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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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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에는 국적이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그 실체를 찾아서
등록 2020-02-08 17:54 수정 2020-05-02 19:29
일본 국립감염증연구소가 분리해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연합뉴스

일본 국립감염증연구소가 분리해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연합뉴스

요즘 우리 집 아이들은 ‘심심해’와 ‘답답해’란 말을 달고 산다. 최근 전세계를 한겨울 강추위만큼이나 꽁꽁 얼려버린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확산으로 겨울방학이면 자주 찾던 실내놀이터·키즈카페·영화관·박물관을 가지 못하고, 예정된 겨울 여행을 취소했으며, 어쩌다 밖에 나갈 때면 마스크조차 벗지 못하게 하니 갑갑증이 극에 이르렀다.

아이를 키우는 주변 부모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오프라인 활동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온라인을 주로 이용하다보니, 인터넷 쇼핑몰과 온라인 마트의 배송 기간이 평소보다 늘고, 거리가 한산한 것과는 달리 인터넷 지역 카페는 평소보다 더욱 활발하다. 초기에는 단순히 우려 섞인 걱정만이 올라오던 인터넷 카페의 내용은 추가 확진자가 계속 나오며 사태가 길어지자 점차 분노와 증오가 뒤섞여 곧 더 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질병은, 특히 이번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퍼져나갈 수 있는 신종 감염병은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어제까지 별 탈 없이 살아오던 나와 사랑하는 내 가족의 삶이 내일 갑자기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하니까. 그러니 잠시 숨을 고르고,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지금 이 불안한 상황이 무섭고 화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정말로 실체가 있는 대상을 두려워하고, 제대로 된 원인에 화내는 중인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이름 그대로, 갑작스레 변이를 일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다. 2019년 말쯤 중국 우한 지방에서 처음 발견됐고 폐렴을 일으켜 ‘우한 폐렴’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로 2019년 신종코로나바이러스(2019-nCoV)감염증으로 명명된 바로 그 바이러스 말이다.

왕관 모양이라 붙여진 이름

코로나바이러스는 1937년 닭에서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처음 분리된 바이러스로, 당시 이 바이러스를 발견한 두 연구자는 바이러스 외부에서 관찰되는 돌기 형태가 마치 왕관(corona)을 닮았다 하여 다소 거창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그럴듯한 이름과 달리 이 바이러스는 꽤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다.

사람에게도 감염될 수 있음이 알려진 건 1960년대나 되어서였다. 개코로나바이러스(Canine Coronavirus)에 걸린 개는 심한 설사와 구토 증상을 보이며, 고양이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Feline Enteric Coronavirus)에 감염된 고양이는 치사율 100%에 이르는 복막염에 걸릴 수 있다. 사람에게는 약한 감기 증상 외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연구 대상에서 제외됐다. 인류는 코로나바이러스 외에 이미 소아마비, 풍진, 수두, 홍역, B형 간염 등 다양한 바이러스성 질환과 싸우는 중이었기에 다소 만만해 보이는 코로나바이러스에까지 신경 쓸 여유도 필요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이렇듯 오랫동안, 다소 귀찮은 정도에 불과했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자신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드러낸 건, 2002년 발병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부터다. 이때 처음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기존 것과 달리 상당수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각한 증상을 불러올 만큼 독성이 강하다는 게 알려졌다. 다행스럽게도 사스는 발병한 이듬해 자취를 감췄기에(현재까지 사스는 잠잠하다),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여유를 조금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잦아들 것으로 기대했던 불안감은 2012년 나타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거쳐 최근 2019-nCoV에 의해 본격적으로 타올랐다. 특히 메르스와 2019-nCoV는 높은 사망률(메르스)과 엄청난 전염성(2019-nCoV)으로, 애초에 반세기 동안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무심했던 이유(낮은 병원성, 집단 발병 가능성 낮음)를 무색하게 하며 불안을 더욱 높이고 있다.

현대인에게 ‘바이러스’란 말은 너무도 익숙하지만, 그에 비해 바이러스가 뭔지 정확히 아는 이들의 비율은 높지 않아 보인다.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를 아주 작은 세균 정도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크기가 수십나노미터(㎚)에 불과해 세균보다 훨씬 작다. 생물학적으로 생명체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지 못했다.

생물체란 ‘유전물질을 가지며 독립적 대사 과정과 자가복제 시스템을 갖춘 세포막으로 둘러싸인 존재’로 정의된다. 바이러스는 유전물질(DNA/RNA)은 갖고 있지만, 세포막이 없고, 일단 숙주 밖으로 나오면 생명활동은커녕 설탕이나 소금처럼 결정 형태로 추출될 뿐이어서 생명체로 분류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 바이러스는 숙주세포가 없으면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절대적 기생체로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위치한다. 바이러스 학자들은 이를 “생명을 빌려서 살아간다”고 표현한다.

확진자가 대거 나온 일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방역요원들이 확진자를 이동시키고 있다.  REUTERS

확진자가 대거 나온 일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방역요원들이 확진자를 이동시키고 있다. REUTERS

‘생명’을 빌려서 살아가는 바이러스

숙주의 생명을 빌려서 살아가기에 바이러스에게 숙주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 균류, 조류(藻類), 원생생물과 세균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체에 기생해 살아간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종간 특이성이 있다. 다시 말해, 특정 생물종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는 그 생물에게만 감염될 수 있으며 다른 종은 침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구제역이 그렇게 창궐해도 축산농가 주민들이 구제역에 걸렸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고, 키우던 개와 고양이가 바이러스성 질환에 걸려 사경을 헤매도 같이 사는 반려인이 같은 질환에 걸렸다는 뉴스는 들어본 적이 없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을 비롯해 에볼라출혈열, 에이즈, 인플루엔자 등이 유행할 때마다 박쥐·원숭이·돼지 등 다른 동물에게서 유래했다는 말이 흔히 나오지만, 사실 이는 생물학적으로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반면 그 파장은 더 크다.

낯선 적은 막기 힘들다

바이러스는 숙주세포 없이는 살 수 없기에 진화 과정에서 숙주세포에 침투하는 능력과 숙주의 저항을 이겨낸 것만이 살아남았다. 모든 생물체의 관계는 상호적이므로 바이러스의 침탈을 받는 숙주 역시 가만히 앉아서 당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다세포생물은 외부 침탈자를 막아내는 데 특화된 면역세포와 항체를 이용해 바이러스 침투를 조직적으로 막아냈다. 세포 하나로 이루어진 세균의 경우 자주 침투했던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기억해뒀다가 이들이 세포 내에서 감지되면 무조건 잘라버리는 시스템을 갖추기도 했다.

그렇게 세균이 오랜 세월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갖춘 방어 시스템이 최근 들어 ‘차세대 유전자가위’로 이름을 알린 크리스퍼(CRISPR-Cas9) 복합체다. 세균이 가진 크리스퍼 복합체는 DNA와 DNA 절단 효소로 구성됐다. 크리스퍼가 지닌 DNA 조각은 자기 것이 아니라 그 세균에 기생할 수 있는 바이러스의 것이다. 크리스퍼 복합체는 평소 세균 안에 조용히 있다가 자신이 가진 DNA 조각과 같은 배열을 가진 유전자, 다시 말해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감지되면 이에 달라붙어 DNA 절단 효소로 이를 조각내어 바이러스를 퇴치한다.

크리스퍼 시스템을 처음 찾아낸 이는 유제품 제조회사 연구원들로,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죽지 않는 튼튼한 유산균을 연구하던 중에 알아냈다. 바이러스성 질환을 예방하는 백신의 원리 역시 바이러스가 우리 몸을 침입하기 전에 면역세포에게 바이러스 정보를 넘겨줘 이를 퇴치할 항체를 미리 만들어 대비하도록 하는 일종의 치트키(속임수)다. 숙주의 크리스퍼 복합체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의 면역체계에 노출돼 정체를 들킨 바이러스는 살아남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표 사례가 천연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우두를 이용한 예방 백신이 나온 지 200여 년 만에 천연두는 전세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바이러스도 매우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바이러스가 이런 상황을 예상해 대처하는 것은 아니지만, 돌연변이율이 높다는 바이러스의 생물학적 특성이 종종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다.

변이가 빠른 RNA 바이러스

바이러스 중에서도 유전물질로 RNA를 가지는 종류는 돌연변이율이 DNA 바이러스보다 매우 높다. RNA 자체가 DNA보다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RNA 바이러스의 일종인 오소믹소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독감(인플루엔자)은 해마다 변종이 나와서 그에 맞춰 새 백신을 다시 접종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심지어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의 경우 감염 환자의 체내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변이가 일어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한다.

바이러스의 이런 빠른 변이는 숙주가 가진 면역 시스템을 교란해 생존력을 높일 뿐 아니라, 가끔 종간 장벽을 넘어 기존에는 침투할 수 없었던 다른 생물종으로 침투가 가능한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한다. 일단 종간 장벽을 넘어 변종이 된 바이러스에게는 한동안 (바이러스 처지에선) 신세계가 펼쳐진다(물론 새로운 숙주에게는 악몽이 된다). 숙주의 면역체계는 이 변종을 상대한 적이 없기에 적합한 면역적 대응을 찾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래서 최초로 등장한 바이러스는 대부분 숙주에게 치명적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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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속 폭풍일까, 전세계를 휩쓸 태풍일까

의 저자이자 바이러스 학자인 네이선 울프에 의하면, 보통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질병, 즉 팬데믹(Pandemic·전염병 최고 위험 경보 단계) 현상을 일으키는 감염체는 대부분 동물에게서 오며, 5단계 변이 과정을 통해 인류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1단계는 종간 특이성이 있어 특정 동물에게만 감염체가 존재하는 일반적인 경우다. 이 감염체들이 인간에게 감염이 가능하도록 돌연변이를 일으켰지만, 아직 직접 접촉해야만 전염되는 것이 2단계다. 광견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개와 사람을 모두 감염시키지만, 아직 광견병에 걸린 동물에게 물려서만 전염되므로 2단계 수준이다. 여기서 돌연변이가 더 진행되면 동물과 직접 접촉해 전염된 1차 감염자만이 감염력을 가지는 3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후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전염된 뒤 사람들끼리 2차, 3차 감염이 일어나는 4단계, 동물과 접촉이 없어도 전염이 가능한 5단계까지 넘어갈 수 있다.

일단 4단계를 넘어가면 사람 대 사람의 감염이 가능해 질병이 단기간에 퍼질 수 있다.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 살아가는 현대 인류의 특성상 야생동물을 만날 일은 거의 없지만, 사람끼리 만나지 않고서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2019-nCoV는 최초 감염자와의 직접 접촉자뿐 아니라 3차, 4차 접촉자까지 질병에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적인 체액의 접촉 없이도 비말을 통한 전염이 가능해 팬데믹으로 이어질 불길한 전조를 보인다. 특히 감염자가 수천 명에 그쳤던 사스나 메르스와 달리, 2월 초 현재 환자 2만 명 이상이 보고됐다.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바이러스 폭풍이 찻잔을 벗어나 전세계를 강타하는 태풍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원인은 바이러스, 전염은 시스템

물론 호랑이 굴에 물려가면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하니 아예 기절해서 정신을 못 차린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절하면 확실히 호랑이 밥이 될 테지만, 정신 차려 궁리하면 목숨을 건질 방법을 찾아낼 가능성은 있다. 무서울수록 억지로라도 차분해져야 하고, 목숨이 걸린 문제일수록 냉정히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니 서두에서의 질문을 다시 되짚어보자. 난 원망할 대상을 제대로 선택했는가.

일단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바이러스다. 바이러스 따위를 백날 원망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안다. 지구상 생태계 시스템이 원래 그런 것이니. 그렇다고 최초 발원국의 모든 국민, 나아가 그 나라 출신이지만 오랫동안 그곳에 가본 적도 없이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을 공격하는 건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우리는 역병의 원인을 유대인 탓으로 돌리던 중세시대에 살지 않는다.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 발생한 것이 사실이고, 그곳에서 오는 이들이라면 막는 게 당연하겠지만, 바이러스가 국적 확인을 하면서 감염시키는 것도 아니고 특정 국가의 국민들 몸속에서만 수십 년간 잠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가능성이 낮은 이들까지 원망의 대상으로 만드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게다가 불특정 다수가 쏟아내는 분노는 너무 커서 접촉 의심자들이 자신의 동선과 접촉 경로를 숨기게 될 수도 있다.

원인은 바이러스고, 퍼뜨린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시스템이다. 우리의 눈총을 받아야 할 것은 시스템을 어설프게 만들고 이를 방관한 이들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미워하라는 말은 되도록 하고 싶지 않지만, 이 와중에 타인의 불행을 이용해 악착같이 이득을 챙기려는 욕심 많고 이기적인 인간은 비난받아도 마땅하지 않을까.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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