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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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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봄을 넘겨봅시다

제일 먼저 기본소득 의회 통과한 전주 리포트
등록 2020-03-28 04:17 수정 2020-05-07 01:37
전북 전주시는 중위소득 80% 이하인 5만 명에게 52만7158원을 체크카드에 담아 지급한다. 전주 시내에서 3개월 동안만 쓸 수 있다.

전북 전주시는 중위소득 80% 이하인 5만 명에게 52만7158원을 체크카드에 담아 지급한다. 전주 시내에서 3개월 동안만 쓸 수 있다.

1348년 여름, 페스트(흑사병)가 영국을 엄습했다. 에드워드 3세는 흑사병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이를 위한 기도회를 주관해달라고 따로 요청할 정도였다. 교회별로 “동부에서 비롯된 흑사병의 재앙이 당도했다 하니 성심을 다해 쉼 없이 기도하자”는 독려가 이어졌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흑사병이 휩쓸고 간 자리, 결국 영국 인구의 반만이 목숨을 건졌다. 그런데 비극 속에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었다. 흑사병으로 농노(봉건영주에게 예속된 농민) 수가 줄면서 생살여탈권을 쥐고 흔들던 봉건영주의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기록은 이렇게 전한다.
“1349년 창궐한 페스트로 숨진 사망자가 많아 영지에 소작농이 둘밖에 없었다. 농노들은 당시 영주이자 수도원장이던 사제가 새로운 계약을 맺지 않으면 떠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소작농 ‘둘’은 가혹한 노역과 낮은 임금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포용적 시장’을 향한 희망의 단초는 흑사병이라는 재난과 만나 자라났다. 경제학자인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는 이를 “흑사병은 대형 사건이나 요인이 한데 어우러져 기존 사회의 경제 또는 정치 균형을 뒤흔들어놓는 결정적 분기점”이라고 했다. 물론 애쓰모글루 교수의 말에 담긴 결정적 분기점이 선의를 담고 있지는 않다. 흑사병이 휩쓴 죽음의 행렬이 유럽 곳곳을 누볐지만 이후 모든 농노의 삶이 영국 같지는 않았다. 같은 시기 동유럽 영주들은 줄어든 농노의 노동력을 더욱 강하게 통제했다. 가혹한 수탈은 수백 년 더 이뤄졌다.
그리고 우리 앞에 코로나19가 있다. 예상치 못한 논쟁 하나가 우리 앞에 놓였다. 기본소득. 어쩌면 우리도 어떤 분기점에 섰는지 모른다. ‘재난’이라는 특수성과 ‘기본소득’이라는 보편성이 맺은 형용모순은 어떤 결과에 다다를까. 이름은 중요하지만 또 중요치 않다. 긴급재난소득에 3명 중 2명이 찬성하는 여론은 원래 의미의 기본소득을 소환하고 또 되짚을 것이다.
또 600년이 지나면, 누군가는 지금을 어떻게 그려낼까.
흑사병이 영국을 집어삼킨 1348년, 이 땅 고려(충목왕 5년)에는 굶주린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진제도감이 설치됐다.
전주=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참고 문헌: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지음, 시공사 펴냄, 2012

처음부터 기본소득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길을 가다보니 누가 수렁에 빠져 살려달라고 그래요. 어떡할까요.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저 사람 구해도 되겠소’ 물어요? 일단 손 내밀고 꺼내놓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김승수 전주시장)

살리기 위해 필요한 무엇이든, 일단 해보자는 것이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시민의 삶이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시민의 삶이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1월28일, 확진자 4명.(이하 전국 통계)

전북 전주시가 전국 4대 거점 관광도시로 이날 선정됐다. 시청에 펼침막이 내걸렸다. 한옥마을에서 오징어튀김을 파는 ‘오짱’을 운영하는 강성한씨는 3월 벚꽃이 피면 발 디딜 틈이 없는 거리를 상상했다. 한옥마을 한 해 관광객은 1천만 명에 이른다. 그중 절반 이상이 봄에 몰린다. 하지만 시 간부회의에선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흘렀다. 중앙정부는 이미 “과하다 할 정도로 대응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침으로 분주했다.

2월2일, 15명.

한옥마을에 사람이 없다. 전주역 앞도, 전주영화제 준비로 분주해야 할 전주시청 건너편도 마찬가지다. 1·2층 300석 규모의 대형 중식당인 ‘이중본’의 이충재 실장은 이날 상황이 간단치 않음을 직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현재 위치로 옮겨왔지만 당시에도 사람들이 지금처럼 외식을 줄이지는 않았다. 지난 주말 약속이나 한 듯 예약석은 텅 비었고, 손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2월12일, 28명.

한옥마을 건물주 14명이 임대료를 논하러 이날 모였다. 2010년 중반 이후 젠트리피케이션(기존 영세 원주민과 세입자들의 내몰림 현상)으로 가게들이 문 닫게 되자, 시에서 여러 혜택을 제안했지만 허탕이었다. “우리한테 해준 게 뭔데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냐”며 꼼짝도 안 하던 그들이었다. 코로나19 위기가 역설적으로 돈 있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양보를 이끈 계기가 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손님이 끊기면서 임차인 대다수가 임대료를 낼 상황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감지한 시는 35개 동장을 움직였다. 이날만 건물주 14명이 적게는 10%, 많게는 절반까지 각자 형편에 따라 임대료를 깎았다(2월14일 전주시 전체 78명 건물주 135개 점포로 늘어났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깎은 임대료를 세제 혜택으로 보전할 계획을 밝혔다).

건물주로 1곳, 임차인으로 2곳의 가게를 운영하는 강성한씨가 한 달 감당해야 하는 임대료는 1천만원이었다. 2주 연속 하루에 꼬치 10개 남짓 팔아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다. 이번 달엔 생활비를 집에 가져가지 못했다. 정부가 내놓은 소상공인대출을 신청했지만 그것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못할 듯싶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휘청거리니, 임금노동자들도 거리로 나앉기 시작했다. ㅂ씨는 시간제로 일하던 식당을 그만두기로 했다. 2주 동안 손님이 들지 않았다. 시간제로 일하는 사람부터 떠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됐다. 주중 5시간, 주말 11시간 쉼 없이 일한 게 13년이었다. 여기서 번 월 15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모아 대학 등록금을 냈다. 집에 손을 내밀지 않고 대학에 다닌 것도 식당 시간제 일자리 덕분이다.

2월21일, 104명.

전주에서도 첫 확진자가 나왔다. 한옥마을에 휴업하는 업소가 속출했다. 강씨 가게 3곳의 직원 5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강씨가 가게를 1곳만 남기기로 했다. 남을 수 있는 사람은 1명이었다. 긴 의논 없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막내 ㄱ씨가 남았다. 떠나는 넷은 사장 강씨를 원망하지 않았다. 점장의 경우 30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아갔다. 나가기로 결심한 넷 중 하나인 ㅇ씨만 해도 250만원 정도를 받았다. 물론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도, 차상위계층도 아니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 관광객이 돌아오고, ㅇ씨도 다시 꼬치를 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5년 동안 일한 곳이다.

3월25일 전주 한옥마을에 방역이 이뤄졌다. 방역 인력을 제외하고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3월25일 전주 한옥마을에 방역이 이뤄졌다. 방역 인력을 제외하고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2월29일, 2337명(28일 밤 기준).

시장실이 바삐 움직였다. 무너지는 것은 한옥마을만이 아니었다. 전주시 자영업자 비율은 전체 경제인구의 40%에 이른다. 착한 임대인 운동이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밑바닥 곡소리는 더욱 깊고 크게 전주 땅을 울렸다.

전주시 202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영업시간, 고객수, 매출액, 공공요금 등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2월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월 매출액은 지난해 12월보다 평균 51.4% 줄었다. 매출액은 절반이지만 장사하는 처지에서 손에 쥔 돈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수치로도 드러난다. 순이익 평균이 85.1% 날아갔다. 숫자는 또 다른 현실을 말했다. 수도요금도 9.5% 줄었다. 손님이 오지 않으니 물을 쓸 필요가 없었다. 전기요금은 상대적으로 덜 줄었다(5%). 손님이 오지 않아도 문을 열어둬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이재웅 전 쏘카 대표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재난기본소득 50만원을 지급해주세요”로 시작했다. “코로나19 감염 공포로 인한 경제위기는 심각하고, 사람들은 일자리의 위기, 소득의 위기, 생존의 위기다. 경계에 서 있는 소상공인, 프리랜서, 비정규직, 학생, 실업자, 1천만 명에게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집세를 낼 수 있는, 아이들을 챙길 수 있는, 집에서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는 소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글을 본 김승수 전주시장은 간부회의에서 제안했다. “50만원, 우리가 한번 마련해봅시다.”

3월10일, 7513명.

새벽 4시, ㅂ씨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 식당을 그만둔 뒤로 화요일과 금요일 일주일에 이틀은 인력소개소에 나가 일자리를 구해볼 생각이었다. 도착하니 새벽 4시30분, 이미 스무 명 남짓 모여 있었다. ㅂ씨는 식당에서 일하기 전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했다. 미장을 금방 익힐 정도로 손재주가 좋고 건장해, 새벽에 나가면 그는 늘 우선순위에 들었다.

그런 그가 해가 뜨고 마지막 호출이 있고 나서도 한참을 소개소 사무실을 떠나지 못했다. 그때까지 일을 구한 이는 둘뿐이었다. 사무실을 나섰다. 좀더 아껴서 저축하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ㅂ씨가 인력소개소까지 나선 것은 코로나19 여파가 같이 사는 아버지한테까지 미쳤기 때문이다.

전기 배선 일을 하는 아버지가 1월 중순부터 일감을 얻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ㅂ씨만 벌어도 가구 수입이 400만원이 넘었다. 다른 지방에서 공기업에 다니는 누나까지 거들지 않아도 먹고살 만한 정도라고 생각했다. ㅂ씨는 원래라면 내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딸 것이고, 부동산 일을 했을 것이다.

비슷한 시각 전주시의회 본회의장. 김승수 전주시장이 의원들 앞에 섰다. 전주형 재난기본소득 시행 계획을 밝혔다. 코로나19 조기 극복을 위한 긴급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제안하면서다. 시의회는 의회 ‘패싱’ 논란이 일었다. 시 재정에 필요한 250억원을 현금으로 나눠주겠다는 결정을 시의회와 논의 없이 결정한 것에 대한 책임을 따졌다. 시에서 추경에 넣은 재난관리기금 100억원이 사용 가능한지도 문제였다.

시도 모르지 않았다. 재정자립도 30%에 불과한 전주시는 중앙정부에서 내려주는 교부금 이외의 재원이 필요했다. 재난관리기금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곤궁에 쓸 수 있느냐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 지금까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근거해 의무적으로 확보하도록 한 재난관리기금은 주로 태풍이나 홍수, 대설 등 물리적 피해 복구에 써왔다.

3월 초부터 재난기본소득 검토를 시작한 담당 부서에서는 재난관리기금 운용의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의 유권해석 없이 쓰기는 어렵다고 했다. 김 시장이 직접 나섰다. 행안부의 해석 없이 시의 담당 부서가 아닌 기획조정국 라인을 통해 시장, 정무부시장, 기획조정국 등이 기안해 재난관리기금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주무 부서 실무자들이 추진했을 때 추후 감사 등 피해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김 시장의 발표 이후 다른 지자체에서 문의가 쏟아졌다. 기금을 써도 되냐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김 시장은 “지자체마다 사정이 다르니 (재정적 고려나 법적 엄밀성보다) 정치적으로 결단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추경으로 100억원의 재난관리기금이 들어갔다(실무적 우려는 엿새 뒤인 3월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수도권 방역 대책회의’에서 전주시 사례를 예로 들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이외에 교부금 150억원과 보조금 131억원, 잉여금 162억원, 예비비 13억5천만원을 포함했다.

목적도 분명히 했다. 3월4일 중앙정부의 11조7천억원 규모의 추경이 기준이 됐다. 중앙정부의 주요 지원 항목은 긴급 경영자금 융자 확대 등을 포함한 자영업자 경영·고용 유지 지원,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지원, 아동·양육수당 관련 지원, 노인 일자리 지원 등이다. 전주시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나머지 삶을 챙기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렇게 정부 지원에서 제외되는 중위소득 80% 이하 실업자, 비임금노동자, 비정규직 등을 따져보니 5만 명(65만 명 기준 6.7%)이었다.

이름은 ‘기본소득’ 그대로 했다. 생계비지원, 긴급구호비 등으로 이름을 바꾸는 게 실무적으로 어렵지는 않다. 기본소득 이름을 고집할 때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릴 위험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보편성’이라는 기본소득의 본질과 배치되는 지급 기준과 형태라는 것도 이미 알았다. 하지만 전주시는 중위소득에서 삶을 영위한 시민이 잠시 재난으로 곤란을 겪을 때 그들의 자존감을 건들지 않고, 시에서 표나게 구제하는 모양새를 내지 않고 돕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기본소득은 그에 걸맞은 명칭이었다. 52만7158원을 받은 개별의 삶이 구호받고 도움받을 처지에 내몰린 사람이 아니라, 당당하고 거침없었으면 하고 바랐다.

3월13일, 7979명.

전주시의회가 열렸다. 추경안 표결을 하기 위해서다. 시장이 제안한 지 사흘 만이었다. 시의회는 재난기본소득 지원금 263억5천만원 등 총 556억5790만원 규모의 긴급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전주시의회 예결위원장인 김남규 의원은 “의회와 상의도 없이 일단 발표부터 한 것 때문에 반대 목소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다만 절박한 상황에서 나오는 긴급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시의회는 역발상으로 응했다. 시에서 제안한 50만원에 2만7158원을 보탰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한 최소한의 기준인 1인 가구 생계급여에 따른 것이었다. 3월13일 제368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전주시가 편성한 ‘긴급생활안정 전주형 재난기본소득 지원금’ 263억5790만원은 이렇게 통과됐다.

시의회가 ‘패싱’ 논란을 증액한 추경안으로 되받은 이면에는 전주시가 시의회 납득이 가능하도록 현장조사를 통해 ‘소득절벽’의 현실을 알린 노력이 있었다. 또한 총선을 앞두고 전주시 유권자의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시의회가 발목을 잡기 부담스러웠다.

시의회 쪽에서 지난해 8월30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해 제정한 ‘전주시 저소득주민의 생활안정 지원조례’도 근거가 됐다. 조례를 보면, 제2조에 “전주시장은 전주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및 자생단체 등의 자원을 활용하여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다. 제4조에는 지원 대상자로 “예기치 못한 재난, 사고 및 실업, 사업 실패, 질병 등으로 생계 유지가 어려워 긴급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규정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을 예상이라도 한 듯 사회안전망을 위해 예비된 규정은 시장, 시의회의 이례적인 정치 결정에 합법성을 부여했다. 추경안이 편성됐지만, 재원 문제는 안팎으로 여전히 논란이다. 김 시장은 간부회의에서 말했다.

“과문해서 그런지 몰라도, 단 한 번도 국가나 도시가 돈이 많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우리는 부자 도시가 아니에요. 임대인 운동 다음에 임차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 못지않게 임차인과 일했던 직원들, 혹 거리로 내몰린 그 사람들을 찾아 도움을 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다혜(25·왼쪽)씨와 전유정(25)씨는 한옥마을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80% 이하 소득자인 그들은 건강보험료 심사를 통해 재난기본소득을 받게 될 것이다.

우다혜(25·왼쪽)씨와 전유정(25)씨는 한옥마을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80% 이하 소득자인 그들은 건강보험료 심사를 통해 재난기본소득을 받게 될 것이다.

3월24일, 9037명.

전주에도 벚꽃은 피었다. ㅂ씨는 벚꽃이 핀 길을 걸어 학교 앞 가게에서 크로켓 2개를 골랐다. 커피도 한 잔 손에 들었다. 점심밥이다. 금방 1만원이 찼다. 갈 곳도 없었다. 자신이 다닌 대학의 도서관은 문을 열었다. 거기서 부동산중개사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저녁 8시께, 집에 들어갔다. 저녁은 굶었다. 어제는 점심으로 3500원짜리 라면을 먹었다. 김밥을 먹을까 잠시 망설였다. ‘52만원이 나오면 어떻게 써야 할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제가 받을 수 있긴 한 거죠?” 기자에게 물었다. 지급 기준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100%란 없다. 선정 기준은 여러 논쟁 중 하나일 정도로 어려운 문제다. 선정한다는 것 자체가 기본소득 취지(보편성)에 맞지 않다.

이와 관련해 전주시의 입장은 분명하다. 재난기본소득의 틀을 짜고 시행하는 업무를 총괄하는 민선식 복지환경국장은 “재난기본소득 기준은 부정 수급자를 걸러내는 게 목적이 아니다. 필요한 사람을 찾아서 빨리 지급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했다. “정밀성을 위해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한 정부의 추계를 전주시 상황에 맞게 적용했다”며 “건강보험료 자료를 기준으로 지난해 소득 중간의 80% 이하에게는 무조건 지급한다. 또 지난 2개월 동안의 중위소득을 따져 100%에서 80% 이하로 급감한 사람들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신청도 쉽게 하도록 했다. 건강보험료 기준 중위소득 80% 이하는 주민등록등본과 함께 건강보험료 납부확인서, 피부양자라면 건강보험 득실확인서를 내면 된다. 다만 정확히 중위소득 100% 아래에서 80% 사이에 있다가 80% 이하로 떨어진 사람들은 소득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내야 한다. 이 가운데 일시적인 실업자는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구직활동 증명서 등), 폐업한 업주는 휴폐업 확인서가 필요하다.

민 국장은 “4월 초 신청 접수를 시작하면 기존 80% 이하의 시민들은 지급까지 열흘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신청 기준을) 최종 점검하는 중”이라고 했다. 소득이 급감한 사람들도 4월 말까지는 소득의 감소폭을 따져 지급할 예정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250만원에 조금 못 미치는 월급을 받다가 수입이 없어진 ㅇ씨는 지원 대상 중 100%에서 80% 이하로 소득이 급감한 경우에 해당한다. 13년 아르바이트 경력의 ㅂ씨, 한옥마을에서 만난 한식당 2년짜리 알바생 박 아무개씨, 농식품 매장에서 일하는 스물다섯 동갑내기 우다혜씨와 전유정씨는 80% 이하에 해당한다. 심사를 거쳐 52만7158원이 담긴 카드를 받게 될 것이다(정부 지원을 받은 경우 제외, 학생은 부양 가족이 있는 경우 심사 거쳐 지급).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쪽의 비판은 계속된다. 생계비로는 턱없이 모자라고, 소비 진작 등 경기부양 효과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데 전주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는 주장이다. 차라리 기업 지원에 집중해 일자리를 지키고, 사회간접자본(SOC) 등 건설 경기를 일으키는 게 확실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2009년 국민 1인당 1만2천엔(13만4천원·18살 이하 65살 이상은 1인당 2만엔)을 지급했지만, 3분의 1 이상이 소비되지 않아 사실상 실패로 평가하는 일본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주시는 지역화폐가 아니라 지역은행(전북은행)의 체크카드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지역 한정(전주시), 기간 한정(3개월 뒤 남은 잔액은 환수), 업종 한정(유흥주점과 귀금속 등 현금화가 가능한 업종 사용 제한) 등을 뒀다. 하지만 김 시장은 거듭 “경기부양은 나중 일이다. 일단 삶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고 했다. 한계도 분명하다. 3개월이 지나면 그다음은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때까지 함께 버티는 최소한의 숨구멍을 만든 것이다. 김 시장에게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들었다.

“코로나 사태가 다 해결돼 그렇게 되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때 또 생각해봅시다.”

52만3천원의 소진 기한인 3개월 뒤 코로나19가 종식되리라는 믿음만으로 위기를 헤쳐나갈 수는 없다. 3월24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소득과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도민에게 1인당 10만원씩 지급하는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 지급 계획을 발표한 뒤로 여주시(10만원), 광명시(15만원), 이천시(15만원) 등이 동참하고 있다. 이는 전주시나 서울시와 달리 선별적 정책이 아닌, ‘재난’이라는 조건이 붙은 본질적인 의미의 기본소득에 더 가깝다.

<한겨레21>이 전주에서 만난 임대인과 임차인, 실직한 직원 등에게 중요한 건 세제 혜택도, 임대료 혜택도, 기본소득도, 다른 생계비 지원도 아니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그냥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전주=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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