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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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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죽음 혹은 의도된 실종



어설픈 사고를 주제로 삼았던 개념미술가 바스 얀 아더르의 실패작 <기적적인 것을 찾아서>…

대서양을 건너다 실종된 작가는 정말로 부활했나
등록 2011-01-28 02:04 수정 2020-05-02 19:26

1975년, 네덜란드의 개념미술가 바스 얀 아더르(1942∼75?)는 (In Search of the Miraculous)라는 제목의 괴상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대양의 파도’(Ocean Wave)라고 명명된 포켓 크루저(초소형 보트)를 타고 대서양 횡단에 도전하기로 작정했던 것. 1975년 7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를 출발해, 계획대로 영국 팰머스 해안에 무사히 도착한다면, ‘가장 작은 배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될 판이었다. 그러나 항해 도중 라디오 통신이 두절됐고, 모험가는 실종됐다. 열 달 뒤인 1976년 4월, 아일랜드 해변에서 스페인 어선이 주인 잃은 배를 발견했지만, 작가의 주검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본디 작업은 크게 셋으로 나눠 실행될 계획이었다. 제1부는 오밤중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언덕에서 해변으로 걸어가는 제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한 것이고, 제2부가 대서양 횡단에 도전하는 일이었으며, 제3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해변에서 앞서 시행한 심야 산책을 재연하고 사진으로 기록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작업을 진행하던 당시 작가의 나이는 33살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한 나이와 같았다.

아더르의 <기적적인 것을 찾아서>의 한 부분. 1975년 대서양 횡단에 나서기 전 <대양의 파도 위에서의 삶>(Life on the Ocean Wave)을 합창하는 장면이다.한겨레 자료

아더르의 <기적적인 것을 찾아서>의 한 부분. 1975년 대서양 횡단에 나서기 전 <대양의 파도 위에서의 삶>(Life on the Ocean Wave)을 합창하는 장면이다.한겨레 자료

1999년 큐레이터 브래드 스펜스가 아더르의 회고전을 기획했는데, 이후 미술계 일각에 그를 숭배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2006년엔 르네 달더 감독이 아더르의 삶과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Here is Always Somewhere Else)를 발표해 대중적 인지도까지 높였다. 심지어 몇몇은, 조심스레 그의 생존을 점치고 나섰다. 의혹의 근거는 대체로 두 가지. 하나는 사라졌던 작품들이 어디선가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양돼 수리됐던 배가 후일 도둑맞아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2007년 마리온 반 베이크와 코스 달스트라는 이 미스터리 사건을 조사한 결과를 묶어 자료집을 발간했다. 제목은 .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스페인 라코루냐주의 산디에고 항만에 정박돼 있던 ‘대양의 파도’는 1976년 5월18일과 6월7일 사이에 사라졌고, 배를 찾는 데 실패한 경찰은 1977년 2월1일 실종사건 수사를 종결해버렸다.

아더르는 암스테르담의 리트벨트아카데미에서 공부하다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서 유학했고, 1965년 오티스미술디자인대학을 졸업한 뒤, 1967년 클레몬트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실종 전까지 캘리포니아와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활동하던 그는,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학과 샌안토니오대학 등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실종자의 대표작은 (Fall) 연작이다. 1970년작인 〈추락 I〉은 16mm 흑백영화로, 로스앤젤레스 교외 주택을 시점의 이동 없이 잡았다. 옥상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던 말라깽이 작가는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져 구르기 시작하고, 아마추어 스턴트맨처럼 다소 어설픈 모양새지만, 아무튼 지붕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무사히 추락한다. 상영 시간은 불과 24초.

같은 해 제작된 〈추락 II〉도 16mm 흑백영화로, 암스테르담 운하를 도로와 다리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고정 카메라로 포착했다. 운하를 따라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던 작가는, 갑자기 방향을 잃고 약간 휘청거리는 척하더니, 이내 물속에 처박히고 만다. 상영 시간은 겨우 19초.

이듬해인 1971년 제작된 (Broken Fall(Organic))- 16mm 흑백영화로, 상영 시간은 1분44초- 도 흥미롭다. 개울가 나무의 높다란 가지에 매달려 대롱거리던 작가는, 점차 얇은 가지 쪽으로 이동하지만, 예상과 달리 쉬이 부러지지 않는다. 따라서 한동안 버티며 기다리던 작가는, 손에 힘이 빠진 척하며 그냥 개울로 추락하고 만다. 고로, 제목은 ‘지켜지지 않은 추락’ 혹은 ‘실수투성이 추락’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결국 사고와 실패를 어설프게 연출하는 일이 작업의 핵심이었던 셈. 그렇다면 도 의도된 사고 혹은 실패였을까? 작가는 부활했을까?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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