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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은 알고 있다

바이러스 유전체 정보 분석해 시각 데이터 제공하는 넥스트스트레인
등록 2020-03-28 14:30 수정 2020-05-02 19:29
코로나바이러스 전자 현미경 사진. REUTERS

코로나바이러스 전자 현미경 사진. REUTERS

“1918년 발병했던 ‘스페인 독감’이 전세계로 퍼지는 데는 몇 년이 걸렸지만 2020년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지는 데는 4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날이 진화하고 전례 없이 빠르게 퍼지는 바이러스는 인류를 두려움에 떨게 하지만 우리는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참혹한 전염병 유행의 한가운데서도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과학과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보다 더 빠르게 진보하는 과학, 나날이 더 빠르게 공유되는 정보는 우리가 막연한 공포에 빠지지 않게 도와준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에도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될 수 없었던 사람들. 사회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음지를 맴돌았던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그들의 고단한 ‘삶’ 자체다. 재난안전 문자메시지를 받을 모바일 기기가 없는 사람, 메시지를 받아도 읽을 수 없는 사람, 메시지를 읽었으나 실천할 수 없는 사람…. 과학기술은 게놈 분석으로 바이러스 전파 경로를 명확하게 보여주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 계급 간 경계도 명징하게 드러낸다. 이를 목도하는 우리는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아무리 건강해도 옆 사람이 아프면 같이 아파질 수 있다’는 사실, ‘감염병의 대명제’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진다. ‘평등한 건강권’의 중요성이 이렇게 또렷하게 드러났던 시기가 있었을까?
사랑은 아름답고 향기로운 순간을 함께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가장 깊은 상처에 입을 맞추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뛰어난 입지전적 인물의 성공 신화에 찬사를 보내고 우상으로 섬기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존립이 위협받는 순간에도 가장 약하고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듣고, 공감하고, 끌어안는 것이다.
과학의 진보에 걸맞은 사회의 진보를 이루고, 함께 살자.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중국 우한 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국에 있던 한국인을 통해 국내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고, 이후 한국에서 지역사회 감염 형태로 확산됐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유입된 경로는 크게 세 가지인데 우한시를 포함한 허베이성과 베이징, 그리고 광둥성이다. 우한 못지않게 많은 감염환자가 베이징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에서 감염환자가 발견됐을 때 이미 중국 전역에 코로나19가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 오는 중국인을 막는 방식으로는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중국 전역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는 자국민을 모두 막거나 격리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첫 환자 확인 이후 중국과의 교통을 차단하고, 중국을 방문한 사람들을 감시했던 이탈리아도 감염을 차단하는 데 실패했다. 영국과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을 통해 감염자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3월 말 현재 7만5천 명이 감염되고, 75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은 첫 번째 확진환자를 1월20일께 파악해 보고했지만 이미 그전에 한국에서 퍼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파악해 보고한 첫 환자는 지난해 12월 초에 확진됐지만, 11월 중순부터 이미 사람 사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파되고 있었다.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 연구원이 3월23일 오후 경기도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연구소에서 게놈 분석 도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 연구원이 3월23일 오후 경기도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연구소에서 게놈 분석 도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고용 불안과 가난, 차별과 낙인 같은 사회적 경험은 우리 몸에 질병 등을 통해 흔적을 남긴다’가 보건학의 명제라면, 유전학의 명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게놈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앞에서 쓴 것처럼 코로나19가 중국의 세 지역을 통해 들어왔다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은, 1월20일 첫 확진환자 이후 대한민국 보건 당국과 의료기관이 파악해 공개한 코로나19 감염환자 12명의 바이러스 게놈 정보를 통해서다. 게놈은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다.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를 합쳐 만든 단어인 게놈(Genome)은 한 생물체의 모든 유전정보를 의미한다. 독일 함부르크대학의 한스 빙클러 교수(식물학)가 이름 붙였기 때문에 독일어로 읽힌다. 한국에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유전체’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유전정보를 담은 책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사람 디엔에이(DNA) 게놈은 30억 개 염기서열로 이뤄진 반면, 코로나19 감염을 일으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는 3만여 개 염기서열로 구성됐다. 바이러스의 게놈은 DNA가 아닌 알엔에이(RNA)에 있다.

조류인플루엔자 정보 공유 지연을 반성하며

지난해 12월3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증례를 발표했다. 이후 이 바이러스의 게놈 정보가 진뱅크(GenBank)에 공개된 뒤 최근까지 3개월 동안 전세계 과학자들이 바이러스 연구와 임상시험에 나섰다. 진뱅크는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CBI)가 게놈 데이터를 모아 공유하는 데이터베이스다.

2006년 조류인플루엔자가 전세계에 퍼져 곳곳에서 인명 피해가 생겼지만, 당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 공유가 지연되면서 더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미국의 진뱅크와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 일본DNA데이터은행(DDBJ)보다 더 빠르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에 대한 요구가 쏟아지면서 과학자들이 구축한 것이 국제인플루엔자데이터공유이니셔티브(GISAID)다. 2008년 5월 열린 제61회 세계보건총회에서 GISAID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이후 GISAID는 감염병 유전체 정보 공유의 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코로나19가 전세계에서 유행해 175개국에서 감염환자 47만 명이 발생한 3월25일 오후 현재, GISAID에는 40여 개국에서 환자 1800명에게서 채취한 바이러스의 게놈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전체 감염환자 0.4%의 정보로 감염환자 집단의 특성을 완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분석 대상이 되는 검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편향(Bias)이 생길 수 있다. 게놈 정보를 파악해 공유할 여력이 없는 국가의 정보는 적게 포함되거나 누락될 수 있다. 통계상으로 8만여 명의 코로나19 감염환자가 발생한 중국에선 200건 넘는 게놈 정보를 공유했지만, 7만 명이 감염된 이탈리아에선 10건 남짓이다. 제한적이지만 바이러스 확산이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는 긴박한 상황에선 게놈 정보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떤 경로로 전파되는지, 변이를 일으키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최선의 정보다.

바이러스 게놈 정보는 시간이 지나고 전파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변하는데, 바이러스가 머무는 장소에 관한 정보도 게놈에 남는다. 앞서 게놈을 책에 비유했는데 이 책에 담긴 30만 개 정보의 배열이 비슷하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장소에서 전파된 바이러스로 볼 수 있다. 이 정보로 우리는 바이러스의 전파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

유전학 기초지식이 없는 사람도 직관적으로 구현된 지도를 보면 감염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에 공개된 프로그램인 넥스트스트레인(NextStrain)은 GISAID가 공유하는 정보를 실시간 분석해 쌍방향 시각 데이터로 보여준다.

미국 방역 실패 보여주는 시각화 자료

게놈 분야 전문가인 김태형 테라젠이텍스 상무는 에 “바이러스 게놈 정보뿐만 아니라 역학조사에서 파악한 감염환자의 국적과 나이 등 역학 정보를 결합해 감염 경로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GISAID를 구축한 이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 활용되는 것은 코로나19가 처음인데, 앞으로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게놈 정보 분석과 방역 대책 수립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넥스트스트레인 시각화 자료를 보면 전세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경로가 한눈에 보인다. 최근 확인되는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지역의 감염은 유럽 대륙에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감염 경로뿐만 아니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염환자가 많은 국가가 왜 방역에 실패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미국은 더욱 또렷하게 나타난다.

현재 7만 명의 감염환자가 발생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감염환자가 많은 미국의 방역은 지연된 검진에서 실패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워싱턴주 스노호미시에 거주하는 30대 남성이 1월19일 확진 판정을 받고 바이러스 게놈 정보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의해 GISAID로 공유됐다.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이 환자는 1월15일 중국 우한에서 미국에 돌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이후 워싱턴주에서 한 달 동안 코로나19 감염환자 게놈 정보 보고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워싱턴주에서 두 번째로 게놈 정보가 등록된 환자는 2월20일께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한 달 사이 워싱턴주에서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었음에도 보건 당국이 적극적으로 검사하지 않은 것이다. 워싱턴주에서 시작된 지역사회 감염이 미국 전역에 퍼져나가는 것을 게놈 지도로 확인할 수 있다.

넥스트스트레인 개발에 참여했던 트레버 베드퍼드 워싱턴대학 조교수(역학)는 이 사실을 미리 파악하고 2월 초 자신의 트위터에 “11월에 우한에서 확인된 코로나19 감염이 수천 건으로 확산하는 데 10주가 걸렸음을 고려하면, 1월 중순 최초 감염자가 확인된 미국에선 3월 말이 중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베드퍼드 교수의 분석에도 적극적인 방역에 나서지 않았다. 최근에는 중국발 미국 유입은 크게 줄었지만 유럽발 감염환자가 증가했다. 미국 정부가 전세계에 대한 여행경보를 최고 단계인 ‘여행금지’로 격상한 이유다.

문제의 31번째 환자

이렇게 넥스트스트레인의 분석으로 더 빠르게 코로나19 바이러스 게놈 정보를 공유하고 보여줌으로써 전세계 방역 현장에서 일하고 연구하는 역학자, 과학자, 유전학자, 바이러스학자 등에게 도움을 준다. 현재 감염환자 1500명의 바이러스 게놈 정보가 분석돼 있다. 넥스트스트레인은 분석 자료를 통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지역에서도 확진자는 계속 증가하지만 그래도 중장기적으로 증가세를 둔화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계속 실천해야 한다. 코로나19 유행에 맞서 싸우기 위해선 과거와 현재의 모든 감염을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이러스 게놈 정보 분석으로는 역학조사로 밝히지 못한 감염 경로를 규명할 수도 있다. 대구에서 신천지교회 신자로 ‘다수 전파 환자’로 지목됐던 31번째 환자(61)가 어떤 경로로 감염됐는지 알 수 있다. 보건 당국은 조사를 통해 31번째 환자보다 앞서 코로나19에 감염된 전파자가 있었기에, 31번 환자는 대규모 감염을 초래한 ‘지표 환자’가 아닌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김태형 상무는 “감염환자는 역학조사에서 실수로 중요한 정보를 말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디에 갔는지 기억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감염환자의 바이러스 유전체만 있으면 게놈 정보 분석으로 감염 경로를 밝히고 지도로 그려낼 수 있다”고 했다.

불확실성을 낮춰 얻는 침착함

코로나19의 확산 경로를 찾기보다는 지역사회 감염환자를 찾아 치명률을 낮추는 ‘봉쇄’ 전략을 택하는 한국의 보건 당국 처지에선 감염 경로를 규명하는 작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기술적으로는 동시에 1천 개의 바이러스 게놈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분석할 유전체가 없다. 환자 검진과 치료로 분주한 의료 현장에서 연구를 위한 유전체를 수집할 여유가 없어서다. 한 보건학자는 에 “다음에라도 유전체 분석 연구를 진행하려면 현장에서 유전체를 폐기하지 않고 정리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테라젠이텍스 같은 유전체 연구 회사들은 게놈 정보를 활용해 한국에서 코로나19 감염 경로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얻는 정보는 코로나19의 불확실성을 낮춰준다. 불확실성을 낮춰 얻을 수 있는 것은 침착함이다. 바이러스 게놈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코로나19는 가까운 시일 내에 종식되지 않고 계속 지역사회 감염이 산발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치료제와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인류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자료


코로나19 바이러스 지도


한국에서 등록한 코로나19 환자 12명의 바이러스 게놈을 분석한 전파 경로 지도. 파란색 동그라미가 한국 감염환자의 바이러스 게놈.

한국에서 등록한 코로나19 환자 12명의 바이러스 게놈을 분석한 전파 경로 지도. 파란색 동그라미가 한국 감염환자의 바이러스 게놈.

전세계 코로나19 감염환자 1231명의 바이러스 게놈 정보를 토대로 전파 경로를 시각화한 지도.

전세계 코로나19 감염환자 1231명의 바이러스 게놈 정보를 토대로 전파 경로를 시각화한 지도.

전세계 코로나19 감염환자 1231명의 바이러스 게놈 정보로 그린 지도.

전세계 코로나19 감염환자 1231명의 바이러스 게놈 정보로 그린 지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난해 12월 전세계로 어떻게 확산했는지를 보여주는 ‘게놈(유전체) 지도’다. 알록달록 예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코로나19에 걸린 지구촌 모습은 절대 아름답지 않다. 전세계 과학자들은 바이러스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기 위해, 2008년 비영리기구 국제인플루엔자데이터공유이니셔티브(GISAID)를 세웠다. GISAID에는 2020년 3월26일 현재까지 1453명의 감염환자에게서 확인한 코로나19 바이러스 게놈 정보가 공유돼 있다. 이 정보를 온라인에 공개된 프로그램 넥스트스트레인(Nextstrain)으로 분석해보면 전세계에 퍼진 코로나19의 전파 경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자료: 국제인플루엔자데이터공유이니셔티브(GISAID),
넥스트스트레인(Nextstrain), 일부 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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