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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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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보다 못한 젠장이라니

사북광부편 마지막회… 진폐 앓는 ‘산업폐기물’들에게 ‘랜드’가 제공한 건 재떨이 비우고 화장실 닦는 허드레 노동이었다
등록 2013-10-31 07:46 수정 2020-05-02 19:27
막장보다 못한 젠장

[관용어] 인생의 막다른 곳까지 몰린 사람들이 찾는 일터란 뜻에서 탄광을 ‘막장’(광산 갱도의 막다른 곳)이라고 부르곤 했다. 폐광의 벼랑에 선 광부들과 주민들이 생존을 걸고 유치한 카지노는 ‘당신들의 천국’이었다. ‘막장보다 못한 젠장’은 막장 인생 때보다 더 피폐해진 그들의 현실을 빗댄 표현이다.

산업폐기물

[명사] 산업 활동으로 발생한 폐기물·쓰레기·찌꺼기. 평생 광부로 살다 진폐·규폐증을 얻은 광부들이 스스로의 처지를 자조하며 쓰는 말.

[사용례] 저 눈탱이들 좀 보라니. 밤새도록 눈알을 빡빡 굴림서 카드장을 조사쌌더마는, 하나같이 눈두버리(눈두덩)가 팅팅 부서가(부어서) 눈껍지꺼짐(눈꺼풀까지) 발발 떨린다니. 사나(사내)고 기지바(여자아이)고 눈까리가 퀭해서니 줄창 담배만 꼬실리나. 주둥이가 아궁이나.

강원랜드 바카라 게임장 흡연실이 담배 연기로 빽빽했다. ㅎ(55)은 가스로 꽉 찬 막장에 되돌아온 기분이었다. 갱 안에서 착용하던 방진 마스크가 그리웠다. 그는 빨갛게 타는 담배꽁초에 분무기로 물을 뿌렸다. 머리를 처박고 찌그러진 꽁초 더미를 고무장갑 낀 손으로 긁어모았다.

“아저씨, 지금 청소하고 있는 거 안 보킨대요(안 보인대요)? 걸레질하는데 어찌 춤(침)을 딱딱 뱉고 그칸대요?”

ㅎ이 눈을 치떴다. 담배연기 속에서 스마트폰에 꽂혀 있던 눈들이 그를 향했다. 누군가의 무관심은 외면했고, 누군가의 장난기는 맞장구쳤으며, 누군가의 심술은 가래를 뽑아 올렸다.

아이고, 미숩어라(무서워라). 저 자석들(자식들)은 왜서(왜) 그러나. 내가 우습나.

ㅎ은 마음이 불편했다. 손님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그는 동원탄좌 데킹공(수갱운전공)이었다. 그가 운전하는 케이지(입·퇴갱용 승강기)를 타고 광부들은 입갱하고 퇴갱했다. 광부로서의 자부심이 ‘랜드’에선 모두 사라졌다. ㅎ은 게임장을 오가며 화장실과 흡연실을 청소했다. ‘랜드’ 하청업체에선 입사 3년째부터 직원들 급여가 동결됐다. 액수도 연차 관계없이 동일했다. 노력해도 달라질 것 없다는 사실이 그를 지치게 했다.

씨펄, 매시꼽다(매스껍다). 카아아아악. 그가 가래침을 끌어올리다가 꿀떡 삼켰다. 속으로 장손가락(가운뎃손가락)을 세웠다.

동원탄좌 광부 사택과 그 자녀들의 학교 터를 허물고 솟은 강원랜드가 휘황한 빛을 발하고 있다. 강원랜드 제공

동원탄좌 광부 사택과 그 자녀들의 학교 터를 허물고 솟은 강원랜드가 휘황한 빛을 발하고 있다. 강원랜드 제공

‘랜드’로부터 31.12km. 지표로부터 -300m. ㅇ(51)은 ‘죽음의 정면’을 봤다. 그가 대면한 죽음은 공포보다 슬픔에 가까웠다. 죽고 싶을 때가 적지 않았는데 죽음 앞에 서자 죽음보다 삶을 향한 갈망으로 그는 떨었다. 이슬(갱이 무너지기 전 미세한 탄가루가 떨어지는 현상)이 오나보다 했다. 눈을 떴을 때 그는 탄 더미 밑에 있었다.

o은 케이빙(막장이 막혔을 때 발파로 지층을 무너뜨려 탄을 캐는 방법) 선산부였다. 그는 탄광의 최전선이었다. 한 조의 생산을 책임졌고, 죽음을 선두에서 만났다. 케이빙을 하다보면 멀리서 탄이 밀려오는 소리가 땅을 박차는 말발굽처럼 두두두두 했다. 그날 o은 장성광업소(태백 장성) 병방(밤 12시~아침 8시) 근무조였다. 탄맥 주위에 폭약을 설치하고 있었다. 공동(암석 사이에 차 있던 석탄이 빠지면서 생긴 빈 공간으로 공동 붕괴는 가장 대표적인 탄광 사고)에서 그의 머리로 탄이 쏟아져내렸다. 달아나려는 의식을 붙들며, 아마, 그는 지난날을 정리했던 것 같다.

멀리도, 왔구나. 올림픽으로 떠들썩하던 해였을 거야. 경기도 성남에서 배관 설비를 했어. 전봇대에 붙은 광부 모집 광고를 봤지. 월급을 두 배 준다잖아. 직업소개소를 따라 16명이 사북에 왔어. 3명만 동원탄좌 정규직 광부가 됐지. 운이 좋았어. 직영 광부 취업은 서울대 합격보다 어렵다고들 했으니까. 동원에서 18년 일했어. 장성에 와선 4년 동안 땅을 팠지. 22년이나 연탄밥을 먹었네. 용케도 살아 있었어. 나, 정말, 멀리도 왔구나.

o을 덮은 석탄 더미가 이불처럼 포근했다. 콧구멍과 귓구멍으로 탄가루가 흘러들었다. 질식사의 절차였다. 한 해 전에도 가스 폭발로 2명이 죽고 7명이 다쳤다.

뭐라고. 안 들려.

언제부턴가 소리는 ㄱ(61)의 귓가에서 정처가 없었다. 귀 안과 귀 밖에서 두 개의 소리가 두 개의 세계를 창조했다. 그는 항내에서 채탄 길을 내는 굴진 광부로 늙었다. 착암기(폭약 설치를 위해 발파 구멍을 뚫는 기계)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온 세월이 24년이다. 소리는 자주 멀어졌고, 손엔 종종 마비가 찾아왔다. 세상의 날카로운 소란보다 귓속 이명의 세계가 더 평화로울지 모를 일이었다.

기자 형씨, 좀더 크게 말하라니까.

ㄱ은 하청 아닌 때가 없었다. 서울 종로구청 청소대행업체에서 일할 때도, 서른이 넘어 사북 동원탄좌 광부가 됐을 때도, 동원 폐광 뒤 다 늙어 장성탄광에 와서도, 그는 하청이었다. 아이들 학자금 준다는 말에 사북에 하청으로 왔고, 사북이 광부들을 몰아내자 하청으로 55계단(장성광업소 정문 계단 층계 수. 광부 정년이 55살이던 시절 막장 계단을 뜻하기도 함)을 올랐다. 평생 1년 단위 계약으로 연명했다.

말했잖아. 장성탄광은 갑종(폭발성 가스가 있는 탄광)이야. 지열이 세다고.

탄을 캘 대로 캐서 바다 밑까지 파고 내려갔어. 산소는 희박하고 열기는 뜨거워. 달걀을 깨놓으면 달걀이 익어. 얼굴이 벌겋게 데서 허물도 벗겨져. 그래선지 모르지. 동원에선 없던 진폐증이 생겼어. 옆 병실에서 산소호흡기 달고 오늘내일 하는 사람들. 머지않아 올 내 미래야. 우린 탄만 캐다가 푹 썩었어. 산업폐기물이라나. 작년에 13급(전체 14개 등급)을 받았는데, 저 친구는 그게 부럽다네. 미친놈.

태백산재병원 전체가 쿨럭쿨럭 기침을 했다. 반대편 침상에서 ㅇ이 피식 웃었다. “형님은 매달 위로금이 나오잖소. 진폐 등급 받는 게 하늘의 별 따기 아니래요. 나는 탄에 깔려서 허리가 나갔어. 퇴원하면 이제 광산 일도 못한대. 노가다 잡부나 해야지.”

ㅇ은 생각했다. ‘토끼’(恨국어사전 ‘사북광부’편 ② 참조) 일하는 데나 다시 가야 할까. ㅇ은 토끼가 장성탄광 하청업체에서 잠깐 일했을 때 동료였다. 토끼가 취업한 ‘랜드’ 하청에선 그가 잠시 일하기도 했다.

ㅎ의 걸레질 속도가 빨라졌다. 사이드베팅(게임 정원을 초과한 사람들이 테이블 주위에 서서 배팅)이 많은 날이다. 손님도 일도 넘친다는 뜻이다.

사나 새끼들아. 심(힘)이 없으면 바짝 다가서서 싸라. 쪽팔리구로 왜서 이리 질질질 흘리나.

소변기 아래 바닥을 닦으며 ㅎ이 중얼거렸다. 사북에 남은 ‘호’(가명)는 ㅎ뿐이다. 동원탄좌에서 ㅎ은 ‘쓰리 호’라고 불렸다. 이름에 ‘호’가 들어간 세 친구는 늘 붙어다녔다. 첫째 ‘호’는 도계(강원도 삼척)에서 다시 ‘막장 인생’이 됐다. 동원탄좌 광부 734명 중에서 50여 명이 땅속 생활로 되돌아갔다. 둘째 ‘호’는 안산(경기도)으로 이사 가서 택시 핸들을 잡았다. 노동을 팔러 공단으로 떠난 광부가 적지 않았다.

광부 살림집 800가구가 있던 자리가 여개(여기)다. 우리가 공부하던 국민핵교도 여(여기) 있었다. 마카(말끔하게) 뿌시고 맹근(만든) 기 ‘랜드’ 아니라니.

ㅎ은 화장실에 붙은 청소도구 창고에 쪼그려 앉았다. ‘그들’에겐 쉬는 시간이 따로 없고, 쉬는 시간이 있어도 쉬는 공간이 따로 없고, 쉬는 공간이 있어도 쉬는 모습은 따로 없어야 한다.

집 뿌시고 핵교 허문 자리서 넘들(남들) 가래춤 닦고 오줌 닦음서 산다. 저 독한 연기보다 내 생활이 더 매굽다(맵다). 탄재 걷혀 눈시구로운(눈부신) 하날(하늘) 아래서 오늘도 허부적거리고(허우적거리고) 있다니. 막장보다 못한 젠장이라니.

도움말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이 독자와 ‘恨국어사전’을 편찬합니다. 여러분의 恨국어를 제보(moon0@hani.co.kr)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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