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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안에서 미술계를 풍자하다



1970년 뉴욕현대미술관 전시 작품으로 미술관 설립자 록펠러 가문을 조롱한

한스 하케의 <뉴욕현대미술관 여론조사>
등록 2010-10-20 07:42 수정 2020-05-02 19:26
한스 하케의 <뉴욕현대미술관 여론조사>. 질문지와 투명 아크릴 투표함, 여섯 색깔의 투표용지가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한겨레 자료

한스 하케의 <뉴욕현대미술관 여론조사>. 질문지와 투명 아크릴 투표함, 여섯 색깔의 투표용지가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한겨레 자료

1970년 7월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의 기획전 ‘정보’(Information)에 초청된 좌파 미술가 한스 하케(1936~)는 (MOMA Poll)라는 특이한 작품을 선보였다.

작가는 미술관 입장객에게 신분- 미술관 정규 회원, 1일권 입장객, 월요일 무료 입장객, 출입증 소지자 등- 에 따라 여섯 가지 색상으로 구분된 투표용지를 제공한 다음, 벽면에 부착된 질문에 ‘예’와 ‘아니요’로 답할 것을 요구했다.

여론조사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질문: 주지사 록펠러가 닉슨 대통령의 인도차이나 정책을 비난하지 않은 사실이 당신이 11월 선거에서 그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입니까? 대답: ‘그렇다’라면 왼쪽 상자에, ‘아니다’라면 오른쪽 상자에 투표용지를 넣으십시오.” 문구가 붙은 벽 바로 앞엔 두 개의 투명한 아크릴 투표함이 놓였고, 전자장치를 부착한 투표함은 전시 기간 내내 자동으로 투표용지를 셈했다.

당시 정세는 몹시 어지러웠다. 전시 개막 약 두 달 전인 4월30일,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인도차이나 분쟁에서 캄보디아가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미군의 폭격을 명하는 정치적 무리수를 뒀다. 이는 시민사회의 공분을 샀고, 항의시위가 뒤를 이었다. 하나 설상가상이랄까, 5월4일 시위 진압에 나선 주방위군이 학생 시위대에게 발포해 13명이 총상을 입고 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뉴욕현대미술관은 록펠러 집안이 세운 기관이다. 한데 그곳에, 당시 재선 운동에 나선 뉴욕 주지사 넬슨 록펠러의 정치적·도덕적 약점을 공격하는 작업이 설치됐으니,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지사 록펠러는 뉴욕현대미술관의 대표이사와 이사회 회장을 겸임한 인물로, 재선 운동 당시에도 이사진 가운데 한 명이었다.)

조사 결과 미술관 관객의 여론은 어땠을까? 전시 폐막일의 종합 집계 결과는 ‘그렇다’가 2만5566표(68.7%), ‘아니다’가 1만1563표(31.3%)였다.

이듬해인 1971년, 하케의 관심은 사회의 경제체제로 이동했다. 그래서 이번엔 미술관계에 큰 영향을 행사하는 악덕 부동산업자 해리 샤폴스키를 비평 대상으로 삼았다. 당시 샤폴스키 가문은 뉴욕 맨해튼의 부동산을 대거 매입해 임대료 상승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래서 작가는 그들의 투기 현황을 취재해, 보고서 형식의 작품을 만들었다.

(Shapolsky et al. Manhattan Real Estate Holdings, A Real Time Social System, as of May 1, 1971)라는 긴 제목의 작품은, 맨해튼 동남부와 할렘 지역의 지도 두 장과 샤폴스키의 부동산 투기와 관련된 142개의 건물 사진과 각 부동산의 정보, 그리고 거래 내역을 정리한 여섯 장의 차트와 한 장의 설명문으로 구성됐다.

하케는 이 야심작을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개막할 개인전에서 공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토머스 메서 관장이 작품 전시를 불허하면서 일이 꼬였다. 담당 큐레이터인 에드워드 프라이는 관장의 지시를 거부하다 해고됐고, 결국 하케의 구겐하임 개인전은 취소되고 말았다. 전시 개막 6주 전의 일이었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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