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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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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베토벤〉을 구원해주소서

새로운 시도 반짝이지만 최소한의 마케팅비도 없어 사라질지 모르는 영화, 정윤철 감독이 보내는 긴급 청원문
등록 2014-04-14 04:54 수정 2020-05-02 19:27

바야흐로 한국 영화 전성기다.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 1년에 두 편씩 나오고 지난해 한국 영화 관객만 1억2천만 명에 이르렀다. 명절에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은 자연스런 가족 행사가 되었고, 40~50대 관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기존의 20대 위주 마케팅 전략에 일대 변화도 가져왔다. 하지만 이러한 폭발적 성장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극장의 흥행 영화 몰아주기 배급 전략으로 스크린 독과점이 심해져 이른바 대박 영화와 쪽박 영화가 극명하게 갈리게 되었다. 마치 한국 경제가 나아졌다고는 하나 삼성과 현대 빼고는 거의 모든 기업이 재미를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영화의 눈부신 성장에도 작은 영화들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이란 아주 작은 독립영화가 세상에 공개되었지만 사람들의 눈에 띌 수 있는 최소한의 마케팅비가 없어 곧바로 극장에서 사라질 운명이다. 심지어 평론가의 지지도 거의 받지 못했고 유명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타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소중한 미덕을 지녔고 한국 영화사에 남을 새로운 시도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이 글은 평론가들이 미처 못 보고 지나친 이 영화의 숨겨진 장점을 감독의 입장에서 되새기는 한편, 아울러 영화가 극장에서 사라지기 전에 눈썰미 있는 관객이 어서 극장으로 달려가 긴급히 구조해달라는 청원문이기도 하다.

이토록 훌륭한 연기 앙상블을 봤나

이 작품은 원래 극단 차이무가 공연한 동명의 연극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연극 무대가 실제 카페로 옮겨졌다는 것 외엔 내용도 같고 출연 배우들조차 똑같다. 물론 영화이기에 배우들의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지켜볼 수 있다. 내용은 여자 셋이 모여 1시간30분 동안 떠들어대는 것이 전부다. 같은 고교 출신이란 것 외엔 서로 성격이 판이한 그녀들의 수다는, 처음엔 신변잡기처럼 들리지만 점점 소소한 추억이 현재와 겹쳐지며 ‘사랑’이란 중심축으로 모여든다. 이 영화는 결국 세 명의 여자가 각기 사랑을 바라보는 방식과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정답은 없다.

천일야화처럼 펼쳐질, 지구상에서 매일 수천 번씩 반복될 연애담을 관객에게 그냥 보여주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것도 이야기고, 영화가 될 수 있을까? 기승전결 구조의 익숙한 영화를 기대한다면 이런 시도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대체 주제가 뭐야? 정말 첨부터 끝까지 수다만 떨다가 끝나는 걸 영화라고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이 작품에는 이야기 대신 극도의 ‘사실성’이 있다. 마치 물방울을 그린 극사실주의(Hyperrealism) 회화처럼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나 정교하게 묘사돼 있다. 사랑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고, 느끼고, 공감하고, 반응하는 모든 순간순간들이 기존 영화와 달리 정말 ‘진짜’처럼 담겨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 작품을 빈약한 이야기에서, 창조적인 퍼포먼스로 만든다. 마치 인간의 입으로만 연주되는 신비한 아카펠라처럼, 영화는 사람의 감정에 대한 정밀묘사를 통해 특이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우린 눈앞에서 재현되는 또 하나의 평행 우주를 보며, 경탄과 함께 나 자신의 우주를 돌아볼 기회를 얻는 것이다.

한 장소에서 여성 세명의 수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영화 〈씨, 베토벤〉에는 스펙터클이나 화려한 영상은 없다. 하지만 이 영화의 미덕은 생동감 넘치는 현실 재현이다. 별다른 치장 없이도 ‘진짜’ 같은 그들의 연기는 보기 드문 수준이다.인디스토리 제공

한 장소에서 여성 세명의 수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영화 〈씨, 베토벤〉에는 스펙터클이나 화려한 영상은 없다. 하지만 이 영화의 미덕은 생동감 넘치는 현실 재현이다. 별다른 치장 없이도 ‘진짜’ 같은 그들의 연기는 보기 드문 수준이다.인디스토리 제공

물론 이 스토리나 구성 면에서 대단한 게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평론가들에겐 별 두 개(?) 정도를 받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무엇보다 연기적인 면에서는 최상급이다. 단언컨대, 이토록 훌륭한 연기 앙상블은 기존 영화에서 보기 힘들다. 배우들이 천재라서는 아니다. 비밀은 제작 방식의 차이에 있다. 대부분의 영화는 한컷 한컷 나눠찍기 때문에 숙련된 배우라 해도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기 어렵다. 특히 연극배우 출신들은 처음엔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어, 연기 톤이 컷마다 들쭉날쭉하기도 한다. 심지어 감독도 자기가 찍으면서 어떤 것이 OK컷인지 헷갈린다. 편집해서 붙여봐야만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대화가 끊기는 순간, 그 근사한 여운

이 영화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한 다음 연극처럼 한 번에 찍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통으로 들어 있어 극히 자연스럽다. 특히 리액션(반응) 숏들이 얼마나 좋은지 깜짝 놀란다. 리액션 숏은 보통 상대 배우가 없는 상태에서 혹은 연출부가 대충 던져주는 대사를 받아 배우가 혼자 연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모든 리액션이 상대 배우의 액션을 받아 나오는 진짜 ‘리액션’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같은 롱테이크 촬영도 아니다. 컷은 무지 많다. 하지만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깝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기존 영화라면 편집해버렸을, 대화가 끊기는 순간을 남겨놓았다. 그 여운이 근사하다.

이러한 생동감 넘치는 현실 재현은 모든 영화가 지향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극사실적인 연기를 매번 하기는 영화 제작 구조상 대단히 어렵다. 영화는 순서가 뒤죽박죽된 상태로 한컷 한컷 찍어나간다. 이 때문에 훌륭한 연기를 뽑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편집과 음악 등으로 감정의 점프를 메꿔나가는 것이다. 결국 연기의 질보다는 스토리 위주로 영화를 만드는 구조가 돼버렸다. 하지만 최근의 한국 영화 흥행작들을 보면 관객이 배우들의 연기에 점차 많은 점수를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등은 스토리만으로는 결코 지금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 중심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있다. 바야흐로 캐릭터 드라마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마치 가 정말 가창력 있는 가수를 다시 무대에 세웠듯 말이다.

주제는 ‘리액션의 소중함’?

이 작품은 영화와 연극의 차이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영화는 ‘편집을 통한 리액션 숏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은 영화의 특성인 클로즈업을 통해 배우들의 반응이 담긴 리액션을 보며 감정이입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는 연극을 뛰어넘어 엄청난 파워를 가진 매체가 되었다. 은 연극에서 영화로 진화하는 드라마틱한 순간을 기막히게 포착했다.

아울러 화자의 액션만 있고 듣는 이의 리액션이 없는 사회란 얼마나 팍팍한가? 반응이 없는 집권자와 사는 국민이 얼마나 불행한지 우린 매일 느끼고 있다. 결과적으로 은 영화의 형식에서도, 그리고 주제 면에서도 ‘리액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인상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맹세코 당신이 이 영화를 본다면, 좀더 남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자기 주장만 말하지 말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들어준다면 참으로 좋지 아니한가.

정윤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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