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춤추고 노래하는, 여기는 졸업할 수 없는 학교

SM엔터테인먼트 소속 32명 아이돌의 성장과정 보여주는 영화 <아이 엠>… 부모들이 선망하고, 믿고 맡기는 입시교육 시스템과 비슷하다네
등록 2012-07-06 08:59 수정 2020-05-02 19:26

‘SM타운 아이돌 종합선물세트’의 뚜껑이 열렸다. 6월21일 개봉한 영화 은 SM 소속 7개 그룹 32명의 연예인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연습생이 무대에 서기까지’라는 부제가 강조한 바,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드라마적 다큐멘터리로 포장된 영화는 아이돌이 기획사를 통해 만들어지는 과정과 산업을 비추기도 한다. 입시제도부터 교육까지 영화 을 통해 보는 ‘SM 가상왕국’의 현실을 짚어보았다. 이와 함께 한때는 이 왕국의 이단아처럼 보였던 에프엑스 음악의 생산 과정을 통해 SM 음악산업의 방향을 가늠해본다.-편집자

한국의 연예기획사는 성공적인 기업이면서 ‘유사가족 공동체’라는 모순된 정체성을 함께 짊어진다. 영화 <아이 엠>에서 소녀시대 등 ‘SM 타운’의 아이돌들이 함께 공연하는 모습. CJ E&M 제공

한국의 연예기획사는 성공적인 기업이면서 ‘유사가족 공동체’라는 모순된 정체성을 함께 짊어진다. 영화 <아이 엠>에서 소녀시대 등 ‘SM 타운’의 아이돌들이 함께 공연하는 모습. CJ E&M 제공

“저도 꼭 유명한 가수가 되어서 여기서 공연을 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합니다.” 2001년, 15살의 보아는 미국 뉴욕의 매디슨스퀘어가든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리고 2012년, 바로 그곳에서 보아의 공연이 시작된다. 의 이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뮤지컬 시퀀스에 감각을 보여온 최진성 감독(흐른의 뮤직비디오, 이아립의 음악을 활용한 영화 예고편을 만들었고 최근 에 참여했다)의 연출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드라마를 강조하고, 대형 무대의 공연 연출과 음악적 순간을 스펙터클하게 잡아낸다. 그러니까 이 다큐멘터리는 아이돌 팬이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 만한 엔터테인먼트일 뿐 아니라, 성장영화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도 제공한다. 이때 의미심장한 것은 바로 이 쾌감이 만들어지는 구조다. 이 아무리 보아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샤이니, 에프엑스 멤버들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한다고 해도 결국은 매 순간 SM엔터테인먼트의 ‘초대형 프로젝트’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환기하기 때문이다.

개발된 ‘타운’, 자기계발 통한 성장

음악과 뮤직비디오, 아트디렉팅과 안무, 마케팅을 포괄하는 모든 방식이 결국 회사의 브랜드로 수렴된다는 점에서 SM엔터테인먼트는 성공적인 기업이다. 그럼에도 이 조직은 ‘SM타운’이라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서 이 모순된 정체성은 현재 전 지구적 수준에서 수행되는 ‘콘텐츠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차이는 존재한다. 단적으로 ‘SM타운’이라는 공동체주의는 ‘YG패밀리’와는 다른 뉘앙스를 주는데, YG의 ‘패밀리’가 힙합 장르에 밀착돼 ‘거리의 진정성’을 드러낸다면, SM의 ‘타운’은 (도시개발 이미지와 겹쳐) 자기계발을 통한 개인의 성장을 상징한다. 이때 주요 구성원들이 10대 초반부터 후반이고, 데뷔와 함께 합숙에 돌입한다는 점에서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기숙학원 같은 사교육 기관이자 유사가족 공동체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관점으로 을 돌아보면 몇 가지 요소가 눈에 띈다. 먼저 연습생 시절부터 날짜별로 찍어놓은 영상이 있다. 지난 16년간 SM이 기록한 4828개의 테이프와 엠넷이 보유한 4415개의 테이프를 다섯 달 동안 추려낸 이 영상은, ‘데뷔 ○○○일 전’이라는 자막과 함께 2012년 현재 매디슨스퀘어가든에 있는 멤버들과 교차된다. 유추하건대, 이런 아카이빙은 보아가 일본에서 데뷔한 2000년부터 수집된 것이다. 왜냐하면 H.O.T나 S.E.S의 성공이 1990년대 중반이라는 시기적인 호재와 연관된 반면, 보아는 그 성공을 토대로 SM엔터테인먼트가 총력을 기울인 실험(이자 모험)이었고, 이런 시스템이 작동된 근거에는 디즈니와 같은 글로벌 기업을 모델로 삼은 회사의 비전이 존재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실무적인 필요(연습량과 기량의 체크 등)에 의한 촬영이었겠지만, 회사의 비전 없이 데이터베이스로 체계화될 수 없었으리란 것도 분명하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과거 영상을 찍는 사람(아마도 기록 담당이나 선생님)들이 연습생들과 대화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카메라 앞에 있는 슈퍼주니어의 성민이나 에프엑스의 설리, 소녀시대의 서현을 격려하거나 다독이거나 자극한다.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관계의 단면은 지극히 파편적이지만, 적어도 이런 관계의 방식이 이제까지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소속 아이돌에 대한 대중적인 오해(초과 노동, 불공정 계약, 상품으로서의 아이돌 등)를 환기하는 건 분명하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연습생으로 ‘계약’한 아이들에게 기능적 훈련 외에도 인성 상담과 같은 교육적 기능까지 제공한다고 본다면, 최시원의 “졸업할 수 없는 학교”라는 말도 시사적이다. 이런 메커니즘에서 부모들이 미성년 자녀를 회사에 ‘믿고 맡기는’ 근거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의 아이돌들은 입시기관을 닮은 기획사에서 일찍부터 춤과 노래뿐 아니라 감성까지 다듬어지며 길러진다. 슈퍼주니어의 공연 모습. CJ E&M 제공

한국의 아이돌들은 입시기관을 닮은 기획사에서 일찍부터 춤과 노래뿐 아니라 감성까지 다듬어지며 길러진다. 슈퍼주니어의 공연 모습. CJ E&M 제공

보아처럼 됐으면=서울대 갔으면

한편 외국과 달리 이런 ‘사교육’에 대한 거부감이 희박한 이유는,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사교육이 지나치게 보편화됐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가수가 되려고 SM엔터테인먼트를 ‘지망’하는 아이와 부모는 입시제도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과외와 학원을 자연스레 여기는 세계관을 공유한다. 2001년 이후 사회적으로 형성된 ‘내가(우리 딸이) 보아처럼 되면 좋겠다’는 기대심리는 ‘내가(우리 애가) 서울대에 가면 좋겠다’라는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아이돌에 대한 선망은 자기계발의 일환이고, 아이돌 연습생은 거기서 ‘다른 종류의 입시’를 경험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바야흐로 현상으로서 한국의 아이돌은 ‘10대 노동’이 아닌 ‘입시제도’와 연관해 고려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연습생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소녀·소년들이 겪는 사회화 과정이었다. 에프엑스의 설리는 자료 화면에서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지 못했던 때에 대해 “멤버들에게 폐가 되는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데뷔 2개월 전에 합류한 슈퍼주니어의 려욱은 “수년 동안 노력한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화장실에서 몰래 울었다”고 말한다. 이런 이타성은 마이클 잭슨이나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어린 나이에 성공한 해외 엔터테이너들이 겪는 것과는 다른 맥락을 시사한다. 이를테면 여기엔 한국 사회의 정서적 특징이 존재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케이팝의 지구적 성과를 이해하는 데 있어 구성원들을 기업과 상품,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로 치환한 뒤 기업의 수익과 전략을 논했다. 이 환기하는 건, 그 내부에 특유의 메커니즘으로 순환되는 공동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도표와 수치로 측량될 수 없는 인간의 관계를 은근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은 SM뿐 아니라 다수의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조직되고 운영되는 맥락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차우진 음악평론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