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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는 있는데 사람은 없다

총선 이후, 인물① 이낙연ㅣ키워드 #2인자 #정치세력

총선·당권·대선 가쁜 일정…‘이낙연계’ 정치인 없는 약점
등록 2020-01-20 03:41 수정 2020-05-02 19:29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운데)가 1월15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이해찬 당대표(왼쪽), 이인영 원내대표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운데)가 1월15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이해찬 당대표(왼쪽), 이인영 원내대표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1월15일 오전 이낙연 전 국무총리 집 앞. 약속 없이 기다렸다. 깐깐하기로 이름난 인터뷰이에게 진심을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이 전 총리 집부터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까지 거리는 13㎞ 남짓, 오전 9시30분으로 예정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려면 최소한 30분 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8시45분, 문이 열렸다.

30년 전 그도 정치인의 집 앞을 지키는 기자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무작정 차에 동승해도 내치지 않는 몇 안 되는 기자로 꼽힌다. 특히 그가 쓴 문장은 김 전 대통령이 이름을 보지 않고도 ‘이낙연’이 쓴 것을 알아차릴 만큼 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 찍은 37.8%가 이 전 총리 지지

“실례합니다. 하어영 기자입니다.”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20년차 기자, 4선 의원, 도지사 이력을 가진 전직 총리답다.

“그럴 수도 있죠. 짤막한 질문은 할 수도 있죠. 그런데 문 앞에 사람이 서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거리감을 주려는 것일까. 되묻는 말에 힘을 준다. 명함을 건넸지만 악수를 청하지는 않는다. 그만큼의 선이 그어졌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자기 길을 걷는다.

“당으로 돌아와서 첫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그럴까요. 뉴스가 안 될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해 4·15 총선 체제로 본격 돌입한 상황, 본인의 등장이 ‘뉴스가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는 첫 일성을 기습 인터뷰에 뺏기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듯하다.

“총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느낌이 어떠신지.”

“제가 무슨 얘기를 하겠습니까.”

다시 차분한 목소리다. 당에서 분명한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 지금, 총선에 대한 촌평조차 하기 어렵다는 조심성이 엿보인다. 종로 출마를 물었다.

“언론의 추측 보도예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습니다.”

언론은 이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의 종로 대전을 예고하고 있다. 차기 주자 1, 2위를 다투는 정치인의 정면승부는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 실제 승부가 이뤄진다면 승자는 2022년 대선까지 ‘기호지세’(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일 가능성이 높다. 패배자는 누구든 몸을 추스르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몇 걸음 가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제 마음대로 됩니까”라고 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총선 국면에서 국민의 지지와 기대가 크다’는 말에 나온 답이었다. 다급한 출근길에 질문과 답이 혼란스럽게 오갔다. 이 총리가 말한 ‘마음’은 무엇일까. “타고 온 차량이 있느냐”를 확인하면서 준비된 검은색 에쿠스에 올라탔다. 인터뷰는 거기까지였다. 곁불 쬐는 것도 허용치 않겠다는 가파름을 느끼는 찰나였다. 전화가 울렸다.

“집 앞에서 그렇게 기다릴 필요 없어요. 수고한 것에 비해 소득이 적잖아요.”

찾아오지 말라는 완곡하나 단호한 표현이 목소리에 담겼다.

그는 현재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에서 단연 1위다. 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27~28일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만 19살 이상 1천 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에서 ‘대통령으로 선호하는 인물’에 이 전 총리가 25.3%로 황교안 대표(10.9%)를 두배 이상 앞섰다. 이 전 총리를 지지하는 그룹은 광주·전라(56%), 더불어민주당(45.7%), 진보(40.9%)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그룹에선 다른 후보와 견줘 당내 후보군 가운데 압도적인 지지를 보인다. 국정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쪽의 43.8%,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찍었던 사람 가운데 37.8%가 이 전 총리를 지지했다.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6.1%, 5.9%)이나 이재명 경기도지사(8.2%, 8.5%)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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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 ‘뜻은 높게, 몸은 낮게’

차기 대권의 선두 주자지만 이 전 총리의 당 복귀 첫날 일정은 간소했다. 그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회의 직전 발언 기회를 얻었다. 그의 예상과 달리 이 전 총리의 일거수일투족은 세세하게 보도됐다. 이 전 총리는 “지사와 총리로 일하면서 떨어져 있던 당에 6년 만에 돌아와 부족한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신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매사 당과 상의하면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히 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호응해 이해찬 대표는 “이번 총선이 워낙 중요하다보니 좀 쉬시라는 말씀도 못 드리고 당으로 모셨다. 선대위원회 발족하면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한다”고 했다. 여기서 ‘핵심적인 역할’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예상된다. 직책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 건 다분히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리의 등장은 선거에 쓸 자원으로서는 분명 당에 이득이다. 하지만 총선역할론으로 구설이 생기면 오히려 선거 내내 부담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당내 차기 주자들 사이의 견제로 잡음이 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이 대표는 이 전 총리 카드를 어디에 둘지 여론의 추이를 가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리는 거취의 민감성을 미리 고려한 듯 “(향후 행보를) 당과 상의하겠다”고 분명하게 했다. 특히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분명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전 총리가 과 나눈 “(종로 출마설은) 추측일 뿐”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언론이 기정사실화할 뿐”이었다. 복귀 환영식이 끝나자마자 나온 이 대표의 발언도 눈길을 끌었다. 공천과 관련해 “정부와 여러 분야 경험한 분들 비롯해 어떤 경우에도 특혜나 차별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가 최근 지속해서 강조하는 총선 과정에서의 공정과 투명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이 대표의 당 장악력이 재삼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전 총리는 당연하다는 듯 바짝 몸을 낮췄다. 뜻은 높게, 몸은 낮게. 그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이 전 총리에게 숙제로 주어진 것은 총선이지만, 여권의 차기 주자인 그는 대선이라는 별개의 시간표도 동시에 따져야 한다. 제20대 대통령선거는 2022년 3월에 치른다. 이로부터 역산하면 더불어민주당의 후보경선은 최소한 2021년 10~11월이라고 봐야 한다. 4월 총선부터 1년6개월이 남는다. 변수는 더 있다. 현재 이해찬 당대표 체제는 올해 8월 종료된다. 이 대표가 이번 총선을 마무리하면, 그다음 당대표가 대선을 치르게 되는 셈이다. 물밑에선 이미 총선과 당권, 그리고 대선 레이스까지 숨 가쁜 일정이 시작됐다.

지지율을 빼면 이 전 총리가 차기 주자로 밟고 올라선 고지가 탄탄하다고는 할 수 없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문재인까지, 대권을 쥔 인물들이 공히 갖고 있던 이낙연만의 정치세력이 없다. 자연스럽게 팬심을 가진 지지자 그룹도 없다. 당장 국회로 돌아가서 총선에 발벗고 뛰어야 하지만, 국회에는 그를 곁에서 도울 정치인을 찾기 어렵다. 4선 중진 의원이고 도지사와 총리를 거치면서도 자기 계보 정치인이 한 명 없다는 것은 그의 정치 이력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가 단독자로서 정치를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1만5천 개의 전화번호가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10월 인터뷰에서 “학생 때나 정치권에서도 집단화가 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우리 시대의 요구가 그런 소집단에 의존하는 정치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총리 시절 철학 드러내지 않고 군기반장 역할

세력도 없지만 소속도 희미하다. 밖으로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 대변인을 포함해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깊은 편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민주당에 잔류하면서 길을 달리하고 갈등한 전례도 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선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명단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정작 탄핵소추안에 반대표를 던진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세력, 계파만이 아니다. 자기 색깔도 분명치 않다. 지금 지지율로 치고 올라오는 과정은 과거 이회창 전 총리처럼 소신발언이나 돌출행동 때문이 아니었다. 2년8개월 재직하는 동안 대통령과 각을 세운 사례를 찾기 힘들다. 부동산 문제부터 최저임금, 소득주도성장 등 예민한 현안에서 이 전 총리만의 철학은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을 대신해 지난해 4월 강원도 산불 같은 재해 현장을 누비고, 군기반장으로 국무회의를 꼼꼼하게 챙겼다. 전형적인 2인자 역할이었다. 특히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위임할 때도 ‘일인지하’ 선을 절대 넘지 않는다는 게 주변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예를 들어 취임 초기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시아 외교를 맡겼을 때의 일이다. 문 대통령은 2018년 7월 이 전 총리에게 공군 1호기인 대통령 전용기를 내줄 만큼 신뢰를 보내 화제가 됐다. 그는 전용기를 이용할 때도 총리 자리를 지켰다고 전해진다. 특히 쪽잠을 자더라도 대통령 전용 공간의 침실은 끝까지 이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태도가 현 시국과 만나면서 차기 주자라는 천운을 만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취임 첫해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던 적폐 청산 작업이 해를 건너 지속되고 각종 국정 과제가 미뤄지면서, 문재인 지지자들은 미완의 작업을 더 긴 호흡 안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할 적임자를 찾았고, 그게 이 전 총리였다는 것이다. 각 부처 장관을 닦달해 업무를 장악하는 그의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당내 상황도 그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박원순 서울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김부겸 의원 등 대권을 노리는 주자들이 총선 이후 급부상할 가능성이 현재는 높지 않다.

문재인을 떠나서도 지지 지켜낼 수 있을까

이제 그에게 2인자 총리가 아닌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시간이 온전히 찾아왔다. 문재인을 떠난 그가 지금까지의 지지를 지켜낼 수 있을지, 총선이 성공적으로 치러진 뒤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대선 가도를 달릴 수 있을지, 그 주위로 얼마큼 정치세력을 규합할지, 아직은 안갯속이다. 이낙연이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지켜봐온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만인지상’에서 ‘만인지하’로 내려왔다. 종로에서 황교안 대표와 정면승부하면서 승부사로서의 면모를 보이는 것부터가 중요하다. 그 이후에는 총선 결과에 따라 차기 주자로서 안정적인 가도를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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