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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의 기수에서 승부사로

취임 2년 새 시민운동가에서 대중정치인으로 단단히 자리잡은 박원순 서울시장… 생활밀착형 정책에 강한 승부사 기질도
등록 2013-10-29 09:08 수정 2020-05-02 19:27
한겨레 강창광

한겨레 강창광

은은하게 반짝이는 ‘속알머리’를 ‘주변머리’로 갈음하는 일이 늘었다. 대신 빠져나간 머리숱이 아쉽지 않을 만치 지지자도 늘었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선거 당시 13만여 명이던 트위터 팔로어는 2013년 10월 현재 74만여 명이다. 달리 ‘완판시장’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10월27일 취임 2년을 맞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운동가에서 대중정치인으로 단단히 자리매김한 듯 보인다.

희망제작소 상임이사(2006년) 시절부터 ‘소셜디자이너’를 자청해온 박 시장은 알고 보니 ‘설거지’의 기수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릎 꿇고 읍소하며 막았던 친환경 무상급식을 시작했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크게 재미 본 뒤 줄곧 서울 시민을 괴롭혀온 뉴타운 사업 출구전략을 마련했다.

서울 지하철 9호선 민자사업에서 특혜 논란을 빚어온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맥쿼리)가 철수한 것은 자타가 모두 인정하는 쾌거다. 지난 10월23일 서울시는 “9호선 민간사업자 주주를 전면 교체하고 사업 구조를 바꿔 많게는 3조2천억원의 예산을 절감했다. 맥쿼리는 지분을 모두 철수했다”고 밝혔다. “‘시민운동가는 행정의 아마추어’라는 편견을 깨고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평가했다.

그의 걸음엔 일관성이 있다. ‘박원순의 시정은 안 보인다’는 비판에 일일이 답하지 않고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서울의료원의 ‘보호자 없는 병원’ 같은 생활밀착형 정책을 수립해왔다. 서울시장에 출마하기 한참 전부터 자신의 저서 등에서 강조해온 ‘생활혁명’을 시정으로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초대형 사업’으로 대선의 발판을 마련하던 전임 시장들과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은 어떨까. 온화해 보이는 외모에 속지 마시라. 박 시장에겐 강한 ‘승부사’의 기질이 있다는 게 그를 오래 알아온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해가 지날수록 단호한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한 서울시 관계자는 말했다. 스스로 옳은 일이라고 판단한 일을 밀고 나갈 때의 고집스러움인데, 정치인이나 행정가로서 주판을 튕기는 냉정함은 때로 부족하다는 뜻이다.

올여름 잇따라 인명 피해를 낸 방화대교 공사장 붕괴 사고와 노량진 상수도관 공사장 매몰 사고는 박 시장에게 처음 닥친 시험대였다. 박 시장은 사고 직후부터 몇 차례나 유족을 찾아 위로했다. 2012년 3월 공황장애를 앓던 도시철도 기관사가 선로에 몸을 던져 숨졌을 때도 그는 곧바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하는 행정 관료들에겐 살 떨리는 일이다. “주변에서 조심스러운 행동을 권유해도 현장을 찾는 것은 모두 시장의 결단이다. 현장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승부하는 것은 행정가로서 쉽지 않은 행보”라고 서울시 관계자는 덧붙였다.

시장 하면서 덤으로 농담도 늘었다. 박 시장을 100여 년간 지켜본 또 다른 서울시 공무원은 “과거엔 그다지 농담을 많이 안 하는 편이었는데 시민들이나 기자들을 만날 때 재치 있는 발언을 자주 한다”고 평했다. 대중을 상대하는 정치인의 화법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다. 분위기 띄울 때 박 시장이 가끔 내놓는 농담 하나 소개한다. “제가 손석희 아나운서와 동갑이에요.” 농담 같지만 ‘웃픈’ 진담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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