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만나도 다 안다니. 그냥 솔직해지자. 이번주 주인공은 아니다. ‘안 만나주지만 그냥 다 알아’ 정도 되면 모를까 말이다.
그렇다. 그는 이것저것 ‘안 알랴줌’을 고집하는 이해진(46·사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다. 걸음마 마친 아기부터 꽃 같은 할배도 애용하는 국민 포털 ‘녹색 검색창’의 창시자다. 그러나 좀처럼 얼굴 볼 일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얼굴 보기가 힘들다. 그 흔하다는 언론 인터뷰도 통 안 한다. 좋게 말하면 ‘은둔형 기업가’, 못되게 말하면 ‘치사 빤스’ 되시겠다. 가수 김범수가 한때 애용했던 ‘얼굴 없는 가수’ 마케팅이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서태지식 ‘신비주의’일까. 흠, 이것 역시 ‘안 알랴줌’이다.
그랬던 이해진 의장은 얼마 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주가 상승에 힘입어 이른바 ‘1조원대 자산가’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10월16일 한국거래소와 전자공시 등을 보면, 전날 종가 기준으로 이 의장이 보유한 네이버와 NHN엔터테인먼트 등의 지분 평가액이 모두 1조454억원으로 집계됐다. 벤처기업 경영자 1세대 출신이 이른바 ‘1조원대 클럽’에 오른 건 이 의장이 세 번째다. 앞서 김정주(45) 넥슨 회장과 김택진(46) 엔씨소프트 대표이사도 주식 지분 평가액이 1조원을 넘어선 바 있다.
말이 1조원이지, 진지하게 가치를 환산해보면 어마어마하다. 고급 페라리 자동차가 몇 대? 이런 흔해빠진 계산 대신 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환산해보자. 이 의장의 주식을 몽땅 팔아 을 정기구독해보자. 1년 구독료가 15만원이니, 무려 696만9333년을 볼 수 있다. 빙하기가 다시 올 때까지 후손 대대로 구독 가능하시다. 그다음에는 이 의장 집에 쌓인 로 탑을 쌓아보자. 매해 50권 발간한 잡지(두께 30mm)를 모두 쌓으니 1만454km! 대기권을 뚫고 나가고도 남는다. 없어 보이는 비유라도 할 수 없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빙하기까지 을 볼 수 있는 이 의장도, 한때는 회사원이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카이스트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92년 삼성SDS에 들어간 그는 1999년 사내 벤처업체로 ‘네이버컴’을 설립했다. 회사를 세운 당시 ‘이 대리’는 ‘소사장’이라는 직함을 달았다. 사내 벤처로 성공한 네이버는 2002년 코스닥에 상장해 시가총액 3272억원으로 시작해, 그가 ‘1조원 클럽’에 입성한 날, 64배에 가까운 20조8324억원으로 불어났다. 그의 인맥도 화려하다. 2000년 한게임을 만든 뒤 합병을 했던 김범수(46) 현 카카오톡 의장(창업자)은 그의 대학 동기이자 삼성SDS 입사 동기다. ‘1조원대 클럽’에 있는 김정주 회장, 김택진 대표이사와는 대학·대학원 동기다.
이제는 ‘벤처 조상’의 전설이 된 이야기지만, 월급쟁이들에게 그의 존재는 여전히 궁금하다. 그리고 아쉽다. 성공한 벤처 1세대의 인생에 대해 대중과 만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놔도 좋을 텐데 말이다. “어릴 때 백과사전 읽기를 좋아해 포털 사이트를 만들었다”는 식의 교과서 같은 창업기 말고 진솔한 얘기 말이다. 사실 ‘안 알랴줌’ 콘셉트는 재벌 총수들이 자주 쓰는 것이라 너무 식상하니 말이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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