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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

짐 안 되는 집, 작지만 넓은

넓은 집 대신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며 무엇보다 자신의 삶 단순화할 수 있는 작은 집 바람 일어…작은 집 지으며 어떤 삶 살고 싶은지 깨달은 사람들

제984호
등록 : 2013-10-3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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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중 어느 여행자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행을 하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물건에 옥죄어 사는지 경험할 수 있다. 여행 가방 하나면 충분한 삶인 것을 우리는 매일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나.” 스몰하우스 운동에 관한 책 <작은 집을 권하다>(책읽는수요일 펴냄)를 쓴 다카무라 도모야도 비슷한 말을 썼다. “나는 종종 배낭 하나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한다. 그저 배낭 안에 적당히 필요한 것들을 넣고 아무 속박 없이 여행하듯 살고 싶다는 생각이 언제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지붕 없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우리는 여전히 어떤 집에 살아야 하나 고민한다. 당신이 원하는 집은 무엇인가. 최근 미국과 일본에서는 스몰하우스 바람이 불고 있다. 불필요한 공간까지 깔고 앉은 넓은 집 대신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며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단순화할 수 있는 작은 집에 대한 열망이 이 바람에 묻어 있다. 그리고 아파트공화국 한국에서도 그 바람이 희미하게 불어오는 듯하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창의물류갤러리 ‘낳이’에서 진행 중인 ‘최소의 집’전(~11월4일)은 이런 움직임이 한국에서도 조금도 움트고 있다는 증거다.

작은 방은 곧 완벽한 집이 되기도

가로 6m, 세로 6m, 높이 9m의 집이 있다. 차지하고 앉은 땅의 넓이는 36㎡, 따져보면 11평 남짓하다. 누군가는 ‘손바닥만 한 집’이라 표현할 만한 이 공간에 부부와 커다란 골든레트리버 두 마리가 살 예정이라고 한다. 이 집은 ‘최소의 집’전을 기획한 건축가 정영한 소장(스튜디오아키홀릭)이 제안한 ‘6×6주택’이다. 6×6주택은 총 3층으로 이뤄져 있다. 맨 아래층에는 개들과 공유하는 마당이 있고 거기서부터 계단이 시작된다. 2층으로 올라가면 거실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 테라스, 방 등이 나오고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는 사이에 주방과 식당, 거기서 내부 계단으로 올라가면 욕실과 방이 나온다. 총 2개의 방을 품은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계단을 타고 올라가며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경험하면서 공간은 넓게 확장된다. 6×6집은 실제로 2014년 착공 예정이다.

집이 단순해지고 있다. ‘최소의 집’전을 기획한 정영한 소장(스튜디오 아키홀릭)이 서울 인사동 창의물류갤러리 ‘낳이’에서 ‘9×9실험주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정용일
6×6주택을 설계하기 전 정 소장은 이와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 가로 9m, 세로 9m, 높이 6m의 집인 ‘9×9실험주택’이다. 이 집 내부 가장자리 벽을 따라서는 설비, 환기를 위한 시설과 수납 공간 모두가 들어 있다. 수납장의 문을 닫아두면 이것이 무엇을 위한 가구인지 쉽게 인지하기 어렵다. 전형적인 가구에 의해 공간이 거실, 안방, 혹은 서재 등으로 정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방이며 거실을 구획하는 문도 없는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정 소장은 각각의 공간이 무엇으로 정의될지는 사용자가 활용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래된 기준에서 벗어날수록 작고도 넓은 집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외에도 가로세로 3m의 공간 세 개를 연결해 3대가 살 수 있도록 지은 ‘3×3주택’과 가로세로 5m의 공간 두 개를 연결한 ‘5×5주택’도 있다. 정 소장이 정의하는 최소의 집은 위로 쌓이거나 옆으로 연결되면서 ‘작음’을 확장한다.

거주 면적 43㎡짜리 한옥, 금산주택으로 유명한 부부 건축가 노은주·임형남 소장(가온건축)은 ‘퍼펙트박스’를 자신들이 생각한 최소의 집으로 제안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최소의 집은 삶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를 갖춘 ‘적정한 집’을 의미한다.” 이들이 제안한 퍼펙트박스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일정한 크기와 형태의 집에 도달해야 한다는 식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퍼펙트박스는 사실 그저 텅 빈 작은 방이다. 하지만 자신이 확보한 공간에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고민하고 채워넣기에 따라 쓰임과 형태가 달라진다. 개인의 의지로 완성된 작은 방은 곧 완벽한 집이 되기도 한다.


약 110만원으로 지은 3평짜리 집

건축가 김희준(스튜디오 ANM)의 ‘정·방’(靜·房)은 가로 2.7m, 세로 2.7m짜리 작은 공간이다. 여기도 방이 곧 집이다. 김희준이 말하는 최소의 집의 개념은 방에서 출발한다. 김희준은 “크기나 기능에 따라 구획된 채워진 공간이 아니라, 주변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유기적인 관계를 생성하도록 비워진 곳”이라고 정의한다. 수도자를 위해 지어진 정·방은 방의 외벽이 모두 자연과 맞닿아 있다. 산속에 폭 쌓인 암자 같지만 좁은 공간에 화장실과 부엌, 작은 툇마루까지 있을 건 다 있는, 최소의 집이다.

‘최소의 집’ 첫 번째 이야기는 11월4일에 마치지만 앞으로 30명의 건축가가 같은 주제로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정영한 소장은 앞으로의 작업을 통해 “'작은 집'이라고 명명된 또 하나의 획일화한 주택이 시장에 쏟아지길 바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집의 부동산 가치나 크기에 얽매이지 않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 각자 다른 이야기를 쓰는, 자신만의 집을 고민하는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좀더 급진적인 작은 집에 관해서도 궁리를 할지 모를 일이다. <작은 집을 권하다>를 쓴 다카무라 도모야는 3평짜리 집에 산다. 도심에서 오토바이로 반나절쯤 걸리는 숲에 땅을 구해 10만엔(약 110만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집을 지었다. 집세도 없고 은행에 갚을 대출금도 없고 고정자산세도 내지 않는다. 어차피 작은 집이므로 전력은 태양열 집열판에, 상하수도는 자연에 의존해도 충분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생활방식이 모범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면, “이토록 작고 소박한 라이프스타일일지라도 주체적으로 잘만 꾸려나간다면, 안정된 수입이 보장된 길을 억지로 기어가지 않고도 좀더 여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카무라는 자신과 닮은 사람들을 돌아보던 중 의외로 대량생산·대량소비를 선두한 미국에 스몰하우스의 씨앗이 뿌려져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뭐든지 ‘큰 것이 좋다’라고 생각했던 이 나라 사람들이 갑자기 작은 집을 말하기 시작한 까닭은 무엇일까. 다카무라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사람들이 경제적 문제에 시달리면서 집을 줄여가기 시작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불황만이 작은 집을 선택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저자는 좀더 사소하고 다양한 욕망과 동기를 꼽았다. 예컨대 단순한 생활을 하고 싶다거나, 집세나 각종 유지비가 부담스럽다거나, 환경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거나, 조용히 사색할 공간을 갖고 싶다거나, 작고 소박한 생활 자체가 좋다는 식의 것들이다. 그리고 그 동기가 무엇이건 간에 “무엇이 행복에 가깝고 무엇이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한 뒤에 인생을 꾸려가고자 하는 자세”가 공통점으로 발견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집이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제이 셰퍼의 이야기 같은 것이다.

미국에서 늘어나는 ‘스몰하우스’ 지지자들은 작은 집을 소유함으로써 대출 압박, 많은 수입을 향한 열망, 소비 욕구 등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왼쪽). 건축가 김희준의 ‘정·방’은 그가 제안하는 ‘최소의 집’의 한 유형이다.EBS국제다큐영화제,창의물류갤러리 낳이 제공
제이 셰퍼는 일찍이 큰 집에서 탈출했다. 1999년 처음 ‘스몰하우스’라는 이름이 붙은 집을 지은 셰퍼는 미국의 스몰하우스 운동을 촉발한 인물이다. 그가 작은 집을 지을 때는 어디서도 아무런 정보를 찾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인터넷 검색창에 ‘small house’ 혹은 ‘tiny house’라고 치면 미 대륙 곳곳에 작은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쏟아진다.

설계의 기본은 ‘뺄셈의 공식’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던 셰퍼는 어느 날 갑자기 “많은 물건과 공간에 신경 쓰는 게 귀찮다”는 단순한 이유로 작은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그가 계획한 설계의 기본은 ‘뺄셈의 공식’을 적용하는 것이다. “완벽한 디자인이라는 건 그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제거해야 할 뭔가가 없을 때 비로소 달성되는 법”이라고 셰퍼는 말한다. 그래서 필요 없는 공간을 빼고 남은 것이 10㎡다. 현관문은 성인 남자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크기다. 다카무라는 “문이라는 게 원래 누군가와 어깨동무를 하고 지나가기 위한 것은 아니므로, 한 사람만 드나들 수 있어도 충분하다”라며 작은 문의 편을 든다.

그리고 여기 작은 집 짓기에 도전한 또 한 명이 있다.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10월23~24일 상영한 <작은 집에 산다는 것>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스미스는 자신이 가장 살고 싶은 집을 고민하며 집짓기에 돌입한다. 다큐멘터리는 스미스가 집을 집는 1년의 시간과 이미 작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스미스는 모아놓은 돈도, 집을 지어본 적도 없는 청년이다. 집의 모든 게 상업화돼 있다는 것에 신물 나버렸지만 자신만의 집은 갖고 싶다. 숲에 둘러싸인 작은 오두막집에서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다는 데서 그의 작은 집은 출발한다. 버려진 헛간의 문을 뜯어와 벽을 만들고 낡은 창틀을 수선해 끼워넣으면서 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미스와 그의 여자친구 므렛 뮐러의 힘으로 세워진다. 고장 4평 남짓한 집, 3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지만 집은 모든 계절을 견디고 1년 만에 완성됐다. 그의 작업에 물음표를 단 채 함께 작업에 참여했던 여자친구 뮐러는 이야기가 끝날 때쯤 자신도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희미하게 얻었다고 말한다.

대출금 갚으려 떠나 텅 빈 큰 집

이 모든 이야기를 돌아나와 다시 질문한다. 우리는 어떤 집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작은 집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짐이 돼버린 집의 무게에 압도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귀기울여볼 만하다. <작은 집에 산다는 것>에서 작은 집에 사는 한 청년은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반추하며 카메라에 대고 이런 질문을 한다. “잘 들어오지도 않는 집을 왜 삽니까?” 큰 집을 산 그의 부모님은 집에 들어간 대출금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일해야 했다. 모두가 일터와 학교로 떠난 동안 텅 비어 있던 크고 좋은 집은 그렇게 온 가족의 부양을 받으며 위태롭게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큐에 출연한 누구는 이런 말도 한다. “누구나 값비싼 잡동사니를 사기 위해 종일 일하는 건 아니겠죠. 작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그 고리를 끊은 사람들입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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