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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을 웃겼다

스파르탄이여, 펭귄과 대결하라?

〈300〉을 패러디한 영화 〈미트 더 스파르탄〉

제824호
등록 : 2010-08-17 16:07 수정 : 2010-08-1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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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을 패러디한 영화 〈미트 더 스파르탄〉
무료한 여름밤, 나는 TV 앞에서 리모컨을 짤깍거린다. 이건 마치 낚시 같다. 이리저리 흐르는 채널의 물결 위에 줄을 드리우고, 언젠가 내 손에 걸릴 한 마리를 기다린다. 간혹 월척이 걸려 올라오기도 하지만, 오늘밤엔 그런 기대도 없다. 그저 이 더위를 잠시 씻어줄 녀석이면 족하다. 그럴 때 하나 걸려들었다. 아니, 이런 영화가 있었나? 언제 개봉했는지도 모르겠고, 개봉했더라도 굳이 극장은 가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오늘밤을 죽이기엔 이만큼 적절할 수가 없다. <미트 더 스파르탄>.

간단히 말하면 <300>을 지지고 볶은 패러디 영화다. 키는 좀 작지만 쓸 만한 얼굴과 근육질 육체를 지닌 숀 맥과이어가 레오니다스 역을, 한때 내로라하는 섹시 아이콘이었지만 요즘은 <무서운 영화 4> <디재스터 무비> 등 패러디 코미디 전문이 되어가고 있는 카르멘 엘렉트라가 왕비 역을 맡았다. 그 밖에는 몸 좋은 스파르타의 전사들이 미약한 숫자이나마 민방위 소집의 분위기로 등장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가짜 유명인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미리 치킨이라도 한 마리 시켜놓을 걸 그랬다. 코미디 영화, 특히 패러디 영화는 의외로 눈을 뗄 여유를 주지 않는다. 제작진은 온갖 웃음거리를 속사포처럼 쏘아대고 그중에 하나라도 얻어걸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니다, 더 중요한 걸 빠뜨렸다. 이런 패러디 코드를 좋아하고, 온갖 연예 분야에 관한 잡다한 상식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친구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 “야, 저거 그 영화 장면이잖아” “저 목소리 그 정치인 아냐? 맞아, 그거 꼰 거네” 하면서 낄낄댈 수 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의 메신저 창을 띄워놓고, 잠 깨어 있는 친구들에게 심야의 패러디 파티에 동참하라고 했다.

영화는 스파르타인의 아이 테스트 장면부터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간다. 슈렉의 얼굴을 하고 초록색 침을 쏟아대는 아기는 골짜기로 내던져지고, 베트남인 아이는 브란젤리나 커플에게 입양되고, 태어나면서부터 완벽한 스파르타인-그러니까 턱수염을 기른 채 식스팩 근육을 하고 있는- 레오니다스가 미래의 왕으로 간택된다. 그는 전사로 인정받기 위해 황야로 내던져진 뒤 시험 상대로 야수와 마주치는데, 그것은 <해피 피트>로 가야 할 펭귄이다.

<300>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인 ‘죽음의 구덩이’ 역시 빠뜨릴 수 없다. 압권은 머리를 반쯤 민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아기 젖을 주다가 발로 차여 떨어지는 장면. 그리고 그 발차기 퍼포먼스를 두고 <아메리칸 아이돌>의 세 심사위원이 자기 스타일대로 평가를 한다. 페르시아인과의 전투 장면은 비보이 댄스와 래퍼들의 대결. 대규모 전투신은 대놓고 블루스크린을 들고 와 합성해서 보여준다.

<에어플레인> <못말리는 람보> <무서운 영화>의 계보를 이어온 패러디 영화. 죽을 듯 죽을 듯 사라지지 않고 달려드는 게 여름밤의 귀신 같기도 하다. 오늘밤 꿈에는 반쯤 괴물이 된 <미트 더 스파르탄>의 패리스 힐턴이 나타나지나 않을까?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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