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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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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사전시관, 바리데기 태우던 날

여성문화예술기획이 10년간 여성적 관점으로 역사 조명해온 전시관,

새로 선정된 운영자가 초심 이어갈까
등록 2011-02-11 02:29 수정 2020-05-02 19:26

떡과 과일이 놓인 제상에 윤석남 선생이 절을 올린다. 그 앞에는 비단 속에 싸인 슬퍼 보이는 얼굴의 바리데기가 앉아 있다. 바리데기를 에워싼 푸른빛의 벽은 가위로 오린 한지들로 덮여 있다. 서로 어깨를 결은 인물 형상도 있고, 여신의 형체도 있고, 꽃도 있다. 종이는 부적처럼 보인다.
대칭형이고 주술적이다. 빨간색이 귀신을 쫓는다면 푸른색은 귀신을 불러들인다. 윤석남 선생은 벽에서 떼어낸 몇 장의 파란색 종이에 불을 붙인다. 옹기 안에 불 붙인 것을 넣고 따뜻한 기운을 쬐려는 듯 손을 갖다댄다. 얼굴이 평화스러워진다. 오늘은 바리데기를 보내는 날이다.

윤석남 선생이 여성사전시관에서 ‘바리데기 보내기’ 행사를 하며 파란 한지를 태우고 있다. 이 행사는 공교롭게도 여성사전시관의 운영권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데 대한 정리의 자리가 되었다.

윤석남 선생이 여성사전시관에서 ‘바리데기 보내기’ 행사를 하며 파란 한지를 태우고 있다. 이 행사는 공교롭게도 여성사전시관의 운영권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데 대한 정리의 자리가 되었다.

화가 윤석남의 소지 행사로 한 시대 막 내려

‘바리데기’는 설화 속의 인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미술가인 윤석남 선생은 여성 신화를 재구성하자는 여성사전시관의 말을 듣고, 바로 바리데기를 떠올렸다. 바리데기는 일곱째딸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는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을병에 걸리자 생명수를 얻으러 지하 세계로 가는 일을 자청한다. 갖은 고생을 겪고 지하 세계를 지키는 무장생의 아내가 되고 생명수도 구한다. 보답으로 나라의 반을 주겠다고 하지만 바리데기는 아버지의 나라는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며 삶과 죽음 사이를 지키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 생명수는 파랬고, 삶과 저승을 가르는 물빛도 파랄 것이다. 그래서 윤석남 선생의 바리데기는 ‘블루룸’에 앉아 있다.

윤석남 선생은 바리데기 태우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바리데기는 조선 무당의 무조신이다. 보듬고 살리는 여성의 힘이 집약돼 있다. 벽은 무당들이 꽃을 만들어 장식하는 것을 따랐다. 무당은 제가 끝난 뒤 꽃을 태운다. 작품을 소지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만들 때부터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바리데기 태우기는 여성사전시관의 한 시대를 마감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 행사를 마지막으로 여성사전시관의 기획·운영 임무가 여성문화예술기획에서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 “무속인이 그러하듯 그 마음을 모아 정화하려고 한다.”

바리데기가 한구석을 차지한 ‘워킹 맘마미아’전은 여성사전시관의 2010년 특별기획전이다. 여성사전시관은 2010년 한 해 ‘일/가정의 양립’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해왔고, ‘워킹 맘마미아’는 이를 총정리하는 자리였다. 윤석남을 비롯해 김인순, 류준화, 박영숙, 윤희수, 이피, 정정엽 등 신구 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일과 가정을 새롭게 해석해 보여주었다. 지난해 12월15일까지가 공식 전시회 기간이지만 1월26일까지 전시장을 운영해왔다. 바리데기 보내기 행사를 열면서 전시관도 철수했다.

여성사전시관의 운명도 바리데기처럼 굴곡 많았다. 전시관은 2001년 ‘여성부’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 당시 한명숙 장관은 미술과 연극으로 여성 문제를 다뤄보자고 제안했고,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연구용역에 참여했다. 2002년 12월 이 연구를 바탕으로 여성사전시관을 열었고,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운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혜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전 여성문화예술기획 대표)은 이 기획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적 기획이었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야 했다”고 말한다. “무소의 뿔처럼 스스로 연구하고 격려하면서 적은 예산으로도 운영해왔다. 돌부리를 걷어내고 조그만 햇볕을 즐거워하면서 이루어낸 성과들이었다.”

여성사전시관은 그간 여성의 삶을 비추는 여러 전시를 열어왔다. 지난해 봄 ‘서울로 간 순이’전은 1960년대 여성인력의 상경을 다뤘다. 가정부·차장·공장 노동자로 취업한 이들의 노동은 현재의 여성이 처한 상황의 데자뷔였다. 2008년의 특별기획전 ‘100년간의 낯선 여행(女行)’은 낯선 곳으로 먼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을 모았다. 일제강점기 만주로 이주한 여성들, 태평양을 건너간 ‘사진신부’, 아시아 각지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 전쟁 뒤 미군과 결혼한 ‘군인 아내’, 서독으로 대거 옮겨간 간호사들이 주인공이었다. 2003년에는 호주제의 문제점을 적극 제기하는 ‘가족과 호주제’ 전시를 했다.

전시관은 과도기적 기관이었다. 초기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장차 목표 삼은 것은 박물관이었다. 입구에 전시된 ‘스쿨걸 아바타’에는 이렇게 설명이 붙어 있다. “연대별·학교별로 다양한 여학생들의 교복, 체육복, 머리 모양 등을 조합하여 직접 아바타를 만들어보자. 1880년대부터 현대까지… 교복을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앞으로 자료를 보완하여 더욱 많은 학교의 다양한 교복을 구비할 예정이다.” ‘서울로 간 순이’전도 여러 여성 관련 유물을 모아 이루어진 전시였다. 여성의 삶을 기억할 박물관으로 가는 길이다. 이혜경 위원장은 “많은 대중과 교류하는 장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직도 걷어내야 할 자갈이 많다”며 이번 바리데기 보내기가 “애도이며 또 하나의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여성 문제’ 배제된 새 운영자 선정 작업

김혜승 여성사전시관 관장은 “앞으로 많은 사업을 기획하고 있는데 아쉽다”고 말한다. 여성사전시관의 전시 예산은 “민망할 정도”였다. 뒤에 여성문화예술인의 네크워크가 있기에 유지가 가능했다. 올 여름 전시를 목표로 계획하고 있는 국제교류전도 이런 네트워크가 발동한 결과였다. 독일의 화가이자 허난설헌 관련 자료 수집가인 송남희 선생이 독일의 화가들을 추동하고, 강릉 여성 화가들이 함께 모여 전시를 기획했다.

1월19일 새 운영자 선정 결과가 발표되었고 여성문화예술기획은 바쁘게 정리작업에 들어갔다. 새로운 운영은 ‘(주)디자인 소조아시아’에서 맡게 된다. 여성가족부 담당 주무관은 “여성 문제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앞으로 그 문제를 보완해가는 것을 전제로 최종 계약 단계에 있다”고 말한다. 공모 평가 항목은 ‘사업 전문성, 참신성·다양성, 사업 수행 능력, 사업 실시 결과 파급효과성’ 등으로 ‘여성의 문제’에 관한 항목은 없었다. 김혜승 관장은 “여성의 시각에서 역사를 다시 본다는 것이 여성사전시관의 취지로 알고 있다. 앞으로 여성적 관점이 잘 드러나는 기획이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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