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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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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보내기 싫다, 욕망과 수단

배정 학교 피하려 민원 폭탄 투하하다가 법적 소송까지,
합법적으로 이사·불법으로 주소 이전 등의 방법 써 원하는 학교로 진학
등록 2020-03-17 16:01 수정 2020-05-07 02:01
3월10일 서울 양천구 신정7동에서 규모가 가장 큰 갈산초등학교 모습. 그 오른쪽 뒤로 가장 작은 은정초등학교가 보인다. 류우종 기자

3월10일 서울 양천구 신정7동에서 규모가 가장 큰 갈산초등학교 모습. 그 오른쪽 뒤로 가장 작은 은정초등학교가 보인다. 류우종 기자

집을 구한다고 했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가는 아이가 있다고 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ㄱ공인중개소 사장이 웃으며 답했다. “ㄷ아파트는 은정초등학교 가고, ㄹ아파트는 갈산초등학교 가요.” 결정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사장은 “유일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일단은 ㄹ아파트 갔다가 갈산초가 되잖아요, 바로 이사하세요. 입학만 하면 되니까. 그러고 ㄷ아파트 매물이 나오면 갈아타세요.” 옆에 있던 직원이 거들었다. “그런 분들 많아요.”

가격 없는 아파트가 부동산 시장의 중심

2월26일과 29일. ‘목동 학군’에 속하는 서울 양천구 신정7동의 공인중개소를 돌아다니며 가장 많이 들은 말. ㄷ아파트와 은정초, ㄹ아파트와 갈산초. 아파트와 학교가 굳건하게 짝지은 이유는 간단했다. “은정초가 (2호선) 신정차량기지 위에 있는 것도 그렇지만, 양천아파트 3천 가구 아이들이 은정초에 배정되니까 인기가 없죠. 그래서 (분양아파트 아이들이 배정되는) 갈산초가 선호하는 학교가 된 거죠.”(ㅁ공인중개소 사장)

실제 2020년 은정초는 전교생 351명으로, 서울시 과소(소규모)학교 기준(240명 이하)은 넘지만 이웃한 갈산초(988명)와 계남초(791명)에 견주면 왜소한 규모다(서울시 강서양천교육지원청 1월 집계기준).

양천아파트는 1995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급한 50년공공임대아파트다. 택지·도시개발 철거 세입자, 북한이탈주민 등 2998가구가 모여 산다. 역설적이게도 가격이 없는 양천아파트는 지금까지 인근 부동산 시장을 움직이는 주요 변수가 돼왔다. 핵심은 학교였다. 1996년 문을 열어 주로 양천아파트 아이들을 품어왔던 은정초의 통학구역에 분양아파트 단지가 들어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었다.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설 때마다 (은정초 배정을 피하려고) 소송이나 시비가 있었던 거로 아는데, 비참한 이야기”라고 양천아파트에 사는 ㅂ씨는 기억했다.

2019년 2월 ㄷ아파트 입주를 앞두고도 그랬다. 강서양천교육지원청이 ㄷ아파트의 통학구역으로 은정초를 결정할 것이란 소식이 알려지자, 입주예정자들 사이에 불만이 폭발했다. 갈산초로 통학구역을 바꿔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2017~2019년 서울시 학생 배정에 따른 민원 현황’을 받아 분석해보니, 2017년 ㄷ아파트의 ‘통학구역 변경 요청’ 관련 민원이 35건, 2018년 350건 있었다. 그러나 민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서양천교육지원청은 2018년 11월 말, ㄷ아파트의 통학구역을 은정초로 확정해 발표했다.

이에 반발해 ㄷ아파트에 거주하거나 거주할 예정인 초등학교 학부모 12명은 강서양천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상대로 ‘은정초로 통학구역을 결정한 처분을 취소하라’고 소송을 냈다. 2호선 차량기지 위에 있는 은정초의 교실과 통학구역의 전자파가 기준치를 초과하고, 은정초보다는 갈산초가 ㄷ아파트에서 가깝고 통학로도 더 안전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2019년 3월, ㄷ아파트 아이들이 은정초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통학구역을 바꿔달라는 민원은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1~7월 접수된 민원은 1223건이나 된다. 그러나 2019년 7월 서울행정법원은 1심 판결에서 ㄷ아파트의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초등학교 학급편제를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이뤄진 이 사건의 처분(배정)은 학교 간 균형 발전 및 적정 규모의 학교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정성도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올해 2월 있었던 항소심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1심 판결대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한겨레21>은 두 차례 ㄷ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판결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는 의사를 소송 참여 입주자에게 전달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얻지 못했다.

다른 아파트의 또 다른 시위

ㄷ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은정초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 ㅅ씨는 이웃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높은 교육열도 (민원과 소송의) 원인이 됐다”고 판단한다. 신정7동은 “목동 쪽에서 경제적 부담이 덜한 편이라 경기도 부천이나 광명, 서울 외곽에서 목동으로 학교를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진입할 수 있는 관문”(ㄴ공인중개소 사장)이라 교육 열망이 강한 부모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이른바 목동 학군의 비핵심 지역인 ‘뒷단지’(목동 신시가지아파트 8~14단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이 학군의 핵심인 ‘앞단지’(1~7단지)나 아예 ‘대치동 학군’으로 이동하는 것이 이상적인 ‘목동에서의 진학 경로’다.

그래서 이들에겐 뒷단지인 13·14단지 아이들이 배정되는 갈산초가 ‘목동 편입’을 상징한다. 11·12단지 아이들이 가는 계남초 역시 인근에 있는 은정초보다 선호되는 학교다. “목동에 아이 교육 하나 보고 들어왔는데, 갈산초가 아니라 은정초에 배정되니 엄마들이 많이 답답해했어요. 그래서 의외로 예비 초등학생 부모가 (소송 참여를) 많이 했어요. 사실 이사 오기 전부터 은정초에는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아무래도 많이 섞여 있어, 갈산초보다 학교 수준이나 교육 수준이 떨어진다는 소문이 많아 저도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와보니 저나 아이나 지난 1년간 만족도가 아주 높았어요.”

취학통지서 오기 전 월세 오피스텔로…

초등학교 배정은 아파트 가격에도 중요한 요소다. “솔직히 그거(학교)에 따라서 집값 차이가 나니까 (소송에도) 집값 영향이 클 수밖에”(ㅅ씨) 없다. 목동 지역에서 몇 안 되는 신축 브랜드 아파트인 ㄷ아파트는 지난 1월 33평이 16억4천만원에 거래됐을 정도로 고가의 아파트이지만, 배정 학교까지 인기 학교인 갈산초가 된다면 상승 여력이 더 생길 것으로 입주민들이 기대한다는 뜻이다.

실제 이 동네에선 ‘갈산초 프리미엄’이 주변 부동산 가격에 반영되고 있었다. 초등학교 통학구역이 갈산초냐 은정초냐에 따라,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는 많게는 1억원가량 차이 나기도 한다. “ㄷ아파트가 들어올 때 여기 아파트(ㄹ아파트)가 반대해서 (아이들이 갈산초를) 못 갔어요. 왜냐면 ㄷ아파트가 신축이잖아요. 갈산초 배정까지 되면 다 새 아파트로 갈 거 아니에요. 그러면 (ㄹ아파트의) 메리트(가치)가 없어지니까. 그래서 (ㄹ아파트에서) 교육청 가서 시위하고 그랬어요.”(ㄱ공인중개소 사장)

자녀가 배정될 예정인 학교를 바꿔달라거나, 초등 통학구역을 변경해달라는 민원은 흔하다. 자녀의 입학 전에 주로 이뤄진다. 2~3년 전만 해도 학부모가 민원을 강하게 내면, 배정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에서 자녀를 받아주기도 했다는 경험담이 많다. 불법이 아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때 학교장이 승인하면 배정된 학교가 아닌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목동 선호 현상이 더 강해진 뒤에는 이런 예외 입학을 허용하는 학교는 거의 사라졌다. 물론 애초 “취학통지서가 날아오기 전에 원하는 학교 앞에 단기 오피스텔 월세를 얻어 몇 달 살다가 입학한 뒤 원래 집으로 돌아가는 식”(목동 학부모 ㅇ씨)도 가능하다.

배정 학교가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취학통지서를 받은 뒤 입학 전에 이사 갈 수도 있다. 외국에 체류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서 그곳 학교에 입학하는 건 합법적으로 가능한 방법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를 보면, 2020년 은정초 입학 대상자는 67명이지만 55명만 입학할 예정이다. 2019년에는 48명 중 37명만 들어갔다.

단속이 강화돼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서류상 주거지를 옮겨 원하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경우도 여전히 있다. 적발 건수만 2018년 양천구에선 초등학교 관련 위장 전입이 10건, 2019년에는 중학교 관련 위장 전입이 19건이다. 친척집에 가족 모두 또는 자녀의 주민등록을 옮겨놨다가 원래 집으로 돌아간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은정초 배정을 피하려 이런 방식을 동원하기도 한다. “분명 (은정초 통학구역) 아파트에 사는데 갈산초 가고 계남초 가는 아이들이 있어요.”(양천아파트 주민 ㅈ씨) “우리 아파트에서도 은정초에 괜히 겁먹고 주소지를 옮겨서 아이를 갈산초 보낸 분도 있고, 갔다가 아이를 돌아오게 한 분도 있어요.”(분양아파트 주민 ㅊ씨)

아이들도 다 안다

2월26일 오후 은정초. 방학 기간 돌봄교실에서 지내는 아이들 몇 명이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그중 6학년은 3명. 어른들이 학교를 가른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잘 알았다. “은정초에 오기 싫어서 갈산초를 보낸다는 그 말이 너무 싫어요. 은정초를 무시하는 건가.” 양천아파트에 사는 아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양천아파트는 ‘거지를 위한 집’이라고 어떤 친구가 말했어요. 그걸 양천아파트 친구들이 들어서 싸웠어요.” 분양아파트에 사는 아이도 속상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은정초가 좋으냐’고 물으니 아이들이 금세 제 표정으로 외쳤다. “너무 행복해요.” “그냥 이대로가 좋아요.”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공동 통학구역 문제


작은 학교는 더 작게, 큰 학교는 더 크게


임대아파트를 품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더 빨리 줄어드는 원인에는 ‘공동 통학구역’(공동학구) 지정도 있다. 아이가 집과 가까운 학교에 자동 배정되는 ‘단일 통학구역’과 달리, 공동학구는 복수 학교 중 선택해 입학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는 제도다.
서울과 경기에 걸쳐 있는 위례신도시에 대표 사례가 있다. 성남시 위례신도시 중심에는 ‘작은 섬’ 위례고운초등학교가 있다. 2020년 26명이 입학하면 전교생 203명이 된다. 1년 전만 해도 35명이 입학해 1학년이 2개 학급으로 편성됐으나, 올해는 1개 학급만 구성됐다. 반면 같은 해 나란히 문을 연 위례한빛초(1238명), 위례푸른초(965명), 위례중앙초(509명)는 올해도 아이들로 북적인다.
우선 위례고운초 통학구역에 예정됐던 대규모 군인아파트 착공이 미뤄진 영향이 크다. 게다가 위례고운초 통학구역에는 영구임대아파트(550가구)와 국민임대아파트(2018가구)가 자리잡아 부모들이 꺼렸다. 개교 2년 뒤인 2018년에는 위례고운초·위례한빛초 통학구역 일부가 공동학구로 지정됐다. 특별히 이 지역에 사는 아이는 위례고운초와 위례한빛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위력은 컸다. 임대아파트가 없는 위례한빛초로 아이들이 크게 쏠렸다. 2020년 공동학구에 있는 입학 대상자 30명 가운데 위례고운초를 선택한 아이는 1명도 없었다. 25명이 위례한빛초 입학을 결정했다. 5명은 아예 다른 학교로 가거나 외국으로 갔다. 2019년에도 선택권이 있는 26명 가운데 25명이 위례한빛초로 갔고, 1명은 출국했다(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같은 성남에선 분당의 청솔초가 위례고운초와 같은 처지다. 영구임대아파트가 있는 통학구역 중 일부가 공동학구로 지정된 탓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청솔초가 아닌 늘푸른초나 미금초로 입학한다. 늘푸른초와 미금초는 분양아파트가 둘러싼 학교다. 작은 학교는 더 작게, 큰 학교는 더 크게 만드는 구조다.
성남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위례고운초의 경우 통학 거리가 멀어 불편하다는 등 주민들 민원이 접수돼 (공동학구 지정) 행정예고를 했고, 이후 접수된 찬반 의견을 종합해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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