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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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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경제 회복 조짐 코로나에 ‘멈칫’

경제 불균형 해소 기대감 속에 중국 발 악재…
2003년과 달라진 중국 경제 위상의 충격파는?
등록 2020-02-08 18:00 수정 2020-05-07 04:4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중국발 화물 수입이 급감해 2월6일 인천본부세관 세관검사장이 썰렁하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중국발 화물 수입이 급감해 2월6일 인천본부세관 세관검사장이 썰렁하다. 연합뉴스

2020년이 시작됐을 때 시장에는 별달리 큰 걱정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세계경제가 미국·글로벌 온라인 기업과 자산시장으로만 쏠려온 오랜 불균형에서 벗어나 실물경제를 중심으로 골고루 회복할지 모른다는 기대마저 고개 들었다. 마음 놓고 있던 찰나, 불현듯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에 던져졌다.

이는 익숙한 악재인가 전혀 낯선 현상인가. 과거와 달라진 세계시장은 전염병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달라진 시장이라는 건 ‘팬데믹 공포’ 앞에 조금은 더 의연한 곳일까, 더 위험한 곳일까. 알 수 없다. “무엇보다 내가 전염병 대유행(Pandemic)에 문외한이라는 사실부터 명확히 하고자 한다. 그것을 아는 것보다 모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최고경영자(CEO), ‘코로나바이러스와 팬데믹에 대한 초기생각’)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과거 전염병이 경제와 맺던 익숙한 경로를 되짚고, 거기서 어긋난 지점을 차분히 짚어보는 것뿐이다. 낙관도 비관도 쉽지 않지만, 세계경제가 꿈꿨던 2020년 실물경기 회복이 엉거주춤 멈춰서버린 것만은 분명하다. 더 고통 겪는 쪽과 그래도 무난히 지나치는 쪽 사이의 거리감은 메워지지 않는다.

‘결론은 회복’이던 이전 전염병

처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바로 그 전염병’처럼 보였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를 겪었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 수요 위축을 우려한다. 전염병 확산 국가를 중심으로 국지적인 경기침체가 나타난다. 전염병이 잡히기 시작하면 미뤄진 총수요(소비, 투자, 정부지출)가 확 늘어나며 가파르게 회복한다. 중화권을 중심으로 넓게 번진 사스는 이 과정을 거치며 최초 공식 확인(2월) 뒤 2개월 정도 만에 시장 영향이 사라진 것으로 본다. 널리 퍼지진 않았지만 우리나라만 놓고 보면 훨씬 영향이 컸던 메르스 때도 한 분기 정도 이후 경제지표는 대체로 나아졌다. “진정 조짐이 보이면 억압됐던 수요가 올라올 것으로 기대돼 위험자산이 V자형 반등을 보인다.”(유진투자증권)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망자가 중국에서 나온 1월10일 이후에도 23일까지 대체로 코스피는 상승세를 유지했다. ‘결론은 회복’을 명확히 점칠 만한 위험은 금융시장만 놓고 보면 더는 위험이 아니다.

명절이 지나고 분위기가 돌변했다. 이는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번진 새로운 전염병’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확산 범위와 속도가 넓고 빠르다. 끝을 가늠할 수 없다. 무엇보다 전염병을 앓는 세상의 모습이 이전과 다르다고, 새삼 깨닫는다. 2020년의 중국은 2003년(사스 때) 중국이 아니다. 잔뜩 풀어낸 통화와 기술 기반 온라인 기업들이 떠받쳐온 경제가 전염병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알 수 없다. 환율 급등, 주가 급락, 채권금리 급락, 원유·원자재 가격 하락… 아직 실물경제에 미친 영향이 숫자로 확인되기 전, 자산 가격을 나타내는 금융시장 지표가 먼저 출렁였다. 안전자산을 조금이라도 확보해놓으려는 사람과 위험자산을 팔아치우려는 사람이 2월4일까지 일주일 동안 아우성쳤다.

그 일주일 어떤 다른 점이 부각됐나? 2020년 중국이라는 ‘공간’이 낯설었다. 2001년 막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해 덩치를 키우던 2003년 사스 때와 비교하면, 중국이 세계 GDP(명목 기준, IMF)에서 자치하는 비중은 세 배 넘게(2003년 4.3%→2018년 15.7%) 불어 있다. 생산과정은 세계로 분산됐고 중국이 상당 부분을 떠맡고 있다. 세계 제조업 생산(부가가치 기준)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8%를 넘어섰다(2018년, 세계은행). “이전 전염병 때 주로 소비와 수요 위축을 걱정하던 데서 이번에는 공급(생산) 이슈가 부각된 이유”(이상재 유진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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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공장, 세계의 시장인 중국

우리 처지에선 이제 막 미-중 갈등으로 억눌려 있던 중국을 낀 제조업 생산 구조가 회복하려는데 전염병이 돌았다. 중국에 생산공장을 둔 부품업체의 생산 차질로 현대·기아·쌍용차가 조업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는 소식까지 이르자, 공포는 더한다. 국가를 옮겨다니며 조립하고 부가가치를 더해 완성품을 수출하는 세계 가치사슬의 위험성이 다시 한번 부각됐다. 그렇다고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대규모 최종 소비 시장이라는 위치까지 가져버린 중국에서 공장을 무턱대고 빼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국은 어느덧 세계의 공장일 뿐 아니라 GDP의 70%가 소비로 구성된 세계의 시장이기도 하다.

다만 업종별로 들여다보면 아직 그 심각성을 판단하기 이른 시점이다. 자동차의 경우 “장기화하지 않는다면 생산물량은 만회가 가능하고, 재고 조정의 기회가 될 전망”(삼성증권)이라는 평가도 공존한다. 피치 못할 조업 중단으로 인기 없던 차종을 중심으로 재고를 조정할 수 있고, 일주일 정도의 생산 차질을 따라잡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의미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같은 다른 주요 산업들을 바라보는 평가도 대개 “중국이 발표한 대로 (2월)9일(우한 등 일부 지역 13일)까지만 조업을 연기한다면 공급 면에서 큰 문제로 이어지진 않을 것 같다”(최영산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쪽으로 흐른다. 분명 악재이지만 공장의 자동화율, 공급과잉 해소를 통한 가격 인상까지 두루 고려할 필요도 있다.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파괴력과 지속 기간이 더 늘어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상치 못한 확산과 중국 경기의 심각한 침체가 이어질 경우 문제는 국내 제조업 일부의 조업 차질 정도로만 그치지 않는다. 감당하기 어려운 중국의 침체는 우리를 넘어 세계 경기를 좌우한다.

제조업·비제조업 격차 메우기는 또 미뤄져

이전 전염병과 사뭇 다른 낯선 세계 경기의 ‘시점’을 되짚어보는 움직임은 그래서 나온다. 2020년 세계 각국의 경기 상황은 사스 때에 견줘 뒤죽박죽이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은 침체를 딛고 이제 막 경기회복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친다. 반면 미국 경제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무려 11년 가까이 이어진 확장이 계속 이어질지 갈림길에 서 있다. 정보기술(IT) 거품 붕괴, 이라크전쟁 같은 악재를 전세계가 함께 겪고 그 마지막 시점에 터진 사스를 마무리하며 함께 회복했던 2003년과는 좀 다른 모습이다. “세계 경기를 좌우하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중앙은행의 돈풀기와 비제조업이 이끌던 경기확장이 너무 길게 이어져오다 이제는 다시 제조업과 실물경기가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하는 갈림길에서 문제가 터졌다.”(이상재 이코노미스트)

미국의 대중국 수입액은 2003년(1524억달러)에 견줘 2018년(5397억달러) 3배 넘게 늘었다. 중국산 소비가 늘어난 면도 있지만, 미국 제조업을 돌리기 위한 중간재 수입 의존도 그만큼 깊어졌다. 1월 미국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지수가 시장 예상을 웃도는 등 제조업을 대표로 한 실물경제에도 모처럼 훈풍이 불 것 같던 때, 바이러스가 터졌다.

물론 “미국 경제 성장의 핵심은 여전히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 같은 기술 기반 온라인 기업들이고, 코로나바이러스가 미치는 실물경제의 영향과는 크게 관련이 없을 수 있다”(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평가가 아직 일반적이다. 여기에 바이러스 이후, 중국의 경기부양과 국제 공조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중국의 최우선 가치는 체제 안정이니만큼, 민심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나설 것이고 미국도 세계 경기 안정을 위해 공조할 여지가 큰 상황”(이상재)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섣불리 돈줄 죄기에 나서기보다 당분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이어갈 가능성도 점쳐진다.

금융시장은 안심할 만한 이야기이지만, 결국 그동안 이어온 경제의 불균형과 위기를 해소할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의 경기부양책은 공포를 진정시키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급격한 성장 속에 기업들의 부채 위기를 함께 키운 중국이 부채 감축이나 구조조정 노력을 미룰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크든 작든 제조업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글로벌 온라인기업들만은 건재하다. 돈줄 죄기를 망설일 이유에 ‘전염병과 중국의 둔화’를 추가할 수밖에 없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풀어주는 여전한 통화량에 힘입어 기술 기반 기업의 주식가치만은 실제 경기와 상관없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실물과 금융, 제조업과 비제조업의 격차를 메울 기회는 다시 좌절된다. 불균형이 거품을 터뜨리며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위기가 닥쳤을 때 통화를 조절해야 할 미국 연준의 정책 여력은 약해진다.

금융시장은 안도, 거리의 상인은 한숨

2월4일 코스피가 다시 크게 오르며, 금융시장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미국 증시는 다시 신고가를 이어간다. 낯선 위기 속에서조차 결국 희망의 근거를 찾은 것일 수도, 알고 보니 어차피 이전과 비슷한 익숙한 전염병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은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미국 증시로 대표되는 세계의 주류 경제는 눈앞의 고통이나 생산 감소와는 무관할뿐더러, 그 두려움 탓에 풀리는 유동성에 힘입을 것이라는 웃지 못할 아이러니를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자산 투자자들은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같은 날 한편에서는 이 전염병 앞에 어쩔 수 없는 고통의 한숨이 터진다. “원래도 힘들었지만 지금 손님은 반토막 났다고 보면 돼요. 우리 딴에는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는데도 사람들 모두 공포에 질려 있으니까. 이 와중에 온라인 쇼핑몰 주문은 폭주한다는 이야기 들으면 좀 서운하기도 하고.”(서울 망원시장 ‘엄마손 손두부’ 김진철 사장) 오지 않는 손님을 원망할 수도 없어, 지나친 공포를 자극하는 언론에 불만을 터뜨려보지만 그조차 어찌할 힘은 없다. 수익을 셈하고 기대감을 좇아 자산을 불리는 거대한 세계와 손님을 맞고 두부를 건네는 시장 상인의 거리는 아득히 멀어져 있다. ‘그래도 2020년에는 거리에 돈도 좀 돌고 체감 경기도 나아지려나’ 기대하며 녹아들던 김 사장 마음은 또다시 얼어붙는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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