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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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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기 전 무너진 청춘을 위해

삼성 반도체 피해 노동자들에 관한 또 하나의 영화 <탐욕의 제국> 만든 홍리경 감독
“뇌종양으로 갑자기 떠난 이윤정씨 보내며 다 포기하고 싶기도”
등록 2014-03-08 06:24 수정 2020-05-02 19:27

영화 은 삼성전자 반도체 피해 노동자들에 관한 또 하나의 영화다. 앞서 개봉한 이 고 황유미씨와 아버지 황상기씨의 싸움을 극화했다면, 3월6일 황유미씨의 기일에 개봉하는 은 여전히 회사와 싸우고 있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실제 목소리를 듣는 다큐멘터리다. 2년여 동안 이들이 웃고 우는 일상이 92분의 영화에 녹아 있다. 지난한 시간을 함께 견디고 기록한 홍리경(32) 감독을 지난 2월25일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만나 영화 안과 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유독 젊은 여성 피해자들 많은 까닭

영화 시작 전 시커멓던 스크린이 하얗게 밝아온다. 하얀 노트 위에 빽빽하게 들어찬 글씨. “전처리 배우고 WDF 01, WDF03… 황산은 하루에 한 번”. 같은 글자를 여러 번 덧대쓰고 어디에는 별 표시도 했다. 그렇게 흰 공책이 시커메지도록 반복해 외운 공정들, 약품들. 그리고 다시 화면은 더 하얘진다. 흰 방진복을 입고 눈만 내놓은 사람들의 사진. 그대로 멈춘 화면 뒤로 조용히 삐걱대는 기계 소리가 들린다. 이곳은 먼지 한 톨 용납하지 않는 클린룸, 카메라는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의 까만 눈을 가만가만 들여다본다. 일상어와 거리가 먼 단어, 말하는 입은 가린 채 눈만 내놓은 사람들의 흐린 사진만 교차하는 화면에 좀 답답해질 무렵 누군가 드디어 말문을 연다. 공장 밖에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이야기. “안 예쁜 모자들이 있어요. 그런 모자가 걸리면 벗어놓고 다른 예쁜 모자 나올 때까지 갈아쓰고 하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는 항상 이렇게 할 때마다 하트가 나와요. 예쁘죠?”

먼지 한 톨 떨어질까, 사람이 아닌 기계를 보호하기 위해 제작된 갑갑한 방진복을 입은 이 사람들은 하루의 3분의 1을 첨단 설비 사이에서 보냈다. 말이 좋아 첨단이지 당시 일했던 노동자들은 그곳에 들어서면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진술한다. 기계가 할 일을 사람이 해야 했다. 손이 바빴다. 행여 실수하거나 생산성이 떨어지면 들리진 않아도 어디선가 경고음이 울리는 듯했다. 정신없이 일했다. 급여가 많은 것 빼고는 그다지 즐거울 일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렇게, 모양 좋은 방진모를 찾아 쓰는 식으로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을 찾곤 했다. 시간을 견디며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날 것이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은 그들에 관한 기록이다. 그런 이야기라면 제목이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누군가 되물을지 모른다. 영화는 그런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려 했던 이들이 뜻하지 않게 거대한 벽에 부딪히는 순간을 촘촘히 기록한다.

반도체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들을 오퍼레이터라고 부른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에 제보한 피해 노동자 가운데 엔지니어들도 있지만, 유독 오퍼레이터로 근무했던 여성들의 이름이 눈에 많이 띈다. 고인이 된 황유미씨, 이윤정씨, 투병 중인 황혜경씨, 박민숙씨를 비롯해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위해 투쟁하는 정애정씨 또한 삼성전자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던 노동자다. 유독 젊은 여성 피해자가 많은 까닭이 있을까. “너무 뻔한 이유다. 섬세하고 순종적이다. 특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대 후반~20대 초반이면 착하고 순하잖나. 사회 경험이 없다보니까 부당한 상황에서도 그걸 부당하다 말하지 못하고 묵묵히 견디고…. 미국에서도 노동조합을 만들 리 없는 그런 젊은 여성 노동자를 선호했다고 하더라.” 홍 감독의 대답이다.

그래서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쫓는 내내 마음이 쓰렸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 채 피기 전에 무너진 청춘들이 그곳에 있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거기에 닿지 않았을까. 이들은 방진복을 입고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워 보이기를 바라는 소소한 일상 가운데 자신의 삶이 하얗게 닳아 사라지고 있음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조급증 들 정도로 멈춰 있는 장면들

은 내내, 보는 이가 조급증이 들 정도로 멈춰 있는 장면이 많다. 자세히 보면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거나 자동차가 움직이기도 하지만 한곳에 고정된 카메라가 응시하는 장면은 마치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첫 장면에 반도체 노동자들과 업무일지 같은 기록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카메라는 나중에는 노동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공장이나 기숙사 건물 따위를 응시한다. 고정된 화면뿐만 아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시점에 내레이션이 나오거나, 극적인 장면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그런 친절하고 극적인 작법들을 배제해서 오히려 더 철저하게 이쪽과 저쪽의 민낯을 드러낸다. 세계적인 기업의 로고가 박힌 저 두꺼운 벽 뒤로, 작은 창문 너머로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워낙 내부를 찍고 싶었는데, 찍을 수가 없으니까 그런 열망이 투영된 장면이 아닐까. 계속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상상하게 되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것을 의도했다. 관객이 불편해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은 그거였다.”

거기 사람이 있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피해 노동자의 문제를 다룬 영화 〈탐욕의 제국〉 홍리경 감독은 “일상의 기기를 만들기 위해 소모된 작은 삶이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말했다.탁기형

거기 사람이 있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피해 노동자의 문제를 다룬 영화 〈탐욕의 제국〉 홍리경 감독은 “일상의 기기를 만들기 위해 소모된 작은 삶이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말했다.탁기형

그렇게 꾸준히 오랫동안 지켜보는 가운데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홍 감독에게 이윤정씨의 죽음이 그랬다. 영화 앞부분에는 치료차 병원에 들렀던 이윤정씨가 카메라를 향해 말하는 모습이 나온다. “남들이 한 번씩 가보는 곳들 있잖아요. 그런 데는 가봐야 하는데, 어우… 지하철 타고 다니기가 힘들어서. 뭐지 거기? 청계천? 가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이) 야, 거기 냇가야 냇가, 볼 것도 없어 이러는데…. 지하철 어떻게 탈 수 있겠니? 아니, 차 타고 가야지, 이러면 야 거기 차 타고 못 간다…. 그럼 영영 못 가는 거네? (그러면 남편이) 아니, 가긴 가지. 언젠가는 한 번 가야죠.”

이윤정씨는 청계천에 다녀왔을까. 이씨의 운구차가 진상 규명을 원하는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삼성전자 사옥에 진입하려 하자 문 밖을 지키는 직원들이 막고 나선다. 한쪽은 울고 가슴을 치고, 반대편에 선 이들은 팔짱을 끼고 방어막을 치며 대치하는 장면에서 “그러면 영영 못 가는 거네”라고 한 이윤정씨의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처럼 맴돈다.

이윤정씨는 2010년 5월 뇌종양 판정을 받으며 1년 시한부를 선고받았다. 홍 감독이 그를 만난 건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서 11개월 뒤, 2011년 4월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사람들 얘기를 들으니 촬영하는 것을 불편해하신다고 해서 처음에는 카메라 없이 만났다. 그래서 많이 편해지면 이야기를 해야겠다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서너 달 만에 굉장히 악화된 거다. 다른 부분에 전이가 돼 더 큰 종양이 생겨서 언어능력이 많이 떨어졌다. 몇 마디 말하시다가 어… 하면서 말을 놓아버리시고, 기력도 없고. 처음 만났을 땐 삶에 대한 의지로 넘치던 사람이 갑자기 변한 모습에 충격을 많이 받았다. 막상 카메라 앞에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얼마나 더 할 얘기가 많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이윤정씨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2년이 지난 2012년 5월에 세상을 떠났다. 이씨의 장례식 촬영을 마지막으로 홍 감독은 손을 놓았다. “돌아가시고 나니까 마음이 너무 이상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힘든 경험이었다. 이 작업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관련된 이야기, 단어 하나, 사람 이름 듣는 것도 싫었다.”

“사실 이 문제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그래도 영화는 나왔고 고단했던 작업도 막을 내렸다. 그리고 여전히 힘을 내야 하는 이유도 있다. 거대한 기업 앞에서 돌멩이 하나 던지지 않고 시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바람은 복잡한 것이 아니다. 진상을 규명하고, 산업재해라면 그것에 책임을 지고,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

2007년 황유미씨가 세상을 뜨고 사건이 처음 보도된 이후 7년의 세월이 흘렀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지켜보는 이들에게 반도체 피해 노동자의 이야기는 피로도가 높은, 너무 오랜 싸움으로 지치고 닳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해자 수는 이 문제가 처음 보도된 2007년 이후로 더 많아져만 간다. 반올림에서 추산하기로 지금까지 반도체산업 노동자로 일하다 병을 얻었다고 제보한 사람의 수는 180여 명, 이 중에 사망자는 66명이다. 홍 감독이 카메라를 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이 이슈가 되고 계속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공중파 방송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자주 다루지도 않으니까.” 그러므로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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