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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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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남긴 웃음이란 유산



법의학 저술의 엄격한 문장 사이에서 찾아낸 터무니없는 죽음의 레시피,

에두아르 로네의 <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
등록 2011-01-14 04:45 수정 2020-05-02 19:26

지난겨울의 코미디 스타가 김대기 기자였다면, 올겨울의 트로피는 ‘포잉공대’ 재학생들의 몫이 될 것 같다. 이른바 ‘포항 대폭설을 이겨내는 공대인의 자세’. 거의 자연재해 수준으로 퍼부은 폭설은 답답하기로 소문난 공대생들의 마음까지 뒤흔들었고, 그들은 이글루·스노베어·피라미드·성곽 같은 재치 넘치는 작품들로 캠퍼스를 장식했다.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진 그 이미지들은 맹추위에 얼어버린 우리의 마음을 녹이고 있다.

에두아르 로네는 법의학 저술에서 다종다양한 의외의 죽음들을 찾아냈다. 그러나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에서처럼 공포스러운 도구를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에두아르 로네는 법의학 저술에서 다종다양한 의외의 죽음들을 찾아냈다. 그러나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에서처럼 공포스러운 도구를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여기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파악하고 있는 웃음의 법칙. 웃기는 사람이 완고하고 단단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수록 그 웃음의 파괴력은 커진다. ‘기자’와 ‘공대생’이라는 단단한 이미지가 부서지면서 만들어낸 균열이 우리의 뇌수를 마구 흔들었고, 우리는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더 큰 웃음으로 화답하게 된 것이다.

(궁리출판사 펴냄)를 쓴 프랑스 일간지 의 기자 에두아르 로네 역시 이러한 법칙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심심할 때마다 세계 각국의 법의학 저술과 논문을 뒤적이고 다니는데, 거기에는 어떤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법의학자들이 만나게 되는 온갖 터무니없는 사건들이 따분하고 엄격한 필체와 만나면서 엄청난 웃음의 불꽃을 튀겨낸다는 사실을 발견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특별히 자살이나 자해에 얽힌 사건들을 골라내, 그 각각을 죽음의 레시피처럼 경쾌하게 정리해나갔다. 그렇게 해서 이렇게 기발한 과학 칼럼집이자 유머 백과사전을 엮어내게 된 것이다.

에두아르 로네의 <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

에두아르 로네의 <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

죽음이란 물론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죽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은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다. 만약 살아남았다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을 것 같다. 시골에서 가축과 사랑에 빠지는 목동들이 제법 있다는 말은 들어왔지만, 농기계와 연애를 하는 바람에 온몸이 조각나버린 경우는 처음 알았다. 자기를 결박하면서 성적 쾌감을 얻는다는 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수갑에 묶인 부끄러운 모습으로 구조요원을 만나게 되는 주인공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스카치테이프로 온몸을 칭칭 감아 죽은 경우는 너무 심하지 않나?

이 책은 실용적이라면 실용적이다. 세상의 상식과는 달리 의외로 잘 죽는 방법과 의외로 안 죽는 방법이 있다. 의외로 자주 시도되는 방법과 의외로 잘 사용되지 않는 방법도 있다. 자기 머리에 못을 박는 것은 정말 미친 짓이지만, 그런 미친 짓을 하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제법 있다. 그러나 드라이버를 꽂고 돌리면 곤란하다. 독일에서는 2003년 한 해 중년남성 세 명이 전기드릴로 자살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그렇지만 연필, 볼펜, 젓가락 등을 콧구멍, 요도, 항문에 꽂아넣는 경우는 그리 희귀한 사건이 아니다. 영화 때문에 전기톱의 공포는 커졌지만, 실제 이 도구로 죽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자료를 인용하면서 불끈불끈하는 모습이 자주 느껴진다. 이렇게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법의학자들은 정말로 드라이하게 기록하고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 과학자들도 유머감각이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털어내는 무용담을 제법 들어왔다. 그런데 그들이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몸짓을 해가며 웃기려고 작정하고 덤빌 때보다, ‘그건 그냥 과학적 사실일 뿐인데’라며 차분하게 말할 때가 더 웃긴다.

물론 나나 이 책의 저자와 같은 인간이 그 이야기를 전할 때는 다르다. 우리의 특기는 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교묘한 수사와 비꼬는 말투다. “프랑스에서는 열차가 사람을 짓뭉개는 일이 드물다. 그건 아마도 열차의 잦은 연착 때문에 기다리다가 지쳐 포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위의 말투가 툭툭 터져나오는데, 그게 제법 감칠맛이 난다. 남의 죽음을 불경하게 웃음의 도구로 삼다니, 욕을 해대면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스스로 죽어버린 사람이라면 그 행위로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다행이 아닐까? 과학에 도움을 주든, 유머 생활에 도움을 주든.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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