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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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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중엔 정답이 없다

금융이 아닌 실물경제에서 시작된 낯선 경제위기
평범한 이들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정책은 무엇일까
등록 2020-03-29 13:15 수정 2020-05-07 04:47
2020년 3월25일 전북 전주 남부시장. 대부분 상점이 문을 닫았다. 박승화 기자

2020년 3월25일 전북 전주 남부시장. 대부분 상점이 문을 닫았다. 박승화 기자

펼침막. 2주간의 잠시 멈춤. 2m 거리 유지. 멈추고 멀어진 사람들.
금융 아니고 실물에서 위기가 시작? 가능한 일? 황당. 위기라고 부르기는 좀….
반성. 눈에 보이는 경제를 하찮게 생각. 바탕에서부터 무너질 수 있다. 혼란.
비교 대상. 이전의 전염병 → 이전의 경제위기.
비정한데 필요한 통화정책.
현금의 가치를 낮춰. 자산의 가치를 방어.
일하고 땀 흘려 쥔 돈의 가치는 누가 책임?
절실한데 머뭇대는 재정정책.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할까. 한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웅변.
이후의 세계. 전례 없는 위기 전례 없는 대응. 우리는 이전과 같을까.
-2020년 3월, <한겨레21> 경제팀 한 기자의 메모

일한다. 만난다. 반긴다. 즐긴다. 일상을 규정했던 동사가 사라진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움직임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뗄 수 없습니다. 움직임이 멎고 사람 사이가 멀어진 경제를 봅니다. 전에 없던 풍경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25일 코로나바이러스 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25일 코로나바이러스 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전염병이 만들어낸 ‘공포의 시장’

경제는 일하고 살고 먹는 일입니다. 또한 신용을 바탕으로 복잡하게 뒤얽힌 관계의 연쇄이기도 합니다. 사실 아주 오랫동안 ‘경제위기’를 말할 때 신뢰가 무너지고 얽혔던 관계가 속절없이 풀려나는 것만 생각해왔습니다. 눈앞에 경제활동과 조금 다른 자리에서, 경제주체 사이를 엮는 금융과 자산시장 위기에 주로 집중했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우리가 아는 경제위기는 주로 금융시장 혹은 금융화한 실물자산(부동산)에서 시작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라고 불렀던 것들입니다. ‘시스템’으로 부를 만큼 촘촘하게 엮인데다 부채로 거품이 끼기 쉬운 자산시장이라면, 어느 한 곳 문제가 터져 전세계적 위기로 번지는 것이 익숙합니다. 생산하고 그저 번 돈으로 소비하는 일은 경제 전체를 위기로 몰고 갈 만큼 대수로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건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생산을 못해 문제가 될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물건을 살 여유나 욕망이 적고, 투자할 곳도 없다(총수요 부족)는 것만큼은 늘 문제이긴 했습니다. 그래도 총수요 부족은 만성적인 질병에 가까웠습니다. 위기가 될 지경에 이르면 정부가 돈을 풀어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 멈춘 실물경제가 금융위기로 이어지고 전세계적 경제위기로 퍼질지 모를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과거 금융위기와 달리 실물 부문에서 위기가 시작됐다.”(금융위원회, 제2차 비상경제회의) 정부는 평가합니다. 코로나19는 너무나 넓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을 멈춰 세웠습니다. 국가 사이 이동을 막습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생산이 멈춥니다. 국내 이동도 제한합니다. 돈 쓰고 즐기는 일에 죄책을 느껴야 합니다. 못 겪어본 일이라 양상도 대응도 혼란합니다. 지난 한 달 우리가 겪은 일, 앞으로 한동안 겪을 수밖에 없는 일, 모순인 걸 알면서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다급한 대응을 차분히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증권사와 경제연구기관의 주요 보고서 60여 개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조했습니다.

먼저 3월 들어 가슴 졸이게 했던 소식부터 돌아봅니다. 3월23일쯤 이르면 주가는 미국 다우지수 기준 고점(2월12일) 대비 37% 넘게 하락했습니다. 이 정도 하락은 대공황과 세계 금융위기를 포함해 지난 100년 단 여섯 번뿐이었습니다. 한 달 안팎 벌어진 일입니다. 전에 없이 빠릅니다. 기업의 기초체력이나 성장성 따위 따질 겨를 없이 돈이 시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입니다.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던 금값과 선진국 채권 가격마저 내려갑니다. 자산의 성격과 관계없이 일단 ‘달러를 챙겨야 한다’는 심리가 극에 달했다는 의미입니다. 좋고 나쁜 것을 가리는 이성이 작동할 여지 없이 공포감만 남은 시장. 투자은행들은 2분기(4~6월) 미국 경제 성장률(전 분기 대비, 연율 환산)이 -24%(골드만삭스)~-30%(모건스탠리)를 기록할 거라고 전망합니다.

3월23일 텅 빈 미국 뉴욕 거리. AFP 연합뉴스

3월23일 텅 빈 미국 뉴욕 거리. AFP 연합뉴스

경제위기 치명률 높이는 ‘기저질환’

지금 상황은 냉정하게 보면 ‘실물 위기는 분명하다. 금융위기로까지 번질지도 모르겠다’ 정도입니다. 아직 2008년 같은 대형 은행의 도산이랄지 금융시스템 마비 같은 상황이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금융시장 반응이 이렇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황당합니다.

공포의 이유를 찾으려면 ‘2020년 세계 실물경제에서 시작된 위기’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문제를 일으킨 주범은 부실한 부동산 부채와 은행으로, 그래도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충격적인 상황이었지만, ‘미국의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이 더는 모기지 탓에 금융기관 망하지 않도록 얼마든지 돈 빌려줄 것’이라는 확신을 줘가며 위기를 빠져나왔습니다.

실물경제 전반이 위기의 시작이라면 좀 얘기가 다릅니다. 어떤 기업이나 가계가 어떻게 무너지면서 경제에 충격을 줄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금융위기 이후 기업과 가계는 완화적인 통화정책과 저금리 탓에 빚이 많습니다. 그만큼 더 금융시장에 강하고 넓게 얽혀 있고 어느 한편 무너졌을 때, 금융기관을 거쳐 전세계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도 큽니다. 신경 써야 할 대상이 넓고 불분명합니다.

우선 빚이 많은 한계기업 도산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유력했습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불안하던 대목이긴 했습니다. 2018년 기준 세계 비금융 기업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91.3%로 5년 전(85%)보다도 크게 늘었습니다(국제결제은행). 특히 3월 들어 유가가 급락하자 그간 저금리로 회사채 시장에서 손쉽게 빚을 끌어오던 미국 셰일오일 기업 등이 약한 고리로 지목됐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문제가 아닙니다. 유럽의 재정 취약국들에서 문제가 터질지도, 다시 부동산 거품 붕괴에서 문제가 시작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약한 고리가 여기저기 눈에 밟힙니다. 어디서 터져나올지 조마조마합니다. “이번 사태는 실물경제 불안이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그 과정에서 금융시스템 문제가 발현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단순히 특정 주체의 파산이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경제주체들의 행동이 제약됨에 따라 불특정 다수(가계와 기업)의 소득이 타격을 입으면서 한계기업과 한계가계가 사회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삼성선물)

돈 찍어 자산가치 하락을 막아라

실물 위기가 금융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안간힘 씁니다. 세계 금융위기 때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속도감 있게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정책이 시작됐습니다. 핵심은 달러로만 쏠리는 시장의 불안을 전방위적으로 잠재우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달러 가치를 하락시켜 다른 물건(자산) 가격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연준은 일단 기준금리를 0~0.25%로 1.5%포인트 낮췄습니다. 통화스와프로 세계 각국의 통화가치를 지지해주면서 달러가 더는 다른 나라 통화와 비교해 비싸지지 않도록 합니다. 장기 국채와 MBS(주택저당증권)를 사들이고 담보로 달러를 찍어냅니다. 그것도 “시장이 필요로 하는 만큼”(3월23일 연준 성명), 무제한으로. 간접적으로 회사채도 사들입니다. 다른 나라 통화, 회사채, 부동산까지 전방위로 가격을 유지하며 터지지 않도록 부양하는 방법입니다. “자산 가격이 무조건 폭락하지(달러화가 무작정 귀해지지는) 않는다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중앙은행이 총력을 다해 보증합니다. 눈을 다시 자산시장으로 돌리십시오.” 외치는 겁니다.

놀라운 정책입니다. ‘연준의 돈 찍어내기 새 국면이 시작됐다’(CNBC)고 평가합니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은 금리를 조정하거나 정말 안전한 단기 국채만 담보로 돈을 찍는 역할 정도를 합니다. ‘놀랍게 더 놀랍게’ 돈을 푸는 정책이 세계 금융위기 때 효과를 발하며 통화정책의 지침이 됐습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시점,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의 달러를 퍼붓고 안전을 보증해야 불안한 심리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어쨌든 금융시장은 이 과정을 거쳐 단기적으로 조금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락하던 금과 국채 가격이 다시 가파르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환율도 급등세를 잠시 멈춥니다. 주식시장도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슈퍼히어로 같은 활약을 펼쳐 보인 걸까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결국 연준은 이렇게 또 세계의 부채를 키웁니다. 과잉부채를 더 많은 부채로 막아내고, 힘들 때 다시 부채의 여지를 늘리는 상황의 연속입니다. 그사이 빚에 기댄 자산 가격은 크게 오르고 일해서 손에 쥐는 돈의 가치는 하락합니다. 불균형과 불평등은 깊어질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 누구도 연준의 조처를 탓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게 멈춰버린 시간, 공포가 극에 이른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처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위험에 투자했던 사람들의 위험을 메워주고 가뜩이나 심각한 양극화를 심화한 것이 공평했느냐 정당했느냐의 문제는, 일단 이 사태가 진정된 뒤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하준경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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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모가 될 ‘재정정책’

엄청난 통화정책을 동원했지만 상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이 위기의 시작이 전염병 확산과 실물 위기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전히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늘고 생산과 소비는 가로막혀 있습니다. “이전 위기는 대부분 실물자산 혹은 금융상품에서 촉발된 문제였기에 정책이 일종의 치료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부수적인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은 정책으로 시장의 변동성을 다소 억제한 뒤, 시간을 두고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해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IBK투자증권)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것만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재정정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통화정책이 경제 전반을 떠받치는 노릇을 한다면 재정정책은 좀더 세심하게 ‘누구에게,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재정은 세금이나 적자국채를 통한 미래 세대의 부담을 누군가 지금 당장 필요한 이들에게 다시 배분하는 일입니다. 논의가 필요하고, 통화정책보다 느립니다. 한 국가 안의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단순한 경제적 효과를 넘어 한 나라가 지향하는 가치나 사회의 모습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만들고 소비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실물을 떠받쳐야 합니다. 이건 재정정책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럼 누구를 위해 어떻게 재정을 써야 하는가. 세계경제 위기 때인 2009년 우리나라의 추가경정예산안을 다시 들춰봅니다. 55만2천 개의 공공 일자리 창출, 4대강 살리기 사업 투자가 눈에 띕니다. 일자리와 사회간접자본(SOC)은 나름 재정을 쓰되 사회 전반적인 생산성 확충이나 경기 활성화도 함께 해보겠다는 취지입니다. 교과서적입니다. 여기서 또다시 지금이 얼마나 독특한 상황인지 떠오릅니다. 움직임을 최대한 막아야 합니다. 평소 위기 때처럼 정부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공근로를 시키거나 공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대가 없는 수당을 지급하자는 논의가 부상합니다. 미국은 3월25일(현지시각) 국회에서 합의된 2조달러 규모(약 2500조원, 미국 GDP의 약 10%)의 경기부양책에 성인에게 최대 1200달러(약 147만원)씩 수표를 지급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중소기업 고용 유지를 위해 급여를 지원하는 정책도 포함됩니다. 생산과 소비가 멈춘 시간 정부가 월급도 주고 기업 비용도 챙겨주겠다는 겁니다. 규모가 엄청납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메인 스트리트(월스트리트(금융)와 대비해 실물을 이르는 말) 지원 프로그램”(래리 커들로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라는 평가가 과장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추경도 벌였지만 아직 액수는 미미한 수준입니다.

물론 사람들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으니 평상시보다 재정정책의 경기부양 효과는 느리고 제한적일지 모릅니다. 그러니 쓸모없는 짓일까요.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좋은 외부 효과를 위해 희생하는 개인과 기업에 일종의 보조금을 주는 것이라고 접근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경기 상황이 불확실한 만큼 기본 경제활동에서 사람들이 최대한 이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우석진 명지대 교수)

코로나 이후의 질문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의 모습이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이유로 사회적 고통을 분담하는 사람을 지지하는 것, 좀더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불완전하다고 해도 지금 재정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몸의 움직임이 멈춰버린 시간, 어느 때보다 격한 경제 충격과 전례 없는 정책 대응으로 머릿속만은 분주합니다. 코로나19가 지나가고 사람들은 다시 일하고, 만나고, 반기고, 즐길 겁니다. 그렇게 돌아온 세상의 모습은 사뭇 달라져 있을 것 같습니다. 실물경제의 약점 곳곳이 드러난 사회,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통화 팽창이 이뤄진 시장, 전에 없는 규모로 재정정책의 적극성을 시험해본 국가는 새로운 고민과 논란 속에 있게 될 겁니다. 아직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미래입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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