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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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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창작 뮤지컬이 온다

등록 2006-09-22 15:00 수정 2020-05-02 19:24

뒤통수 때리는 에서 러브스토리 까지… 소극장에서 펼치는 수준 높은 감동의 무대로 수입 대형 뮤지컬에 반격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

올가을 뮤지컬계가 떠들썩하다. 연초 외국의 대형 수입 뮤지컬들이 잇달아 등장해 시장의 판세를 주도해가더니, 하반기부터는 창작 뮤지컬들의 본격적인 반격이 등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머리로 이해를 강요받기보다 가슴으로 감동받을 수 있는 ‘우리 뮤지컬 찾기’의 암중모색이 본격적인 화두로 등장할 추세다. 최근의 창작 뮤지컬들은 일단 규모 면에서 소극장 뮤지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무래도 ‘작은’ 무대가 ‘적은’ 제작비를 쓰고도 무대를 완성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규모의 시장에서 흥행성을 검증받은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들이 이미 형성된 유명세를 바탕으로 대형 공연장에서 ‘공인된’ 돈벌이를 펼치는 반면, 무대를 만들어가며 작품의 브랜드 가치도 키워가야 하는 창작 뮤지컬에는 사실 수천 객석 규모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그리고 장기간 공연을 지속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소극장 무대가 더 적합할지 모른다.

기상천외한 사건, 기발한 아이디어

대표적인 작품만 꼽아보아도 여러 편이 눈에 띈다. 우선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여주인공과 그녀를 돕는 흥신소 남자의 아기자기한 사랑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던 의 작가 장유정이 대학로 소극장인 ‘나무와 물’에 올리는 (오픈런)가 있다. 초연 당시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자자했던 이 작품은 장유정이 원작과 작사, 연출의 3역을 맡아 ‘종횡무진’ 활약한 창작 뮤지컬이다. 자선으로 운영되는 무료병원의 척추마비 반신불수인 붙박이 환자가 갑자기 사라진다는 기상천외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미스터리 추리물을 연상시키는 전개 방식도 흥미롭지만, 마지막 결말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는 극적 반전이 백미를 이룬다. 역시 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작곡가 김혜성이 이 작품에서도 음악을 맡아 특유의 감수성을 버무려놓았다.

앙증맞고 귀여운 농아작가 미나와 그녀의 상상 속 캐릭터들이 꾸미는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나 천하의 바람둥이가 동생의 약혼녀를 보고 첫눈에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로 인기를 모았던 연출가 성재준의 신작 뮤지컬 (10월22일까지, 서울 PMC대학로 자유극장)도 마니아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기대작이다. 한국 뮤지컬계의 차세대 주자로 손꼽히는 그가 신작으로 선택한 장르는 지금까지의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코믹 스릴러. 죽어서 저승에 간 형사가 생전에 해결하지 못해 미궁에 빠졌던 세 건의 살인사건을 하나씩 파헤쳐간다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단번에 눈길을 끈다. 옴니버스로 구성된 각각의 스토리가 가진 재미는 극적 반전으로, 이른바 ‘뒤통수 때리는’ 이야기의 마지막 전개가 독특한 묘미를 선사한다. 신예 작곡가 박초롱과 에서 성재준과 절묘한 호흡을 보여주었던 음악감독 원미솔이 참여해 에피소드마다 톡톡 튀는 ‘젊은’ 감성을 심는다.

뮤지컬 (11월19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도 빼놓을 수 없는 기대작이다. 제목이 영어라 외국 뮤지컬을 연상할지도 모르지만 엄연한 창작 뮤지컬이다. 우리식으로 하자면 ‘고백’쯤으로 대체할 수 있을 이 작품은 청력을 잃은 작곡자와 가수 지망생의 러브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뮤지컬 좋아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여배우 윤공주와 를 통해 개그맨에서 뮤지컬 배우로 성공적인 이미지 변신을 보인 정성화가 무대를 꾸민다. 사실 이 작품은 제작진의 구성에서부터 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성재준이 작가로 참여하고 로 화제를 모았던 왕용범이 연출을 맡았다. 여기에 젊은 감각의 프로듀싱으로 많은 히트작을 배출한 쇼틱의 김종헌 대표가 제작자로 처음 나서 뮤지컬 팬들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 으로 업그레이드

완전히 새로운 무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 작품을 가져다 업그레이드하거나 리메이크한 일련의 시도들도 반갑다. 대표적인 작품이 최근 서울 청담동 브로딘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2007년 2월25일까지)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성해 ‘디지로그 뮤지컬’이라는 부제를 붙인 이 작품은 (1999), (2000) 등을 거쳐 2001년 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누리고 그해 한국뮤지컬대상을 받았다. 이번 무대는 기본적인 형식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에피소드와 시퀀스 그리고 각각의 세부 내용 등은 요즘 감각에 맞춰 새롭게 덧붙이는 리메이크 제작 방식을 채택했다. 음악도 싱어 송 라이터인 김현철과 서울예대 강호정 교수 등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졌는데, 작품만큼이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등을 통해 한국식 소극장 뮤지컬의 가능성을 선보였던 김민기의 뮤지컬 (오픈런,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도 기대를 모으는 창작 뮤지컬이다. 80년대 음반으로 먼저 제작돼 386세대라면 향수 얽힌 추억으로 기억할 노래극 에서 주제가 격인 동명 타이틀의 노래를 아예 뮤지컬 제목으로 변경해 재구성할 계획이라는 후문이다. 도시와 환경 문제 등을 벌레들의 이야기로 옮겨 담은 이 작품은 한국적 가족 뮤지컬의 가능성을 실험해볼 수 있는 좋은 시도가 될 것이다.

라이선스이긴 하지만 창작에 가까운 소극장 뮤지컬들도 있다. 한국적 감성과 대사를 맛깔스레 담아내 인기를 모았던 는 TV 드라마나 미니시리즈에 쓰이는 시즌별 제작 시스템을 빌려와 새로운 출연진으로 (9월23일~12월17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을 선보일 예정이며, 트랜스젠더의 삶과 사랑을 그린 (10월14일~11월19일, 서울 대학로 S.H 클럽)도 기존의 배우들에 새로운 출연진을 보강해 재무장한다. 특히 닐 사이먼의 뮤지컬 (10월14일~11월19일, 서울 대학로 신시뮤지컬극장)은 우리나라의 간판급 뮤지컬 배우 최정원이 다시 주연을 맡아 성기윤과 함께 무대를 꾸밀 예정이어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화제작이다. 초연 당시에도 탄탄한 구성과 아기자기한 재미는 물론 간판급 배우들에 의해 맛깔스럽게 구현된 우리식 해석으로 화제가 됐던 흥행작이다.

소극장용 뮤지컬의 힘

누구나 창작 뮤지컬의 필요성에는 쉽게 공감하지만 투자나 자본 등 경제적인 흐름은 늘 ‘영악스러운’ 면을 먼저 보이게 마련이다. 영화와는 달리 고가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 관객은 뮤지컬을 보러 갈 때면 으레 자신이 투자한 금액 이상의 무언가 ‘특별한’ 경험을 기대하게 마련이고, 그래서 뮤지컬 산업에서의 부익부 빈익빈은 제작자들의 일상적인 고민거리가 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무대를 통한 창작집단의 ‘이유 있는’ 반란은 분명 기대되는 부분이 크다. 90년대 말, 볼거리 풍부한 대작 뮤지컬들을 통해 화려함만을 추구하던 세계 극장가가 점차 생명력을 잃어갈 때에도 브로드웨이를 지켜준 것은 등으로 대변되는 오프 브로드웨이의 실험성 짙은 소극장용 뮤지컬들이었다. 적은 자본에 아이디어를 더해 무대를 형상화한 이 작품들은 새로운 창작물도 구조적인 단계별 성장을 거치며 얼마든지 ‘좋은 뮤지컬’로 성장할 수 있다는 실증적 사례를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배우나 작곡가 등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검증의 장으로도 효과적으로 활용됐다. 오랜 세월을 걸쳐 한국적인 문화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자 노력해온 우리 극장가로서는 좋은 역할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선례이다. 가을 극장가를 수놓을 소극장 창작 뮤지컬들의 선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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