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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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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스피릿’ 없는 록 페스티벌

등록 2012-08-07 09:19 수정 2020-05-02 19:26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야마가타 트윅스터 공연. 무키무키 제공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야마가타 트윅스터 공연. 무키무키 제공

글 무키무키 (밴드 ‘무키무키 만만수’)

음악 하는 연예인을 보고 싶다면 이효리와 정재영이 진행하는 SBS 방청석 티켓을 구해 애인과 보러 가면 된다. 거기엔 시원한 에어컨도 나온다. 멋지게 꾸미고 춤을 추고 싶다면 서울 강남 일대의 클럽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 수 있다. 반복되는 직장 일에 지친 그대라면 잠시 타이 패키지 여행도 좋은 생각이다. 친구들과 텐트를 치고 온종일 캠핑을 즐기고 싶다면 환상적인 계곡을 찾아볼 수 있겠다. 산이 많은 한국의 계곡은 수준급이니까. 물론 이 핫한 계절에 진행되는 록 페스티벌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딱 하나 부족한 것, ‘록 스피릿’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사흘 밤낮으로 반전·평화를 외치다

진짜를 원하는 그대가 록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당신은 1969년 미국 뉴욕주에서 펼쳐진 우드스톡을 기대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40만 명이라는 측량이 어려운 인구가 스스로 산골로 기어들어가 눈비를 맞으며 벌거벗고 사흘 밤낮으로 축제를 즐기며 반전·평화를 외쳤다는 그 전설의 록 페스티벌을 알고 있는가. 그때 그곳에서 태어나지 못했다는 한탄은 뒤로하고 리안 감독의 영화 을 보며 흥분을 잠시 나눠볼 수도 있다. 하나 부족하다. 보고 듣는 것으로 오감과 육감을 만족시키기엔 아직 인체는 진화가 덜 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전하는 기운이다. 지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금 지각이 변동하고 있다. 지구 종말이 가까워오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공모, 그것이 절박하다. 나는 지산이든 펜타포트든 그게 1969년 우드스톡의 저항문화와 비둘기 똥만큼이라도 비슷하다면 티켓값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전 재산을 쏟아부을 생각이 있다. 불러주지 않아도 뮤지션으로 찾아가 길거리에 세워진 자동차를 밟고 서서 버스킹을 하겠다. 수치심이라는 악몽 같은 단어가 내게 침범할 틈도 주지 않을 만큼 몰두해서 악을 지르겠다.

오늘 밤은 아내와 남편이 공모해 색다른 섹스를 위한 도구를 하나씩 사 모으는 현명한 방법을 고려해보는 것이 어떨까. 과연 무엇이 우리의 권태를 해결할 수 있게 할까라는 토론과 함께 말이다. 나는 도심 곳곳에 작은 낙서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맘에 들지 않는 문구의 플래카드를 찢어발기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당신이 지적인 인물이라면 대형 서점에 들러 고급 화보집을 훔치자. 끈기가 있다면 국방부 보안 시스템 해킹을 위해 프로그래밍 학원에 1년간 등록하는 것도 훌륭하다. 물론 진짜 록 페스티벌을 원하는 우리에게 음악은 필수 요소다. 멋진 헤드폰을 장만하고 테러를 차츰 진행해보자.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를 추천한다. 7월29일 진행된 두물머리 공사 반대 집회에서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과 함께 진행된 행진은 도심 속의 진짜 록 페스티벌이었다. 나는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정신을 잃고 춤을 췄고 왼쪽 발목을 접질렸지만 충분히 걸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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