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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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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性, 잘 하고 있습니까?

등록 2012-10-12 07:22 수정 2020-05-02 19:26


“라면 먹고 갈래.” 이 말에 이렇게나 많은 뜻이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니깐 결론은, 여자들도 이 사실을 다 알고 있는 거죠? 그렇죠?
→댓글1: 안 그런 경우도 많아요. 오판으로 전자발찌 차는 일 없도록 주의 요망.
썸녀가 컴퓨터 고장났다고 해서 자취방을 방문했습니다. “라면 먹고 갈래”라고 해서 라면만 먹고 나왔습니다. 그 여성분이 있는 모임에 나가면 다른 분들이 ‘저거 바보 아냐?’라는 느낌으로 쳐다볼 때가 있었다는 -_-; 이런 건, 짐승보다 못한 건가요?
→댓글1: 차라리 그냥 라면으로 받아들이는 게 옳은 거 같아요.
→글쓴이: 그렇죠? 저 잘못한 거 아니죠?
→댓글2: 이미 목적을 갖고 집에 와서 볼일을 본 뒤 라면 먹자는 거면, 진짜 라면 먹자는 거 아니에요? ㅎㅎㅎ
여성 입장에서 야밤에 라면 먹으면 부어요. ‘라면 먹고 갈래’를 시도해본 적은 없었어요. ‘집에서 한잔 더 할래?’는 가끔 해도.
→댓글1: 라면 먹고 키스하면 미원 냄새 작렬할 텐데.
→댓글2: 난 불순하지만 속마음은 들키기 싫으니 라면이 적절하긴 하겠어요. 술은 너무 직접적이라.

팟캐스트 도 등장했지만

영화 를 통해 세상에 나온 ‘라면’을 놓고 클리앙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복원과 해석이 이어진다. 이성이 던진 말의 행간을 해석해내려는 누군가의 절박한 몸부림일 터. 말로 하는 대화도 쉽지 않은 판에, 몸+자존감+습관+가치관 등이 투영되는 남녀 간 성(性)적 소통이 어찌 쉽겠는가. 당시에는 파격적이던 구성애식 성교육이 지상파 방송에서 열풍을 일으킨 게 벌써 10여 년 전. 시간은 흘러 흘러 2012년 방송가에선 19금 ‘섹드립’(‘섹스’와 ‘애드리브’의 합성어로 ‘야한 농담’을 지칭)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최근엔 남녀 패널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기반으로 성문화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팟캐스트 방송 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사이 성인이 된 요즘 20대들은 어떻게 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까. 신상추적 방지 차원에서 기사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은 모두 가명 처리했다.

“3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서로 성적으로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요. 내가 답답한 게 싫어요. 그 친구 생각도 궁금하고. 원나잇스탠드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외로운 싱글이 건강한 몸으로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아닐까요. 집에서 어릴 때부터 성교육을 받았어요. 어린이용 성교육 동화책도 보고. 아빠랑 이야기도 많이 하고.”(이은지·23)

“처음 섹스를 할 때 제가 많이 아파했으니까 상대방이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일방적인 관계가 되면 안 되잖아요. 둘 다 첫 경험이라 남자친구와 거의 3개월 동안 이야기를 나눴어요. 상담도 같이 받아보았고요. 서로 잘 모르니까 궁금한 것, 불안한 것이 있었으니까요.”(민지은·22·민우회 면접 설문 참여자)

이은지씨나 민지은씨는 성적 의사소통을 비교적 원활하게 하는 사례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지난 7월부터 두 달간 이성 간 데이트 경험(연애 관계뿐 아니라 즉석만남·소개팅·친구거나 호감이 있는 관계 등)이 있는 20대 남녀 956명을 대상으로 ‘성적 의사소통, 무엇이 어려운지’ 설문 및 면접 조사를 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나의 스킨십 제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상대방과 대화가 아니라 눈빛이나 표정으로 짐작(41.3%)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러브픽션> 속 한 장면. 한겨레 자료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나의 스킨십 제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상대방과 대화가 아니라 눈빛이나 표정으로 짐작(41.3%)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러브픽션> 속 한 장면. 한겨레 자료

손잡기 제안도 못한다는 여(7%), 남(4.4%)

먼저 상대방에게 제안할 수 있는 스킨십은? 남녀 모두 모두 손잡기(85.9%)나 포옹(74.2%) 정도는 먼저 할 수 있다고 했다. 섹스를 먼저 제안할 수 있다는 남성은 41.6%. 여성은 응답자의 18%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남녀 사이에 성관계는 당연한 데이트 코스 중 하나예요. 오로지 섹스를 위해 연애하는 친구도 적지 않고요. (스킨십 거절을 당하면?) 굉장히 뻘쭘하죠. 얼굴도 시뻘게지고. 민망해져서 ‘다음에 보자, 먼저 가볼게’라고 말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김민석·27)

반면 손잡기 등 어떤 스킨십도 먼저 제안할 수 없다는 여자(7%)와 남자(4.4%)도 있다. 이성관계가 귀찮은 혹은 초연한 초식남이나 철벽녀다. “까이는 경우가 많아지면 계속 위축되죠. 섣불리 들이댔다 여기저기 찔러보는 것처럼 보일까봐 이야기를 못하는 경우도 있고.”(오규남·22)

성을 즐겨야 한다는 또래 문화와 성을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혼재돼 있어 혼란을 겪는 이들도 있다. 때로는 쿨한 척, 때로는 순진한 척 줄타기를 하다 정작 원하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는 고백도 있었다. “요새는 섹스를 즐기는 게 쿨한 것처럼 많이들 이야기하잖아요. 그런 분위기에 젖어 내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스킨십 제안에 응한 적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또 너무 노는 여자인 듯한 인상을 주면 상대방이 싫어할까봐, 일부러 모르는 척하기도 했어요.”(정민아·29)

27살 남자 김철진씨도 이런 경험이 남 일 같지 않다. “대학 입학 뒤 연애 전까지 성경험이 없어 은근슬쩍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 ‘난 매력이 없나’라는 상대적인 박탈감까지 느꼈고요. 처음 연애할 때 성관계를 서둘렀던 것은 그 때문이었어요.” “패션잡지를 보면 성과 관련된 칼럼이 많은데, 늘 화려하고 즐거운 성적 판타지가 가득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그런데 실생활은 그렇지 않잖아요. 제가 지방에 살아서, 서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쿨하고 자신감 넘치나 했어요.”(이은지)

여성의 60.4%와 남성의 27.1%가 상대방의 스킨십 제안을 거절하기 어렵다고 했다. 20대 남성이라고 늘 ‘하고 싶은 건’ 아니라는 뜻이다. “연애 초반에 같이 외박을 한 적이 있는데, 손만 잡고 마는 거예요. 근데 전 그게 좀 이상했어요. 얘가 왜 이러지? 고자인가? 성적 취향이 다른데 페이크로 나를 사귀나. 진짜 고민 많이 했어요. 혹시 발기부전 이런 것인가 싶어 꼼수도 써봤는데 가만히 있고…. 나중에 물어보니 그냥 참았다고 그러더라고요.”(고윤혜·23·민우회 면접설문 참여자)

스킨십 거절이 어려운 이유로는 △상대가 무안해할까봐(53.7%) △사이가 멀어지거나 헤어지게 될까봐(20.4%) △싸우기 싫어서(11.3%) △상대가 거절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아서(8.2%) 순이었다. “스무 살 때 정말 좋아한 남자가 있었는데, 내 몸은 원하지 않는데 계속 스킨십을 요구해서 결국 헤어졌어요. 내가 문제인가 싶어 상처가 되기도 했죠.”(김혜원·28)

성적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고민을 나와 상대의 관계 안에서 풀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사례에 기대어 추정하고자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영화 <러브> 속 한 장면. 한겨레 자료

성적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고민을 나와 상대의 관계 안에서 풀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사례에 기대어 추정하고자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영화 <러브> 속 한 장면. 한겨레 자료

어디서도 잘 거절하는 법 알려주지 않아

스킨십 거부 의사를 아예 묵살하는 상황은 좀더 심각하다. 성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 유지를 위해 의무방어전을 한다는 여성도 여전히 적잖다. “‘울며 겨자 먹기’로 첫 경험을 하게 된 여자를 많이 봤어요. 남자들은 둘 사이에 합의를 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스킨십 진도가 나가면 암묵적으로 섹스하는 걸 합의해준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이은지) 눈빛이나 표정으로 짐작하거나(41.3%) 내 행동을 막지 않는 경우(29.4%) 스킨십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판단했다. 직접 물어 의사를 확인하는 경우는 17.7%였다. 동의 여부를 아예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3.3%였다.

성적 의사소통을 잘하려면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32.4%) △적극적이고 과감한 의사표현(25.7%) △성지식(17.2%)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 변화(12.4%) △고정관념 버리기(11.8%)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나에게 고정관념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고정관념일 수 있어요. 전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 아는 건 아니죠. 그러니 모든 사람을 만난 것처럼 하면 안 되고, 그래서 원래 그런 거다, 그런 말도 하면 안 되니까. 상대를 존중하려는 배려가 당연해지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저도 제 취향을 상대방에게서 자연스럽게 인정받고 싶어요.”(고준석·26·민우회 면접설문 참여자)

“드라마에서는 스킨십 직전에 동의한다는 눈빛만 보여주지, 거절하는 대사는 안 나와요. 섹스 의사를 물어볼 때는 싫다는 의사를 확실히 말하는 편이 나은 거 같아요. 눈빛으로 아무리 이야기해도 못 알아먹는 경우가 있어서.”(정민아)

“한국 남성은 스킨십을 주도하면서, 동시에 분위기를 읽어내는 명민함도 갖춰야 해요. 자연스럽게 손잡고, 자연스럽게 키스하고…. 근데 그런 것들이 되게 불편하죠. 그래서라도 더 물어보고 싶어요.”(박홍균·23·민우회 면접설문 참여자)

묻지 않아도 소통한다는 이들은 나름의 암호를 만든다. “어떤 제스처를 쓰면 암묵적으로 아니까. 어떤 룰이 생기는 거니까 불편함은 없어요. 초반에는 삐걱삐걱. 이제 슬슬 감이 오나 봐요. 상대 남자가 오럴섹스를 원할 때면 제 머리를 눌러요. 기분 나쁘진 않고 웃기더라고요.”(고윤혜)

20대들의 성생활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임신이다. 남(53.7%)·여(65.1%) 모두 섹스를 앞둔 상황에서 드는 걱정거리 1위로 ‘임신’을 꼽았다. 미처 피임을 하지 못한 경우 ‘네가 내 아비’라며 누군가 들이닥치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단다. 그 때문인지 ‘피임을 먼저 제안할 수 있다’는 답변이 92%로 월등히 높았다. ‘대세’ 피임법은 콘돔(54.2%) 사용. 하지만 상황 파악 못하고 콘돔 사용해달라는 여친 부탁을 무시하는 시대역행 찌질이들, 아직도 있다.

임신 공포에 비해 알고 있는 정보나 사후 대책을 물어보면 막막해했다. “첫 경험을 한 뒤 인터넷에서 ‘착상혈’에 대한 설명을 봤는데, 제 증상과 비슷한 거예요. 도저히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해볼 용기가 안 나서 산부인과에 갔는데 임신 여부는 며칠 더 지나봐야 알 수 있다고 해서 멘붕이었죠. 막상 어디다 물어볼 데도 없고. 그래서 남자친구랑 기도했어요. 3일 동안 아이를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낳기로 했는데, 다행히 임신은 아니었죠.”(김혜원)

“친구가 술을 마시고 하룻밤 인연으로 임신을 했어요. 결국 중절수술을 받았어요. 어떻하겠어요. 걔 인생도 있는데…. 한심하다기보다는, 그런 일이 아주 많을 거예요. 가족에게 알리지 못하고 친구한테 돈을 빌려 병원에 갔어요. 성인이라지만 한편으론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이은지)

“성인 남녀가 서로 합의하에 성관계를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 안 해요. 하지만 의도치 않게 아이가 생기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을 거예요. 만약 학생이라면 거의 무조건 낙태를 하겠죠. 친구 중에 그런 친구들이 아예 없지는 않아요.”(김민석)

남자는 만족감 걱정, 여자는 몸매 걱정

임신 외에 섹스와 관련된 고민은 남녀 차이가 뚜렷하다. 남자는 △상대방에게 만족감 주기(43.3%) △나를 밝힘증으로 오해할까봐(22.1%) △피임법(20.1%) △체형·몸매(16.1%) △체위를 어떻게 할지(13.4%) △성병(9.4%) △아플까봐(8.1%)△죄의식/성기 모양이나 크기(6.7%) △섹스 뒤 어색함(5.4%) 등을 고민했다.

“제가 만난 남자친구 가운데 관계 뒤 만족도를 점수로 매겨달라고 요구한 경우가 있었어요. 어떻게 그걸 수치화할 수 있나 싶어서 짜증났죠. 결국 그 문제 때문에 헤어졌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사람이 어떤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이 있구나. 사람 대 사람으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죠.”(오슬기·28)

여자가 섹스를 앞두고 걱정하는 부분은 △체형·몸매(27.2%) △순결 상실(18.6%) △피임법(17.2%) △가족에게 미안·두려움(16.7%) △죄의식(15.2%) △상대에게 만족감 주기(15%) △아플까봐(14.6%) △상대가 나를 밝힘증으로 오해할까봐(12.8%) △성병(10.6%) 등이었다.성경험 연령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지만 고민의 스펙트럼은 비슷하다.

‘성과 관련된 이야기나 고민은 친구들과 나눈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지만, ‘고민을 나눌 상대가 아예 없다’는 응답(5.3%)도 있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성교육에 대해선 어떤 내용을 배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문제는 성적 자기결정권
의무 방어전이 환멸 키운다
지난 9월 말, 핫한 연애 자가학습 블로그 ‘감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holicatyou.com)에는 선플과 악플이 뒤섞인 댓글 600개가 달리는 논쟁적인 글이 하나 등장했는데, 제목하야 ‘섹스파트너 만드는 방법’. 사연을 쓴 이의 주장은 이렇다. “‘이런 관계를 꿈꾸지만, 상처받았다’라고 하는 분들은 환상과 미련을 버려라.” 본인이 죽었다 깨어나도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 성향이라면, 남의 취향을 ‘흉내’낼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 블로그의 운영자 ‘홀리겠슈’는 성경험 시기는 계속 빨라지고 있지만 ‘섹스는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라고 일러주는 성적 자기결정권 교육이 없기 때문에 적잖은 20대 여성이 스킨십 제안 거절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계를 유지하려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스킨십에 의무적으로 응하다, 관계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악순환을 겪거나 과도한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자매들의 사연이 블로그로 쏟아진다고.
연애가 늘 좋을 수는 없다. 내 몸과 마음은 내가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굳은 심지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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