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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돌을 남긴다

돌 쌓는 사람
등록 2009-12-24 02:39 수정 2020-05-02 19:25

“돌 쌓는 사람 찾았어!” 얼마 전, 친정에 가신 어머니가 제보 전화를 해왔다.
나의 외가는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다수리. 어머니 말씀에, 전쟁의 포화도 비켜갔다고 하니 ‘동막골’ 옆 동네쯤 상상하면 비슷하려나. 예로부터 청정 쌀과 고랭지 채소를 재배해온 평화롭고 한적한 농촌인데, 몇 년 전 논밭 한가운데로 2차선 도로가 뚫렸다. 그림 같은 시골 마을 정경이 망가져서 아쉬운 건 1년에 한두 번 놀러가는 사람의 한가한 생각이고, 마을 사람들에겐 고맙고 유용한 길이다.

돌 쌓는 사람 전희택씨. 김송은

돌 쌓는 사람 전희택씨. 김송은

그래서인지 새로 생긴 도로 옆, 마을 어귀에 다수리를 홍보하는 조형물을 설치했다. 동글동글한 강돌을 쌓아 만든 돌탑 여러 개와 ‘다수리 강변마을’이라 새긴 커다란 바위, 거기다 그 위에 살포시 올라앉은 강아지까지. 프로의 솜씨는 아닌데, 내공과 집념이 느껴졌다. 그걸 보곤 “저거 만든 사람 만나보고 싶다”고 지나가듯 말했는데… 딸내미가 무려 시사주간지에 (손바닥만 해도) 글을 싣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실뿐더러 자랑까지 일삼으)시는 어머니는 ‘그분’을 찾아 섭외까지 다 해놓고 다짜고짜 나를 다수리로 불러내렸다.

그렇게 찾아간 전희택(70)씨의 집 마당에 들어서자 탄성이 나왔다. 둥근 탑, 네모난 탑, 꼬불꼬불한 탑, 돌로 만든 티테이블, 말, 곰, 매 같은 형상에 괴석까지 마당 양옆에 늘어선 크고 작은 조형물이 100개, 아니 200개도 넘을 것 같았다. 마루에 앉아 유리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돌탑 사이로 해가 지고 있다. 아, 이것이 신선놀음이로구나.

“농사지어봐야 골만 빠져서” 60살에 은퇴한 전희택씨는 평창에서 제일 아름다운 집을 만드는 게 꿈이다. 40대부터 괴석을 모았는데, 성이 안 차 특이한 걸 만들어보고 싶어 10년 전 돌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름엔 서울 사람들이 와서 구경도 많이 한다고. 담벼락에 ‘무인카메라 작동 중’이란 글귀가 붙어 있어, 정말 있는지 묻자 엄포용이라고 한다.

재료로 쓰는 돌은 원당·미탄·다수 등 인근 강과 산에서 모아 경운기에 싣고 온다. 2.5m 높이에 지름 50cm 정도의 돌탑을 쌓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의외로 하루. 하루 돌 줍고, 하루 쌓는 식이다. 저걸 어떻게 다 만들었는지 묻자, “머리를 쓰면 쉬워. 동그란 탑 있잖아. 그건 플라스틱 바가지 바닥을 뚫어서 그 모양대로 돌을 죽 돌려 붙이면 된다고. 안에는 세멘(시멘트)으로 바르지. 반쪽씩 만들어서 딱 붙이면 동그랗게 된단 말이야. 그걸 위로 쌓으면 저리 되는 거지.” 돌탑 만드는 게 소문이 나 최근에는 이웃 기화리까지 가서 둘레 8m, 높이 3m짜리 탑을 쌓아줬다. 경운기로 5~6대 분량의 돌이 들어가는 대공사였다.

“힘들지. 그래도 이쁘니까. 이쁘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 멀리 가도 사방 살핀다고. 물가고 어디고, 돌 없는지.” 왜 그렇게 돌이 좋을까. “변하지 않잖아. 목숨이 없으니 수백 년 놔둬도 무궁무진 간다고.”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는 것처럼 전희택씨는 돌탑을 남길 요량이다. “인생이, 사는 게 가져갈 게 없어. 밥 먹고 살면 되는 거야. 빚 안 지고 열심히 살다 가면 되지.”

김송은 만화월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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