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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과 과몰입 사이

[KIN] 한 게임 하실래요? /
게임 중독의 공포담
등록 2011-01-28 05:35 수정 2020-05-02 19:26

지난 주말 tvN 에서 청소년의 게임중독 문제를 다뤘는데, 함께 참여했던 한 패널이 게임중독의 정의를 ‘게임을 스스로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상태’로 정의했다. 2009년 9월10일치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청소년 중 7.1%가 게임중독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를 단순 적용하면 전체 청소년 인구 745만7257명을 기준으로 52만9465명이 게임중독 상태에 있다는 말이 된다. 그 패널의 주장대로 한다면 청소년 중 52만여 명이 스스로 게임을 중단하고 싶어도 중단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는 셈이다.
최근 에서도 청소년 게임중독의 심각성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가 하면, 문화방송 라디오 에서 청소년 게임중독을 다루면서 소아정신과 전문의를 초청해 게임중독의 위험한 증상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전문의의 설명에 따르면 게임중독은 마약중독이나 알코올중독과 그 증상이 똑같고,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하면 뇌의 상태가 코카인 중독자나 인터넷 중독자와 다르지 않다고 경고한다.
앞서 나온 게임중독에 대한 정의와 중독 증상을 대입시키면 전국의 52만 명 청소년들은 게임으로 인해 무기력증, 수면 부족, 환영과 환청 효과, 극도의 폭력성에 노출된 셈이다. 물론 극소수의 청소년 게임중독자가 이런 정신적 고통 상태에 놓여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게임중독의 공포담론들은 52만 명이라는 양적 데이터와 극단적인 소수의 임상적인 데이터를 동일시한다는 데 있다. 소수의 임상 사례들이 52만 명의 청소년 게임중독자의 증상으로 돌변해버리는 것이다.

pc방에서 게임하는 청소년들. 윤운식 기자-아이들의 초상권이 문제되니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해서 쓸 것.

pc방에서 게임하는 청소년들. 윤운식 기자-아이들의 초상권이 문제되니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해서 쓸 것.

내가 보기에 정부기관의 조사에 의해 규정된 52만 명의 청소년 게임중독자 안에는 게임을 정말 좋아서 즐기는 하드코어 유저가 포함됐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중독을 진단하는 ‘K 척도’의 질문들은 모두 게임 이용에 관해 부정적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고, 그 질문의 조건에서 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게임에 대한 과도한 몰입의 경험은 모두 중독 증상이 돼버린다.

나는 토론 자리에서 중독이라는 말 대신 ‘과몰입’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중독이라는 공포담론이 게임을 즐기는 행위에 관해 부정적 선입관을 유포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보호담론은 게임을 남들보다 지나치게 즐기면 그것을 즐거움의 지속적 행동으로 보지 않고 무조건 중독으로 간주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몰입의 경험이 즐거움과 자발성에서 비롯된다면, 게임의 몰입 역시 게임을 하는 즐거움과 자발성에서 비롯된다. 게임에서 경험치를 높이고 게임 능력을 향상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즐거운 놀이다. 게임에 시간과 돈을 투여하고 다른 여가활동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게임 마니아들은 자발성에 근거한다. 게임이 여가생활에서 몰입도가 높다는 것은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미국 청소년 824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즐기는 다양한 여가활동에서 각 부분별 몰입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설문조사했는데, 그중에서 게임과 운동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사실 게임은 어느 정도 중독되지 않으면 몰입할 수 없고, 과몰입의 즐거움 없이는 중독될 수 없다. 게임 중독을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은 52만 명의 청소년의 놀이의 즐거움을 거세시킬 위험성이 있다. 그러니 게임중독을 온전히 부정적으로만 보려면 데이터의 양적 오류를 수정해야 하고, 게임 과몰입의 즐거움을 동시에 이해하려면 중독에 대한 공포담론을 중단해야 한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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