만들었다고 착각했을 정도다. 그가 “동성유대체”라고 말하는, 남자끼리 모여서 지지고 볶고 하는 공간인 학교와 군대는 20대 시절부터 그의 관심사였다. 그가 말했는지, 썼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학교와 군대를 “우정의 저장소” 혹은 “우정의 냉장고”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달콤한 우정과 위험한 사랑은 경계 없이 뒤엉킨다. 그러나 우정 아니면 사랑, 이분법만 제시하는 사회는 그것을 밀폐된 공간에 유배한다.

“간단하고 멍청해서 좋겠다.” 그의 영화 에서 게이임을 자각하는 군대 후임이 자신이 했던 말까지 부정하는 선임에게 던지는 대사는, 이송희일 감독이 영화를 통해 이성애 사회에 던지는 질문처럼 들린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멍청한 이분법으로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화를 넘어 권력의 문제를 성찰하고 인권의 언어로 말하려 했던 세대의 목소리다. 그는 일관되게 1990년대 ‘우리’가 배웠던 인권과 권력의 문제를 예술을 통해 성찰해온 작가다.

“(중남미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읽고 관심 가는 기사를 오렸대. 그걸 손으로 확 구겨서 바구니에 던지고, 몇 년 뒤 구겨진 신문이 가득한 상자에서 하나씩 꺼내서 읽었어. 지금도 이걸 재미있게 읽고 있나 확인하는 거지. 그걸로 작품의 토대도 삼았고. 지금은 인터넷 시대니까, 나만 보는 게시판 두 개가 있어. 거기에 기사들을 스크랩해. 모순을 압축한 사건을 골라서 (영화화)하는 걸 좋아하지.”

영화는 운동을 낳고 자각을 낳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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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이 살해당한 탈영병의 이야기를 그린 〈탈주〉, 교사와 학생의 사랑은 불가능한가를 묻는 〈지난여름, 갑자기〉, 원나이트 스탠드를 통해 만난 게이들의 로드무비 〈백야〉(위부터). 그의 영화는 묘비명 없는 죽음이나 이름 없는 사랑에 빛을 더한다. 시네마달 제공

이름 없이 살해당한 탈영병의 이야기를 그린 〈탈주〉, 교사와 학생의 사랑은 불가능한가를 묻는 〈지난여름, 갑자기〉, 원나이트 스탠드를 통해 만난 게이들의 로드무비 〈백야〉(위부터). 그의 영화는 묘비명 없는 죽음이나 이름 없는 사랑에 빛을 더한다. 시네마달 제공

그가 만든 영화는 일관되게 지금 여기에 대한 그의 견해였다. 멜로영화 구조에 녹아 있지만, 영화에는 언제나 모순이 응축된 일들이 담겼다. 은 서랍에 넣어두었던 원고를 사건이 자극해 만들어진 영화다. 2009년 를 만들고 1년을 공들여 썼던 원고가 있었다. 당초 8부작 드라마로 기획한 원고에는 퀴어 청년들이 청소년기를 회상하는 프리퀄이 있었다. 그는 ‘자살 직전 청소년 CCTV 영상’을 보고서 작품을 다시 꺼냈다. 여기에 문용린 전 서울시 교육감이 당선되고 일성을 내뱉은 “학생인권조례를 손보겠다”는 취지의 발언이 불을 질렀다. 는 서울 게이바 밀집지역 종로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을 다룬다. 2011년 종로에서 길을 가던 커플을 오직 게이라는 이유로 모르는 남자들이 린치를 가한 혐오범죄가 있었다. 2012년 개봉한 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에서 “나를 사랑했느냐”고 묻는 후임에게 제대한 선임은 “모르겠다”고 말한다. 돌아온 대답은, “모르고 싶은 거겠지”. 그의 영화는 “모르고 싶은” 일들을 꺼내 “몰라도 되느냐”고 묻는다.

“ 개봉을 하고 감독과의 대화를 하는데, 누가 손을 들어. 용감하더라. 자기가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 을 매일 보고 있대. 자기 얘기랑 똑같단 거야. 영화를 만들기로 하면서 예전에 청소년 인권운동을 함께 하면서 모았던 차별 실태 자료를 다시 봤다고 했잖아. 거기에 영화의 모티브가 됐던 친구가 자퇴를 하고 인권운동을 한다는 얘기가 나와. 근데 그 친구가 자기도 그 조사에 인터뷰를 했었단 거야. 지금은 스물둘인가 됐는데, 친하게 지내.”

그의 영화를 보면서 자란 ‘이송희일 세대’가 있다. 독립영화로 예외적인 5만여 명 관객을 동원했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후회폐인’을 만든 영화 가 개봉한 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성장하고 성찰해온 다음 세대가 있다. 개봉관에 들었던 관객 수로 표현되지 않는 영향력이 쌓여온 것이다. 는 희귀한 동아시아 퀴어영화로 대만, 홍콩 등에서 사랑을 받았다. 타이베이 영화제에 초청돼서 갔던 그에게 “를 보고 성정체성을 깨달았고, 한국이 너무 좋아져서 한국어를 배웠고, 지금은 동시통역사로 한국과 대만을 오가며 산다”고 말한 대만 청년도 있었다. 이렇게 유명한 감독이 아직도 수유리 셋방에 산다. 그는 “우리 주인집 아주머니는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마땅하다”며 웃었다. 석 달치 월세가 밀려도 독촉을 하지 않아서다. 그렇게 이름값에 걸맞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살아도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과 에서 반복되는 대사처럼 “춤추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놀고 싶은 친구들과.

해피엔딩? 사랑은 정신착란이니까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는 그렇게 시작한다. 20세기에 쓰인 시를 21세기의 감독은 영화로 그린다. 도망치려는 남자와 돌보려는 남자 사이의 로맨스, 달달한 얘기가 아니다. 이송희일이 영화로 불러온 줄기찬 사랑 노래에는 가난한 노동계급 청년의 용감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동년배 인류학자 엄기호는 신자유주의 세태를 는 책 제목으로 요약했는데, 이송희일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돌보는 청(소)년들을 그린다. 의 기웅은 절박한 왕따의 위기에 처한 용주를 돌보기 위해 자신을 던지고, 의 태준은 종로에서 당한 폭행을 되갚는 원규를 돕는다. 오래 알았건, 하룻밤 사이건, 같은 고통을 아는 이들은 서로를 돌본다. 그의 영화에는 유난히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청년이 자주 등장해 “판타지냐”고 물었다. “어제도 누가 똑같이 묻던데”라며 그가 웃었다. 그리고 “솔직히 예술영화로 소비되는 중산층의 한담을 견디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다시 웃으며 “시인은 복수의 화신이라잖나. 현실에서 배반당한 욕망을 시로 복수한다고. 영화도 똑같아.”

“세상이 이렇게 병신 같으니 엔딩이라도 웃어야 되는 거 아냐?”

에서 왕따를 당하는 기택이 만화를 보며 말한다. 짐작과 달리 그의 영화는 해피엔딩에 가까운 결말이 많다. 은 자신의 감정을 숨겼던 기웅이 용주에게 “외로워”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끝난다. 도 긴장관계에 있던 남자들이 ‘하면서’ 끝난다. 그는 “맞아, (내 영화가) 비극이고 우울하다 그러는데 더할 나위 없이 해피엔딩으로 찍었어”라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세상이 정말 그래?”라고 물었다. “낭만화 혐의가 있을 수 있어. 근데 나의 20대를 장악했던 엥겔스의 한 줄이 있었어. 사랑은 정신착란이어서 벽을 넘을 수 있다, 뭐 그런 거였어.”

이성애 멜로, 영화인생 시즌2

그가 퀴어영화만 만들지는 않았지만, 퀴어영화 감독이란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일찍이 커밍아웃한 게이인 영향도 크다. 어느새 40대를 넘어선 그는 ‘영화인생 시즌2’를 시작하려 한다. ‘이성애’ 멜로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고, 독립영화를 넘어선 제작 규모도 생각한다. 요즘은 영화의 내적 쾌락에 빠져도 되겠다 싶고, 도전하고 싶은 장르영화도 많다. 아직 그에겐 기량을 마음껏 펼칠 기회가 없었다. 항상 적은 예산으로 “최선이 아니라 차선”의 상황에서 작업했고, 영화가 끝나면 “키우던 새를 날려보내는 심정으로” 신인들을 가르쳤다. 거의 해마다 영화를 찍어온 그는 “빨리 다음 영화를 찍을 수밖에 없는 게 배가 고파서”라며 웃었다. 정말로 “같이 밥 먹으려고 영화 찍는 거야. 현장에서 가장 즐겁기도 하고”라고 덧붙였다.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퀴어영화 감독이 통장 잔고 거의 없는 나날에 그의 비행은 이제 시작이다. “모든 것이 가장 잘 종합되는 50대, 죽을 때까지 영화를 찍을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송희일의 마지막 독립영화가 될지 모르는 을 아직 스크린에서 볼 기회는 남았다. 조금만 발품을 팔아서 극장을 찾으면 된다. 혹시 감독과의 대화가 있다면, 대신해 물어도 좋다. “부족으로서 게이는 가능한가요?”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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