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일상 멈춤, 환불되나요?

운영 중단·축소된 유치원, 학원, 운동시설, 대학
‘코로나19 환불·반환’ 어디까지 인정될까
등록 2020-03-28 13:15 수정 2020-05-02 19:29
서울시청 광장에서 중소상인·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코로나19 때문에 매출이 줄어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며 정부에 임차인 지원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서울시청 광장에서 중소상인·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코로나19 때문에 매출이 줄어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며 정부에 임차인 지원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집에만 있으니 애들이 미쳐간다.”
초등생 셋을 키우는 한 학부모의 푸념이다. 코로나19는 개개인의 반복된 일정이 쌓아온 ‘일상’이라는 톱니에서 바퀴 하나씩을 빼갔다. 바이러스로 시작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은 멈추고, 중단하고, 단절했다. 특히 정시에 시작해서 정시에 끝나는, 반복된 삶을 사는 이들의 일상이 바뀌었다. 출근하던 직장인과 등교하던 학생은 각각 집을 회사와 학교로 삼게 됐다. “일어나라”는 등교 전 부모의 잔소리는 “온종일 휴대전화만 보냐”는 한탄이 됐다. 출근하지 못한 직장인은 유치원을 가지 못한 아이가 하루 종일 뛰는 층간 소음에 시달리며 사실상 ‘자가격리’ 재택근무를 이어간다.
코로나19가 만든 ‘비일상의 일상화’로 경제부터 심리까지 사회적 우울 현상(코로나 블루)을 겪고 있다. 때론 불안함이 분노로 바뀌기도 하지만 우리는 또 다른 비일상을 일상처럼 살아내고 있다. ‘코로나 블루’는 봄이 되면 ‘그린’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박영주(가명)씨는 지난 1월 등록한 서울의 한 헬스장 이용을 연기할지, 아니면 환불할지 고민 중이다. 박씨가 다니는 헬스장은 다수가 함께 운동하는 GX(Group Exercise)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헬스장 1년 치를 등록하면 무료 수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박씨는 퇴근 뒤 일주일에 세 차례 방송댄스와 요가 수업을 들었지만, 해당 프로그램은 3월 초 충남 천안에서 줌바댄스 강사와 수강생이 무더기로 코로나19로 확진된 뒤 운영을 멈췄다. 3월23일부터는 정부 권고에 따라 운동복과 수건은 물론 샤워실과 탈의실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정부는 4월5일까지 종교시설과 일부 실내 체육시설 등에 사실상 강제로 운영 중단을 권고했다.

대학생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코로나19로 수업의 질이 하락했다”며 등록금 환불, 학자금 대출금리 인하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생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코로나19로 수업의 질이 하락했다”며 등록금 환불, 학자금 대출금리 인하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년에 50만원인데 하루에 1만원씩 제하다니

박씨가 다니는 헬스장은 영업을 중단하는 대신 마스크를 쓴 고객에 한해 헬스장을 이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 채 운동하는 것이 불편하고, 주로 이용하던 GX 프로그램도 없어 헬스장에 가지 않게 됐다. “언제 코로나19가 종식될지 알 수 없어 집에서 운동하는 것”으로 대체하려던 박씨는 헬스장에 환불을 문의했다가, 회원권을 일시 중단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다시 환불에 대해 물어보자, 헬스장은 박씨에게 헬스장 1일 입장료인 1만원에 박씨가 헬스장을 이용한 날수를 곱한 금액을 제외하고 환불해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1년 회원 등록비 약 50만원에서 3개월분을 제외한 9개월 치 금액을 돌려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박씨의 계산과는 차이가 컸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생존과 건강에 집중됐다. 자연스레 삶에 필수가 아닌 서비스에는 자의, 타의로 발길이 끊겼다. 어떤 서비스는 중단됐고, 어떤 서비스는 대체됐다. 갑작스레 닥친 재난에 애초 기대한 것과 다른 서비스를 마주하게 된 소비자의 환불 요구가 쏟아졌다. 사업자도 운영비는 그대로 나가는 터라 갑작스럽긴 마찬가지였다. 환불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코로나19 초기엔 여행 관련 숙박, 결혼식 등 일시적인 행사에서 환불 논란이 있었다. 코로나19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일상에서 월 단위, 연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는 유치원, 학원, 학습지, 운동시설 등으로 환불 요구가 번졌다. 학원은 상대적으로 논란이 적었다.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시행령’(학원법)에 따라 학원은 환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학원법에 따르면, 교습을 시작하기 전에 낸 교습비 등의 전액을 반환하고, 총교습시간의 3분의 1을 지나기 전에는 이미 낸 교습비 등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반환한다. 또 총교습시간의 2분의 1을 지나기 전에는 낸 교습비 등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총교습시간의 2분의 1이 지난 뒤에는 반환하지 않는다. 어린이집도 국가가 보육료 전액을 보조하기 때문에 반환 논란에서 비켜나 있다.

유치원 자녀에게 피해 갈까 항의도 못해

문제는 환불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유치원이었다.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에 따라 해당 유치원에서 원비를 결정하고, 법적으로 특별활동비·현장학습비 같은 수혜성 경비 외에 수업료는 환불 대상이 아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3월10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수업료는 1년(12개월)분을 12분의 1로 나눠 월수업료로 내는 것”이라며 “휴업을 했지만 수업 일수가 감축이 안 된다는 전제하에 전체로 보면 수업료가 반환될 이유는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상당수 유치원에선 코로나19로 인한 ‘휴업’ 기간의 원비를 다음달로 이월하거나 일부를 돌려줬지만, 수혜성 경비조차 돌려주지 않는 곳도 있었다. 제각각인 기준에 학부모들은 불만이 생겨도, 자녀에게 피해가 갈까봐 크게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5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김은영(38·가명)씨도 2월 중순부터 유치원에 딸을 보내지 않지만 ‘환불’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김씨는 3개월 치 원비 36만원가량을 냈는데, 3월엔 아이를 유치원에 하루도 보내지 않았다. 4월로 개원이 연기되기 전인 3월 초에 보낸 가정통신문에는 출석 일수에 따라 4월 원비를 감액해주겠다는 공지가 올라왔으나, 2월분 이야기는 없었다. 김씨는 “정부에서 휴원하는 5주간의 사립 유치원 원비를 지원해주겠다고 했으니 3월분은 돌려받을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김씨는 2월분은 환불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반환’ 요청 목소리가 가장 크게 나오는 곳은 대학가다. 상당수 대학은 코로나19가 퍼지자 2주 동안 개강을 연기하고, 그 뒤 2주는 온라인 강의 방식을 선택했으나, 코로나19가 안정화 단계에 이르지 않자 온라인 강의 기간을 연장했다. 서울대·중앙대·경희대·한국외국어대·숭실대 등은 온라인 강의를 2주 더 연장해 4월13일부터 대면 수업을 하기로 했다. 성균관대는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대면 수업을 무기한 연기했다.

애초에 비싼 등록금에 대한 거부감이 큰 상황에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대면 수업보다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 사이에선 “비싼 등록금 내고 이런 강의를 들어야 하냐”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대학알리미 대학정보공시를 보면 2019년 평균 등록금은 약 670만6200원이다. 한국 사립대학 등록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 때문에 사회에 진입하기 전부터 과도한 빚을 안게 된다. 2018년 2학기~2019년 1학기에 학자금대출을 이용한 일반대학·교육대학 학생은 46만 명이 넘는다. 등록금은 이렇게 비싸지만, 사립대학이 쌓아놓은 적립금은 2018년 기준 7조8260억원이다. 2011년부터 실시한 등록금 인상 억제로 재정난에 시달린다고 호소하지만 학교에 수천억원씩 쌓아두는 셈이다.

상당수 헬스장이 정부 권고에 따라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이용객과 환불 마찰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상당수 헬스장이 정부 권고에 따라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이용객과 환불 마찰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160만원짜리 두 과목 중 하나만 화상 수업

온라인 강의에 대한 불만은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더 비싸고 실기·실습 수업이 많은 예체능대학과 공과대학 등에서 더 클 수밖에 없다. 올해 서울의 한 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한 정아무개(19)씨는 강의실이 아닌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강의를 듣는다. 이번 학기에 17학점을 듣는 정씨가 수강한 강의는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대학의 첫 학기 수업에서 정씨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방적인 동영상 강의는 집중도가 떨어지고 2배속으로 듣다보니 제대로 이해하는 건지 모르겠다. 녹화 강의라서 수업 중에 질문할 수도 없다. 수업 동영상에 나온 교수의 이름과 강의 계획서에 올라 있는 교수의 이름이 다른 것을 본 날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한 교수가 수업에 사용한 파원포인트(PPT) 자료 첫 화면엔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다른 교수의 이름이 쓰여 있기도 했다. 정씨는 “EBS 온라인 강의 수준도 안 돼 등록금이 아깝다. 학교 커뮤니티에도 등록금을 반환하라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고 말했다. 정씨가 입학하면서 낸 학비는 약 450만원이다.

실기가 포함돼 온라인 수업만을 진행하기 어려운 강의는 대부분 실기 수업을 잠정 연기하고 이론을 먼저 배우는 식으로 강의 계획을 조정하지만, 대면 수업이 또 연기되면서 한계를 맞기도 한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오연희(24·가명)씨는 졸업을 앞두고 3학점짜리 두 과목을 160만원가량 내고 듣고 있다. 실습 위주인 한 과목은 현재 수업을 안 하고, 다른 과목은 2주 동안 과제를 발표하는 방식의 화상 수업으로 대체했다. 오씨가 말했다. “디자인은 색감이 중요해서 교수에게 직접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화면에 따라 색감이 달라 보일 수 있어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

오씨가 듣는 디자인 강의는 구글 라이브로 진행되는데, 참여 인원이 20명이 넘으면 끊김 현상이 생긴다. 교수의 말이 몇 초간 진행되다 끊기는 식이다. “강의실에선 교수가 학생들의 반응을 보고 학생이 수업을 이해했는지 판단할 수 있는데, 화상 강의에선 학생들이 (자기 얼굴이 나오는) 화면을 다 꺼두기 때문에 사실상 교수 혼자 말하는 식이다.”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 중국인 유학생들은 구글에 접속하지 못해 수업을 듣지도 못한다. 코로나19 이전엔 밤늦게까지 썼던 실기실, 컴퓨터실, 영상편집기도 사용할 수 없다. 오씨는 “친구끼리 이 정도면 ‘사이버대학’ 아니냐고 자조한다. 대면 수업을 할 때도 등록금이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니 더 아깝다. 등록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가 2월27일부터 3월6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참여인원 1만4785명)를 보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학의 대응 조치에서 입는 피해(중복 응답)에 대해 “실기·실습·실험 등 온라인 대체가 불가한 수업 대안 미비”가 47.9%, “온라인 수업 대체로 인한 수업 부실”이 45.2%였다. 또 응답 학생의 85%가 “등록금 반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다현 전대넷 공동의장은 “2월과 3월 교육부와 청와대 관계자를 만나 학생들의 등록금 반환 목소리 등 설문조사 결과를 전달하고, 각 대학의 코로나19 대책위원회에 학생들을 포함할 것을 교육부 차원에서 대학에 권고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등록금 반환 고려 안 해”

실질적으로 등록금을 돌려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등록금 반환 근거 규정은 ‘대학 등록금에 관한 규칙’을 들 수 있는데, 해당 규칙의 제3조 1항 3호를 보면 천재지변 등으로 인해 등록금 납입이 곤란하다고 인정할 때는 등록금을 면제하거나 감액할 수 있다. 하지만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르면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은 사회재난에 해당해 위 규칙의 적용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 차원에서 반환을 강제할 수도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등록금을 책정하는 건 학교장의 권한이기 때문에 교육부에서 강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개강 연기로 수업 시수가 일부 줄었다고 등록금을 반환받기도 쉽지 않다. 같은 규칙 제3조 5항엔 “학교의 수업을 전학기 또는 전월의 전 기간에 걸쳐 휴업한 경우에는 방학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당 학기 또는 해당 월의 등록금을 면제한다”고 돼 있지만, 현재 대학이 휴업이 아닌 온라인으로 강의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이름 밝히길 꺼린 한 변호사는 에 “대학들이 강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조항을 적용해 감액을 요구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관계자도 “등록금 반환 여부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