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는 가면을 쓰고 있던 핵(원자력)발전의 가공할 민낯에 인류는 경악했다. 몇몇 국가들은 탈핵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독일과 대만 등은 그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탈핵, 인간 자유와 존엄에 대한 문제
대재앙의 진원지 일본에서의 탈원전 운동은 자민당의 정권 탈환으로 동력을 잃었고, 이웃한 한국에서 출범한 박근혜 정부 또한 원전에 대해 별 문제의식이 없다. 적어도 우리에게 3·11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변한 것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는 원전을 제어할 수 없다. 이제 판도라의 상자를 닫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며 방사능 피폭 현장에서 외롭게 외치는 사람이 있다. 일본의 스페인 사상사·인류학 연구자인 사사키 다카시(74) 교수. 그는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정부의 행정 편의주의적인 피난 지시를 거부하고 치매에 걸린 아내와 함께 자택 농성을 벌였다. (돌베개 펴냄)는 그가 하루하루 써내려간 치열한 고투의 기록이다.
이 책은 단순한 재난 수기가 아니라 국가적 재앙에 맞선 한 개인의 깊은 고뇌와 사색이 오랜 연륜에서 묻어나는 유머와 곁들여져 국가의 역할, 국가와 개인, 인간의 자유와 존엄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사사키의 책이 무책임한 정부 아래서 재난에 직면한 한 지식인의 호소에 가깝다면, (반비 펴냄)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지닌 다양한 역사·철학적 함의에 주목한 책이다.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교양학부)와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현대법학부),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학 대학원 교수(종합문화연구과)는 원전사고로부터 3개월이 지난 2011년 6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약 2년간 지속적으로 만나 이 사건의 의미와 파장, 이후의 미래에 대해 깊은 논의를 해왔다.
대담자들은 특히 원전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현지, 스리마일섬과 히로시마 등의 피폭자들 증언 대회가 열린 합천비핵평화대회, 원전 문제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기지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제주 강정마을, 그리고 오키나와까지 주요 ‘현장’을 직접 답사함으로써 현장감과 함께 더욱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저자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자체에 대한 임상적 진단에 머물지 않고 20세기 동아시아의 현대사를 되짚으며 한-일의 정치적 흐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한-미-일 동맹의 방향, 원전과 기지 문제의 공통성, 원전과 윤리, 나아가 일본 천황제 및 평화헌법과 원전의 관계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원전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후쿠시마 사고가 우리 삶의 방향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조목조목 짚어냈다.
일본보다 원전 의존율 높은 한국
3·11 2주기를 맞은 오늘, 어리석은 인류는 지구가 보낸 마지막 경고도 잊은 채 여전히 원자력을 끌어안고 살고 있다. 후쿠시마의 지구적인 재앙을 목도했으면서도 여전히 원전 문제가 ‘동네 문제’로 폄하되는 절망적 상황에서, 이 두 책은 탈핵과 평화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다. 일본보다 원전 의존율이 높은 한국이 후쿠시마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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