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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똥 따기’가 다는 아닙니다만

인디레이블 러브락컴퍼니 소속 뮤지션과 팬 41명이 함께 떠난 왁자지껄 난리법석 하룻밤 여행
등록 2014-08-08 08:33 수정 2020-05-02 19:27

지난 6월 페이스북에 알 수 없는 내용의 티저 포스터가 떴다. “멸치 똥 따러 갈래?”라는 문구가 담긴. 당최 정체를 알 수 없는 포스터였다. 며칠 뒤, 정체가 밝혀졌다. ‘러브레이크×러브락컴퍼니’를 알리는 티저 포스터였던 것. 록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파블로프 등이 속한 인디레이블 러브락컴퍼니가 팬 41명과 함께 강원도 춘천 KT&G 상상마당으로 떠나는 여행상품을 내놓았다. 예매 창구를 열자 2분 만에 매진됐다. 도대체 무슨 작당을 한 건가? 7월26∼27일 그들의 요란하고 재미 넘치던 여행에 동행했다.

‘몰카’부터 아카데미, 오픈 리허설까지

시작은 ‘몰카’였다. 41명의 팬이 열차 1량에 함께 탔다. 지루할 새 없는 여행을 만드는 것이 러브락컴퍼니 기명신 대표와 그 일당의 목표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 기 대표는 말했다. “전문 레크리에이션 강사에게 ‘갤럭시 익스프레스’ 팬이라고 말해줘도 밴드를 잘 모르거든요. ‘갤럭시 에스프레소’라고나 하지. 그래서 거짓 정보를 줬죠.” 6년차 강사는 41명의 팬 앞에서 성심성의껏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려 노력했다. 단, 그는 기차에 탄 사람들이 ‘엑소’ 팬인 줄 알았다는 게 함정. 팬들은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신나는 몰카 레크리에이션을 마치고 의암호 주변에 고즈넉이 자리한 KT&G 상상마당 춘천에 입성했다. 팬들이 사거나 손수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 찜한 뮤지션들과 함께 먹었다. 코다리 반찬, 집에서 만든 식혜, 코스요리, 달걀말이…. 떡하니 한 상이 차려졌다.

지난 7월26일 저녁 ‘러브레이크×러브락컴퍼니’ 여행 중 펼쳐진 공연(왼쪽)과 ‘멸치 똥 따기’ 대회 모습.  ⓒPomme, 러브락컴퍼니 제공

지난 7월26일 저녁 ‘러브레이크×러브락컴퍼니’ 여행 중 펼쳐진 공연(왼쪽)과 ‘멸치 똥 따기’ 대회 모습. ⓒPomme, 러브락컴퍼니 제공

‘러브락 아카데미’가 이어졌다. 뮤지션 1명이 일군의 팬들에게 강의를 했다. 유용한 강의일 리 없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는 박종현씨는 ‘토요예술무대’, 드러머는 ‘낮술방’의 강사로 활약했다. 파블로프의 드러머 조동원씨는 ‘모태솔로방’ 강사였다. 조씨는 “당황스러운 기획이었지만 역시 남의 연애 얘기는 어디서나 흥미를 주는 것 같다. 강의실 같은 공간에서 화이트보드에 글을 써가며 이야기를 하다보니 토익학원 강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가만두지를 않는다, 이 여행. 여행자에게 특권이 있었다. 공연 전 리허설을 참관할 수 있게 했다. 아카데미가 끝나자마자 야근을 마치고, 새벽차를 타고 달려온 피곤에 찌든 여행자들이었지만 오픈 리허설을 보러 공연장에 모여들었다. 참가자 윤수현씨는 반짝이는 눈으로 무대에 선 파블로프를 보고 있었다. “다른 데서는 이런 걸 볼 기회가 아예 없어서 정말 특별한 느낌이다. 여행을 올 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고 윤씨는 말했다. 이어진 공연은 글로 더해 무엇하겠는가. 이 세상에서 자신들을 가장 사랑해주는 팬들 앞에 선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파블로프였는데….

닭갈비를 곁들인 케이터링을 즐기면서 팬과 뮤지션들은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음주 역시 빠질 수 없다. 그러나 곧 이어질 게임을 염두에 둔 건지, 과음을 하는 팬들은 찾기 어려웠다. 무슨 게임이길래? 뮤지션과 관련해 40문제나 준비된 ‘도전 골든팬’이 열렸다. 뮤지션 자신들도 답을 모르는 문제가 나왔으나, 진정한 팬들에겐 별 문제 아니었다.

팬과 뮤지션 사이 깊어진 애정과 이해

그 뒤 야외에서 진짜 ‘파티’가 열렸다. 초대 록밴드 데드 버튼즈와 갤럭시 익스프레스, 파블로프의 어쿠스틱 공연, 뮤지션 애장품 경매가 이어졌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던 팬들과 뮤지션이 달리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음악에 취해. 드디어 대망의 ‘멸치 똥 따기’ 팀 대항 게임이 열렸다. ‘무슨 정신으로 멸치 똥을 딴단 말인가’ 싶었지만, 오산이었다. 세심하게 멸치의 머리를 따고, 몸통을 갈라 까만 멸치 똥을 꺼내는 장면은 마치 수술 장면 같았다. 게다가 러브락컴퍼니의 이성훈 실장은 하얀 장갑을 끼고 냉정하게 심판에 들어갔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재미있으면 그만.

남는 건 사진과 영상과 추억뿐이다. 아니, 하나 정도는 더할 수 있겠다. 뮤지션과 팬 사이의 더욱 깊어진 이해와 애정이 바로 그것이다. 파블로프의 보컬 오도함씨는 “여행 내내 팬들이 무엇을 원할지 고민했다. 팬과 함께하는 일은 공연을 하는 일과는 매우 다르지만 동시에 공연과 다를 바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 순간순간 러브락 식구들과 팬들로부터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고 그 과정은 정말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팬도 마찬가지다. 참가자 김미진씨는 “밴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음악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기 대표는 “공연 말고는 팬들이 즐길 특별한 록 문화가 없는 상황인데 이같은 프로그램이 그 지평을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러브락컴퍼니는 여행이 끝나자마자 또 다른 작당을 하려 머리를 굴리는 중이다.

춘천=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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