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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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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일 10시간씩, 소풍 간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사회보험·노동삼권 보장해야

플랫폼노동이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에 영향
등록 2019-11-18 02:57 수정 2020-05-07 01:03
서울 영등포역 앞 지하상가 입구에서 한 대리운전 기사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호출을 기다리고 있다. 김진수 기자

서울 영등포역 앞 지하상가 입구에서 한 대리운전 기사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호출을 기다리고 있다. 김진수 기자

“매주 자유가 입금된다.” 글로벌 승차공유 플랫폼기업 우버가 운전기사를 모집하면서 내건 광고 문구다. 우버 기사들은 자신의 승용차로 우버가 연결해준 승객을 태운 뒤, 우버가 가져가는 수수료를 제외한 요금을 받는다. 우버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지급되는 노무의 대가를 ‘자유’라 표현했다. 온라인으로 디자인 용역 등을 거래하는 플랫폼기업의 광고를 보자. “넌 점심밥으로 커피를 먹어. 넌 스스로 약속한 건 끝까지 해내. 네가 중독된 마약은 ‘수면 부족’이지. 그렇다면 넌 행동하는 사람일 거야.”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업무를 점심도 거른 채, 밤새 하는 것을 ‘행동하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이 광고는 2017년 미국에서 ‘과로 장려’ 광고로 논란이 됐다.

드라이브하듯? 드라이빙이 일이라면?

한국의 플랫폼기업들도 비슷하다. “소풍하듯 드라이브하듯 배달”(쿠팡 플렉스·온라인쇼핑 택배 배송) “재밌고, 다양한 미션! 또 다른 드라이빙의 재미를 느껴보세요”(쏘카 핸들러·렌터카 탁송). 플랫폼에 돈을 받고 제공하는 노동을 노동이 아닌 것으로 포장한다. 인격이 내재된 노동을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봐왔던 자본은, ‘공유경제’ 시대에 이르러 노동을 ‘자발적인’ 것, ‘즐기는’ 것으로 뒤바꾸고 있다. 또한 플랫폼기업들은 ‘앱을 끄면 그만’이라거나 ‘언제든 하기 싫으면 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도 심는다. “억대 연봉을 벌 수 있다”(전동스쿠터 공유플랫폼 ‘라임’의 스쿠터 유지·보수 업무 ‘주서’)는 광고도 있다. 이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시간과 자원을 들여 선택한 일이므로 노동자에게 적용됐던 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이러한 ‘가설’은 사실일까?

“부업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이게 주업이 됐죠. 아마 프리랜서 기사들 대부분 그럴걸요?”

지난 10월 기자와 만난 타다 프리랜서 운전기사 ㄱ씨 역시 ‘주업’은 연극배우다. 연극배우들의 생계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ㄱ씨 역시 주업에서 부족한 수입을 벌충하기 위해 보조출연 등으로 범위를 넓혔으나 벌이가 들쭉날쭉했다. 그래서 두 달 전부터 주 6일 야간에 10시간씩 타다를 몬다. ㄱ씨는 “일하는 날짜를 선택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들쭉날쭉하게 했다간 배차를 안 해줄지도 모르잖아요. 업체에선 당연히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고요. 밤에 10시간씩 운전하니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어요. 당연히 주업이 되죠. 프리랜서라고는 하지만, 출퇴근 시간 정해져 있고 차량 운행 경로 다 감시받고, 화장실도 못 가고 지시에 따라 운전해야 하고, 사실상 노동자예요. 4대 보험이나 연차는 과연 받을 수 없는 건가, 계속 생각하게 돼요.”

산재보험 적용 최소한의 조건

플랫폼기업은 플랫폼에 노무를 제공하는 노동자가 1년에 1시간을 일하든 한 달을 일하든 보상하는 기준이 유사하고, 그 권리의 보장 정도도 최저선(자영업자)에 맞춰 있다. 그러나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이 2018년 한국노동연구원 노동패널조사를 분석해 발표한 ‘한국의 플랫폼노동과 사회보장’ 발표문을 보면, 플랫폼 일자리에서 석 달 가운데 60일 이상 일한 이는 74.2%에 이르고, 하루 5시간 이상 일하는 이는 93.4%, 9시간 이상 일하는 이도 32.8%인 것으로 나타난다. 한 플랫폼에서 소득의 절반 이상을 얻었다고 응답한 이는 74%에 이른다. 플랫폼 일자리가 ‘주업’인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통상 ‘단시간 노동은 부업일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도 있다. 플랫폼노동에 입직한 경위를 묻는 구체적 연구는 아직 이뤄진 바 없으나,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이하 경활) 부가조사에서는 시간제 일자리(주 36시간 미만 근무하는 임금노동자)를 선택한 이유를 묻고 있어 추정이 가능하다. 정성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노동리뷰> 3월호에 발표한 ‘우리나라 시간제 일자리의 특징과 비자발적 시간제 국제 비교’ 논문을 보면, 지난해 경활 부가조사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한 노동자들 가운데 ‘당장 수입이 급해서’(32.8%), ‘원하는 일이 없어서’(5.6%) 등 비자발적 사유들이 높게 나타난다. 반대로 ‘근로조건에 만족해서’(27.0%), ‘노력한 만큼 수입을 얻고 싶어서’(2.0%), ‘근무시간을 신축적으로 조절하고 싶어서’(3.2%) 등의 이유로 시간제를 선택한 응답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모든 단시간 일자리가 ‘자발적’인 것은 아니다.

설사 해당 일자리가 부업이라도, 자발적으로 일자리를 선택했더라도 ‘일하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근로기준법의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자가 누릴 수 있는 ‘사회보장’의 권리가 해체돼서는 안 된다. 지난 7월부터 수도권의 한 도시에서 중소 배달플랫폼 배달원으로 일하는 ㄷ씨는 최근 배달 업무를 하다 크게 다쳤다. ㄷ씨는 오토바이를 운전해본 적이 없었지만, 단 이틀 만에 배달 업무에 투입됐다. 사고를 낸 차량이 도주하는 바람에 자동차보험으로 치료받기도 어렵고, 자비로 치료하고 있다. “산재보험을 가입할 수는 있지만, 지사장이 산재보험료 사업주 부담분만큼 오토바이 리스비(대여료)를 올려 받아요. 산재보험에 가입해도 지사장 눈치 보느라 산재 처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2019년 7월 기준 산재보험 가입률은 퀵서비스 기사 67.0%, 대리기사 44.4%에 그치고 있다. 가입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가입하더라도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현재 산재보험의 ‘전속성’ 요건은 플랫폼노동자에겐 맞지 않는 제도다.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 산재보험 적용을 위해선 “주로 하나의 사업에 그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이라는 전속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때문에 다수의 플랫폼을 사용해 노무를 제공하는 경우 산재보험 적용이 어렵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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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만원 정규직 배달원’이 안 되는 이유

이런 문제점에 대해 플랫폼기업들은 “노동자들이 유연성을 선호하고, 좀더 많은 소득을 올리길 원해 정규직 일자리를 원치 않고, 4대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는 논리를 댄다. 실제로 배민라이더스는 출범 초기 월 250만원의 정규직 배달원 채용을 시도했으나 배달원들이 이를 원치 않아, 현재 정규직 배달원은 없다고 한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4대 보험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나타나는 것은 플랫폼노동자나 특수고용노동자뿐만 아니라 저임금 노동자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래에 대한 혜택을 불확실하게 보고 지금 당장 얻는 소득 때문에 회피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고용보험의 경우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실업급여를 받기 어렵고 (체감상) 보험료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도 덧붙였다. “주 40시간 일해서 월 3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면 4대 보험에 가입하고 근로계약을 맺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주 6일 72시간씩 일해도 평균 250만~300만원 받는다. 게다가 플랫폼들이 개인사업자로 들어가면 월 600만원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다. ‘나도 열심히 하면 저렇게 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심게 되고, 무리한 운전을 하게 한다.”

플랫폼 일자리가 늘어 근로기준법의 노동자가 줄어든다면, 전체적인 사회보험과 조세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 명확하다. 전세계적으로 플랫폼노동이 확대된 데는, 자영업자들이 내는 세금이 노동자가 내는 세금보다 적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노동법)는 “기존 고용관계를 통해 확보되던 사회보험료가 플랫폼노동 확대로 징수되지 못할 경우 사회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이득은 플랫폼기업들이 누리게 될 텐데, 이는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노무 제공 조건을 대등한 위치에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역시 보장돼야 할 권리로 꼽힌다. 근로기준법에서는 ‘노동조건 노사 대등결정’의 원칙이고 자영업자로는 ‘공정거래’의 원칙이기도 하다. 특히 플랫폼의 경우 구체적인 노동조건이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한 ‘알고리즘’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수요·공급 상황에 맞춰 가격이 탄력적으로 운영되거나, 노동자의 업무역량을 종합 평가해 등급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은 플랫폼노동자들은 알지 못한다.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를 받는 고객이 주는 ‘평점’도 노동조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데, 여기에 구체적으로 노동자들이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막혀 있는 경우도 많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공동대표는 “가사노동은 플랫폼 기술이 있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서비스다. 그런데 플랫폼이 업계에 들어와 서비스가 규격화되면서 노동자들이 느끼는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졌다. 일부 플랫폼의 경우 고객 평점에 따라 보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노동자에게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노동삼권 보장이 핵심

이 때문에 강조되는 것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플랫폼기업과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다. 윤애림 연구위원은 “노동삼권을 보장해서 단체협약을 통해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다. 플랫폼노동자들이 단결하는 것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담합이라는 이유로) 태클(제동)을 걸 수 있는데, 이를 개선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플랫폼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생각해볼 수 있는 큰 밑그림은 이렇다. “플랫폼노동자는 임금·노동 조건의 하향화 압력과 고용불안, 사회적 고립, 장시간 노동, 법적 지위의 모호성 때문에 사회적 보호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사회보장에서 고용주 기여금을 누가 낼 것인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산업재해로부터의 보호, 교육훈련 기회 제공 의무를 플랫폼에 부과하고, 노동자에겐 노동삼권을 부여해야 한다. 또한 사회보험 제공을 위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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