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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3개월째 찾는 ‘새정치’

총선 이후, 인물③ 안철수ㅣ키워드 #기시감 #애매모호
3세력 정체성 확립 못할땐 과거 '흑역사' 되풀이할 수도

제1297호
등록 : 2020-01-17 14:50 수정 : 2020-01-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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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1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추진위원회 회의에 안철수 전 대표(오른쪽)와 유승민 전 대표가 참석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제가 좋아하는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을 하나 소개하고 싶습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미래는 지금 우리 앞에 있습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자신의 정치 입문 시점으로 꼽는 2012년 9월19일, 그는 제18대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문 마지막에 미국 과학소설(SF)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을 인용했다. 보통 중국 고사나 위인들의 말을 즐겨 인용하던 기존 정치인과 다른 문법의 출마 선언이라는 평가가 따라왔다. 정보기술(IT) 기업인 출신인 그가 ‘여의도 정치인’과 차별화된 ‘새로운 인물’이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줬다. 이후 그는 언제나 ‘새정치’와 ‘미래’를 함께 외쳤다.

7년3개월여간의 정치 행보를 하면서 그는 “새정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못했고, 오히려 ‘새정치’라는 말에 발목 잡혔다. 거듭 외친 ‘미래’는 한 번의 작은 성공(2016년 제20대 총선 국민의당 38석 당선)과 여러 번의 실패로 결론이 났다. 실패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생채기도 많이 났다. 그의 무기인 ‘새로움’도 사라졌다. 그리고 총선 3개월을 앞둔 1월2일, 그는 정치 복귀를 선언했다. 미국에서 보낸 그의 메시지에는 ‘새정치’와 ‘미래’가 되풀이된다. 1월10일 예약판매에 들어간 책 제목도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이다. 그는 7년이 지나도 아직 ‘미래가 널리 퍼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의 ‘오래된 미래’가 이번에는 빛을 볼 수 있을까.

‘안철수 현상’ 다시 노려보지만

1월2일 안 전 대표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리며 정치 복귀를 알렸다. 2018년 7월 6·13 지방선거의 패배 책임을 지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독일로 떠난 뒤 1년6개월 만이다. 200자 원고지 4장을 조금 넘긴 그의 글은 많은 이에게 기시감을 줬다. “정치는 국가의 미래를 위한 봉사라는 제 초심” “이념에 찌든 기득권 정치세력” “미래가 아닌 과거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 등 대부분의 문장은 그가 2012년 이후 정치권에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반복했던 표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복귀 선언에서 드러나듯, 이번에도 안 전 대표와 그를 돕는 이들이 노리는 것은 ‘안철수 현상’이라고 하는 ‘3세력’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심리다. 기존 양당 중심의 갈등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신상품’ 출시를 바라는 이들이 우리 정치에서 언제나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이후 한동안 안 전 대표가 주목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 전 대표를 돕는 김도식 전 비서실장은 “현재 이념·진영 논리로 대한민국이 양 갈래로 갈라져 있다. 그러나 좌우 쪽에서 서로 싸우는 것은 ‘시끄러운 소수’다. ‘조용한 다수’는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경제·외교·안보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는 세력을 원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실제 3세력에 대한 유권자의 욕망은 여러 언론사의 신년 여론조사에서 유의미한 수치로 잡힌다.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은 20% 이상으로 집계되는데 자유한국당 지지도를 육박하는 수치다. ‘제3세력을 키워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는 질문(<한겨레>-글로벌리서치 2019년 12월27~28일 1천 명 여론조사)에 51.6%가 동의했다.

그럼에도 현시점에서 안 전 대표가 자기 이름을 딴 ‘현상’에 주인공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안 전 대표도 이를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1월2일 올린 정치 복귀 선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정치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우리 국민께서 저를 정치의 길로 불러주시고 이끌어주셨다면, 이제는 제가 국민과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과거 항상 ‘국민의 부름’을 명분으로 삼았던 그가 “이제는 제가 국민과 함께 나아가겠다”고 말하며 스스로 돌아오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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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도 가장 낮고, 비호감도 가장 높아

자신을 향한 국민의 시선이 이전과 달리 차갑다는 것을 알았을까. 한국갤럽이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정치지도자 호감도 조사(2019년 12월10~12일 1001명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를 보면 안 전 대표는 조사 대상자 7명 가운데 호감도(17%)는 가장 낮고, 비호감도(69%)는 가장 높았다. 한국갤럽은 호감도 조사 결과의 의미를 “지지층 내 핵심 호감층뿐 아니라, 타당(他黨) 지지층에서의 확장 가능성 등을 가늠하는 데 참고할 만한 자료”라고 설명한다. 2017년 4월 한국갤럽의 같은 조사에서 대선 주자 가운데 1위를 기록했던 그의 호감도(58%)는 2년8개월 만에 급전직하했다.

‘국민의 부름’이라는 명분이 깔리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움직이게 한 건 무엇일까? 왜 총선을 준비하기에 빠듯한 시점에 돌아오는 것일까? 그는 정치 복귀 선언에서 밝힌 대로 독일과 미국에 체류하며 정치에 다시 복귀하는 게 맞는지부터 마지막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초 안 전 대표를 미국에서 만나고 온 인사들은 “그가 총선 전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정치권에 전했다. 하지만 한 달 사이 기류는 180도 바뀌었다.

2019년 11월4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미국 뉴욕시티마라톤에 참가해 달리는 모습. 연합뉴스

“지금은 낡은 정치 바이러스 잡고 있다”

1월2일 이후 빠르게 진행되는 ‘안철수 복귀 프로젝트’를 보면 안 전 대표를 끌어당기는 힘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정치 복귀 선언 뒤 1월6일 범안팬연합, 바른미래당 평당원 모임 등 안 전 대표 지지자들은 국회에서 “안철수 전 대표의 고군분투를 응원한다”며 복귀 환영 기자회견을 열었다. 1월7일 바른미래당 당원들에게 신년 인사를, 1월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안철수계’ 의원들이 주최한 ‘한국 정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는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정치 리더십의 교체, 낡은 정치 패러다임의 전환, 정치권 세대교체라는 정치개혁 과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등의 내용을 담은 영상 메시지가 끝나자 한 지지자가 외쳤다. “안철수 대표님의 복귀를 쌍수를 들어 환영합니다!” 토론회에는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바른미래당 비례대표 김삼화·김수민·이동섭·이태규·신용현·최도자 의원이 참석했다. 바른미래당 서울·수도권 지역위원장들도 보였다. 4월 총선을 치르기 위해 ‘명분’과 ‘얼굴’이 필요한 이들이다. 당의 한 축을 이루던 유승민 의원이 “2년 전 결혼을 잘못해서(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으로 바른미래당 창당) 고생을 많이 했다”며 자신을 따르는 의원 7명과 1월3일 탈당하면서 바른미래당은 현재 서로 생각이 다른 손학규 당대표 쪽 사람들과 안철수 쪽 인사들이 ‘불안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 선거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처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여야 대치 과정에서 ‘3지대’의 틈을 벌리고 싶은 정치권 인사들이 안 전 대표를 호출했다. 안 전 대표와 가까운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은 1월16일 라디오 방송에 나와 말했다. “조국 사태 이후 너무나 많은 분이 정치 재개를 요청하셨고, 상대적으로는 또 정치하지 말라, 그냥 외국에서 공부를 더 하셨다가 나중에 천천히 돌아오셔도 된다라는 그런 의견도 있었다. 12월30일 (안 전 대표와) 통화를 했다. 이제 정치 재개에 대해 결심을 하셔야 된다, 안 하시면 안 하신다고, 하시면 하신다고. (…) 본인(안 전 대표)은 외국에서 봤을 적에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서는 안 되는데… (정치로 돌아와) 이 얘기를 와서 하고 싶은 것 같다.”

‘문재인 정부 심판론’으로 총선을 치르고 싶지만 “자유한국당 중심으로는 힘들다”는 판단을 한 이들도 그에게 구애를 보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야권이 지리멸렬한 상황이라 그의 복귀가 힘이 될 거라는 시각이 많았고 그 의견이 안 전 대표에게 전달됐을 것”이라고 했다. ‘준연동형 비례제’ 선거법 개정으로 제3당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국회에서 다당제 틀이 자리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안 전 대표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으로 보인다.

“공익적인 마인드는 지금도 변함없는 내 삶의 기준이다. 한 인터뷰에서 ‘의사로서 살아 있는 바이러스 잡다가, 컴퓨터 바이러스 잡다가, 지금은 낡은 정치 바이러스 잡고 있다’고 말했다. 내 팔자가 바이러스 잡는 팔자인 것 같다.”(책 출간을 앞두고 ‘독자들에게 보내는 안철수의 편지’ 중)

그는 자신이 독일과 미국에서 보고 배운 것을 책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에 담았다. ‘자신의 생각’을 ‘우리의 생각’으로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마음인 듯싶다. 그러나 정치는 생각만으로 할 수 없다. 기성 정치권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는 ‘누구와 같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보는 그의 선택지는 세 가지다. 바른미래당으로 돌아가 당권을 잡고 선거를 치르거나, 또다시 신당을 만들거나, 보수 통합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다. 안 전 대표는 정치 복귀 메시지에서 “(많은 분과) 상의드리겠다”고 했다. 그를 돕는 이들 모두 “지금 결정된 것은 정말 없다. 안 전 대표가 귀국 뒤 가닥을 잡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각자 서 있는 위치에서 안 전 대표의 행보를 전망하고, 해석한다. 국민의당 창당의 주축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개인적 판단을 전제로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서는 ‘반문연대’가 필요하다. 안 전 대표도 대통합이라는 취지에서 언젠가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한국당이 주도하는 범보수 통합 논의기구인 ‘혁신통합추진위원회’에 참여 중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오셔서 우파 대통합에 역할을 해달라”고 안 전 대표에게 구애하고 있다. 반면 과거 안 전 대표를 도왔던 인사는 “결국 그는 대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보수 쪽으로 가는 순간 죽는 것을 알 것이다”라고 내다본다. 무작정 보수 통합에 참여할 경우 낡은 정치·기득권 타파, 중도 등 그의 ‘정치 명분’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는 1월14일 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정치공학적 통합 논의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다”며 자신을 둘러싼 ‘보수 통합 참여 논란’에 선을 그었다. 이태규 의원도 “안 전 대표는 본인이 보수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보수 통합’ 명확한 입장 정리가 안철수의 길 시작점

안 전 대표가 ‘안철수 현상’의 주인이 다시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높기만 하다. ‘새정치’와 ‘미래’에 대해 기존의 애매모호한 언어 대신 구체적인 답을 내놔야 그가 노리는 중도·무당층의 중간지대를 장악할 수 있다. 3세력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하면 국민의당 시절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에서 ‘민주당 2중대’ ‘한국당 2중대’라는 비난을 들으며 위축됐던 과거를 반복할 수 있다. 당장 보수 통합 논의에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못할 경우 이전 ‘흑역사’를 반복하며 휩쓸려갈 가능성이 크다. 총선이 범진보(민주당·정의당) 대 범보수의 대결로 흘러갈 경우 안 전 대표는 시간에 쫓기며 3지대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를 넘어서야 그에게 다시 대선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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