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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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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의 뒷모습을 보았네 -⑫북한산 둘레길

[걷고싶은 길 12선] 한해 200만 탐방객을 부르는 북한산 둘레길…
내시묘역길~우이령길 구간을 걸으며 전설과 역사, 봉우리의 숨은 얼굴을 만나다
등록 2011-10-12 08:08 수정 2020-05-02 19:26
북한산 둘레길은 한 해 200만 명이 넘는 탐방객이 다녀가는 둘레길의 명소다. 둘레길을 걷는 둘레꾼들의 모습.

북한산 둘레길은 한 해 200만 명이 넘는 탐방객이 다녀가는 둘레길의 명소다. 둘레길을 걷는 둘레꾼들의 모습.

북한산 둘레길은 앞사람의 그림자를 밟고 가는 길이다.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156만 명이 둘레길을 다녀갔다. 한 해 200만 명을 훌쩍 넘기는 수다. 둘레길이 열리기 전에도 그랬다. “이러다 저 산이 무너질라.” 주말이면 인수봉, 백운대로 오르는 사람 행렬에 탄식이 컸다. 둘레길이 열리며 분산효과가 커졌다지만, 전체적으론 오히려 찾는 사람을 늘렸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7월1일 새로 열린 도봉산 쪽 둘레길만 해도 두 달 새 11만7천 명이 다녀갔단다. 호젓한 산길을 걷고 싶은 마음, 어디서 채울까? 내시묘역길에서 충의길 구간은 둘레길 탐방 행렬이 가장 적은 편이다. 충의길에서 다시 우이령으로 이어지는 15.9km의 북한산 뒷길을 숲해설가 박찬희씨와 동행했다.

뒤돌아보게 하는 길

둘레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다. 사람을 피해간 이 길에서 사람의 흔적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방패교육대에서 시작한 내시묘역길은 집과 집 사이, 밭과 산 사이에 놓인 작은 길로 이어진다. 북한산에 드나든 지 35년을 넘겼다는 박찬희씨는 “여기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지 5년도 안 된다. 좁았던 길이 넓어지고 옛 모습도 많이 지워졌다”고 말한다. 과연 내시묘역길 초입에서는 풀보다는 채소를, 터잡은 산자락 나무들보다는 곧 팔려나갈 관상수들을 더 흔하게 마주친다. 농원과 집을 피하느라 11구간 내시묘역길은 한껏 구불구불하다.

둘레길은 뒤돌아보게 하는 길이다. 내시묘역길을 10분쯤 걸으면 짝사랑하던 님을 기다리던 기생이 몸을 던져 죽었다는 전설 속 연못이 있던 여기소터를 지난다. 그러고는 내시묘역이다. (나름북스 펴냄)를 쓴 박재경씨는 지난해 백화사로 가는 길에 있는 45기 묘역을 답사했다는데, 지금은 농원이 가로막아 묘역을 보기는 어렵다. 내시들의 무덤은 길 뒤로 물러나고, 세도가들이었다는 이씨 문공파 묘역은 여전히 위세가 높다. 조선시대에는 내시가 되려고 자원해서 시술받는 이도 많았으며 살아 있을 때는 거세한 성기를 나무로 된 갑에 넣어 보관하다가 죽으면 그것을 몸에 바늘로 기워 맨 뒤 장사지냈다고 한다(). 내시들의 묘에는 왕궁의 비밀과 그들의 애환도 함께 묻혀 있는 셈이다. 좀 떨어져 있지만 효자길도 역사에 전설이 보태진 길이다. 숲해설가 박찬희씨는 “3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효자동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 참배를 다니던 박태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효성에 감동한 고종이 비석을 내리고 동네 이름도 효자동이라고 칭했다”고 했다. ‘박태성정려비’에도 박태성의 효성에 북한산 호랑이도 감동해서 그를 등에 태우고 다녔다는 전설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박재경씨는 박태성에게 비석을 내린 것은 영조라고 한다. 에 따르면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부모의 무덤을 떠나지 않았던 박태성의 효심에 감동한 사람들이 무덤 주변에 촌락을 이루고 살며 효자동이 시작됐단다.

둘레길은 곁눈질하게 하는 길이다. 효자동으로 접어들자 등산객들과 자주 마주친다. 이대로 등산객들을 따라 오르면 백운대까지 2시간이면 닿을 텐데. 왜 굳이 6시간 넘게 둘레길을 걸어야 할까? 박태성묘를 지나 사기막골에 닿았을 때 망설임이 끝났다. 사기막골에선 뒤돌아봐야 한다. 오른쪽엔 백운대, 왼쪽에 인수봉, 가운데는 숨은벽이 또렷이 드러난다. 인수봉은 어머니가 아이를 업은 모습 같다고 해서 삼국시대에는 부아악이라고 불렸단다. 사기막골에서 보는 인수봉은 자애로운 형상이다. 숲해설가 박찬희씨는 숨은벽 예찬론자다. 숨은벽은 암벽 오르는 사람들이 즐겨찾는 가파른 바위산인데 다른 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이름이 ‘숨은벽’이다. 그 형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이 길이란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봉우리의 숨은 얼굴이 다가온다. 박찬희씨는 “산의 뒷모습을 발견하는 곳이 둘레길”이라고 하고, 박재경씨는 “자꾸 위로만 향하는 수직적인 마음을 다잡고 수평적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 둘레길의 힘”이라고 했다.

죽은 길은 산 길로 이어지고

사기막골은 충의길로 이어진다. 충의길은 원래 자동차와 함께 걷는 길이라서 가장 인기 없는 구간이었다. 지난 8월 말까지 충의길을 다녀간 사람들이 1만7800명으로 21만 명이 다녀간 순례길 구간의 10분의 1도 못 됐다. 그런데 9월10일부터 충의길이 산길을 따라 새로 열렸다. 사기막골에서 흔들다리를 건너면 가파른 산길이 시작된다. 평탄하고 넓게 다져졌던 길이 끝나고 투박하고 좁은 길이 시작됐다. 북한산 둘레길 곳곳이 넓은 까닭은 사람의 발길 때문이다. 혼자서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던 좁은 옛길이 발길을 타며 2~3m로 넓어졌다. 박찬희씨는 자꾸 사람들이 드나들어서 넓어진 길을 ‘죽은 길’이라고 불렀다. 풀이 숨 쉬기 어려운 죽은 길이다.

사람의 발길이 적은 길이 ‘산 길’이다. 산 길가에서는 꽃도 하나, 열매도 하나인 애기나리가 한창이다. 향유와 꽃향유는 내시묘역길에도 흔했지만 산 길에선 한층 봉오리가 굵다. 향유를 살짝 손으로 훑어내리면 그윽한 향이 퍼진다. 내친김에 누리장 나뭇잎을 비벼서 냄새를 맡아본다. 땅콩 냄새 같기도 하고 연한 된장 냄새 같기도 하다. 옛사람들은 누리장 나무를 주로 뒷간 근처에 심었단다. 누리장 나무 냄새가 뒷간에서 풍기는 독한 냄새를 달래준다는 것이다. 산초잎은 모기들이 싫어하는 향을 풍겨 모기를 쫓는다. 박찬희씨 설명을 듣다 보니 쓸모있는 것이 지천이다. 고마리도 만났다. 돼지 50마리가 내뿜는 분뇨도 고마리가 사는 70㎡ 둔덕을 거친다면 깨끗하게 걸러진단다. “30년생 나무 두 그루만 있으면 사람이 평생 동안 숨을 쉴 수 있다”는 말도 매한가지다.

나무는 또 어떤가. 지나온 길 어디쯤에서는 주목을 만났다. 원래 고지대에서만 살던 주목은 항암 성분을 품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 너른 농원에서 대량으로 키운다. 가을이 시작된 둘레길에선 햇볕이 스쳐간 듯 잎이 바래는 단풍나무가 한창이었지만 단풍나무도 원래는 중부지방의 나무는 아니었단다. 사람이 손대지 않은 산길에는 당단풍나무가 아직 푸른빛을 가지고 있다. 단풍나무의 잎은 5개로 갈라지지만 당단풍나무의 잎은 9개에서 11개로 갈라져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낮에 둘레길에서 주로 마주치는 산 것들은 주로 청설모다. 청설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북한산엔 등산로와 둘레길 말고도 360개 샛길들이 얽혀 있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샛길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둘러놓은 높은 보호 철책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만 못 드나드는 것이 아니다. 고라니도 토끼도 못 지나다닌다. 생태 통로가 막혀버린 것이다. 손댈수록 망가지니 새로 생긴 충의길을 반가워해야 할지 마음이 어정쩡하다.

9월10일 새로 열린 충의길엔 4개의 흔들다리가 설치됐다. 군부대 사이로 난 이 길의 주제를 살리기 위해서란다.

9월10일 새로 열린 충의길엔 4개의 흔들다리가 설치됐다. 군부대 사이로 난 이 길의 주제를 살리기 위해서란다.

여럿이 걷기 좋은 우이령길

솔고개를 넘으니 우이령 가는 길이다. 서둘러야 한다. 21구간 우이령길은 탐방예약제로 운영되는 길이다. 게다가 오후 2시가 지나면 나올 수는 있어도 들어갈 수는 없다. 독수리 사격장과 오봉유격대 군휴양지 등 군부대 시설이 지켜선 초입을 지나면, 북한의 국화인 함박꽃나무(흔히 목란이라 불린다)가 줄을 선 길을 만난다. 남북한이 얽혔던 이 길의 역사가 그랬다. 출입이 까다로운 덕분에 자생 희귀식물도 많이 살아남았다. 관리사무소는 어떤 식물인지는 절대 비밀에 부쳐달라고 했다. 사람들의 손을 타는 게 두려운 까닭이다. 우이령 바위에 얼룩진 지의류는 이 고개의 환경 지표다. 아황산가스 측정에 지표가 되는 지의류는 매연을 타지 않는 건강한 공기에서만 피어난단다.

우이령길은 여럿이 걷기에 좋은 길이다. 박찬희씨는 우이동에서 오르는 길보다 교현리에서 오르는 쪽을 권한다. 올라가는 길 경사가 만만한 때문이다. 예전에 경기도 양주 상인들이 서울로 물건 팔러 갔던 길이다. 오봉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소귀 모양처럼 생긴 터가 있다는데, 그 터에 있는 사람들은 이 길이 무엇을 닮았는지 알 길이 없다. 대신 작살나무, 국수나무, 참나무가 손을 스쳤다가 다시 멀어진다. 작살을 닮은 작살나무, 껍질을 벗기면 국수가 나오는 국수나무, 산의 중심을 잡는 참나무를 더듬다 보면 살아오며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질문이 귓전에 떨어진다. “소나무도 낙엽이 질까?” 과연 그랬다. 오래된 소나무 가지가 누런색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벌개미취와 구절초가 왕성한 길을 내려오니 가을이 바로 코앞이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21개 구간, 70km의 긴 길
천천히, 걷고 싶은 길 따라
북한산 둘레길은 21개 구간 70km의 긴 길이다. 어디에서 출발해도 결국은 만나는 둥그런 길이지만 거리는 녹록지 않다. 탐방안내소에서는 ‘둘레길 하루 만에 걷기’ 같은 초인적 프로그램보다는 하루 20km 정도씩 천천히 돌아보기를 권한다. 탐방객들 사이에는 도심 위를 걷는 듯한 구름정원길, 우국지사들의 묘역이 줄지어 있는 우이동 쪽 순례길, 시내와 산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흰구름길의 빨래골 전망대 등이 인기다. 새로 생긴 충의길에는 중간중간 흔들다리 4곳을 지날 수 있다. 우이령길을 탐방하려면 국립공원 관리공단 홈페이지(http://www.knps.or.kr/)에 예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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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요시간 및 코스 정보 -10구간 내시묘역길(방패교육대~내시묘역~둘레교~효자동 공설묘지) 3.5km 1시간
-11구간 효자길(효자동 공설묘지~밤골~국사당~사기막골 입구) 2.9km 50분
-12구간 충의길(사기막골 입구~흔들다리~엔젤농원) 3.9km 1시간 30분
-21구간 우이령길(교현 우이령길 입구~오봉산 전망 테크~대전차 장애물~우이 탐방 지원센터) 6.8km 2시간

■ 가는 방법 10구간 내시묘역길에서 출발하려면 서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로 나와 704·34번 버스를 타고 입곡삼거리역에서 내린다. 12구간 충의길로 가려면 같은 버스를 타고 사기막골 입구에서 내려 팻말을 따라 샛길로 들어와야 한다. 21구간 우이령길 입구는 120·153번 버스를 타고 수유역으로 간다.

■ 탐방 안내 교현탐방지원센터 031-855-6559
우이탐방지원센터 02-998-8365

* ‘걷고 싶은 길’ 연재를 마칩니다.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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