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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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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월급받는 세상

사회를 바꾸려는 예술가들이 무한 궁핍에 내몰려 자살하는 한국…
모두에게 생계 보장하는 ‘기본소득’으로 지속 가능한 예술의 토대를
등록 2012-02-17 06:39 수정 2020-05-02 19:26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들이 기본소득 주제가를 부르고 있다. 기본소득제는 예술가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자유를 줄 수 있다. 김이재 제공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들이 기본소득 주제가를 부르고 있다. 기본소득제는 예술가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자유를 줄 수 있다. 김이재 제공

어느덧 ‘즐거운 혁명’ 마지막 연재가 되었다. ‘혁명’이라는 말도 부담스럽고 거기에 ‘즐겁다’는 말까지 더하니 무언가 거짓말 같아서 늘 맘에 걸렸다. 혁명이 즐거울 리 있나? 그러나 분명 지금 일어나는 운동들이 즐거움과 맞닿아 진행되고 있음을 증언하고 싶었다. 후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창의력’을 돈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무기로 사용한다. 그렇지만 이 칼럼에서 소개한 여러 활동들은 창조력이 1% 부자의 자산을 불리는 데 쓰이는 것을 거부하고 경제적 안위에만 집중된 우리 사회의 감수성을 바꾸려는 여러 형태의 노력이었다.

현실적으로 이 ‘예술-운동’의 주체들이 그 활동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돈을 잘 못 벌기 때문이다. 그들의 활동이 금전적 보상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기에 생계 문제에 늘 부딪히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 중년의 미디어활동가 이아무개씨가 카메라를 잃어버린데다 생활고가 겹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연배도 달랐지만, 이웃이 힘들어하는 여러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워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순수한 절망’ 같았다. 비단 활동가뿐만 아니라 돈은 많이 벌 수 없어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꿋꿋이 하고 싶었던 극작가 최고은씨도, 인디 가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도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 있었더라면 지금 어디선가 작품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본소득’(Basic Income)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만약 우리 국민 모두에게 월급이 지급됐다면 그런 일은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기본소득은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되는 소득으로 현물 형태 혹은 현금으로 지급될 수 있다. ‘아니, 일도 안 했는데 웬 월급이냐?’ 장군님(박정희)께서 들으시면 매우 화를 내실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적잖은 부분이 투기·불로소득이고, 사회복지를 늘려도 노동률이 떨어진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한다. 미국의 알래스카주는 본격적으로 ‘현금기본소득’을 실천한 지자체인데, 현재 미국 내 소득 불균형이 가장 낮은 주가 되었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오미타라 지역에서는 기본소득을 지급한 결과, 빈곤 수준과 어린이 영양 상태가 극적으로 개선됐고,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범죄율도 감소됐다.

얼마 전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출범식이 서울 신촌에서 있었다. 인디 뮤지션이자 기본소득 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는 ‘단편선’은 단순히 돈이 너무 없어서 기본소득을 지지하게 되었다며 밝게 를 불렀다. 만약 단편선에게 가정이 생긴다면 그가 지금처럼 자유롭게 계속 노래할 수 있을까? 기본소득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요술 뿅망치’는 아닐 테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스스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4대강 관련 일을 계속하며 가장 충격을 받은 순간은 이 공사를 가능하게 한 것은 권력자 한두 사람의 선택이 아닌 대다수 국민의 침묵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남의 일까지 신경 쓰고, 아이들이 커가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쉽지는 않다. 만약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금액의 월급이 지급된다면 주변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을까? 좀더 의미 있는 노동에 시간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에서는 지속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세미나와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 홈페이지(biyn.kr) 참조.

리슨투더시티 아트디렉터

*‘박은선의 즐거운 혁명’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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