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블랑쇼는 문학의 본질을 이야기하며 “글을 쓰는 행위와 읽는 행위 모두 수많은 타자와의 만남이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글쓰기와 읽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블랑쇼에게 문학은 독자가 작품에 자신을 관련시키는 과정이자 그 안에서 차이를 만들어가는 운동이다. 그와 같은 시각에서, ‘청년 전태일’을 키워드로 한 (삶이보이는창 펴냄)은 문학의 본질에 충실한 작품집이다.
작품 도처에서 살아 숨 쉬는 전태일들
청년 전태일이 자기 몸을 불살라 노동자의 횃불이 된 지 40년이다. 책은 전태일을 키워드로 소설가 15명이 쓴 15편의 짧은 소설집이다. 한국 문학을 지켜온 중견 작가와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는 신진 등 15명의 소설가(강윤화·김남일·김경은·김도언·김종광·김하경·손홍규·윤이형·윤정모·이시백·이재웅·정도상·조해진·최용탁·한상준)가 전태일이라는 이름 앞에 귀한 글을 내놓았다.
작품집을 위해 이들이 서슴없이 글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가 이시백의 머리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전태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가 불살라 얻은 권리 위에서 잠든 세상은 누구의 것인가. 그가 바꾸어놓은 세상이 거저 찾아온 것이 아니며, 그가 세상에 남긴 것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듯이 우리는 오늘도 싸워야 한다. 싸우지 않고 얻는 것은 구걸이며 모독일 뿐이다. …분노는 싸우는 이들의 힘이다.” 짐작건대, 소설가 15명은 비정한 세상에 분노하는 힘을 가졌기에 어려운 글을 써낼 수 있었으리라. 전태일은 사라졌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현현히 살아 숨 쉬는 이 땅의 안타까운 ‘전태일들’을 위해 그들은 대신 분노하고, 대신 목소리를 가다듬어 삭막한 이 땅에 은유를 던졌다.
이시백은 또한 “전태일이 스스로 불살라 얻은 세상에서 글 쓰는 이들이 할 일은 또 다른 전태일의 외침을 받아적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받아쓴 전태일의 외침은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철거민 등의 모습으로 작품 도처에서 움직인다.
김도언의 ‘그건 아니야, 오빠’에서 영옥은 오빠에게 편지를 쓴다. 영옥은 전태일이 그랬듯 노동자였다. 영옥의 오빠는 영옥과 달리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고,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열심히 공부를 했고 ‘집안의 자랑’으로 성장한다. 오빠는 이제 직원이 300명이 넘는 공장의 사장이다. 각자 먹고사는 데 바빠 남매 사이는 소원해진 지 오래지만 영옥은 어느 날, 줄글로나마 오빠를 부르며 편지를 쓴다. 이유는? 뉴스에서 전해들은 오빠 공장의 노동자 파업 소식 때문이다. 고단한 얼굴로 근무제도 개선을 부르짖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벌써 5명의 직원이 자살하거나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또 다른 노동자들은 위장병은 기본이요, 고혈압과 당뇨, 우울증에 시달린다. 오빠의 회사는 직장폐쇄 조처를 취한다. 영옥은 오빠에게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으면 어떡하냐며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보다 더 엄혹한 것이 무엇이냐며 애타게 호소한다. 현실의 독자에게 영옥의 호소는 현실의 쌍용차·삼성전자·한진중공업 등을 향한 것과 다름없이 읽힌다.
정도상의 ‘어떤 순간’은 빈곤과 폭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어느 가정의 안타까운 한 순간을 그렸다. 가난의 냄새를 벗지 못하는 집을 나온 강철은 철거용역의 행동대장 노릇을 하게 됐다. 집에만 갇혀 있었다면 쉬이 만나지 못했을, 큰 회사의 사장이며 변호사며 검사 등을 만나게 되니 그는 마치 성공이라도 한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그에게 철거민을 쫓아내는 일은 토끼몰이에 불과하고, 돈과 법과 주먹은 곧 친구이며, 그의 말을 부정하는 이는 모두 ‘빨갱이’다. 어린 시절 말을 배우기 전부터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그에게 주먹은 말보다 빨리 체화됐다. 그리고 보름달이 휘영청 뜬 어느 날,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는 구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강철과 철거용역들은 동네 노인들이 지키고 있는 망루에 불을 질러 철거민들의 저지선을 뚫을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불길이 치밀기 몇 초 전, 강철은 가난에 찌들려 그 산동네까지 흘러 들어온 아버지를 발견하고, 미처 손쓸 틈 없는 찰나를 두고 불타는 망루 속에서 몸부림치는 어머니를 발견한다. “여기에 사람이 있다”고 외치며 불 속에서 절규하던 서울 용산의 철거민들이 겹쳐 보인다.
짧은 이야기들의 긴 여운
이외에도 소설가들이 받아쓴 2000년대 전태일들의 외침은 고단한 몸을 누일 곳조차 불안한 이주노동자로 구현되거나(조해진, ‘서울, 기차’), 자본주의사회에서 어떤 신념과 행동방식에 기대어야 할지 헷갈리는 개인으로 그려지거나(윤이형, ‘은지들’), 물질문명에 찌들어가는 현실에 반기를 든 어느 노동자로 형상화(김남일,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됐다.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은 단편소설보다 더 짧은 장편(掌篇)소설 혹은 콩트 형식을 띤다. 출판사는 정해진 원고지 분량 안에 갇혀버린 상상력을 풀어놓고 정형화된 틀에 타격을 가하고, 한정된 지면을 떠나 자유롭게 유랑하는 작품을 받아보려는 시도였다고 밝힌다. 길이는 짧지만,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이 시대 전태일들의 목소리가 전하는 여운은 길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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