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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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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병 월급을 현실화하라

등록 2002-09-18 15:00 수정 2020-05-02 19:22

최저임금 1만6500원짜리들에게 나라를 지켜달라는 요구는 과연 타당한가

경기도 포천군 운천시외버스터미널. 조용한 소읍인 이곳은 토요일 정오부터 부쩍 활기를 띤다. 터미널 옆 농협의 출입구는 특히 부산하다. 9월7일 낮 1시, 은행 셔터문을 내리기 직전 뛰어들어오는 고객은 대부분 군복 차림이다. 인근 부대에서 외박·외출에 나선 사병들이다. 저마다 호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들고 현금인출기 앞에 길게 줄을 선다. 적게는 10만원, 많게는 30만원이 넘는 뭉칫돈을 인출하는 이들도 보인다. 은행을 나선 사병들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여관이다. 서둘러 방부터 잡는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무리를 지어 피자집, 양념치킨집, 햄버거집으로 향한다. 일부는 PC방으로 직행한다. 패스트푸드와 컴퓨터게임은 젊은 장병들이 가장 갈급증을 느끼는 대상이다.

농협을 거치지 않는 군인들도 보인다. 미리 부대에서 돈을 마련해 나온 이들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돈은 일명 ‘패밀리 봉급’. 카드 소지가 금지된 상당수의 부대에서는 부대원 모두에게 통장을 만들어주고 비밀번호를 통일한 다음 휴가 다녀와 남은 여비나 집에서 부쳐준 돈을 일괄 ‘관리’해준다. 인근 OO부대는 매주 금요일 행정보조요원이 사병들이 신청한 돈을 각각의 통장에서 찾아다 전해준다.

공평하지 않은 ‘국방의 의무’

대한민국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 징집되는 육군 사병들은 2년2개월간 자신의 몸을 제공함으로써 병역세를 대신한다. 그런데 이 의무는 공평하지 않다. 징집대상자 중 현역으로 가는 이들은 60%고 나머지는 면제나 특례다. 아들·조카·동생을 이 60%에서 ‘빼내지 못한’ 가족들은 이중의 병역부담을 진다. 고위층 자녀들의 병역기피 백태를 목도하며 갖게 되는 심리적 부담만이 아니다. 가정마다 군에 보낸 자식에게 돈을 부쳐주고 쥐어주는 경제적 부담을 추가로 진다.

징병제의 장점 중 하나는 일단 군에 간 이상 나라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병들이 받는 봉급은 외박·외출이나 휴가 등 부대 밖 생활은 그만두고, 부대 안 생활을 해나가기에도 모자란다. 2002년 현재 대한민국 이등병이 군에서 한달에 받는 월급은 1만6500원, 일등병은 1만7900원, 상병은 1만9800원, 병장은 2만1900원이다.

오후 2시께 운천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한 종합 패스트푸드점. 다섯명의 사병들이 양념치킨과 햄버거, 피자를 수북이 쌓아놓고 앉아 있다. 녹색 견장을 단 병장이 통솔 책임자이나, 부대 밖을 벗어나서는 위계가 보이지 않는다. 사이좋게 음식을 나눠먹고 먹은 만큼 나눠낸다. 이들은 전날 행정보조요원을 통해 각각 통장에서 10만원씩 찾아 지니고 있다.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은 부대 배치받을 때 갖고 있던 돈, 면회 온 부모님이나 휴가 때 친인척들이 쥐어준 용돈 등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상병의 이야기. “부대 근처는 물가도 비싸고 방값도 비싸거든요. 주말에 그냥 부대 안에서 텔레비전만 보는 애들도 많아요. 외출 한번 나오면 적어도 몇만원은 드는데, 돈 없으면 손가락 쭉쭉 빨고 있을 수밖에 없죠. 가끔 불쌍한 쫄따구들은 데리고 나오기도 하지만, 서로 불편하죠.” 운천농협의 한 간부는 “부대 PX 매출현황을 보면 사병 1인당 대략 한달에 6만원가량을 쓰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영내에서만 그렇다는 이야기다.

휴가 내내 아르바이트한 말년병장

사병들의 봉급은 국가공무원법의 보충법인 군인보수법에 따라 별도의 대통령령으로 정해진다. 공무원 급여 변동률에 따라 사병들의 급여도 해마다 똑같이 오르고 똑같이 내린다. 군인보수법은 휴가·출장 여비나 각종 수당, 연금 등에 대한 세부내역을 담고 있지만 이는 장교나 직업군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사안이다. 사병들에겐 법적으로 보장된 수당이나 혜택이 없다. 이들이 봉급에 더해 받는 것은 석달에 한번씩 나오는 보너스(월급의 절반)와 정기휴가 때 받는 왕복교통비, 그리고 전방 격오지 근무자들에게 월 1만원꼴로 나오는 특수근무수당이다. 포상휴가나 특별휴가 등에는 교통비가 지급되지 않는다.

9월3일 화요일 오후 서울 상봉시외버스터미널. 강원도나 경기 북부지역에서 휴가 나온 군인들은 주로 월요일 오전에 이곳을 거친다. 수해 여파로 휴가날을 받아놓은 상당수 사병들의 발이 묶인 탓에 이날은 복귀를 앞둔 사병들만 눈에 띄었다.

말년휴가를 나왔다 귀대하는 길인 김아무개 병장. 보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간다는 그는 휴가 내내 만사 제쳐두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주일간 밤낮 안 가리고 컴퓨터 프로그램 짜는 일을 도와 80만원을 벌었고, 닷새간 사촌형이 운영하는 숯불갈비집에서 불 피우기와 청소를 해 30만원을 받았다. 제대로 쉬지는 못했지만 목돈 110만원을 손에 쥐어 보람 있었다고 한다.

“병장 달고는 만날 빈둥댔으니 몸은 피곤하지 않다”는 김 병장이 휴가를 아르바이트에 바친 이유는 제대 뒤에 사람을 만나거나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닐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3학기를 남겨두고 휴학한 상태인데 간판도 안 되는 대학에 비싼 등록금 물고 졸업을 해야 할지, 좀 무리를 해서 편입을 해야 할지, 그도 아니면 취직을 해야 할지 결정을 못했다. 컴퓨터에 관심이 있지만 머리랑 손발이 굳어버려 자신이 없다.”












대장(비고)






























































사병과 장교의 급여 변동표

연도

이등병

병장

하사

소위

 1950 3천  4500 3만900 9만(단위: 원)
 1960 60 120 426 618 1800(단위: 환)
 1965 130 200 1300 5천350 4만720(이하 단위: 원)
 1970 600 900 8800 1만6500 13만2천
 1980 2700 3900 5만5천 9만1천 63만5천
 1990 6600 9400 18만7800 21만8400 104만3천
 2002 1만6500 2만1900 54만5500 63만4800 375만7천

*1953년 화폐개혁으로 단위가 원->환으로 바뀌었다가 62년 두 번째 화폐개혁에서 화폐 가치가 10배 늘어나고 단위는 환->원으로 다시 바뀌었음. 62년의 경우 1천환은 100원이 됨.
*지금과 같은 단기병과 직업군인 직급체계는 65년부터 자리를 잡았고 62년∼65년까지 급여 변동이 없었음.
*50년도에는 병장이 없었고 하사도 단기병에 속했음.
*하사와 소위의 봉급은 기본급 1호봉 기준임.

결과적으로 불이익만 당한다는 박탈감

터미널 앞 롯데리아에서 여자친구가 사주는 햄버거를 먹으며 버스를 기다리던 이등병 이아무개씨. 전방의 한 수색대에 근무하는 그는 첫 휴가인 100일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는 길이다. 그는 한달에 2만7천원가량을 받는다. 특수근무수당, 일명 위험수당이 더해진 덕분이다. 정신없이 지내느라 돈 궁한 줄은 잘 모르겠다는 그는 대신 부모님이 면회올 때 갖게 될 부담을 걱정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하룻밤 묵고 가려면 최소한 20만∼30만원은 깨진다고 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가방에는 가족이 마련해준 것으로 보이는 연고와 붕대, 밴드가 잔뜩 들어 있다. 훈련 도중 피부가 긁히거나 찢기는 일이 있는데 부대에서 주는 약으로는 잘 낫지 않아 사가는 것이란다. “사제밥만 먹어도 나을 상처가 군에서는 오래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씨의 팔에도 미처 아물지 못한 상처가 많이 보였다.

현역으로 입대하는 사병들은 억울하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위해 인생의 한 시기를 몽땅 지불하지만 결과적으로 불이익만 당한다는 피해의식이 크다. 경기도의 한 부대에서 포병으로 복무하는 정 상병과 김 상병은 상봉터미널 입구에서 귀대를 함께 할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다. 정 상병은 4박5일 휴가 동안 누나가 준 용돈 10만원을 쪼개 썼고, 김 상병은 “총알이 달려”(용돈이 부족해) 많이 돌아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정 상병의 얘기다. “내가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든 한달에 돈 100만원은 벌 수 있을 텐데, 군에 와서는 누나에게 매번 손을 벌려야 한다. 컴퓨터 교육이든 통신 교육이든 자기 계발을 시켜준다고 하지만 그건 조건 좋은 부대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군대는 올 만한 곳이 못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빠지는 게 장땡이다.”

과거에 비해 국민소득과 사회적 기회비용이 증가한 오늘날,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 마음속에서 국방의 의무는 급속도로 ‘약발’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전자군복무제 도입을 주창한 국회가상정보가치연구회 이상희 의원(한나라당)에 따르면, 대학생 2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군입대를 원한다는 이들은 10명, 군대 생활이 자아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이들은 15명에 불과했다. 나이가 찬 남자는 누구나 병역 의무를 져야한다는 국민개병제의 대의와 명분은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다.

국방예산의 0.8%가 사병 인건비

지금과 같은 군대의 직급과 계급구조가 완성된 것은 3공화국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뒤부터다. 사병들이 터무니없는 금액의 봉급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50년도의 경우 이등병의 봉급은 3천원으로 당시 소위 봉급(3만900원)의 10분의 1 수준이었고 대장 봉급(9만원)의 100분의 1 수준이었다. 60년도까지 이 비율은 유지됐다. 그러나 62년 군인보수표에 따르면 이등병과 소위의 봉급은 41배, 대장과의 격차는 무려 313배까지 벌어져 있다. 큰 차이 없이 그 기조는 지금껏 유지된다.

2002년 현재 국방예산은 16조3640억원. 이 가운데 인건비로 들어가는 돈은 7조104억원가량으로 전체 국방비의 43%에 이른다. 사병들의 봉급은 인건비의 1.8%인 1296억원가량으로 전체 국방비의 0.8%에 불과하다. 99년 전체 국방예산 가운데 인건비는 36.8%였다. 인건비 비율은 늘어났지만 사병에게 들어가는 예산은 큰 차이가 없다. 봉급을 포함해 사병들의 복지에 필요한 비용의 비율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국방예산이 조정돼온 셈이다.

국방부 안에서도 사병들의 봉급을 올리는 문제는 복지개선 주요 사안으로 매번 논의돼왔다. 그러나 곧바로 따르는 얘기는 국방예산이다. 그 결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공방만 무성한 채 논의는 멈췄다. 어디서 아껴서 얼마큼 더 줄 것인지 산술적 계산만 한다면 해마다 수십만명씩 의무적으로 ‘공급’되는 사병들의 봉급 문제는 예산편성에서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최근 자유기업원 사이트(www.cfe.org) 오피니언 리더스 다이제스트난에는 징병제의 효율성을 따지는 논문이 올라왔다. 글을 올린 전남대 경제학부 김영용 교수는 “아주 낮은 비용으로 군 인력을 언제든지 충원할 수 있으므로 인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유인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지원병제와 징집제의 효율성을 비교하는 기준은 ‘비용 대비 효과’다. 군인에게 만약 지금보다 훨씬 높은 봉급(연봉)을 지급한다면 국방예산은 당연히 늘어날 것이지만 사회 전체가 지불하는 비용은 줄어든다는 논리다. 지원병제를 전제로 하면 군에 안 가는 이들이 경제활동을 해 사회적인 부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인권’에 대한 침해다

국방 관련 연구자들과 경제학자들은 사병 봉급의 현실화와 지원병제 전환, 복무기간과 병력 수 조절을 위한 다각적인 정책 검토를 해왔다. 만약 50만 사병에게 30만원씩을 더 준다고 치면 연간 1조8천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 50만 사병에게 노동자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50만원씩을 더 준다면 연간 3조원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 경제학자들은 이 정도 범위에서 국가예산 구조를 바꿔나가기 위해서는 5∼6년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내다본다. 그러나 매번 검토는 검토로 끝났고, 제안은 제안으로 끝났다. 그 이유에 대해 국방부 안팎에서는 “사병들의 머릿수가 장교들의 밥그릇인데,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할 자리에 있는 어느 누가 자기 자리를 내걸고 이 문제를 공론화하겠는가”라는 자조적인 해석이 공공연하다.

군사평론가 정창인씨는 사병들의 징집구조와 처우에 대해 “국가가 무상으로 젊은이들의 기회비용을 착취하는 구조”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국민소득 2만달러면 완전 지원병제로 전환하는 데 문제가 없고 1만달러 수준이면 부분적으로 지원병제를 시작할 수 있다”며 “전문성과 숙련도를 요하는 기술병과 등 특정 분야에서부터 충분히 보상하고 능력대로 뽑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병들의 봉급을 현실화하는 것은 징병제 구조에서도 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할 ‘최소한의 인권’이라는 견해도 있다. “개인의 땅과 집을 국가가 가져갈 때도 적절하게 보상을 하는데, 26개월간 개인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국가가 가져가고도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다.” 임종인 변호사는 “징병제를 실시하는 다른 나라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사병들의 임금문제를 개선해왔다. 모병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또 남북 대치상황이라는 이유로 비대한 병력을 지금과 같이 방만하게 운영하는 것은 정책결정권자들의 직무유기이다”라고 주장했다.

9월3일 오후 서울 동서울고속터미널. 대구행 버스를 기다리는 일등병 ㅅ씨의 호주머니에는 버스표와 동전 몇개가 들어 있다. 부대 사정상 휴가비 지급이 늦어져 고참에게 5만원을 빌려 휴갓길에 나선 참이다. 5만원 가운데 1만원은 선이자를 겸해 고참과 동료들에게 한턱 내는 데 썼다. 남은 4만원으로 부대에서 서울로 시외버스 타고 와 택시 한번 타고 점심 사먹고 고속버스표를 끊었더니 딱 400원 남았다고 한다.

‘공짜 노동력’들의 자괴감

“한 차례 입영을 미뤘는데 두 번째에는 타이밍을 놓쳐 결국 끌려왔다”는 그는 입대 전 공연기획 일을 했다. 프리랜서였지만 비교적 돈벌이가 됐던 그에게 군에서 주는 월급은 초등학생 용돈 수준밖에 안 된다. “돈 있고 빽 있는 이들은 군대에 와서도 좋은 보직을 받는다. 나이 들어 제대한 뒤의 진로가 막막하기도 하지만, 오늘은 이 구덩이 파고 내일은 저 구덩이 메우는 쓸모없는 일을 할 때가 가장 힘들다. 내 사용가치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군악대에 가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지오피(전방초소) 근무라도 지원해볼 생각이다. 긴장도 되겠고, 수당이 나오니 한달에 2만원씩이라도 저금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수해복구한 일이 군대 와서 한 일 중 유일하게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효용가치 없는 공짜 노동력. 부대 밖에서 만난 현역 사병들의 자괴감은 컸다. 최저임금 1만6500원짜리 인생에게 나라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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